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39화 (39/271)

39화. 흔적.

구산 그룹 내의 소회의실.

정석영은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 퀘스트때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저장해주는 나름대로 값이 나가는 아이템인 기억의 구슬을 사용했었다.

그것도 3라운드부터.

왜냐하면 이번 퀘스트 참석이 3번째.

그래서 정석영은 생각보다 몬스터를 빠르게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특출난 멤버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러려니 하고 가벼이 넘길 수도 있는 사안.

하지만 레벨 제한으로 이번이 마지막 참석이기도 했고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쓰러지는 몬스터 때문에 결국 사용했다.

궁금증을 쭉 안고 가는 것보다 기억의 구슬을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그 정도 여유는 충분했고.

그리고 정석영은 그렇게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모두가 볼 수 있게 틀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필두로 그룹 내에 ‘Revival Legend’를 관리하는 책임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과하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한 정석영의 할아버지이자 구산 그룹의 정운기 총괄 회장은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자는 정운기 회장뿐만이 아닌 듯 했다.

“저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무리 포장에 포장을 더해도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맞습니다. 명백하게 일반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상식선에서 한참을요.”

정운기 회장의 말을 ‘Revival Legend’내의 구산 길드의 총대장을 맡고 있는 이태선 실장과 함수만 비서실장이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정운기 회장이 정석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서 단순히 너의 정체를 알리는 선에서 멈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와 끈은 만들어야 했다. 그만큼 너는 직접 현장에 있었으니 더 여실히 느꼈을 것이 아니냐.”

“후후. 그러네요. 정말로.”

할아버지의 질책 아닌 질책.

하지만 정석영은 크게 개의치 않은 듯이 웃어 넘겼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읽은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인식 가능한 한도를 벗어난 감각은 느끼지 못한다고요.”

정석영은 잠시 말을 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들어 마시며 곧바로 이어 말했다.

“400레벨. 만약 그자가 저와 같은 400레벨이었다면 의심을 넘어 혹 버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을 겁니다. 저 능력은 아무리 높게 쳐줘도 400레벨에도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131레벨. 오히려 131레벨이기에 버그라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더군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될 뿐.”

“.......”

“.......”

“.......”

정석영의 나지막한 말에 소회의실 안에는 작은 침묵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때 ‘Revival Legend’내의 구산 길드의 총대장을 맡고 있는 이태선 실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그 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 짐작 가는 이라도 있나?”

이태선 실장의 말에 정운기 회장이 곧바로 되물었다.

“네. 아시다시피 이 게임은 ‘Revival Legend’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 ‘Forgotten Legend’라는 이름으로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클로즈 베타 당시의 만렙을 비롯해 달성한 여러 요소에 따라 차등적으로 특성이라는 것을 부여했고요.”

모두 아는 이야기.

하지만 아무도 이태선 실장을 재촉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 이태선 실장이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는 특성. 그래서 미국도 중국도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찾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찾는 방식은 모두 다 똑같습니다. 바로 발품을 파는 것. 왜냐하면 도저히 해킹이 불가능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도요. 그렇기에 게임을 했던 내역이나 이용자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정보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이태선 실장은 목이 타는지 앞에 놓인 차를 집어 들고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찾는 방법은 그 게임을 플레이 했던 자들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을 찾아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미국과 중국이 우리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종종 대박을 치기도 했습니다. 대게 게임은 혼자가 아닌 친구나 혹은 길드 등의 모임을 만들어 함께 즐기니까요.”

확실히 맞는 말.

정운기 회장도 특성을 가진 자들을 확보하면 즉각적으로 보고를 받았기에 본적이 있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듯 한 번에 여러 명의 특성을 가진 자들이 영입되는 것을.

여하튼 이태선 실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로부터 혹여나 다른 만렙 달성자에 대한 정보를 캐묻습니다. 아무래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때 한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정보?”

“네. 바로 사냥에 미친 자에 대한 정보요.”

“좋아. 계속 말해봐.”

“네. 우리가 동시에 확보한 6명은 1차 클로즈 베타 당시 보스 몬스터 레이드를 진행하는데 딜이 부족해 딜러 한 명을 추가적으로 파티에 영입을 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로요. 당시로서는 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는 사냥에 열중해서인지 만렙은 기본에 아이템도 꽤나 충실히 맞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난하게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을 했고요.”

“그래서?”

“그래서 자신의 길드로 영입을 시도했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뒤로 한두 차례 더 보스 몬스터 레이드 도움을 요청했고 그것은 받아들였고요. 여하튼 작지만 안면은 튼 사이. 지나가는 투로 물어봤다고 합니다. 평소 게임에 접속하면 뭘 하냐고요.”

“대답은?”

“몬스터 사냥을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항상요.”

이태선 실장의 말에 모두 한껏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듯이 이태선 실장의 말도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그를 2차 클로즈 베타 때도 만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1차와 같은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로요. 그리고 우리가 영입한 6명 모두 한결같이 말하더군요. 확실치는 않지만 그 자가 가장 빠르게 만렙을 찍은 것이 아닌가 하고요. 왜냐하면 자신들은 이제야 겨우 100레벨을 달성했고 평균 레벨도 그 정도였는데 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는 벌써 2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인 200레벨을 달성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봤다고 합니다. 2차 클로즈 베타 종료를 몇 시간 앞두고 남들은 가진 아이템을 강화로 날리고 모은 골덴링을 열심히 소비하는 와중에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사냥에 열중하던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를요.”

“.......”

“.......”

침묵이 감도는 소회의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정운기 회장이 입을 열었다.

“3차는?”

“아시다시피 1, 2차와 달리 3차는 커트라인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정 레벨에 도달하지 않으면 접속 자체가 불가능해졌고요. 더욱이 아무런 공지도 없이 시행이 됐기에 우후죽순으로 사람들이 떨어져나갔습니다. 그래서 3차는 우리가 확보한 인원중에 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를 본 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가 아무도 없다고 추측되는 가운데 만약에 달성자가 있다면 그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래서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인터넷상에 3차 클로즈 베타에 단 한 줄이라도 글을 올린 자가 있다면 직접 찾아갈 정도로요.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몇 년 전입니다.”

“흠.”

이태선 실장의 말에 정운기 회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함수만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신빙성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얼추 딱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에 모두 만렙을 한 그자가 지금 게임을 시작한 것으로요. 더욱이 다들 만렙을 찍고 간간히 접속해 놀 때 그자는 죽어라 사냥을 했습니다. 당연히 계속된 사냥으로 골덴링도 아이템도 남들보다 많이 모았을 것이고요. 즉, C등급? 아니, 어쩌면 B등급을 넘어 A등급의 특성을 다수 보유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131레벨에 그런 능력을 보인 것이고요.”

함수만 비서실장의 말.

그 말에 모두들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걸 대입하고 보니까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졌기에.

“그나저나 로브에 마스크까지 착용했다는 것은 그자도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네. 자신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뽐내지 않는다는 것으로 봐서는 상당히 신중한 인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타이치라는 자와의 마찰. 그 마찰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걸 보아 식견이 꽤나 넓고 사리분별이 뛰어난 자 같습니다. 즉, 범위를 좁혀보면 저희 생각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사회 경험이 많은 자 아니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태산 실장과 함수만 비서실장의 말에 정운기 회장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흠. 결국 구산 그룹이 과연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설지 그게 관건이겠군.”

“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필라탄 성으로요.”

정석영이 만들어 놓은 작은 끈.

그 끈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진행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1차, 2차, 3차 전부 만렙을 달성한 유저일지 모르니까.

그것도 그냥 C, D등급의 턱걸이에 가까운 특성이 아닌 A등급 이상으로.

다음날 사막 스콜피온 숲 세이프티 존.

“흠.”

어제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스콜피온 숲 안으로 이동했었다.

당연히 사냥을 하기 위해서.

직전의 1시간동안 쉴 틈 없이 진행된 전투?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작 그 정도에 피로감을 느끼기에는 체력이 높아도 너무 높았으니까.

어지간한 탱커는 내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그리고 만족했다.

물론 숫자는 확실히 개미굴에 비해서는 많이 모자랐다.

개미굴은 채 몇 분만 이리저리 휘저으면 100마리가 모이는 것은 순식간이었기에.

하지만 마리당 경험치는 확실히 이곳이 더 많았다.

그래서 만족스럽게 새벽 1시까지 쭉 사냥을 하고 잠을 자기 위해 썰물처럼 사람이 쫙 빠진 이곳 스콜피온 숲의 세이프티 존의 한쪽 구석에서 로그아웃을 했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하게 빠르게 접속을 했다.

한산한 스콜피온 숲과 많은 몬스터를 상상하며.

하지만.

웅성웅성.

와글와글.

분명 어제 새벽 1시 조금 넘어서 로그아웃을 할 때만 하더라도 없었다.

유저들이.

즉, 정기 퀘스트가 끝나자마자 내가 알던 원래의 인기 없고 조용한 사냥터로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꽤 많은 인원이 있었다.

물론 사냥을 위해 상주하는 인원일 수도 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인원일수도 있고.

하지만 뜬금없이 인기 없던 사냥터가 갑자기 인기가 치솟을 리가 없고 더욱이 저들의 모습은 도저히 이곳에서의 사냥이 목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그리고 당연히 그 찾는 자는 나일 테고.

‘음. 좀 그렇긴 했지.’

나를 빼고 약 400레벨에 근접한 딜러들이 총 20명이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들 중에 나의 반의반에 근접한 자들도 없다는 것을.

물론 대미지는 반에 얼추 근접한 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치 쿨타임이 없는 듯한 마법의 연사 속도와 1시간 동안 끊임없이 스킬을 남발할 마나량은 그들에게 없었다.

‘그냥 공개 할까?’

개미굴에 이어 이곳 스콜피온 숲까지 이 지경이 되자 공개할 마음과 처음에 그 누구도 감히 나를 어쩌지 못할 정도까지 안전하게 성장하고 모습을 드러내자는 마음이 서로 경합을 벌였다.

하지만 그 경합은 길지 않았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기에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착용을 했던 것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마스크는 벗고 로브도 처음에 샀던 그 누더기로 교체하고.

그리고 이동했다.

코툼성으로.

원래 잠깐만 사냥을 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이 그 날이었다.

바로 ‘강화의 신’ 쿨타임이 끝나는 날.

그래서 가능했다.

얼음황제의 수호검을 1강화 시키는 것이.

< 흔적.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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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의 신’의 재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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