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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22화 (22/271)

22화. 계륵.

온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사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빠랑 형이 뭐가 그리 바쁜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았기에.

물론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빠나 형을 보면서 혹시 대성에 대해서 아냐고 묻고 싶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게임에 그것도 일명 작업장이라는 것을 운영하기에는 대성이라는 이름이 가볍지 않기에.

하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괜히 언급을 했다가 내가 게임을 한다는 것을 온 가족 앞에서 떠벌리는 불상사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빠와 형을 바라보는 내 눈초리를 다른 쪽으로 오해한 듯.

“네가 이해해. 요즘 정말로 바쁘거든. 눈코 뜰 새 없이.”

“응.”

물론 ‘Revival Legend’라는 게임을 하는 누나.

어쩌면 누나도 알지 모른다.

하지만 그냥 속으로 삼켰다.

아빠와 형 없이 엄마와 누나만 있는 상황에 게임에 대한 언급을 하기에는 조금 꺼림칙했기에.

그리고 그때 엄마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들 늦었는데 오늘은 자고 가.”

“미안해. 엄마. 오늘 가서 할 일이 있거든.”

“이 저녁에?”

“응.”

17시간의 쿨타임.

그걸 위해서라도 꼭 가야했다.

“알았어. 그럼 싸갈 것 준비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응.”

“짜식. 자고 가랄 때 자고 갈 것이지.”

식탁에 일어나 나에게 싸줄 음식을 챙기는 엄마의 모습에 누나도 한마디 했다.

“다음에.”

“됐고. 누나한테 메시지 보내놔. 그럼 이 누나도 바빠서. 다음에 보자.”

“어.”

이 밤에 뭐가 바쁜 일이 있는지 누나도 잰걸음으로 빠르게 부엌을 벗어났다.

그리고 나도 곧 엄마가 싸준 음식 보따리를 움켜쥐고 집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까지 따라 나온 엄마와 함께.

“아들. 전화 꼭 자주 하고.”

“응. 들어가 엄마.”

“아들 가는 것 보고.”

“어차피 가는 것은 기사 아저씨가 항상 데려다 주는걸.”

“그래도.”

본가에 올 때는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지만 갈 때는 항상 집에 있는 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곧 밖까지 따라 나온 엄마를 한번 안아주고 고급 승용차에 올라 집으로 이동했다.

누나에게 내 아이디인 lumen(루멘)과 현재 있는 곳은 코툼성이라는 메시지는 보내며.

“실행!”

차로 이동하는 와중에 3세대 고급형 가상현실 접속기에 ‘Revival Legend’를 다운 받아놨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착용을 했다.

왜냐하면 이미 시간상 17시간이 흘렀다.

즉, 쿨타임 종료.

슝.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2세대 가상현실 접속기보다 조금 더 빠른 접속 속도.

하지만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그리고 발바닥으로 땅을 밟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자마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대장간을 향해.

그만큼 차후 ‘강화의 신’ 사용을 위해 1초라도 쿨타임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메시지가 울렸다.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달성한 강화 수치 : 8강화.

-안전하게 더 높은 수치로 강화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 하자마자 인벤토리에서 8강화 초보자용 가벼운 몽둥이를 꺼내 원래의 강화 창이 아닌 퀘스트용 붉은색 강화창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강화의 신 활성화.’

골덴링은 얼마나 증가하든 상관없지만 쿨타임만큼은 크게 증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강화의 신을 활성화 합니다.

-100% 확률로 강화에 성공합니다.

-강화 대상 : +8초보자용 가벼운 몽둥이.

-강화 시도시 추가적으로 필요한 조건 : 495,000골덴링.

-강화 성공시 생성되는 쿨타임 : 23시간.]

7에서 8강화로 가는데 약 24만 골덴링에 17시간의 쿨타임이 생성됐었다.

그리고 8에서 9강화로 가는데 필요한 것은 약 50만 골덴링에 23시간.

“후우.”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이기에.

그만큼 차를 타고 오면서 걱정을 했다.

2, 3일. 아니면 그 이상이면 어쩌나 하고.

여하튼 1분 1초라도 쿨타임을 줄이기 위해 곧장 강화 시도를 했다.

곧 망치로 두들기는 이펙트와 함께 나름대로 9강화에 성공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큰 폭죽이 터지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100레벨 한정 강화 퀘스트에 9강화까지 성공하였습니다.]

[강화의 신 특성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23시간의 쿨타임이 종료되어야 가능합니다.]

“.......”

연달아 메시지가 울렸지만 거기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9강화.

아니, 무려 9강화의 아이템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당연히 없었다.

9강화는커녕 8강화, 7강화도.

물론 그래봤자 지나가던 개도 안 쓴다는 초보자용 가벼운 몽둥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9강화는 일반적으로 강화의 끝이라고 평가를 받는 수치였기에.

곧 인벤토리에서 9강화 초보자용 가벼운 몽둥이를 꺼냈다.

[강화 수치에 따른 이펙트 효과 설정이 가능합니다.

-ON / OFF]

“오프.”

9강화 이상의 아이템부터는 붉은색 아지랑이 이펙트가 생성이 된다.

그래서 오프를 선택했다.

남의 시선을 끌 테니까.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아이템 확인.”

[+9초보자용 가벼운 몽둥이 (일반)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벼운 몽둥이다.

-물리공격력 191 증가.

-내구력 17990/17990

-사용자 귀속 아이템.]

원래 0강화일 때의 물리공격력이 3이였다.

내구력도 50/50이었고.

그런데 그 두 개가 확 증가했다.

물론 아이템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인지 +9강화라는 수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옵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하지만.

씨익.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성능이 어쨌든 9강화 아이템을 소지했다는 뿌듯함에.

그리고 그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메시지가 울렸다.

[초절정미녀님으로부터 친구 초대가 들어왔습니다.]

처음 보는 아이디.

하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내 아이디를 알려준 사람은 딱 1명이니까.

그것도 오늘.

“수락.”

서로 귓속말을 하기 위해서는 친구 설정이 되어 있어야 하기에 우선 수락을 했다.

[초절정미녀님의 친구 초대에 동의하셨습니다.

-초절정 미녀님과 귀속말이 가능합니다.]

[초절정미녀 : 어디야?]

[lumen : 누나 아이디가...]

[초절정미녀 : 그렇지? 아무리 봐도 아이디가 이 누나의 미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지?]

[lumen : .......]

순간 누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귓속말을 보냈다.

[lumen : 코툼성 중앙 광장 우측에 있는 나른한 오후라는 카페에 있을게.]

[초절정미녀 : 알았어. 금방 갈게.]

[lumen : 응.]

우선 발길을 돌렸다.

누나가 왜 보자고 했는지 궁금했기에.

2시간 전.

홍주영이 청담동 본가를 나서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

홍주영의 누나 홍수영은 아버지인 홍상만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하에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하지 않은 채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홍상만 회장 앞으로 다가섰다.

물론 이 시간에는 접속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찾아왔지만.

“무슨 일이냐?”

홍상만 회장도 의외의 시간에 방문한 홍수영을 보고 먼저 말을 내뱉었다.

“막내 주영이가 게임을 하더라고요.”

“게임?”

“네. Revival Legend를요.”

“흠...”

홍상만 회장은 홍수영의 말에 두 손에 들린 서류를 내려놓고 턱을 괴며 침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선대 회장이자 너희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엄했지. 자식인 나에게도. 거기에 손자 손녀인 기영이나 너에게도. 하지만.”

“주영이만 항상 물고 빨고 하셨잖아요. 뭐가 그리 이쁜지.”

홍상만 회장의 말을 홍수영이 팔짱을 끼며 끼어들었다.

하나뿐인 손녀인 자신보다 더 예뻐하고 애지중지 한 것이 주영이었기에.

곁에서 지켜보자면 질투가 날정도로.

“후후후. 그래. 그래서 나도 궁금해 직접 물어봤다. 막내인 주영이의 어디가 그렇게 예쁘냐고. 그 당시에 기영이나 너나 못난 구석은 전혀 없었거든. 오히려 또래보다 뛰어나면 더 뛰어났지.”

“그랬더니요?”

한 번도 듣지 못한 말.

그래서 홍수영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되물었다.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하더구나.”

“무턱대고요?”

“그래.”

“할아버지도 참.”

홍상만 회장의 말에 홍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홍상만 회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말만 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막내가 Revival Legend를 시작한지 한 달 조금 더 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에 100레벨이라고 하고요.”

“그래서.”

“막내에게 그것을 주자고요. 어차피 계륵이잖아요. 하지만 아이스 계열의 마법사인 주영이에게는 동기 부여가 되겠죠. 더 게임에 열중하게 만드는.”

홍수영의 말에 홍상만 회장이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 홍수영이 개의치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주영이도 Revival Legend를 시킬 생각이었잖아요. 그럼 더 잘됐죠. 자발적으로 하는 거랑 시켜서 하는 거랑은 천지차이니까요.”

“그래. 네 말대로 계륵. 주영이기에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길드 금고에서 500만 골덴링도 빼 주영이에게 줘라. 그 정도면 당분간은 부족하지 않을 테니.”

“에이. 아빠. 쓸려면 팍팍 좀 쓰시죠. 회장님이나 돼서 쪼잔하게 500만 골덴링은 좀 그렇잖아요. 더군다나 남도 아니고 막내인데.”

“.......”

홍상만 회장은 자신의 딸내미인 홍수영의 말에 벙 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런 모습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그리고 홍수영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길드 금고에서 1000만 골덴링 빼갈게요. 그럼 저 가요. 조금 있다 게임 내에서 주영이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홍상만 회장은 그렇게 제 말만 하고 방을 나서는 딸내미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하지만 잠시 뒤 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낮게 입을 열었다.

“흐음. 주영이가 Revival Legend를 한다라...”

< 계륵.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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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나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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