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4차는 현실 접속기.
청담동 집.
“아들!”
“엄마!”
고작 일주일 만이지만 마치 몇 개월은 못 본 것마냥 나를 격하게 반기는 엄마에게 나도 똑같이 행동했다.
저번 주와 달리.
그만큼 저번 주까지만 해도 반강제로 레벨업이 금지당해 답답했던 마음과 집에 들어오지 않고 고작 한다는 것이 게임이라는 것에 야간의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금은 그런 것이 말끔히 해소가 됐고.
“좀 일찍 와서 엄마랑 이야기도 좀 하고 그러면 좋잖아.”
“미안해. 엄마.”
딱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서 왔다.
그것도 부랴부랴 서둘러서.
“아빠랑 형, 누나는?”
“당연히 다 있지.”
엄마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가면서 이것저것을 물었다.
“요새도 많이 바빠?”
“어. 네 아빠도 그렇지만 기영이나 수영이까지 제대로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야.”
사소한 근황에 대한 이야기.
솔직히 물어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엄마도 진짜 게임을 하는지.
하지만 선뜻 내가 먼저 물어보기에는 뭔가 어색하기도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20년 넘게 나를 키운 엄마는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들도 게임 한다며?”
“어? 어... 누나한테 들었어?”
“응. 수영이가 이야기 해주더라고.”
“그런데 정말 엄마도 해?”
“그럼. 수영이 고것이 악착같이 해야 한다며 얼마나 조르던지. 요즘에는 하루에 강제 할당량까지 주고 있어.”
“허...”
왠지 누나 성격이면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아들. 이래봬도 엄마 잘나가는 힐러다. 혹시나 위험하면 말해. 곧장 달려갈 테니까.”
“.......”
마치 자랑을 하듯 말하는 엄마.
평생을 살면서 엄마랑 이런 대화를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새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와.”
“여. 막내 왔냐?”
거실에 앉아있다 나를 보고 고개만 끄덕이는 아빠와 ‘어서와.’라며 차분히 나를 반기는 큰형.
그리고 그런 아빠, 형과 달리 손까지 흔들며 나를 격하게 반기는 누나.
평상시의 모습이라 익숙하게 받으며 나도 인사를 건넸다.
“자 그럼 다들 손 씻고 와요.”
가족과 인사를 하는 와중에 나와 함께 집에 들어온 엄마가 부엌에 들어가면서 하는 말에 아빠와 형, 누나도 자리에 일어나 움직였다.
달그락. 달그락.
원래 예전부터 식사 자리는 조용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그래서 딱히 침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먼저 식사를 끝낸 아빠가 자리에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를 향해.
“주영이는 가기 전에 밑에 좀 들러라.”
“밑이면 지하 서재요?”
“그래.”
조금 당황했다.
지하 서재는 종종 방문하는 회사 임원들처럼 중요 인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가끔 형도.
“네.”
물론 우선 대답은 했다.
그리고 아빠가 자리를 비우자 큰형이 입을 열었다.
“주영아 게임 한다며?”
정확히 10살 차이가 나는 형.
그래서 때로는 형이 아니라 아빠라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응.”
물론 대답을 하면서 누나를 슬쩍 흘겼다.
아주 대놓고 다 말을 한 것 같아서.
“잘했어. 솔직히 조만간에 너를 불러서 강제로라도 시키려고 했다. 흠... 역시나 주영이 너는 감이 좋달까? 어쨌든 열심히 해. 그리고 혹여나 도중에 힘든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형한테 전화하고.”
“응.”
오랜만에 듣는 형의 칭찬.
누나한테 ‘잘했다.’라는 말을 들을 때와는 와닿는 게 달랐다.
누나는 빈말이라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형은 그렇지 않으니까.
툭. 툭.
“어이. 막내. 많이 키웠냐?”
형까지 자리를 비우자 누나가 나를 살짝 밀치며 물어왔다.
“많이... 크긴 컸지.”
물론 레벨은 그때와 똑같은 100레벨.
하지만 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냈다.
“오올. 그런데 아직도 본거지는 코툼성?”
“응.”
“거기는 초보자들 시작 지점 중에 하나라 사람도 별로 없고 텔레포트 존으로 이동 가능한 구역도 상대적으로 적을 텐데. 어때? 누나 밑으로 들어 올래? 이래봬도 누나 능력이 조금 되거든.”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하는 누나.
하지만 그 말에 곧바로 대꾸하기보다 표정을 진중하게 굳히고 입을 열었다.
“누나. Revival Legend 누나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지?”
나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지식은 풍부할지라도 지혜롭거나 현명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눈치라는 것은 있다.
그래서 다른 거대 그룹은 모르겠지만 대명그룹과 명진그룹이 하고 또 아빠를 비롯해 형, 누나 그리고 엄마마저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히 게임을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내가 바로 ‘Revival Legend’로 아니, ‘Forgotten Legend’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게임.
물론 그걸 앎에도 손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혹여나 내가 깊게 파고듦으로써 내가 얻은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존재했기에.
그만큼 호기심과 궁금증이 때로는 많은 것을 앗아가는 것을 종종 봐왔다.
“뭐. 그렇긴 하지. 물론 시작은 그랬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도 즐기고 있어. 무척이나.”
“왜?”
내 물음에 누나가 주변을 슬쩍 살폈다.
그리고 엄마밖에 없는 것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더라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갖는냐 그리고 지킬 수 있느냐는 전부 이 Revival Legend가 결정을 한다고. 더욱이 개인의 신분과 지위도.”
“.......”
누나의 말에 고작 게임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냐고 대꾸를 해야 하는 것이 정상.
분명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을 했다.
그래서 누나의 말에 대꾸도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주영이 너도 열심히 해. 누가 알아? 할아버지 말대로 네가 엄청난 인물이 될지. 물론 지금 당장은 수긍도 이해도 안갈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뭐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조금 있다 아빠한테 물어보던지. 그럼 누나 올라간다.”
누나는 그 말을 끝으로 종종걸음으로 부엌 밖으로 빠져 나갔다.
“미안해. 아들. 엄마도 무언가 있다는 것만 알지 자세하게는 알아보지 않아서. 한번 엄마가 알아볼게.”
“아냐. 이정도면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충분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데는.
30분 뒤 지하 서재.
똑똑.
서재 앞의 문을 살짝 두드렸다.
“들어와라.”
안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뭔가 서류 같은 들춰보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3세대 고급형 가상현실 접속기.
그것이 버젓이 아빠의 지하 서재에 존재했다.
“앉아라.”
“네.”
곧 아빠의 말에 서재 중앙의 소파에 앉았다.
아빠도 책상에서 일어나 내 앞쪽으로 다가와 앉았고.
“Revival Legend를 한다면서?”
“네.”
“잘했다.”
누나와 형 그리고 아빠까지 3연속 칭찬세례.
“감사합니다.”
우선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내 대답에 아빠가 곧장 이어 말했다.
“궁금하긴 할 거다. 왜 게임을 하는 너에게 칭찬을 하고 더 열심히 하라고 종용하는지.”
궁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아하기는 했었다.
방금 전까지.
하지만 누나의 짧은 대화로 다시금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그간 최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억제하고 짓눌렀지만 확실히 이 게임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아빠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도 모른다.”
“네?”
“이 게임을 만든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서버를 두고 있는 곳이 어디 인지 하다못해 이 게임을 운영하는 직원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게임에 대한 해킹?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정부마저.”
“.......”
투드루.
분명 클로즈 베타를 운영하던 회사 이름은 투드루였다.
워낙 기이한 경험이기도 했고 아빠한테 사자고 조를 생각도 있었기에 기억을 해뒀었다.
하지만 조용히 있었다.
아직 아빠의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주영이 너도 알겠지만 1차, 2차, 3차 가상현실 접속기의 원천기술은 미국의 ‘브텐’이라는 회사가 갖고 있다. 그리고 그간 5년 주기로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된 제품을 출시했지. 1차에서 2차로 그리고 2차에서 3차로. 물론 일반형과 고급형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브텐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는 잘 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니까.
로열티 하나로.
그리고 아빠의 말속에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분명 5년 주기라는데 4차 가상현실 접속기는 출시되지 않았다.
3차 가상현실 접속기가 출시된 지 5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내 표정을 눈치 챘는지 아빠가 이어 말했다.
“사라졌다. 한순간에. 물론 미국에서 철저한 비밀을 유지했기에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브텐’은 원천기술만 보유했을 뿐 자체적인 제품을 생산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말을 내뱉던 아빠는 손에 깍지를 끼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4차는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로 직접 드러낼 것이라고. 가상현실 접속기 같은 것이 아니라. 물론 이 소문도 그간 미국이 꽁꽁 숨겨뒀기에 밖으로 퍼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
순간 아빠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놀란 눈으로 아빠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래 말도 안 되지. 허황되고. 하지만 말이야. ‘브텐’이라는 기업이 마치 증발하듯 사라진 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채고 비밀로 한 미국 정부와 우리 명진과 비교도 안 될 거대 그룹들이 여기 ‘Revival Legend’라는 게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간 꽁꽁 숨긴 채 자기들끼리만.”
“이런 사실이 어떻게 여태 비밀로...”
만약 진실이라면 사회가 열 번 아니, 백번 뒤집혀도 뒤집힐 이야기.
하지만 사회는 멀쩡히 잘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니, 이 이야기가 진실이든 아니든 ‘브텐’이라는 기업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세계에 충격을 가할 이야기였다.
“욕심이지. 많이 가진 자는 많이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을 지키고 이제 겨우 티끌의 비밀을 접한 자는 아직 아무것도 접하지 못한 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비밀을 지키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
아빠의 말에 순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도 정보를 접하고 무작정 따라했다.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왜냐하면 모두가 ‘예스’를 하는 와중에 ‘노’를 하기에는 '예스'를 하는 자들이 너무나 어마어마했거든.”
아마 아빠가 직접 털어놓지 않았다면 믿지 않을 이야기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다 떠나 나도 직접 경험을 했으니까.
그 뒤로도 아빠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마치 모든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는 듯이.
< 4차는 현실 접속기.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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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경험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