소설리스트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43화 (43/271)

43화. 모임 (2).

여의도에 위치한 킬튼 호텔 19층 연회장.

웅성웅성.

와글와글.

나름 대한민국 내에서는 손에 꼽히는 재벌 그룹의 4세.

그래서 이런 모임이나 파티는 어렸을 때부터 이곳저곳 꽤 많이 참석을 했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대한민국은 유독 혈연, 지연, 학연을 동반한 인맥이 굉장히 중요했기에.

특히나 재계 쪽은 더.

그래서 어렵다면 어려운 자리임에도 크게 어색하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그저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과 누나와 함께 움직이며 대성이나 구산 쪽의 회장 일가와 악수를 하고 그쪽의 덕담 혹은 농담 비스무리한 말에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만 끄덕이면 됐기에.

그리고 한눈에 이 모임이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경영자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각 중요 계열사의 사장들과 전문 CEO들 그리고 축사 및 미래의 비전 같은 것을 연설한 유명한 경제 쪽의 교수나 학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처음 보는 자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이 분명 각 그룹에서 운영하는 ‘Revival Legend’의 책임자들일 것이고.

여하튼 약 30분 정도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와 대화를 동반한 친목행사가 진행됐고 그 후에 일단의 사람들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쪽에서는 아빠와 형 그리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안동영 비서실장이 함께 움직였다.

그 외 오늘 이곳에 참석하기 전에 소개 받은 우리 명진이 운영하는 ‘Revival Legend’ 내 총책임자라는 석인수 실장까지.

그리고 그것은 대성이나 구산 쪽도 마찬가지였다.

각 그룹의 회장과 최측근이 빠져나간 연회장.

그럼에도 연회는 쭉 진행됐다.

엄마는 연회장 한쪽에 마련된 장소에서 다른 그룹의 사모님들과 이야기 중이었고 누나도 누나 또래의 여자들과 한창 깔깔 웃어대며 대화를 나눔으로써.

나는?

물론 나도 내 또래가 뭉친 자리에 위치했다.

“형. 웃기지 않아? 집구석에 처박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던 놈들이 인재가 되는 세상이라니.”

“그러니까 세상이 미쳐가니까 별 병신 같은 일들이 다 벌어지네.”

“크크크. 이러다가 나중에 가장 결혼하고 싶은 배우자 직업 1순위가 게임 폐인이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어? 형. 진짜 그러겠는데?”

“맞아. 맞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키키키.”

“야. 그래도 그런 얘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편하게 사냥도 하고 레벨도 올리는 것 아냐. 노예처럼 착실하게 몬스터를 몰아오니까. 그리고 매일매일 골덴링을 캐서 일정량을 길드 본부에 납입도 하잖아? 그런 착한 일꾼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 잘 대해줘라. 괜히 도망가

면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니까.”

“에이. 형. 그건 아니지. 생각해봐. 평생 골방에 처박혀 히키코모리처럼 게임만 할 놈들에게 꿈도 못 꿀 대기업 명함에 그리고 월급도 주는데 지들이 싹싹 기면서 열심히 해야지.”

“맞아. 그 말은 민석이의 말이 맞지.”

“됐고. 그런 것 다 필요 없이 요즘 짜증나 죽겠어. 가상현실 이것은 대리 게임 자체가 불가능해서 내가 직접 시간을 내서 해야 하잖아. 젠장! 클럽에서 옆구리에 잘빠진 가시나들 데리고 찐하게 놀아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미친놈. 너 나랑 고작 3일전에도 클럽 갔거든.”

“크크크. 그랬나?”

“그래. 이 미친놈아.”

나름대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

하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착해서? 남에게 험한 소리를 하지 못해서? 아니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아니다.

절대로.

내가 끼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내가 그 게임 폐인이기 때문에.

그것도 최대한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기 위해서 규칙적인 시간표까지 짜서 생활하는.

그래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킬튼 호텔 19층 연회장 한쪽에 위치한 작은 크기의 방.

각 그룹에서 4~5명씩 총 13명이 자리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인 구산 그룹의 정운기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바로 자신의 옆에 위치한 함수만 비서실장에게.

“확인 작업은 끝났겠지?”

“네. 깨끗합니다. 그리고 도청과 방음을 위해 미리 작업을 다 해놨습니다. 앞에 있는 대성과 명진 측의 인사와 함께요.”

“그래.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으니까.”

정운기 회장은 함수만 비서실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성의 김정한 회장과 명진의 홍상만 회장을 한 번씩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모두 내 요청을 받아줘서 고맙네.”

구산이나 대성, 명진 모두 수십 년째 대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기에 서로서로 오랜 인연을 가진 사이.

그래서 구산의 정운기 회장의 말에 대성의 김정한 회장과 명진의 홍상만 회장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곧장 대답했다.

“별말을요.”

“이자리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한번 꼭 만들어야 했을 자리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살짝 늦은 감도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맙네. 그럼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 바로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지. 우선 이번 통곡의 섬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지 않겠나?”

정운기 회장의 입에서 나온 통곡의 섬.

그 말이 나오자 김정한 회장과 홍상만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섬의 지배권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로인한 피해도 컸고.

“흠. 흠.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떤가? 괜히 우리끼리 싸워서 힘을 뺄게 아니라 우리끼리 그곳을 장악하고 한 달씩 돌아가면서 통곡의 섬을 지배하는 것이. 그리고 혹여나 다른 곳에서 통곡의 섬을 차지하기 위한 공격이 있다면 우리 셋이 단합해서 막는 거고.”

“지금 동맹을 맺자는 겁니까?”

정운기 회장의 말에 홍상만 회장이 곧바로 되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운기 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그렇게 성급할 것 있겠나? 우선 나중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동맹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리 한번쯤 합은 맞춰보는 것이 좋다는 거지. 그래도 우리는 오랜 인연도 있고 한 핏줄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니 남보다는 등을 맞대기에 더 낫지 않겠나. 가령 미국이나 중

국, 일본보다는.”

“우선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직은 동맹까지는 몰라도 서로 싸우는 것은 남만 좋은 구경거리를 만들어 주는 거니까요. 특히나 미래나 대유 놈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고요. 저는 괜히 그놈들 좋아하는 꼴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탁!

“그렇지!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네.”

조용히 듣고 있던 대성의 김정한 회장의 말에 구산의 정운기 회장이 무릎을 치며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 작은방에서는 한참을 더 이야기가 진행됐다.

세력이 커질수록 활동범위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로인해 마찰이 발생하는 곳은 통곡의 섬 하나가 아니기에.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연회장 한켠.

“주영아 너는 오랜만이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자가 있었다.

바로 나와 동갑인 대성의 김정한 회장의 손자인 김철민.

똑똑했다.

재벌가 사이에서 소문이 짝 나돌 정도로.

그렇기에 내 또래 중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그를 향해있었다.

재벌가의 엄친아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중간에 그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을 비춘 적이 있었다.

바로 나.

왜냐하면 평소 공부를 하지 않다가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하자 1, 2년 안에 수능 만점에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다른 몇 개 국어까지 모국어처럼 하며 서울대에 수석 입학을 했다고 소문이 났기에 재벌가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화젯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룹 비서실에서 포장을 엄청 화려하게 하기도 했고.

“응. 오랜만이다.”

어쨌든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에다가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 동기.

그래서 그의 인사에 똑같이 나도 인사를 건넸다.

“그나저나 요즘 들리는 소문으로는 너 군대도 그리고 복학도 안 시킨 것은 명진이 그 누구보다 빨리 Revival Legend에 소문을 캐치해서 너를 키우기 위해서라는데 맞아? 군대에서도 명진의 힘으로 계속 Revival Legend만 하고.”

“허...”

순간 김철민의 말에 헛기침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설마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것은 아니지?”

“워낙 주영이 너에 대한 이야기가 스펙터클해야지. 그래서 반쯤은 나도 모르게 믿게 되더라고.”

“.......”

그 말에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봐서 좋다. 그나저나 너도 하지?”

“어. 그렇지 뭐.”

당연히 ‘Revival Legend’를 하냐는 질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나저나 나도 휴학한지 1년이 지났어. 서울대 입학을 그렇게 좋아하던 할아버지가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더라고. 앞으로는 서울대 졸업장 따위는 하등 쓸모없는 것이 될 거라면서.”

“아무래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렇겠지.”

확실히 그런 세상에서는 서울대라는 학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게 분명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한 김철민이 말을 이었다.

“하여튼 오늘 만나서 좋네. 종종 보자고. 내 친형이지만 여전히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는 사람보다는 누구보다 사리 분별만큼은 뛰어났던 네가 좋았으니까.”

“그래. 그러자.”

조금 늦을 뻔한 대답을 빠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렇게 김철민과 인사를 하고 얼마 안 있어 각 그룹의 회장을 필두로 최측근들이 작은 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 후 그날의 경영자 모임을 가장한 회동은 끝이 났다.

화기애애하게.

아무래도 그 작은 방에서 이루어진 회동이 좋은 결말이 난 것 같았다.

여하튼 모임이 끝난 시간은 저녁 9시 30분.

그날은 나도 청담동 집으로 같이 움직였다.

청담동 집.

“주영이 너도 들어와라.”

아빠의 그 말에 나도 지하의 서재로 이동했다.

당연히 형과 누나를 포함해 안동영 비서실장과 석인수 실장이라는 사람과 함께.

그 후에 이어진 대화는 석인수 실장이라는 자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회동의 총평.

주로 누나와 나는 듣기만 했다.

그 자리에 없었기에.

그리고 솔직히 내가 특별히 신경 쓸 내용은 없었다.

대충 대성과 구산하고는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거라는 이야기가 대부분 이었기에.

물론 도중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지나가기는 했다.

바로 개미굴에서 있었던 대성 길드원 11명과의 싸움.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워낙 작은 일이기도 했고 그 대상이 나인 줄은 모를 테니까.

그 후 회의는 언젠가는 대한민국 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힘겨루기가 필히 있을 것이기에 100% 대성과 구산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현재 좀 많이 뒤쳐진 미래와 대유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언급과 함께.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자리를 뜰 찰나 아빠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래. 잘하고 있고?”

“네.”

“부족한 것은?”

“.......”

부족한 것?

아빠의 그 질문에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왜냐하면 오늘 있었던 대화가 갑자기 떠올랐다.

마치 어미새가 벌레를 아기새의 벌린 입에 떠먹여 주듯 몬스터를 몰아오는 자들과 본인 1명을 위해 구성된 10명 이상의 힐러와 서포터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룹의 재원으로 맞춘 본인 레벨대의 최상위 장비들까지 그들은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물론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을 부러워하기에는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많기에.

솔직히 딱히 필요치도 않았고.

하지만 왠지 말해보고는 싶었다.

하지만.

꿀꺽.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직은 없어요.”

“그래. 알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혹여나 도중에 부족한 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네 형이나 누나한테 바로 말하도록 하고.”

“네.”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바로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 누나 앞에 짠하고 나타나고 싶은 생각이.

그것도 당연히 엄청난 강자로.

마치 금의환향하듯.

여하튼 그 말을 끝으로 나도 서재 밖으로 빠져 나와 2층에 위치한 여전히 관리를 해서 깨끗한 내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3세대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했다.

잠을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기에.

< 모임 (2). - [유료 연재 시작] > 끝

< 새로운 퀘스트.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