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첫 경험 (1).
1시간? 아니, 분명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체감상 몇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았다.
그만큼 아빠가 하는 말들은 일반적인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었기에.
그리고 얼추 이야기가 끝났는지 아빠가 화제를 돌렸다.
내 쪽으로.
“그래.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로 하고 있다고?”
“네. 그게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레벨은?
“100레벨이요.”
순간 내 말에 아빠의 표정이 약간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아빠는 경직된 표정을 풀지 않고 그대로 입을 열었다.
전보다 약간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저번 주에도 100레벨로 알고 있는데.”
맞다.
저번 주에도 100레벨이었고 저저번 주에도 100레벨이었다.
중간에 50레벨까지 내려간 적도 있고.
“그게... 잠깐 이것저것 좀 하느라...”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 됐다.
물론 생각은 했다.
내가 겪은 경험들을 아빠에게 전부 털어놔야겠다고.
현재의 ‘Revival Legend’뿐만 아니라 이름을 바꾸기 전 과거 ‘Forgotten Legend’의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까지 전부.
하지만 1주일이 지났음에도 단 1레벨도 올리지 못한 것을 보고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명백히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에 변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겪은 것을 털어놔야 한다는 생각이 섞이면서 멍청이 같이 말을 얼버무렸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잘난 형과 잘난 누나에 위축되어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지던 못난 나로.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아직 대놓고 이 모든 것들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니 절대로 발설하지 마라. 아직 그들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아빠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기 전에 손에 들었던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그리고 약 1분.
서성였다.
지하 서재 밖으로 나가지 않고.
왜냐하면 목구멍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온갖 단어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러다 결국 입 밖으로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전부 삼켰고.
저벅저벅.
그렇게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을 때는 찰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슬슬 집에 들어올 준비를 해라. 한순간에 뻥 터지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될 테니. 전처럼 고집 피울 생각은 하지 말고.”
“...네.”
아빠의 말에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고 지하 서재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 후 어떻게 내가 살던 원룸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이었다.
물론 짐작을 했고 얼추 예상까지 했다.
하지만 짐작을 하고 예상을 했다 해서 충격이 줄어들거나 해소되지는 않았다.
진실이 그 짐작과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어마어마했기에.
곧장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브텐’을 검색했다.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브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어제 날짜로 글까지 올라와 있었다.
문의 게시판에 남긴 질문에는 답변까지 떡하니 올라왔고.
“아빠가 놀아나는 것은 아닐 테고.”
이건 확실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아빠가 회장으로 있는 명진 그룹뿐만 아니라 대성까지 발 벗고 나선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의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부들부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반적인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예측은 했지만 그 실체를 엿봤기에.
그래서 접속하지 않았다.
곧장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뿐.
그러자 온갖 생각이 범람했다.
당연히 게임에 대한 생각으로.
오늘 오후까지는 정말 즐겁게 했던 게임.
레벨에 비해 압도적인 강함을 가졌고 앞으로도 가질 거라는 생각은 게임을 하고 있음에도 한없이 큰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2주간의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 때문에 레벨이 정체되는 불만족스러움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터져줬다.
레벨이 정체되는 것에 실망하지 말라는 듯이 이것저것들이.
그중 가장 컸던 것은 아무래도 레벨 다운으로 인한 중복 스탯포인트 획득이었고.
씨익.
그 생각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50레벨 아니, 처음의 3레벨까지 포함하면 나는 총 53레벨을 2번 겪었고 그리하여 총 530개의 잔여 스탯포인트를 남들보다 더 획득했기에.
그리고 그것은 동반 성장으로 1352개가 됐고.
그렇게 점차 생각의 범주는 넓어졌다.
이번에 얻은 ‘강화 나만큼 해봤어?’를 비롯해 ‘허수아비 파괴자’, ‘나 혼자 만렙 클베 유저’까지.
그리고 3개의 특성까지도.
벌떡.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침대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을 내뱉었다.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지? 왜 무서워해야 하지? 그건 남들이나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얻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을.
하다못해 페널티가 분명지만 그래도 생명력과 마나를 1만씩 아니, 1만씩이나 올려주는 호칭까지도.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반기고 격하게 환영해야 할 입장.
왜냐하면 나는 가능하다.
가장 꼭대기. 아니, 목을 최대한 뒤로 젖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서는 것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리고 3세대 고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했다.
쉴 시간이 없기에.
홍주영이 ‘Revival Legend’에 갓 접속하는 사이.
서울 청담동 지하 서재.
홍상만 회장은 뒤적거리던 서류를 잠시 내려놨다.
그리고 탄식 섞인 말을 내뱉었다.
“하. 이 미친 중국 놈들. 적당히란 것이 없어. 적당히가.”
미국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현재의 ‘Revival Legend’라는 이름의 게임으로 바뀌기 전의 ‘Forgotten Legend’의 1차, 2차 클로즈 베타 당시 최대 레벨을 달성한 자를 찾는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물론 비밀을 독점했기에 남들이 눈치 채는 것이 두려웠겠지만.
그런데 중국 놈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아예 대놓고 이곳저곳을 들쑤셔댔다.
그것도 비싼 몸값을 불러대며.
그래서 홍상만 회장은 요새 골치가 아팠다.
워낙 중국놈들이 대놓고 떠들기에 그나마 확보한 1차, 2차 클로즈 베타의 최대 레벨 달성자들이 들썩들썩 거렸기에.
몇몇은 중국을 언급하며 흥정을 걸어오기도 했고.
그래서 그룹 내에서 명단을 작성했다.
[주요 관리 대상자]라는 명단을.
1차, 2차 클로즈 베타의 최대 레벨 달성자를 포함해 게임에 상당한 재능이 있고 명진이라는 이름으로 꼭 묶어둘 필요가 있는 자들.
당연히 주요 관리 대상자이기에 그룹 내의 전폭적인 지원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홍상만 회장은 그 명단에 ‘홍주영’이라는 이름도 집어넣었었다.
당연히 홍기영과 홍수영은 진즉에 포함이 됐고.
하지만.
“노력도 재능이야. 흥미도 재능이고.”
홍상만 회장은 홍주영을 몰래 집어넣을 생각도 했다.
혹은 자신의 직권으로 밀어붙일 생각도.
하지만 홍상만 회장은 알았다.
차후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가뜩이나 중국놈들의 움직임 때문에 특성을 가진 1차, 2차 클로즈 베타 만렙 달성자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기에 더욱더.
그리고 뛰는 몸값만큼 그들이 원하는 것도 늘어만 갔고.
물론 홍상만 회장 입장에서 거기까지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능력이 있다면 그만큼 대우를 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몇몇은 크게 변했다.
남과 달리 특성을 가졌기에 능력에 따른 대우 그 이상의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서.
쓱쓱.
결국 홍상만 회장은 홍주영의 이름에 길게 줄을 그었다.
그리고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허. 이것 참. 이러다가 정말 40살 미친놈에게 수영이를 시집보내야 할지도 모르겠군.”
1차, 2차 클로즈 베타 당시 모두 최대 레벨을 달성한 김성한이라는 자.
홍상만 회장은 후회했다.
그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다고.
왜냐하면 그는 꼬리를 말고 기회를 엿보는 교활한 독사였기에.
더욱이 선동이 능숙해서 손써볼 시간도 없이 그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추종하는 자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이제 그를 특별 관리하는 특성을 가진 자들과 따로 분리하는 것이 힘들 정도로.
그래서 그를 내치자니 이제껏 고생고생 하며 모은 1차, 2차 클로즈 베타의 최대 레벨 달성자들이 그를 따라 나갈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
아니, 이미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홍수영과 결혼을 시켜달라는 협박을 하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추종하는 특성을 받을 자들을 데리고 중국 혹은 대성이나 기타 다른 곳으로 적을 옮긴다면서.
“중국놈보다 김성한 그놈이 더 문제야.”
홍상만 회장의 고민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썩은 고름은 도려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걸린 것이 너무나 많기에 선뜻 칼을 대지 못하는 상황에.
사막 개미굴.
당분간은 주 사냥터로 정했기에 코툼성에서 거리낌 없이 이곳으로 텔레포트 존을 이용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곧장 내달렸다.
3번 개미굴 안으로.
물론 보스 몬스터가 나오며 가장 거대한 5번 개미굴도 생각을 했지만 다시 100레벨까지 키우면서 한번 들어가 보고는 마음을 돌렸다.
왜냐하면 은근 내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보스 몬스터의 등장을 체크하는 사람들까지 항시 존재했고.
그래서 내 마음껏 몰이사냥을 하지 못하기에 곧장 빠져 나왔었다.
우선 당장 내 목표는 보스 몬스터가 아니기에.
사삭. 사삭.
곧 나를 발견해서인지 반갑게 더듬이를 흔들며 모습을 드러낸 개미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게임 자체에 두려움을 가졌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리고 하던 대로 이곳저곳을 휘젓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20마리도 안 된 개미들을 상대하기에는 양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그렇게 2~3분 정도를 이곳저곳 움직이자 벌써 뒤따르는 개미들이 거의 150마리 이상은 돼보였다.
그래서 즉각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사용했다.
항상 하지만 단 한 번도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적이 없는 스킬을.
“아이스 필드!”
파사사삭!
순식간에 내 앞으로 얼음의 대지가 생성됐다.
그리고 그 얼음의 대지 위에 놓인 된 개미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아이스 필드 범위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 쳤고.
“쏟아지는 우박!”
그 모습에 곧장 쏟아지는 우박을 사용했다.
물론 얼음 폭파를 사용해도 무방한 상황.
그래서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어떤 것을 사용하든 아이스 필드와의 연계기 한방이면 끝이기에.
그리고 외곽의 남은 개미들을 향해서는.
“다연발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조금씩 움직이며 단일 스킬들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
물론 진짜 끝은 나라는 듯이 메시지가 울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씨익.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메시지.
그렇게 웃으며 개미들이 드랍한 골덴링과 잡템들을 수거하는 사이 무슨 소리가 들렸다.
쉬잉.
바람을 뚫고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가.
아니, 더 정확히는 날아오는 소리.
푹!
정확히 옆구리에 살짝 파고든 화살.
물론 아프지 않았다.
생명력도 생명력이지만 고작 화살 한방에 통증을 호소하기에는 방어력을 담당하는 내 체력이 4000에 살짝 못 미쳤기에.
그리고 그때 목소리도 들렸다.
“형님! 그때 그 개새끼가 저기 있습니다! 개미를 몰아놓고 튀어서 우리 파티에 피해를 준 그 개새끼요!”
슬쩍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이곳 사막 개미굴로 이동하는 와중에 내 복장을 보고 나를 향해 수군거렸던 총 11명의 파티를.
< 첫 경험 (1).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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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경험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