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한 클로즈베타-15화 (15/271)

15화. 본격적인 발걸음 (2).

코툼성 밖으로 향하는 길.

‘흠. 그게 그렇게 소란스러울 일이었나?’

잊었다.

아니,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기에는 놀라운 일이 연속으로 펼쳐졌기에.

하지만 다른 자들은 그것이 쉽사리 잊히지 않을 일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코툼성 밖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광장 근처에서 꽤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수련장의 허수아비를 박살낸 자에 대한 이야기를.

“진짜라니까! 너도 봤잖아. 정확히 질서 정열 하게 나열된 허수아비 대열에서 이빨 빠진 것마냥 허수아비 하나가 빠진 것을.”

“알아. 진정 좀 해. 누가 아니래.”

“지금 네가 내 말을 건성건성 들으니까 그렇지.”

“그건 네가 계속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니까 그렇지.”

“어휴... 네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나보다 백배 천배는 더 했을 텐데. 장난 아니었다고. 그 현란한 몽둥이질은.”

친구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적지근했는지 열변을 토하던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초보였을까?”

“당연히 초보지. 수련장은 기본적으로 10레벨 이상은 출입 자체가 안 된다고. 그리고 증거가 있잖아. 허수아비를 파괴하고 마치 증발하듯 사라진 것. 딱 사이즈가 나오지 않아? 바로 10레벨 달성. 그래서 수련장 밖으로 튕겨져 나간 거고.”

“흠. 그런데 그 장면을 본 사람이 50명이 넘는다던데 아무도 얼굴을 못 봤대?”

“그 몽둥이질을 보면 너도 얼굴을 볼 겨를이 없을걸.”

“맞아. 물론 100레벨 아니, 200레벨 이상이 스탯포인트를 힘, 민첩, 체력에 골고루 찍으면 그 정도 몽둥이질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10레벨 미만이라고! 10레벨 미만!”

그렇게 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열변을 토하는 사이.

그때 그 뒤에 있던 다른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본 것 같아.”

“정말? 얼굴을?”

“아니, 얼굴까지는 아니고...”

“아니고 뭐?”

“그러니까 마치 하얀색 머리카락에 하얀색 눈썹을 가진 것 같았어.”

“흰머리에 흰 눈썹?”

“아니, 노화로 인한 흰머리가 아니라... 맞아! 마치 눈이 쌓인 듯 하얀색 머리카락과 하얀색 눈썹이었어.”

“음... 그랬나? 하얀색 머리카락이면 꽤나 눈에 띄었을 텐데.”

“그러니까.”

동료들의 반신반의한 반응.

그러자 하얀색 머리카락과 하얀색 눈썹을 본 것 같다는 말을 꺼낸 남자가 재빠르게 얼버무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확신은 못해. 단지 얼핏 그렇게 보인 것 같다는 거지.”

저벅저벅.

광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며 걸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앞머리를 삐죽 당겨서 확인했다.

역시나 검은색.

‘도대체 하얀색은 뭐야? 이렇게 검은데.’

신체 인식, 홍채 인식, 뇌파 인식으로 캐릭터가 생성되었을 때 단1의 변경 및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눈동자 색깔도.

즉, 검은색 머리카락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 눈으로 검은색인 것을 확인했고.

그런데 뜬금없이 하얀색 머리카락과 하얀색 눈썹을 본 것 같다는 한 남자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인 줄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물론 내 정체를 감출 생각은 없다.

그래야할 필요성도 없고.

하지만 당분간은 그럴 생각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초보니까.

더욱이 그냥 초보가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이 그리고 내일 보다 내일모레가 더 기대되는 잠재력이 풍부하다 못한 무궁무진한 초보라는 것.

그래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방해나 견제를 벌써부터 받을 생각은 없다.

튀어나온 못은 정을 맞는 법이니까.

그래서 모습을 드러낸다면 감히 정 따위가 나를 어쩌지 못한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더욱이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기도 하고.

우선은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재빠르게 코툼성 외각 쪽으로 움직였다.

물론 목적지는 정해 놨다.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난이도에 비해 짠 경험치로 버려졌다시피 했던 골렘 서식지로.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적절한 곳일 것이다.

1개의 던전과 꽤나 넓은 영역을 차지한 골렘들의 서식지.

물론 골렘 서식지 내에 존재하는 1개의 던전도 당연히 골렘류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한산하네.”

3차 클로즈 베타 당시 약 250레벨대의 사냥터로 처음으로 공개됐고 곧바로 버려지다시피 했던 사냥터였다.

나도 기피했고.

약간 다른 의미에서.

왜냐하면 그 당시 내 목표는 2주안에 무조건 만렙을 달성하는 것이었기에 최우선적으로 경험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50레벨대의 몬스터 치고는 같은 레벨 대의 몬스터보다 강한 것은 둘째치고 경험치까지 짰기에 이곳에서 사냥할 메리트 자체가 없었다.

즉, 나에게는 빵점짜리 사냥터.

그래서 그때는 잠깐 맛보기 사냥을 하고 곧바로 건너뛰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첫 사냥의 시작을 열기에는 안성맞춤.

그렇게 코툼성의 텔레포트 존과 이곳 골렘 서식지를 연결하는 텔레포트 존 밖으로 빠져나왔다.

“불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입니다. 파티 구해요.”

“220레벨 이상 원소계열 마법사 상관없이 다 받습니다. 빨리 오세요.”

“스톤 골렘의 마석 개당 5골덴링에 대량, 소량 매입합니다.”

“착용하신 장비에 단단함 축복 걸어드립니다. 스톤 골렘 상대 하시는데 버프 받고 가세요. 괜히 장비 내구도 빨리 떨어진다고 징징거려봤자 이미 늦은 겁니다. 단돈 10골덴링만 받아요.”

물론 있긴 있었다.

텔레포트 존 주변의 세이프티 구역 내에서 장사 및 휴식을 취하거나 파티원을 구하는 다른 유저들이.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Revival Legend’로 이름을 바꾼 이 게임은 시간제한이 있는 그런 클로즈 베타가 아니기에.

곧 다른 유저들을 지나쳐 골렘 서식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곧장 모습을 드러내는 스톤 골렘들.

씨익.

반가웠다.

그리고 쿵. 쿵. 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서는 5마리의 스톤 골렘들의 모습도 마치 나를 환영하는 듯 느껴졌다.

그래서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이스 볼.”

가장 앞쪽에서 걸어오는 스톤 골렘을 가리키며.

당연히 목표는 스톤 골렘의 다리.

더 정확히는 무릎의 관절 부분.

왜냐하면 이게 사냥의 정석이다.

느린 녀석을 더 느리게 만드는 것이.

나 같은 원거리 계열에게는 특히나 더.

곧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왠지 그 어느 때보다 더 커 보이는 얼음덩어리가 그대로 스톤 골렘의 무릎 쪽을 향해 쏘아졌다.

퍽!

타격음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그냥 미약한 동상만 발생으로 느린 걸음을 더 느리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아예 무릎을 박살냄으로써.

쿵!

그리고 무릎이 박살난 골렘은 그대로 기우뚱 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물론 죽지는 않은 상황.

하지만 거의 죽인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250레벨대의 몬스터를 고작 1레벨 아이스 볼이.

“...이게 아이스 맨의 위력인가?”

2000이 넘는 지력.

분명 높다.

특히나 레벨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이 수치는 3차 클로즈 베타에서 300레벨을 달성했을 때보다 살짝 낮은 수치다.

그때도 지력에 몰빵하는 마법사였기에.

착용하는 아이템도 전부 지력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했고.

하지만 그때에 비해 더 강력한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아이스 계열의 모든 스킬의 위력을 30% 올려주는 아이스 맨이라는 특성.

“흐흐흐.”

그래서 웃음을 내뱉었다.

마치 악당처럼.

그리고 스톤 골렘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했다.

“아이스 볼! 아이스 볼트!”

퍽! 퍽! 퍽! 퍽!

고작 1레벨 스킬들.

그리고 1400에 달하는 정신력.

그래서 거의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나량의 부족은 애초에 걱정할 필요도 없고.

거의 무한 사용.

그리고 극히 초반에 배우는 스킬들이라 그 위력은 분명 낮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한방 한방 아이스 볼과 아이스 볼트가 스톤 골렘들의 몸에 적중할 때마다 크나큰 상처를 만들어냈다.

아이스 볼은 스톤 골렘의 몸뚱이를 구성하는 돌을 큼지막하게 뜯어냈고 아이스 볼트도 큼지막한 구멍을 냄으로써.

그리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의 향연.

“...이렇게 쉽나?”

사냥이 쉬워도 너무 쉬웠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몬스터들을 향해 스킬만 남발했기에.

현재 유일한 방어 스킬인 아이스 쉴드는 사용할 필요도 없이.

특히나 1차 클로즈 베타를 제외하고 2차와 3차 클로즈 베타는 만렙 달성을 위해 항상 동레벨 혹은 상당한 숫자의 몬스터를 한 번에 상대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대체적으로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지력에 몰빵한다고 체력과 생명력이 높지 않았고 당연히 정신력과 마나량은 체력과 생명력보다 더 낮았기에.

그런데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단 1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 사냥.

씨익.

절로 웃음이 났다.

항상 이런 사냥을 꿈꿨기에.

물론 누구는 너무 널널해서 혹은 긴장감이 없어서 별로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왜 게임에서는 도전과 모험을 그것도 아무리 죽어도 부활이 가능하다지만 목숨을 건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임 속의 캐릭터는 나의 분신인데.

그것도 현실의 나를 투영하는.

물론 영원히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할 것이다.

다만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과 대가가 주어진다면.

혹은 누군가 내 앞길을 가로 막는다면.

“흐흐흐.”

그렇게 웃음을 흘리며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스톤 골렘들이 죽으며 드랍한 골덴링과 마석 같은 잡템을 챙기기 위해.

왜냐하면 이것들은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획득한 부산품이니까.

그렇기에 그것들을 전부 인벤토리에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놓고 그전보다 더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좋아. 그럼 제대로 한번 시작을 해볼까나!”

스톤 골렘들이 들으며 경기할 말을 내뱉으며.

< 본격적인 발걸음 (2). > 끝

ⓒ basso77

=======================================

< 본격적인 발걸음 (3).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