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 (3).
“솟구쳐라. 불기둥!”
“힐. 힐.”
“대지여 나의 의지에 따라 출렁여라! 흔들리는 대지!”
“파워 샷.”
“트리플 샷!”
“소환. 바람의 정령. 바람의 정령.”
“거인의 일격!”
여전히 원활하게 돌아갔다.
공격과 방어 그리고 그 뒤의 지원까지.
그래서 3라운드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스콜피온들이 달려들었지만 단 한 마리도 탱커의 굳건한 방어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방어벽에 다가오지도 못하는 죽어 나자빠지는 스콜피온들 숫자도 상당했고.
그리고 그렇게 4라운드가 종료됐다.
별다른 피해 없이 수월하게.
즉, 3라운드가 끝났을 때처럼 환호성을 내지르며 서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정적.
정적이 감돌았다.
더러는 내 쪽으로 눈치는 보는 자들도 있었고.
그만큼 자화자찬이 아니라 이번 4라운드에 내 공은 꽤 컸다.
거의 쿨타임이 없는 것 같은 마법 사용 속도도 속도지만 그 마법이 갖는 대미지 덕분에.
처음에는 니꺼내꺼 할 것 없이 온갖 공격들이 뭉텅이로 스콜피온들에게 박혀들었기에 각자의 위력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표면상 내 레벨은 131레벨에 불과했기에 나의 영향력은 미비함을 넘어서 거의 없다는 식의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이번에는 따로 펼친 아이스 필드와 마찬가지로 따로 사용한 쏟아지는 우박으로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곳에 모인 21명의 딜러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위력을 고작 131레벨인 내가 냈다는 것을.
그만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가장 많은 스콜피온을 잡은 것도 그 외 지속적인 피해를 입힌 것도 나였다.
도중에 봉인해 뒀던 얼음 폭파까지 사용하며.
물론 내가 속한 3번 팀의 앞쪽에 펼쳐놓은 아이스 필드를 얼음 폭파의 제물로 삼지는 않았다.
그것은 탱커들을 위해서라도 쭉 유지를 해야 했다.
그럼 제물이 무엇이냐?
바로 내가 2번째로 펼친 아이스 필드.
물론 끊임없이 모래를 뚫고 나오는 스콜피온을 위해서라도 장판을 지속적으로 깔아두는 것이 여러모로 효용이 높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또 사용하면 되니까.
남들은 쿨타임이 돌아오지 않아 손가락만 빨 때.
그만큼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스킬의 재사용이 가능했다.
2500이라는 정신력 수치 때문에?
물론 높은 것은 맞다.
131레벨은 물론이고 400레벨의 마법사로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만큼.
하지만 나에게는 더 있다.
바로 ‘아이스 맨’이라는 특성이.
아이스 계열의 모든 스킬의 위력을 30%를 올려주는 아이스 맨.
처음에는 위력의 범위를 대미지로 한정했다.
그 정도만 해도 어마어마한 특성이니까.
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위력에는 대미지뿐만 아니라 그 스킬의 사거리와 적용 범위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뭉뚱그려 위력이라 표현됐지만 어마어마한 능력.
하지만 위력에 내포된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바로 쿨타임의 감소.
아이스 맨은 30%의 쿨타임 감소라는 영향력까지 행사했다.
물론 아이스 계열의 스킬만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가능했다.
남들은 쿨타임이라는 제약에 막혀 손가락을 빨 때 나는 아이스 계열의 여러 스킬들을 난사하는 것이.
그것이 아무리 쿨타임이 상대적으로 긴 광역 스킬일지라도.
물론 이것만으로는 완벽함을 자랑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스킬의 쿨타임이 거의 없다시피 함으로써 끊임없이 난사가 가능해도 그게 없으면 불가능하다.
바로 마나.
그런데 나는 마나량마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렇게 10분간 쉼 없이 난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시간은 지금처럼 사용할 마나량이.
더욱이 2500에 가까운 정신력으로 회복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고.
그리고 그때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우리가 1등이네요.”
처음 우리가 3등임을 알렸던 힐러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그때처럼 모두가 허공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현 방어 점수판.
-1등 : 79번 방어대 (797,341점)
-2등 : 24번 방어대 (775,883점)
-3등 : 116번 방어대 (729,980점)
:
:]
역전.
우리가 1등으로 올라서고 원래 1등과 2등이 한칸씩 뒤로 밀렸다.
전과 달리 천 단위가 아닌 만 단위라는 유의미한 격차로.
저벅저벅.
모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을 때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그래서 고개를 내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눈에 보였다.
익명으로 참가했고 현재 79번 방어대 내에서 암묵적으로 리더를 맞고 있는 1번이.
그리고 그는 정확히 내 앞에 섰다.
무언가 읊조리듯 말을 내뱉으며.
“아이디 설정. 공개.”
1번의 말이 끝나자 변했다.
파티창의 그를 나타내던 ‘1번 참여 유저(아이디 비공개)’가 ‘정석영’으로.
정석영은 당연히 그의 아이디.
실제 그의 본명으로 보였다.
과거의 나처럼.
그리고 낯설지 않았다.
저런 이름을 가진 자를 알기에.
현실에서.
때마침 그도 아이디를 공개하자마자 내 쪽으로 머리를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구산 그룹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다.
모를 리가 없다.
우리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명진이나 대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업이기에.
그리고 정석영이라는 이름은 나보다 형 또래의 구산 그룹 회장의 손자라는 것도.
하지만 묵묵히 침묵을 유지했다.
“아마 아신다면 현실의 그 구산 그룹이 맞습니다. 혹시나 이 퀘스트가 끝나더라도 저에게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글쎄요. 제가 좀 많이 바빠서.”
“하하하.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혹시나 저 아니면 구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필라탄성에 오셔서 제 이름을 대시면 귀빈으로써 모시겠습니다.”
“.......”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정석영도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곧바로 가까이 댔던 얼굴을 땠고.
그리고 그는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 자! 이거 운 좋게도 우리 방어대에 엄청난 강자 분이 계셨군요! 남은 라운드도 손쉽게 클리어가 가능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보너스인 보스 몬스터 스콜피온 킹도 우리 몫이 될 것 같고요. 그러니 모두 긴장을 푸세요. 현재 우리는 79번 방어대로 묶인 같은 파티이자 동지 아니겠습니까?”
“하. 하. 하. 그... 그렇네요.”
“이야. 역시 131레벨로 400레벨 퀘스트에 괜히 참여 한 것이 아니네요.”
“그... 그러니까요.”
1번 아니, 정석영은 확실히 리더쉽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내 형처럼.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얼음장 같은 분위기가 녹아내렸다.
물론 그 와중에 여전히 얼굴을 펴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384레벨의 타이치라는 나와 같은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
터질 듯이 붉어진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그대로 묻어나있었다.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떠는 그의 몸은 안절부절못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고.
아마 가능할 것이다.
그에게 제대로 면박을 주는 것이.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도록.
그만큼 주변에는 존재했다.
내 한마디면 그에게 온갖 비난과 질타를 날릴 준비된 자들이.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도 주지 않았고.
괜한 적을 만들 생각은 없기에.
왜냐하면 안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데는 꼭 상대방의 부모를 죽일 필요까지 없다는 것을.
아주 사소한 것.
그 사소한 것에서도 충분히 만들어진다.
너 죽고 나 죽자가.
물론 그가 스스로 판 무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도 꽤 된다.
자기가 한 행동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자기가 당한 사실만 뼈에 사무치도록 기억하는 자들이.
물론 당한 만큼 내가 그에게 수치심을 주는 나름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로 그가 나에게 칼을 가는 복수심을 키워도 실질적으로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한 발자국 내디딜 때 나는 열 발자국을 내디딜 거고 그가 뛰기 시작하면 나는 날고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그런 격차가 존재한다고 불필요한 적들을 이곳저곳에 만들 생각은 없다.
그게 아무리 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입은 실질적인 피해는 전혀 없다.
손실도.
그래서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에.
“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하죠. 그리고 타이치님도 잘 부탁합니다. 저랑 스킬이 겹침으로써 대미지가 확실히 높아져 몬스터 잡는 것이 수월하더군요.”
그전의 일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명확한 내 의사 표시.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더러는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아무래도 저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내가 거짓말을 한 타이치라는 자를 비난하는 즉시 동조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로인해 어찌됐든 분위기는 좋아졌다.
문제가 문제로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물론 그 와중에 정석영이라는 자가 반짝이는 눈빛을 보였지만 그것은 무시했다.
그리고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5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용맹한 스콜피온들이 등장합니다.]
3, 4라운드와 달리 용맹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스콜피온.
그리고 그때 내가 속한 3번 파티의 딜러장을 맡았던 387레벨의 궁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30번님. 30번님이 딜러장을 맡으시죠.”
“아닙니다. 저는 방금 전처럼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그게 더 편했으니까.
나 혼자 더 많은 몬스터를 잡겠다는 욕심도 한몫했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5라운드가 시작됐다.
분명 용맹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스콜피온들이 등장했지만 전보다 좋은 분위기로.
“아이스 필드!”
다른 자들과 합을 맞춰 우선 재빠르게 장판부터 깔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우박을 필두로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와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를 끊임없이 날려줬다.
그러다 남이 보면 기겁할 정도로 빠르게 쿨타임이 돌아온 아이스 필드를 이번에는 살짝 밀리는 2번 파티쪽에 사용했다.
분명 그 자체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원래의 이동 속도 감소가 주된 효과인 아이스 필드지만 내 아이스 필드는 대미지 자체도 남다르기에.
그렇게 5라운드도 내 뛰어난 활약이라고 꼭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단 한곳도 뚫리지 않고 역시나 단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막아냈다.
그것도 전과 달리 상당히 큰 점수 차를 벌리며.
[현 방어 점수판.
-1등 : 79번 방어대 (1,367,552점)
-2등 : 24번 방어대 (1,135,287점)
-3등 : 116번 방어대 (997,426점)
:
:]
“하하하. 이번으로 3번째로 참여하는 퀘스트로 그간 1등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하게 되네요.”
“그러니까요. 거대 길드도 1등을 위한 파티를 미리 구성해놔도 랜덤으로 방어대가 짜임으로써 언감생심 1등 노리는 것을 포기하는 판에 제가 1등을 할 줄은 정말...”
“뭐. 이게 다 30번님 덕분이죠.”
“혹시나 30번님 그 마스크나 아이디를...”
“죄송합니다.”
아이디를 물어오는 자에게 단칼에 거절했다.
당연히 마스크를 벗는 행위도.
“하하. 네. 비공개를 한 이유가 있겠죠.”
내게 아이디를 물어온 자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곧 마지막 6라운드가 시작됐다.
용맹한 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자리에 포악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스콜피온들이 등장하면서.
“자! 마지막입니다. 이것만 막으면 보너스인 보스 몬스터인 스콜피온 킹은 우리 몫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죠.”
“네!”
이미 큰 차이로 점수를 벌여놓은 상황.
그렇기에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그때 정석영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혹여나 마나량은 충분한가요?”
물론 궁금하긴 할 것이다.
모든 라운드에서 쉴 틈 없이 스킬들을 남발했으니까.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뒤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정도로.
“아직 충분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내 대답에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정석영.
그렇게 포악한 스콜피온이라는 6라운드가 시작됐다.
10분 뒤.
[축하합니다. 79번 방어대가 가장 높은 점수로 스콜피온 킹의 저지에 성공하였습니다.]
“와아아아!”
“1등이다!”
1등을 알리는 메시지.
그리고 메시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79번 방어대에게 보스 몬스터 스콜피온 킹이 등장합니다.]
보너스라는 보스 몬스터.
그만큼 약하다고 했다.
이미 6라운드를 진행함으로써 상당한 전력이 손실된 상태에서도 손쉽게 잡을 정도로.
하지만 보상은 큰.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보스 몬스터를 기다렸다.
<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 (3).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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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