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내로남불.
“.......”
1강화로 변한 얼음황제의 수호검은 분명 많이 오르긴 올랐다.
단 물리공격력만.
그만큼 551이나 오른 물리공격력에 비해 마법 공격력은 고작 56밖에 오르지 않았다.
“수호검...”
검이라 적힌 부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검이 아니라 지팡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하지만 그 아쉬움을 길게 가져가지 않았다.
얼음황제의 수호검은 1강화가 끝이 아니니까.
14일.
정확히 14일 뒤에는 2강화로 변할 것이고 어쩌면 그때는 마법공격력이 생각보다 더 많이 오를지도 모른다.
저벅저벅.
그런 기대감을 안고 대장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콜피온 킹의 반지와 귀걸이 그리고 얼음황제의 수호검까지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강화를 끝냈기에.
그리고 거침없이 코툼성 외곽에 있는 텔레포트 존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빠르지만 이제 코툼성을 벗어날 때도 됐지.’
원래 최소 300레벨까지는 이곳 코툼성을 거점으로 삼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사냥터도 코툼성에서 손쉽게 이동 가능한 구역으로 잡았었고.
하지만.
“이동. 개척자들의 도시.”
새롭게 거점으로 삼을 곳은 개척자들의 도시.
물론 코툼성에 비해 난이도가 확 오른 그런 곳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간의 경험으로 내 수준에 맞는 그래서 나름대로 빡빡한 사냥을 하는 것보다는 내 수준에 못 미치는 대신 손쉽고 빠르게 사냥을 하는 것이 레벨업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곳 개척자들의 도시는 꽤나 나에게 적합한 곳이라 여겨졌다.
더욱이 코툼성에서 연결이 됐던 개미굴과 사막 스콜피온 숲은 이곳 개척자들의 도시와는 텔레포트 존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즉, 나를 찾는 자들은 어지간해서는 여기까지는 생각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개척자들의 도시로 이동됩니다.]
곧 눈앞에 개척자들의 도시가 들어왔다.
확실히 코툼성에 비하면 칙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살짝 야생적인 느낌도 엿보였고.
씨익.
하지만 그 모습에 왠지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마치 영화에서 보던 뒷골목이 연상됐기에.
물론 곧장 개척자들의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가히 도시 구경이나 하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그래서 곧바로 외쳤다.
거점도 거점이지만 점찍어뒀던 사냥터로.
“이동. 질척대는 늪지대.”
[질척대는 늪지대로 이동됩니다.]
곧 눈앞에 질척대는 늪지대의 크지 않은 그래서 한눈에 들어오는 세이프티 구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한산했다.
그 어떤 곳보다 더.
물론 아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있긴 있었다.
약 10명 내외로 이루어진 휴식을 취하는 듯한 2개의 사냥 파티가.
그리고 따로 5명이 더 있었다.
그것도 이곳 질척대는 늪지대의 세이프티 구역 끝에 위치한 출입구에서 마치 그곳을 지키듯이.
저벅저벅.
하지만 개의치 않고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가까워지자 5명중에 한명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를 향해 멈추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그 제스처에 일단 멈춰 섰다.
그러자 그가 나를 향해 한발자국 더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곳 늪지대에는 처음이신가 보네요.”
“네. 처음입니다.”
우선 그의 장단에 맞춰 대답했다.
“아. 그래서 신발을 그걸로 차셨구나.”
내가 착용한 신발을 가리키며 말하는 남자.
그래서 나도 시선을 아래로 내려 확인했다.
마법사용 셋트 아이템인 3강화 사이딘의 부츠를.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을 확인했는지 남자가 곧바로 이어 말했다.
“이곳 늪지대 앞에 질척대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사냥은 물론이고 이동하는 것 자체도 고역입니다. 더군다나 곳곳에 늪지 괴물이 만든 함정도 존재하고요. 그래서 바로 이 장화가 필요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인벤토리에서 한 짝의 장화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마치 장사꾼처럼.
“보시는 대로 질기고 튼튼합니다. 더군다나 무릎까지 올라오기에 함정만 조심한다면 늪지대를 움직이는데 큰 불편함은 없을 거고요. 단언컨대 이곳에서 사냥하기 위한 필수품 중의 필수품입니다.”
그의 말과는 달리 장화는 전혀 안 질기고 전혀 안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은 상관없다는 듯이 곧바로 이어 말했다.
“더군다나 이 늪지대는 저희 가화 길드가 관리하는 곳으로 이 장화를 구입하면 기본적으로 항상 무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물론 장화를 구입하지 않고 한번 이용할 때마다 통행료를 지불하고 이용해도 상관없고요. 다만 그렇게 하면 아차 하는 순간 더 많은 골덴링이 소모될 수도 있습니다. 찔끔찔끔 하는 결제가 결국에는 돈을 더 잡아먹듯이요.”
대놓고 말하는 협박 겸 강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최대한 웃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장화는 얼마입니까?”
“아, 역시 멀리서 볼 때부터 딱 경험이 많다 싶었는데 역시나네요! 준비되지 않은 자는 사냥할 권리조차 없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로 원래 저희 가화 길드가 정한 정찰제가 10만 골덴링인데 제 제량으로 특별히 7만 골덴링에 드리겠습니다.”
바가지.
아주 나를 머저리에 호구로 보고 제대로 덤터기를 씌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있습니다.”
군말 없이 인벤토리에서 7만 골덴링을 꺼냈다.
그리고 그와 교환을 시도했다.
“이야. 화통도 하셔라. 그나저나 이 장화가 뛰어난 성능과 달리 볼품없게 생겼지만 그래도 성능은 확실하니 잘 신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내구도가 0으로 떨어지면 수리비가 10배 가까이 드니까 내구도 관리는 잘 하시고요.”
그렇게 교환으로 7만 골덴링에 장화를 구입했다.
‘아이템 확인.’
[볼품없는 장화 (일반-제작 아이템)
-불꽃모양 장식이 들어간 볼품없는 장화다.
-물리방어력 9, 마법방어력 3
-내구력: 89/89]
10만? 7만? 아니, 단언컨대 10골덴링의 가치도 없어보였다.
즉, 제대로 사기를 당황 상황.
그렇기에 길길이 날뛰며 분노해야 하고.
하지만.
씨익.
“좋네요. 그나저나 그럼 이만 가봐도 될까요? 제가 좀 많이 바빠서요.”
“아, 그럼요! 야. 문 열어 드려라. 그리고 우리 길드 마크가 들어간 제작 장화 팔았으니까 저 장화를 신고 있으면 즉각 즉각 통과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나에게 형편없는 장화를 7만 골드에 판 남자의 말에 나머지 입구를 막고 있던 4명이 길을 트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나에게 과시하듯이.
하지만 그 모습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늪지대 쪽으로 이동했다.
홍주영이 늪지도 쪽으로 이동한 사이.
“이야. 형님 재주도 좋으셔. 1만 골덴링에 팔라는 것을 7만 골덴링에 팔고.”
“크크크. 이게 바로 뛰어난 언변이라는 것이다. 언변! 니들도 보고 배워. 씨팔. 가뜩이나 사냥도 못하고 이곳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데 이런 소소한 이득이라도 챙겨야 할 것 아냐.”
“에이. 그건 형님이나 가능하지. 우리 같은 말단이 그런 수작 부렸다고 들키기라도 하면...”
“짜식이. 겁은 많아가지고.”
“근데 형님. 방금 그 마법사는 뭔가 말로는 고분고분하는 것과 달리 분위기가 좀 쎄하던데. 나만 그런가?”
“그래?”
“응. 왠지 느낌이 썩...”
“됐어. 지가 그래봤자 어쩔 거야. 여기는 우리가 장악하고 있는데.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그냥 죽여서 이곳에 오지 말라고 협박하면 되지.”
“하긴 뭐.”
그렇게 질척대는 늪지대 앞에서 통행세를 챙기던 가화 길드원은 희희낙락거리며 떠들어댔다.
질척대는 늪지대의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
“흠. 그렇단 말이지.”
사냥터 안으로 들어서고 멀리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싶은 것이 꽤 많았기에.
“가화 길드라는 것은 진짜 있고 통행세를 걷는 것도 진짜란 말이지. 다만 1만 골덴링 짜리를 나에게 7만 골덴링으로 덤탱이를 씌운 거고. 3만 골덴링을 깎아준다며 유세를 떨면서.”
물론 실질적인 판매가라는 1만 골덴링도 바가지다.
그만큼 1만 골덴링의 가치에 근접하기에는 장화는 정말 이름 그대로 볼품없었다.
능력도 형편없었고.
하지만 자기들이 장악한 사냥터를 빌미로 강매를 하는 것 같았다.
알량한 길드의 힘을 믿고.
“햐. 정말 가지가지 하네.”
등장하기 전부터 주인이 있다는 보스 몬스터에 역시나 주인이 있다는 사냥터.
더욱이 이곳은 인기가 없는 사냥터다.
즉, 길드원을 5명이나 상주시키면서 삥이나 뜯도록 만들기에는 잠시간이라도 성장이 멈춘 그 5명도 5명이지만 길드 입장에서 도움이 안 된다.
결국 눈앞의 작은 이득이 아등바등하는 근시안적인 안목.
뻔했다.
가화 길드라는 곳이.
“그래. 어쨌든 좋아. 살다보면 이런 경우도 있고 경험이 되니까. 성창 길드처럼.”
등장 하자마자 보스 몬스터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던 성창 길드를 잊지 않았다.
물론 전과 달리 이제 아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명진도 이 게임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
어쩌면 명진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작업장을 운영하는 대성처럼.
아니, 할 것이다.
자선사업 하듯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조금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7만 골덴링을 건넸고.
물론 더 정확히는 골덴링에 여유가 상당히 많은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 골덴링에 연연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해지는 것이 더 크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고 그래서인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만약 우리 집안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냥 지나칠 것이다.
아니, 조언을 했을 것이다.
이런 인기 없는 사냥터는 인심을 쓰는 척 아무나 사냥하게끔 풀어주고 인기 있는 사냥터만 확실히 독식하자고.
그게 나에게는 가족이다.
그만큼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평등을 부르짖는 평등주의자도 아니고.
하지만 가화 길드나 성창 길드는 가족이 아니다.
당연히 그들을 대하는 잣대가 다를 수밖에 없다.
“흐흐흐.”
마치 악당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기다려도 부족하지 않다고 했으니까.”
물론 복수로 삼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영역.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기에 마음 한켠에 착실하게 쌓아두었다.
나중에 잘 꺼내기 위해서.
그리고 더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스 필드!”
파사사삭!
늪지 괴물이라는 몬스터? 아직 없다.
하지만 사용했다.
저벅저벅.
질척이는 늪지대를 푹푹 빠지며 걸을 생각은 없기에.
물론.
펑! 펑!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늪지 괴물이 만든 함정들.
그 함정이 넓게 펼쳐진 아이스 필드에 의해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드디어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터 안으로 들어서기 전 볼품없는 장화를 강매한 가화 길드원이 말한 늪지 괴물들이.
“쿠어어어!”
“쿠오!”
나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늪지 괴물들.
나도 그 인사에 화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이스 필드.”
파사사삭!
곧 늪지 괴물들을 향해 얼음의 대지가 펼쳐졌다.
< 내로남불.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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