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꼭 하고 싶던 것.
그날 밤.
원룸에 들어서자마자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사용치 않은 2세대 보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Forgotten Legend’에서 ‘Revival Legend’로 이름이 바뀐 그 게임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하지만 곧 멈춰 섰다.
이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하고 스쳐 지나갔기에.
왜냐하면 클로즈 베타.
내가 겪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기이한 경험들은 전부 클로즈 베타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Revival Legend’로 이름을 바꾼 그 게임은 오픈을 했고 현재 정상적인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것도 3년이 훌쩍 넘게.
즉, 클로즈 베타처럼 종료라는 기약이 없는 상태.
더군다나 게임 이름뿐만 아니라 회사 자체도 바뀌었고.
하지만.
“그래도 해봐야지.”
교통사고가 나서 두 다리만 장애가 생겼으면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져들었던 MMORPG게임.
그래서 이렇게 혼자 살게 되면서 원하고 원하던 게임 폐인이 될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게임 폐인이 되지 않았다.
아니,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그래서 한번 접속하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게임마저도.
왜 그런지는 모른다.
다만 ‘Forgotten Legend’가 준 워낙 괴이하고 강렬한 경험이 다른 게임을 전부 시시하게 만들었다고 유추할 뿐.
물론 그 기이한 경험이 없더라도 ‘Forgotten Legend’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아무리 만렙을 찍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지만 하루에 2~3시간 혹은 아예 잠을 자지 않은 채 게임에 열중하게 만들 정도로.
“크크크. 그럼 이번에는 정말 게임 폐인이 될지도 모르겠군.”
약간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연결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운로드를 시작했다.
순간 새로 설치가 아닌 업데이트라고 표시되는 화면창.
그것을 보고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있었다.
같은 게임이 아니라면 ‘Forgotten Legend’가 ‘Revival Legend’라는 이름의 게임으로 업데이트가 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것도 항상 그렇듯 7시간으로.
“후. 그나저나 내일 알바가 있는데...”
솔직히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1년 전 항상 나에게 멍청하다고 괴롭히고 놀리던 누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었다.
멍청한 막내가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머리가 획 돌았다고.
당연히 아빠가 준 부담감으로.
그리고 누나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바리깡을 들고 아빠를 향해 선포했다.
막내인 나를 그냥 저렇게 내버려두면 자신도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 비구니가 되겠다고.
똑똑한 것은 둘째 치고 고집도 한 성격도 하는 누나.
솔직히 큰형보다 더 상남자 같은 성격이 누나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누나는 같이 놀아주는 거라지만 내 입장에서는 괴롭힘을 많이 당했고.
어쨌든 자신이 한말은 칼같이 지켰던 누나.
그래서 많이 풀렸다.
아빠로부터 대학교는 상관없으니 우선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들었고.
하지만 내가 거절했다.
왠지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평생 그 울타리 안에서만 살 것 같기에.
여하튼 집에서 쫓겨나면서 회수됐던 카드가 다시 생겼다.
거기에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준 누나가 매달 두둑한 용돈을 챙겨줬고.
그래서 알바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
그럼에도 쭉 했다.
알바라도 안 하면 할 것이 없기에.
그런데 이제 할 것이 생겼다.
그것도 당장.
“내일 당장 알바를 그만 둔다고 하면...”
일이 널널한 만큼 짠 시급을 줬기에 내가 그곳에 알바를 하러 갈 때까지 3개월 동안 아무도 지원자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당장 알바를 그만둔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요지가 컸다.
내가 그곳 알바를 하면서도 최소 6개월 이상 그리고 알바를 그만둔다면 최소 한 달 전에는 말을 하기로 했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내가 알바를 하는 카페의 사장으로부터.
“네. 사장님.”
“음... 주영아.”
나름대로 쾌활한 성격의 사장.
그런데 약간 뜸을 들이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안 좋은 말을 꺼낼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사장은 안 좋은 말을 꺼냈다.
물론 사장 입장에서만.
“카페 문을 닫기로 했다. 주영이 너도 알다시피 장사가 너무 안돼서...”
“언제부터요?”
“당장. 그래서 내일부터는 알바를 나올 필요가...”
“괜찮아요!”
사장의 말에 곧장 대답했다.
왜냐하면 사장 입장에서 씁쓸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땡큐이기에.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맙다. 오늘까지 일 한 것은 내일 아침에 바로 입금해주마. 그동안 고마웠다.”
“네.”
곧 전화를 끊고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다봤다.
마치 게임에 열중하라는 듯이 상황이 딱딱 들어맞았기에.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하지 못했던 게임 폐인을 이 기회에 한번 되어보기로.
곧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내가 본가에서 사용했던 침대의 반의반도 안 되는 침대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어 오히려 더 편안함을 주는 침대로 몸을 날렸다.
업데이트 종료까지 걸리는 7시간 동안 푹 숙면을 취해놔야 내일 첫 스타트를 맑은 정신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날 이른 아침.
자주 먹던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먹고 곧장 침대에 누워 업데이트가 완료된 2세대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내 3세대 고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가져오기로 마음먹으며.
그리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1차, 2차, 3차의 클로즈 베타를 하기에 앞서 클로즈 베타의 종료까지 2주간 모든 것을 불사를 정도로 게임을 하고 남은 방학 기간에는 공부만 하기로 다짐을 했던 것처럼.
“해보자. 게임 페인이라는 것을. 평생을 살면서 더 이상 게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 후에도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으니까.”
확실한 것은 있다.
바로 내가 굉장히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
그것은 군대에서도 그리고 군 전역 후에도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면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의 약간의 대학 생활에서도.
왜냐하면 나는 초6, 중3, 고3의 총 12년간의 공부의 결과물인 수능에서 무려 만점을 받았다.
그 외 내가 다니던 사립 명문고는 사고력을 키운다는 명분하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강제로 읽고 독후감을 쓰게 만들었고.
거기에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거기에 중국어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스파냐어까지 마스터했다.
감히 천재라 불리는 자도 불가능한 수준.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데 말문이 막히거나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뭐 우리나라 고등학교까지의 학습 과정을 마스터 했다는 것은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어도 무방한 수준이기도 하지만.
하물며 나는 거기에서 몇 발자국 아니, 수십 발자국을 더 나아간 수준이고.
다만 대학교.
거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로 뽑히는 서울 대학교가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한 분야에 깊은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 것이 대학교의 수업이기에.
물론 악착같이 따라 가려고 노력했다.
내 머릿속에는 아무리 고등학생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으니까.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수준을 아득히 뛰어 넘어섰고.
그래서 이것저것 짜깁기를 하면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학문을 접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 더군다나 이미 그런 기이한 3번의 경험을 했기에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아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무의미한 공부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등학생 때처럼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의자에 앉아 공부도 해봤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안 됐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하지 못했던 게임 폐인이 될 겸 1차, 2차, 3차 클로즈 베타 때처럼 모든 것을 불사르기로.
게임에 실증이 날 때까지.
그래서 차후 번역가가 되든 아니면 통역가가 되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좋아. 그때처럼 모든 것을 불사를 정도로 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굳은 다짐을 하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 2세대 보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실행했다.
< 꼭 하고 싶던 것.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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