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2차 그리고 3차 클로즈 베타 (1).
방학이 끝나기 3일전 저녁시간.
“허. 정말로 성적이 올랐구나. 그것도 많이.”
씨익.
“네.”
나와 달리 잘난 형과 누나 덕분에 아빠 앞에서는 항상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어깨를 쫙 펴고 웃으며 대답했다.
내 성적표를 보고 놀라는 아빠의 표정이 말해주듯 정말로 성적이 가파르게 상승했으니까.
“주영군이 정말로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간 주영군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밑받침이 되어줄 지식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 그 밑받침이 되어줄 기본적인 지식 위주로 커리큘럼을 짰고 그게 주요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열심히 한 주영군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강남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의 간판 강사들.
저번 방학 때까지는 이들에게 과목별로 1대1로 과외를 받았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효과는 없었고.
물론 이들이 못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못났다면 그래서 능력이 없다면 이 자리에 불려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결국 내가 문제.
“그래. 수고들 했네. 그나저나 우리 주영이의 공부 방식이...”
아빠 입에서 나온 공부 방식.
이번 방학에는 과외를 하지 않고 나 혼자서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었다.
나에게는 1대1 과외의 효과가 없는 것을 떠나 강사들의 얼굴에 어떻게 고등학생이 돼서 이런 것도 모르냐는 약간의 경멸어린 표정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웠기에.
그리고 그때 강사들이 앞다퉈 입을 열었다.
“주영군은 아무래도 옆에 누가 있는 것보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학습효과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학생마다 자기 자신에게 맞는 학습 환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질타를 할수록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격려와 칭찬을 할수록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물론 주영군은 위와 같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이번에 드러난 결과로 봤을 때 옆에 도움이 될 조력자나 혹은 경쟁자를 두는 것보다는 혼자 묵묵히 공부를 하도록 두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여러 강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내뱉는 아빠.
그리고 그것으로 앞으로의 내 공부 방향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좋네. 그럼 앞으로 방학때 한 것처럼 똑같이 해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꼭 주영군을 서울내의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빠의 말에 눈에 보일 정도로 아부를 하는 강사들.
솔직히 그 모습에 한마디 하고 싶었다.
당신들 때문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생긴 집중력? 혹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하지만 조용히 있었다.
갑자기 생긴 집중력과 기억력에 대해 말할 수 없기에.
여하튼 그렇게 강사들이 돌아가고 그날은 기분이 좋은 아빠 때문에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화기애애한 것은 물론이고 열심히 하라며 무척이나 두둑한 용돈까지 받으며.
그날 밤.
“흠...”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Forgotten Legend’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막말로 그런 다짐을 한다고 정말로 이뤄지면 세상에 이뤄지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어.”
1차 클로즈 베타가 진행되는 2주간 정말 모든 것을 불사를 정도로 게임만하고 남은 방학 기간 동안에는 오로지 공부만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지켰다.
하지만 그 다짐대로 공부를 해도 안 외워지던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이 잘 외어질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공부에 열중하겠다는 나 스스로의 족쇄이자 포부.
그런데 됐다.
전에는 안 되던 것들이 이번에는 바짝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혹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경험치나 아이템으로 무조건 보답하는 게임처럼.
타닥. 타닥. 타닥.
[혹시나 이 ‘Forgotten Legend’게임으로 전과 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가령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Forgotten Legend’의 자유게시판에 쓰던 글을 도중에 멈췄다.
“흠... 이걸 말할 필요가 있나?”
나에게 해가 됐다면 그래서 손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따지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없다.
단 1의 손해도.
오히려 이득을 봤다면 본 케이스.
순간 자유게시판에 작성하던 글을 전부 삭제했다.
이유야 어쨌든 밝힐 필요성은 전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을 지우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다.
바로 2차 클로즈 베타.
하지만 자유게시판을 필두로 이곳저곳을 훑어봐도 2차 클로즈 베타에 대한 글은 없었다.
“하긴 1차 클로즈 베타가 끝난 지 한 달도 안됐으니.”
더욱이 예전 같으면 다른 게임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Forgotten Legend’를 맛보자 다른 게임에 대한 생각이 저 멀리 사라졌다.
첫 번째로 접한 그래서 빠져 나올 자신이 없어 접속하지도 않은 그 게임마저도.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6개월 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방학이 끝나자마자 그게 끝이었으니까.
기억력도 집중력도 전부.
마치 꿈 혹은 허상이었다는 듯이.
물론 사라지지 않은 것은 있었다.
바로 그 당시 공부했던 것들.
하지만 그것 빼고 방학이 끝난 이후부터는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아무리 영단어나 수학 공식을 외우고 외워도 며칠이 지나면 언제 외웠냐는 듯이 까먹는 원래의 나로.
그래서 그간 했던 것은 우려먹기.
최대한 방학 기간에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항상 바라고 바랬다.
바로 2차 클로즈 베타를.
“2차 클로즈 베타는... 안 하려나?”
6개월 전 방학이 끝나고 매일 매일 접속했다.
‘Forgotten Legend’의 홈페이지에.
혹시나 2차 클로즈 베타를 진행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망한 홈페이지마냥.
“내일이면 다시 방학인데. 그리고 그때 1차 클로즈 베타도 방학을 하자마자 진행 했고.”
물론 내 희망 사항.
왜냐하면 클로즈 베타를 진행하는데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후우...”
그렇게 그날도 한숨을 내쉬며 이해가 가지 않는 화학 방정식을 물고 늘어졌다.
다음 날 저녁.
띠링.
“응?”
갑자기 울린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음.
순간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저녁에 울렸으니까.
곧장 시선을 책상 한편에 자리한 시계로 옮겼다.
[저녁 8시 30분.]
“.......”
그때도 정확히 이 시간대에 울렸다.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럽게 휴대폰의 액정에 뜬 메시지 표시를 클릭했다.
그리고 확인 가능했다.
‘Forgotten Legend’의 2차 클로즈 베타 진행 소식과 함께 1차 클로즈 베타를 참여한 모든 유저에게는 별도의 신청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물론 ‘Forgotten Legend’ 때문에 내 집중력과 기억력이 생겼다고는 볼 수는 없다.
표본도 딱 1차례고 증거도 없으니까.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Forgotten Legend’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간 그 어떤 게임도 하지 않고 오로지 ‘Forgotten Legend’만 기다렸던 것이고.
곧장 벽장에 쑤셔놨던 2세대 보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Forgotten Legend’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메시지에 함께 온 새로운 접속 코드를 알리는 알파벳 12자리 숫자를 입력했다.
탁. 탁. 탁. 탁.
이미 한차례 했던 경험이 있기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 같은 7시간의 업데이트 시간.
“으...”
1차와 똑같이 2차 클로즈 베타의 오픈도 다음 날 아침 10시.
하지만 1차와 달리 온몸에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흥분감이 감돌았다.
무려 6개월 이상을 기다렸으니까.
그렇게 두 발을 동동거리며 아주 천천히 업데이트 되는 ‘Forgotten Legend’만 지켜봤다.
방금 전까지 외우던 화학 공식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다음날 아침 10시.
“알람 설정 12시 20분.”
여전히 게임을 하는 것을 알릴 생각은 없기에 12시 30분에 있을 점심시간 10분 전에 알람을 설정했다.
-12시 20분으로 알람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업데이트를 끝낸 2세대 보급형 가상현실 접속기를 머리에 쓰고 침대에 누웠다.
“실행.”
-가상현실 접속기를 실행합니다.
곧 1차 클로즈 베타에 접속할 때 설정한 파릇파릇한 녹초로 물든 작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외쳤다.
“다운 로드 내역 확인.”
-보유한 다운로드 내역입니다.
: Forgotten Legend. (실행 가능.)
“Forgotten Legend 실행!”
이미 가상현실 접속기를 착용한 상태이기에 크게 외쳤다.
그러자 눈앞에 1차 클로즈 베타 때와는 다른 인트로 영상이 펼쳐졌다.
오크와 코볼트 같은 아주 저레벨의 몬스터부터 오우거와 트롤 거기에 바질리스크나 드레이크 같은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몬스터들이 인간들이 지키는 긴 성벽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광경.
하지만.
“스킵(skip)!”
곧바로 그 인트로 영상을 건너뛰었다.
한시가 급했기에.
그러자 곧 1차 클로즈 베타 때처럼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밀밭.
그리고 그때처럼 모습을 드러낸 2차 클로즈 베타의 안내 사항을 빠르게 훑으며 게임에 접속했다.
얼핏 봐도 1차 클로즈 베타 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에.
물론 공개되는 지역이 많아졌고 그만큼 등장하는 몬스터와 아이템, 스킬도 많아졌다.
레벨 제한도 200으로 증가했고.
단, 똑같은 점은 있었다.
바로 1차 클로즈 베타와 같은 2주간의 진행.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전부 건너뛰었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때처럼.
2주간 모든 것을 불사를 각오로 게임을 하기로.
갑자기 생긴 기억력과 집중력이라는 기이한 경험 때문에?
아니다.
그것도 분명 이유이긴 하지만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바로 재미있다는 것.
다른 게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밥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그래서 2주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 2차 그리고 3차 클로즈 베타 (1). > 끝
ⓒ bass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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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그리고 3차 클로즈 베타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