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첫 경험 (2).
옆구리에 살짝 박힌 화살을 뽑아 가만히 내려다봤다.
없었다.
이 ‘Revival Legend’나 이름을 바꾸기 전의 ‘Forgotten Legend’를 포함해 그간 했던 모든 게임에서 몬스터가 아닌 나와 같은 유저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단 한번도.
왜냐하면 애초에 갈등이 생길 껀덕지도 만들지 않았으며 혹여나 이런 물리적인 접촉이 생길 낌새라도 보였다면 먼저 사과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를 감돌았다.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
또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사이에 11명의 인원은 나를 감쌌다.
“너 이 자식! 저번에 여기 3번 개미굴 안에서 사냥하던 놈 맞지?”
“.......”
대뜸 목소리를 높이며 나를 향해 소리치는 남자.
아직 얼떨떨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기에 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의 동료로 보이는 자들이 입을 열었다.
“맞다니까! 내가 똑똑히 봤어. 저 복장을 잊을 리가 없지.”
“응. 저자가 확실해. 저자가 달려 나가고 분명 300마리에 가까운 개미들이 나타났어. 그래서 우리가 잡던 100마리가 넘는 개미들과 합쳐져서 얼마나 고생을 했냐고!”
우선 저들이 하는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정말 저들 말대로 그랬던 적이 있기에.
레벨 하락을 위해서 단 1의 경험치의 획득도 하지 않으려 달려드는 개미들을 향해서 위협용 아이스 필드를 사용하면서.
“이 자식 벙어리인가? 왜 말을 안 해.”
방패를 들고 있던 자 즉, 탱커로 보이는 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위협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무례하게.
하지만.
“죄송합니다. 그때 주변에 누군가 있는지 미처 확인을 못했네요.”
우선 사과를 건넸다.
항상 하던 대로.
하지만 항상 하던 대로 행동을 함에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반발심.
분명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게임 내에서 만큼은 부당하더라도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에 대하여 단 1의 반발심도 그리고 수치심도.
더욱이 이번 같은 경우는 사냥을 하는 다른 자에게 피해를 준 것이기에 엄밀히 따지면 나의 잘못.
아니, 잘못이라기보다는 사냥 도중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비매너의 일종.
그럼에도 느껴졌다.
짜증이.
강력한 반발심이.
물론 저들이 조금이라도 유하게 나왔다면 어쩌면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은 먼저 공격을 퍼부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화살부터 날림으로써.
“허. 죄송하다면 다야?”
“그러니까. 이 자식 사람 죽여 놓고 죄송하다면 다 끝나는 줄 아나 본데? 사회가 그렇게 만만한줄 아나봐.”
내가 한 것은 사냥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비매너에 대한 사과.
그런데 저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을 극단적인 상황에 비유하며 거들먹거렸다.
마치 시비를 걸듯이.
그리고 그것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고 11명 차례대로 쳐다봤다.
저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
힐러겸 서포터이자 11인 파티의 대장 정수길은 의문을 가졌다.
한눈에 봐도 썩 좋지 않은 아니, 솔직히 갓 초보들이나 착용할 만한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고서 이곳 사막 개미굴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물론 무협이나 판타지 속에는 존재한다.
보잘것없는 복장에 달랑 검 하나 차고 어마어마한 능력을 선보이는 경우가.
어떤 경우에는 맨몸에 막대기 하나로.
하지만 그것과 달리 이것은 게임.
그래서 가능했다.
착용한 아이템 하나하나에 의해 전과 확연히 다른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
그렇기에 일부러 저레벨의 안 좋은 아이템을 착용한다는 것은 정수길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나 이곳은 300~350레벨의 몬스터가 그것도 한 무더기로 나오는 개미굴.
즉, 누추한 복장을 한 남자도 그 정도 레벨대일것이고 더욱이 혼자라면 최소 못해도 400레벨 이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런데 400레벨까지 올리면서 고작 누더기에 가까운 아이템밖에 걸치지 못할 정도로 골덴링을 벌지 못했다?
정수길은 바로 그 점이 의심스러웠다.
물론 정수길도 본적이 있었다.
일부러 레벨이 낮은척 그리고 아이템도 저레벨의 아이템을 차고 다니는 자들을.
주로 파티 사냥을 하는데 나타나 레벨을 감추고 착용한 아이템도 그 레벨대에 맞춰 모두를 속인 다음에 파티원들과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본 실력을 드러냈다.
한껏 멋진척, 잘난척을 하고서.
관심종자에 가까운 변태들.
하지만 눈앞의 누추한 복장을 한 남자는 혼자였다.
남에게 과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변태로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정수길은 파티원으로 하여금 시비를 걸게 만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더욱이 그게 아무리 사소했더라도 실제 피해를 입기도 했고.
그래서 만약 생각보다 능력이 있다면 스카웃 제의를 할 용의도 있었다.
물론 정수길은 생각보다 자신이 관리하는 파티원이 더 막나가는 것 같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은 대성 소속이고 아무리 얼굴을 붉힌다 해도 대성으로 스카웃한다는 말을 쉽사리 거절할 자는 없으니까.
그리고 만약 꽝이라면?
정수길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유저 한명쯤 죽이는 거야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고.
“어이. 형씨. 사과하면 다냐고.”
이제는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는 남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야 피해 보상도 해주고 더 정중한 사과를 해야지.”
“.......”
피해 보상과 지금 보다 더 정중한 사과.
피씩.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은 적들에게 분노를 이끌어낸 것 같았다.
“아니! 이 새끼가. 지가 실수해놓고 사과를 하라니까 처 웃고 있네!”
“미친 거 아냐?”
하지만 저들의 분노한 모습보다 어제 집에서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지 마라.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태창에 죽은 횟수가 있다는 것은 차후 페널티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반대로 죽일 수 있으면 죽여라. 이것도 차후 어떠한 보상으로도 귀결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클로즈 베타 당시에 없던 ‘죽인 횟수’와 ‘죽은 횟수’.
아빠는 그걸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타 유저를 죽이되 죽지 말라고.
물론 어째서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나에게 타 유저를 죽이기는커녕 공격을 한다는 것 자체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하지만.
‘상태창 확인.’
우선 상태창을 열었다.
해둘 것이 있으니까.
바로 방금 레벨업으로 획득한 1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의 투자.
[이름 : lumen
레벨 : 101
죽인 횟수 : 0, 죽은 횟수 : 0
칭호 :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 외 2개.
생명력 : 884000(now) / 884000(max)
마나 : 737500(now) / 737500(max)
힘 : 815 민첩 : 811 체력 3740
정신력 : 2275 지력 : 3750
잔여 스탯포인트 : 10
잔여 스킬포인트 : 0
특성 : 아이스 맨, 동반 성장, 강화의 신.]
툭. 툭.
“어이. 내가 묻잖아. 미친 거 아니냐고.”
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방패를 든 탱커가 내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 기세로.
하지만 무시하고 고작 10개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전부 지력에 투자를 했다.
그리고 상태창을 끄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반말로.
“처음이야.”
“?”
“?”
“무슨 개소리야?”
내 처음이라는 말에 가장 앞에 선 탱커를 비롯해 뒤쪽의 약간의 거리를 둔 10명이 뭔 헛소리를 하냐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겉으로 티가 나는지 안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쿵쾅쿵쾅 뛰고 있고. 그만큼 평생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생각해서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거든.”
“?”
“?”
내 말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11명의 유저들. 아니, 적들.
“그래서 혹시나 내 착각이라면 미리 사과할게. 그리고 처음이라서 아마 조절이 불가능할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아이스 필드!”
내가 대체로 모든 게임에서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를 떠나 항상 마법사 계열의 직업을 가지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선수필승.
그것도 강력한 한방을 앞세운 선수필승.
마법사라는 직업은 대체로 이게 가능했다.
그것도 원거리에서.
물론 지금은 안타깝게도 지근거리에 존재했다.
11명 모두.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상하게 그게 마음에 들었다.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파사사삭!
그리고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이는 대지.
“헉! 조... 조심해!”
“파이어 쉴드.”
“타올라라! 꺼지지 않는 불꽃이여!”
“소환. 불의 정령! 불의 정령! 불의 정령!”
“적에게 저주의 힘이 깃들리라. 나약!”
퍽! 퍽! 팡! 팡!
처음.
하지만 알 수는 있었다.
눈앞에 있는 11인 파티가 나름대로 경험이 풍부한 것 같다는 것쯤은.
왜냐하면 내 아이스 필드에 대응하기 위해서 하나같이 파이어 계열의 스킬을 사용했다.
그 와중에 나를 향한 디버프 공격도 있었고.
[나약에 걸렸습니다.
-상대방의 지력 수치가 lumen님의 정신력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나약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억! 저새끼 뭐야? 정신력이 얼만데 나약 효과가 이따위로 나와?”
나에게 디버프를 건 자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을 내뱉는 것이 보였지만 거기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나에게는 쓸 것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물론.
“공격!”
“공격해!”
“강철 방패.”
“슬로우 샷!”
“불의 정령 공격!”
가장 앞쪽에 있던 탱커부터 들고 있던 거대한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화살과 불의 정령의 공격들이 이어졌고.
물론 그들은 공격만 하지는 않았다.
내 아이스 필드는 단순한 아이스 필드가 아니니까.
“씨팔! 뭐야! 무슨 아이스 필드 대미지가 이따위야!”
“피... 피가 쭉쭉 빠져 나가!”
“힐!”
“메가 힐!”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곧바로 다음 스킬을 사용했다.
물론 나를 향해 쏟아지는 공격?
무시했다.
“쏟아지는 우박!”
퍽! 퍽! 퍽!
금세 수많은 우박들은 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당연히 이것도 아이스 필드처럼 ‘아이스 맨’의 특성이 가미됐기에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를 향한 공격이 들어왔다.
가운데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방패를 비롯해 슬로우 샷과 불의 정령들의 공격이.
퍽! 퍽! 퍽!
하지만.
“?”
내 체력은 내 생명력은 그것에 고통을 호소하거나 위협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높았다.
아이스 쉴드 따위는 사용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물론 정신력도.
[슬로우 샷에 적중 당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지력 수치에 비해 lumen님의 정신력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슬로우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멍청아! 나약도 안 통하는 놈이야! 그냥 파워샷을 쏴!”
“어... 어! 알았어!”
적들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활을 든 궁수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했다.
“커헉!”
자신의 머리통으로 떨어지는 우박들을 정통으로 맞고서 그대로 쓰러짐으로써.
그리고 그 궁수가 시발점이었다.
“씨팔! 무슨 대미지가 이따위냐고!”
채캉! 채캉!
“젠장! 파이어 쉴드가 부... 부서진다고!”
“불의 정령도 소환 해제가 되려고 해!”
혼란.
물론 적들의 혼란.
그리고 그 혼란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사용했다.
요즘 사용하는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는 스킬을.
“얼음 폭파.”
지지지지직.
항상 그렇듯 빠른 속도로 금이 가는 아이스 필드.
퍽! 퍽! 퍽!
그리고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사방으로 얼음 파편을 날리며.
“크헉!”
“씨팔!”
몇 개의 파이어 쉴드와 메가 쉴드 그리고 불의 정령으로 겨우 버티던 자들이 그대로 한꺼번에 몰살을 당했다.
물론 한명은 남았다.
내 지근거리에 있던 탱커.
“너... 넌 누구지?”
“나? 음. 이건 꼭 너만 알아야 돼. 난 사실 이 게임의 운영자야.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
정체를 물어보는 남자.
당연히 내 정체를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마지막 마법인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를 난사하며.
그리고 탱커마저도 그걸로 끝이 났다.
나와 같은 유저를 향한 내 첫 전투도.
< 첫 경험 (2).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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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