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Revival Legend (되살아난 전설).
군대를 갔다.
그것도 내 수준으로 가장 빡세다고 생각했던 해병대로.
당연히 도피성 군입대.
다행인 점이라면 이것을 가족들은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내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곳이 군대니까.
특히나 나처럼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4세라면 더욱더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고.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바로 제대후의 일.
도저히 복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곳에는 내 모든 것을 까발릴 중간고사가 기다리고 있기에.
그리고 그렇게 군 전역 후에도 복학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은 아빠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의문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서 채 1학기도 마치지 않고 휴학을 한 것은 그나마 군대라는 납득 가능한 핑계라도 있었지만 전역을 해놓고도 복학을 하지 않는 것은 핑계를 댈 것이 전혀 없었기에.
당연히 곧장 복학을 하지 않으면 모든 지원을 끊겠다는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아빠는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엄마, 형 그리고 누나에게도 절대 나에게 지원을 하지 말라는 엄포를 내리면서.
솔직히 그때 안심했다.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기에.
물론 맨몸으로 그냥 쫓겨나지는 않았다.
엄마가 방을 구해줬다.
언제든 복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서울대 근처로.
다만 내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작은 방으로.
살면서 부엌하고 거실 그리고 잠자는 방이 하나에 뭉쳐져 있는 방은 처음 봤다.
거기에 그렇게 작은 화장실도.
엄마는 그 방을 구해주면서 더 좋은 방을 알아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나는 그 말에 엄마에게 괜찮다고 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이런 행동을 모를 아빠가 아니기에.
딱 여기까지가 아빠가 허락한 마지노선.
그와 함께 집에서 가져온 짐과 함께 500만원을 건네고 엄마는 돌아갔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전화를 하라면서.
그렇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원룸이라는 곳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당연히 생전 해보지 않은 여러 알바를 해야만 하는.
3년 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최고층 빌딩 안.
일단의 무리가 탁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럽과 중국 쪽에서 뭔가 눈치를 챈 것 같다고?”
“네. 그놈들이 숨긴다고는 하는데 부산스런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이 되었습니다.”
“흠... 하긴. 이정도면 오래 숨기긴 했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답변에 가장 상석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곧장 테이블 끝 쪽에 앉을 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럽과 중국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은 금방이겠군.”
“네. 전략부에서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상석에 앉은 남자의 말에 이번에는 탁자의 끝부분에 앉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상석의 남자가 다시 되물었다.
“그럼 그간 우리가 확보한 만렙 달성 인원은 몇 명이지?”
“네. 총 1089명으로 1차 클로즈 베타때 만렙을 찍은 인원은 1042명, 2차 클로즈 베타때 만렙을 찍은 인원은 47명입니다.”
“등급은?”
“몇몇을 빼고 대체적으로 C등급 입니다. 아무래도 1차, 2차 클로즈 베타 종료는 초기화를 뜻하기에 만렙을 찍은 이후로는 더 이상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았고 더불어 가진 아이템을 강화 시도로 날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스킬트리를 연구 한다고 스킬 삭제와 그간 모은 골든링을 소모한 자들도 대부분이었고요.”
“휴.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1차와 2차의 만렙 달성자 차이가 확 나는군.”
“네. 그만큼 1차와 2차의 난이도 차가 굉장히 컸습니다.”
“좋아. 그렇다 치지. 그런데 3차 클로즈 베타 만렙 달성자는 여전히 찾지 못한 건가? 아니면 아예 없는 건가?”
상석에 앉은 남자는 약간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왜냐하면 1차, 2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을 달성한 자도 무척 중요하지만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는 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그 언짢은 기색을 느꼈는지 답변을 하던 자가 목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2차때 만렙을 가뿐히 달성할 정도로 사냥에 무척이나 몰두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 후 당연히 3차 클로즈 베타도 참가했고요. 그런데 그자가 죽어라 사냥을 했음에도 채 250레벨을 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3차 클로즈 베타는 커트라인이 존재했습니다. 매일매일 일정 레벨을 달성치 못한 자들은 강제로 종료가 되는 커트라인이요.”
“그래서?”
“네. 그걸 비추어볼 때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저희 전략부의 판단입니다.”
“미국 정부와 샤이페 놈들은?”
“그 두 곳도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를 영입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함께 전략적 동조 관계로 여러 차례 정보를 공유했는데 그 두 곳도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흠.”
상석에 앉은 남자는 그 보고에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턱에 괸 채 침음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곧 침음을 깨고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도 3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에 대한 조사를 여기서 종료한다. 다만 다른 쪽으로 공을 들여라. 등급은 상관없다. 오직 1차와 2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를 더 찾는데 힘써라. 특히나 2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자를 찾으면 원하는 것 전부를 들어준다고 회유해라. 미국 정부는 몰라도 샤이페 놈들에게 인재를 빼앗기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으니까. 당연히 유럽이나 중국 놈들에게도.”
“네.”
“그리고 만약 끝까지 우리에게 회유되지 않는다면 납치라도 해라. 만약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죽여 버리고.”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한참 회의가 더 진행됐다.
그리고 회의가 종료되기 직전 상석에 앉은 자가 모두들 한차례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특별 관리하는 1차, 2차 클로즈 베타의 만렙 달성 유저들도 그렇지만 우리 휘하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죽지 말라고 전해라. 죽으면 발생하는 경험치 하락과 24시간의 접속 금지 페널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태창에 죽은 횟수가 추가 됐다는 것은 차후 다른 방식의 페널티가 있을 수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네. 모두 위험한 사냥터에서는 확실히 파티 사냥을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좋아. 모두 명심해라. 차후에 모든 것은 ‘Revival Legend’로 결정된다는 것을. 그만큼 ‘Revival Legend’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미국 정부와 샤이페 그리고 그 둘과 함께 미국 내 3대 세력 중에 하나로 꼽히는 홀드렛지의 회의가 종료됐다.
관악산 후미진 곳에 위치한 카페.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녀 커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응대를 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고 어려웠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는 말이 있듯이 차츰 그런 응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곧 카운터에 다가오는 남녀 커플.
“주문하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자마자 자연스럽게 커피 기계를 작동시켰다.
후미진 곳에 위치한 곳이기에 내가 주문부터 제조, 서빙까지 전부 다 해야 하기에.
그만큼 손님이 없다는 것이 한몫했지만.
곧 2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들고 그 남녀 커플을 향해 다가섰다.
그리고 지근거리에 다다르자 그 남녀 커플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야. 도대체 그 게임이 뭔데 수업도 안 들어오는데?”
“있어.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
“너. 그래갔고 졸업은 어떻게 하려고? 여기 서울대다 서울대. 설렁설렁 해갖고는 절대 졸업 못할걸.”
“훗. 졸업 안 시켜주면 그냥 때려치우면 되지.”
남자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여자.
그 모습에 착잡한 시선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예전의 나처럼 게임에 목메는 모습으로 보였기에.
여하튼 그 남녀 커플의 대화는 내가 그들 앞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그 게임이 뭔데?”
“리바이벌 레전드.”
움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남자가 말한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기에.
왜냐하면 내가 했던 것이 잊힌 전설을 뜻하는 ‘Forgotten Legend’.
그런데 남자의 입에서 나온 것은 되살아난 전설을 뜻하는 ‘Revival Legend’.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둘이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두려웠기에.
혹시나 아닐까봐.
그만큼 한때는 매일 아니, 매 시간마다 검색창에서 ‘Forgotten Legend’의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당연히 사라진 홈페이지는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Forgotten Legend’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내가 겪은 기이한 일을 넷상에 올릴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올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남에게 말하기에는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러다 아예 관심을 거두게 됐다.
나락으로 빠졌으니까.
만약에 이렇게 높이 날지 않았다면 추락의 충격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4년대 대학은커녕 지방의 2년대도 어려웠던 나에게 서울대는 너무나 높았다.
더욱이 전체 수석으로 입학은 나를 대기권 밖까지 날게 만들어줬고.
신문과 뉴스에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이 후미진 곳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최대한 모두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당연히 시급도 짠.
그런데 그 와중에 듣게 된 ‘Revival Legend’.
부들부들.
당장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과 아니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서로 경합을 벌였다.
그 경합에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고.
하지만 결국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인터넷에 들어가 ‘Revival Legend’를 검색했다.
그러자 곧 하나의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심장이 쿵쾅쿵쾅 떨려왔다.
더욱이 한동안은 ‘Forgotten Legend’는커녕 ‘Legend’라는 단어도 검색을 하지 않았다.
그게 나락으로 빠진 충격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여하튼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클릭을 하자 곧 홈페이지의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Forgotten Legend’와는 다른 첫 화면.
하지만 개의치 않고 이곳저곳 훑어보기 시작했다.
우선 첫 화면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니까.
그리고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부들부들.
내 몸이 나도 모르게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왜냐하면 알 수 있었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가 했었던 그 게임이라는 것을.
< Revival Legend (되살아난 전설). > 끝
ⓒ basso77
=======================================
< 꼭 하고 싶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