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하얀색 머리카락 (2).
“아이스 필드!”
파사사삭!
순식간에 펼쳐지는 얼음의 대지.
그 모습에 곧장 하나의 스킬을 더 사용했다.
아이스 필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쏟아지는 우박을.
그리고 항상 그렇듯 두 개의 스킬을 겹치게 사용했기에 한 공간에서 위아래로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퍼부어졌다.
지력 수치도 수치지만 ‘아이스 맨’이라는 특성으로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대지미를 동반한 채.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모습.
하지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었다.
“키헥.”
“크흐.”
“케헥”
바로 그 안에 존재하는 몬스터가 고작 3마리가 전부라는 점.
“쩝.”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마리는 기본이고 200마리까지도 몰아서 사냥을 했기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고작 3마리를 상대로 광역 스킬을 남발하기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극심한 마나 낭비.
하지만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나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등으로는 마나가 항상 남아돌았다.
그것도 가득.
그래서 그냥 광역 스킬도 남발했다.
샐러맨더 서식지 외곽이라 유저가 없었기에.
물론 그만큼 샐러맨더도 없었지만.
“그나저나 이제 2일 남았나?”
정했었다.
이곳에서 딱 1주일만 사냥을 하기로.
그리고 그 후에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기로.
그만큼 이곳 샐러맨더 서식지에서 5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너무 겁을 집어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에 아빠에게 들은 것이 있기에.
게임을 단순히 게임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된 상황.
더욱이 오만과 자만이 아니라 분명 현재 내 상태는 여의주를 입에 문 이무기와 같았다.
당연히 여의주는 3개의 특성과 남들은 하나라도 가지기를 희망하는 여러 호칭들이고.
필요한 것은 승천.
그리고 그것은 성장을 위한 시간.
그래서 더 겁이 났었다.
대게 이무기들은 승천 직전에 그 행보가 좌절되었기에.
그리고 약간의 부담감도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3개의 특성과 여러 호칭들을 갖고도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바보 천지니까.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시야가 넓어졌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Revival Legend’의 세계.
그만큼 그들이 나를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상해에서 왕서방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더욱이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가 한둘도 아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있다.
든든한 빽이.
바로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명진 그룹.
분명 아빠는 말했다.
현재 회사의 사운을 걸고 이 ‘Revival Legend’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즉, 방구깨나 뀐다는 어지간한 길드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 바로 내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걸 멍청하게 지금까지 망각했다.
[새벽 1시입니다.]
그리고 그때 울리는 알람음.
“벌써 1시야?”
곧 발걸음을 돌렸다.
규칙적인 생활이야말로 가장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체득했기에.
10분 뒤.
물론 왕왕 모습을 드러내는 샐러맨더들은 처리하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귀하디귀한 몬스터니까.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다 샐러맨서 서식지의 중앙 부위이자 가장 많은 유저들이 위치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죽였던 11명의 유저들 중에 한명을.
그것도 양옆에는 다른 유저를 두고서.
그리고 그 모습은 명백히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순간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그들의 옆을 스쳐지나가듯이.
“흰머리, 흰머리, 흰머리.”
“흰머리가 아니고 하얀색 머리카락!”
“그게 그거지. 에휴. 지겨워 죽겠네. 고작 하얀색 머리랑 누더기 같은 복장을 단서로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씨팔! 나도 빨리 3군에 올라가던가 해야지 엿 같아서 못해먹겠네.”
“기다려봐. 위에서도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조만간 무슨 수를 낸다고 했으니까.”
“됐고. 너는 뭐 자세히 기억나는 것 없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우리보다 더 잘 알 것 아냐?”
“젠장. 고작 2방에 나가 떨어졌는데 뭘 볼게 있어. 죽는데 몇 십초도 안 걸렸는데.”
“에잇. 엿 같네.”
저벅저벅.
분명 눈이 마주쳤음에도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무심히 귀찮다는 듯이 금세 다른 곳을 둘러볼 뿐.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하얀색 머리카락?’
또 나왔다.
하얀색 머리카락이.
그때도 하얀색 머리카락이었다.
바로 허수아비를 파괴 했을 때.
순간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삐죽 잡아 당겼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분명 검은색 머리카락.
‘뭐야? 이렇게 검은색인데 왜 자꾸 하얀색이라고 하는 거야?’
한번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이 나오자 오히려 내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을 가지기 전에 옆에서 들리던 대화가 더 귀에 들어왔다.
“대성이지?”
“응. 대성이야.”
“내 친구가 저주받은 대지에서도 마치 지금처럼 뭔가를 찾는 듯한 대성의 모습을 봤다고 했거든.”
“나도 어제 직접 다른 곳에서 봤어.”
“도대체 뭘 찾는 거지?”
“글쎄. 하지만 못 찾았으면 좋겠다. 크크크.”
“그러니까. 크크크.”
‘대성이었어?’
옆에서 들린 대화.
그 내용 속에는 저들의 정체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우리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명진과 같은 대한민국 내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인 대성이.
멀고도 가까운 사이.
그게 대한민국 내의 재벌들 사이였다.
왜냐하면 만나본 적이 있다.
대성의 김정한 회장도 그리도 대성의 나와 같은 또래인 김정한 회장의 손자인 김철민도.
어쨌든 그렇게 모두를 지나쳐 텔레포트 존이 위치한 샐러맨더 서식지의 세이프티 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귓속말을 보냈다.
단 한명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누나에게.
[lumen : 누나 있어?]
[초절정미녀: 어. 왜?]
마침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누나에게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곧장 물었다.
[lumen : 누나 그때 나 봤을 때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었어?]
[초절정미녀 : 너 머리카락 색깔?]
[lumen : 어.]
[초절정미녀 : 검은색이었잖아. 너 머리카락 색을 포함해 하나도 변경하지 않았잖아.]
[lumen : 그렇지? 검은색이지.]
[초절정미녀 : 뭐야? 뭐 잘못 먹었어?]
[lumen :아... 아냐. 고마워.]
[초절정미녀 : 그래.]
누나와의 귓속말을 그대로 종료했다.
역시나 검은색.
더욱이 내가 하얀색 머리카락이었다면 그들이 그대로 나를 보내줬을 리가 없다.
바로 옆을 스쳐지나간 것은 둘째 치고 눈까지 마주치고서.
즉, 내 머리카락 색은 틀림없는 검은색.
‘왜지?’
순간 드는 의문.
분명 하얀색으로 변했긴 변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허수아비를 파괴했을 때도 지금도 하얀색 머리카락이라고 언급을 한 것일 테고.
‘아이스 맨 인가?’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아이스 맨’이라는 특성.
하지만 어째서 그때만 머리카락 색이 변했는지 답을 알 수는 없었다.
‘흠. 그렇다고 스킬을 사용한다고 머리카락 색이 변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허수아비를 파괴했을 때는 단 하나의 스킬도 사용치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몽둥이를 휘둘렀을 뿐.
그것도 갈수록 허수아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붉은점의 속도가 빨라져 온 정신을 집중해서.
‘최선? 집중?’
순간 최선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집중이라는 단어도.
왜냐하면 이번에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집중해서.
왜냐하면 PK는 처음.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엄청 싱겁게 끝났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다.
마치 허수아비를 파괴했을 때처럼.
물론 사냥도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기는 매한가지.
하지만 그때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더 컸다.
한 마리 한 마리 쓰러질 때마다 경험치와 잡템 등으로 내 노력에 대한 철저한 보상을 제공 받음으로써.
물론 확실치는 않은 상황.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씨익.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괜한 뻘짓을 했다는 사실에.
어차피 그들은 찾지 못했을 것이다.
걸친 아이템도 바뀌었고 가장 두드러진 머리카락 색도 바뀌었기에.
그리고 그렇게 웃으며 로그아웃을 했다.
내일 또다시 최선을 다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잠을 자둬야 하기에.
다음날.
역시나 알람을 설정한 7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곧장 게임에 접속했다.
곧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샐러맨더 서식지의 세이프티 존이 눈에 들어왔다.
‘상태창 확인.’
우선 상태창부터 열어젖혔다.
원래의 일주일이 아니라 오늘부로 여기서 사냥을 끝낼 생각이기기에.
그리고 그간의 성과도 확인하기 위해서.
[이름 : lumen
레벨 : 131
죽인 횟수 : 11, 죽은 횟수 : 0
칭호 :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3개.
생명력 : 893000(now) / 893000(max)
마나 : 738000(now) / 738000(max)
힘 : 815 민첩 : 811 체력 3750
정신력 : 2280 지력 : 3817
잔여 스탯포인트 : 300
잔여 스킬포인트 : 0
특성 :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3강화 사이딘의 방어구 셋트로 지력이 67증가했다.
물론 사이딘의 방어구에는 지력 외에도 정신력의 증가도 있었지만 아쉽게 그것은 전부 적용되지 않았다.
동반 성장으로 정신력을 포함해 체력은 지력에 귀속되어 아이템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물론 약간씩 붙은 생명력은 적용이 됐고.
여하튼 5일간 30레벨을 올렸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치.
아니,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속도다.
하지만 나이기에 가능했다.
갓 100레벨이 400레벨의 몬스터를 잡고 또한 체력이 워낙 높다보니 게임 하는 도중에 단 한 번의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기에.
여하튼 30레벨의 증가로 획득한 30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는 전부 지력에 투자했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지력 300개의 증가로 더 화려하게 변한 상태창을 슬쩍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와중에 죽인 횟수 11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이동. 사막 스콜피온 숲.”
개미굴에 다시 갈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정한 곳이 바로 일명 전갈이 나오는 사막 스콜피온 숲.
같은 사막이지만 지근거리에 붙은 곳이 아닌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이곳을 정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인기가 없다는 것.
고로 몬스터가 지천에 널린 사냥터.
더욱이 등장하는 몬스터도 이곳 샐러맨더 서식지와 같은 400레벨 대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몰이사냥을 할 즐거움을 만끽하는 와중에 곧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 스콜피온 숲의 세이프티 존이.
웅성웅성.
와글와글.
물론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상당히 시끌벅적했다.
그 정도가 샐러맨더 서식지를 넘어설 정도로.
그리고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퀘스트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의 79번 방어대에 합류하였습니다.]
< 하얀색 머리카락 (2). > 끝
ⓒ basso77
=======================================
< 스콜피온 킹을 저지하라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