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에필로그 (1)
마왕이 영웅의 손에 쓰러진 뒤로 24년, 세계는 확실히 평화로워졌다.
더는 악마로 인해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마인 역시 실체를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어둠의 기운에 민감한 각종 몬스터의 습격 역시 큰 폭으로 감소했다.
몇몇 뜨내기 모험가들이 던전을 탐사하겠다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봉변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까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들었어? 흑기사단장, 이그넷 크레센시아 경께서 마계에서 복귀했다는데?”
“뭐? 죽은 거 아니었어?”
“마계에서 돌아왔다니, 그거 괜찮은 거 맞아? 이미 악마에게 세뇌라도 당한 건…….”
“그랬으면 신성 왕국에서 가만히 있었겠어? 오히려 마왕이 될 만한 싹수 노란 녀석들까지 모조리 토벌하고 왔다던데?”
“그, 그런가?”
거기에 더해, 또 하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흑기사단장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복귀가 그것이었는데, 대외적으로는 균열 공간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그녀에게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 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웅의 복귀는 아빌리우스에게만 기쁜 일이 아니었다.
대륙 중부를 포함한 세계 각지는 또 한 번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매일같이 축제를 벌였다.
상인들이 즐거이 돈을 풀고, 용병들은 불콰하게 취해서 술잔을 부딪치고, 농사꾼들 역시 콧노래를 부르며 힘차게 밭을 간다.
성직자의 입에서는 연신 신에 대한 찬양이 이어지고,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4인방, 아니 5인방의 이름을 외치며 영웅 놀이에 힘쓴다.
물론, 세상이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대륙 남부를 여행하는 흑발 검사의 눈에는 그래 보였다.
“…….”
도시 근처의 자그마한 동산에 자리한 누군가의 무덤.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소년 하나를, 그녀는 바라보았다.
착 가라앉은 눈빛.
또래의 순진무구한 느낌은커녕, 질척한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것 따위 진즉에 메말라 버렸다는 듯 건조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를, 검사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지켜만 보고 있자니 심심하고 불편해서 소년의 곁에 앉고, 그 상태로도 삼십 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무렵.
“후의는 고맙지만,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꼬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전에도 몇 번 있었어요, 도와주려고 했던 분들.”
아이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딱히 친절한 설명은 아니었다. 흑발 검사로서는 그저 뉘앙스 정도만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고아원 생활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말이 원장이지, 깡패 두목 같은 느낌의 사내 밑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이 무덤의 주인은 그런 생활을 버티다 못해 이승을 떠난 모양이었다.
핵심은, 그런 처지를 가엾게 여긴 몇 용병 나부랭이들의 행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녀석들이 어설프게 들쑤셔 놓을 때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것.
여기까지 이해한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 없는데.’
소년은 그런 그녀의 속내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어설프게 끼어들지는 않겠지……’ 하는 정도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이가 엉덩이를 툭툭 털어 낸 뒤,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자그마한 뒷모습.
흑발의 검사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여전히 흥미가 크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보일 만한 이는 떠올랐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서는 흥미가 일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그녀가 딱히 할 일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전직 흑기사단장이 도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닮긴 했구나.”
* * *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 도시로 돌아온 카이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조금 사치를 부렸다. 돈을 썼다는 건 아니고, 시간을 낭비했다.
자신의 할당량은 물론이고 동생들의 할당량까지 채우고도 남았지만, 언제 여유가 없어질지 모른다.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여행자에게 너무 오래 넋두리를 풀어 버렸다.
‘어차피 앞으로 평생 안 볼 사람한테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어.’
……물론, 소년의 마음이 무거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장 절친한 친구의 기일을 지내는 것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이 돌아가는 장소의 주인이 친구의 죽음에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원장의 밑을 떠날 수 없다는, 챙겨야 할 동생들을 생각하면 이렇듯 감상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라는 현실이야말로 카이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건 잘했어. 잘한 일이야.’
뜀박질을 멈추지 않으며,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고아원의 주인인 대머리 잭은 뒷골목의 깡패에 불과했고, 그보다 솜씨 좋은 모험가는 곳곳에 널려 있을 터다.
만약 1대1 결투처럼 단순한 방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소년은 동산에서 만난 여성 검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앞니 두 개가 빠져서 멍청해 보이는 대머리 잭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도.
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이 합법적이라는 것도, 그렇기에 이방인에 불과한 제삼자가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는 사실도.
그 모든 난관을 무사히 뚫어 냈다고 하더라도, 역겹고 추악하기 그지없는 고아원장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뒷골목의 또 다른 녀석이 그 자리를 채우겠지. 도움을 줬던 이방인은 다시 제 갈 길을 갈 테고.’
눈에 빤히 보이는 결과였다.
또래보다 조금 더 똑똑하고, 조금 일찍 철이 든 소년은, 그렇기에 지금의 일상이 유지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 이게 최선이야.’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
자신이 조금 더 많은 일을 하면 된다. 조금 뒤떨어지는 아이들의 몫까지 벌어들여 잭의 탐욕을 채워 주면 된다.
괜히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벌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렇게, 자기가 조금 더 고생해서라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편이 낫다.
“…….”
그러기 위해, 카이는 지옥처럼 끔찍한 고아원을 향해 제 발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깨달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으아아아아아앙!”
“형! 으헝! 흐어어어엉!”
“오빠아아아아!”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제니, 제니 있어?”
온통 울음바다가 된 풍경.
억지로 끌어올렸던 기분이 다시 곤두박질쳤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짜증이기도 했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일이 생기는 현실이 지긋지긋했고, 이에 울화를 터뜨리는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웠다.
허나 동요는 길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카이보다 두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자신과 같은 냉정함을 요구할 순 없었다.
다시금 이를 상기한 소년은 빠르고, 침착하게 아이들을 다독여 준 뒤, 그보다 한 살 연상인 제니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카이가 고아원에서 가장 신뢰하는 존재였으며, 온화하고 밝은 성격으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귀여운 외모와 싹싹한 대처 덕분에 대머리 잭의 폭력 또한 여러 차례 막아 낸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니 누나 없어! 이제 없어! 으허헝!”
“뭐? 그게 무슨…….”
“대머리가 데려갔어! 우리한테는 귀족 부모님이 데려갔다고 말했는데, 앞으로 밥도 잘 먹고 좋은 옷도 입을 거라고 했는데, 거짓말이야! 내가 봤어!”
“이제 못 봐! 못 본다고! 흐어어어어어엉!”
“…….”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흐른다. 몇몇은 저항까지 했는지 여기저기 멍도 들어 있다.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한 안도감을 저 밑으로 처박아 버리는 우울감과 막막함이 카이의 전신을 짓눌렀다.
제니는 창관에 팔려 갔고,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있어도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남아 있는 아이들마저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잭의 손아귀에 붙잡힌 인질과도 같다는 사실을, 카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으어어엉!”
“흐헣, 허어어엉!”
“우에에에에엥!”
“…….”
카이가 눈을 감았다.
진정해야 했다. 뜨거워지는 머리를 억지로 식히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가장 좋은 선택지를 떠올리기 위해 소년은 아이들의 울음을 무시했다. 무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허나 그것은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아니었다.
일 년 전, 술에 취해 쏟아진 잭의 구타에 시름시름 앓다 죽어 간 친구의 마지막 모습.
걷어 내려 해도 자꾸만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던 카이의 표정이, 어느 순간 평온하게 변하였다.
“…….”
“오빠?”
“형? 혀엉?”
“……괜찮아, 나 괜찮아.”
어느새 뚝 울음을 그친 아이들.
눈망울엔 여전히 물기가 가득했고, 턱밑까지 내려온 콧물이 질척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삼키고 있는 동생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카이의 마음을 흔들고 찢어 놓았다.
하지만…….
“오빠, 형아 잠시 갔다올게.”
“……어디?”
“잭 아저씨 보러.”
“안 돼! 가지 마!”
“가면 안 돼! 가지 마! 가지 마!”
“괜찮아, 별일 없어. 그냥 뭐 좀 물어보러 가는 거야.”
그렇지 않다.
지금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 역시 꾹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더는 못 해.’
카이는 참지 못했다.
더는 똑똑하게 굴지 못했다.
가슴속에 불꽃을 품은 소년은, 오랫동안 숨겨 놓았던 검 한 자루를 든 채 더럽고 어두운 뒷골목을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
“…….”
사람들의 놀란 표정들이 들어온다.
아무 때나 손찌검을 일삼았던 빈민가 어른들도,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란 덩치만 큰 애새끼들도, 지금만큼은 카이를 괄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멀어졌다. 한참 거리가 벌어진 후에야 굳었던 발을 움직여 소문을 전하러 갔다.
신경 쓰지 않았다.
우쭐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못나 보인다고 해도 대머리 잭은 깡패.
게다가 술집에 모여 있을 동료들까지 생각하면, 지금 자신이 벌이는 행동은 객기조차 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어쩌라고.’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세차게, 뇌에 켜켜이 껴 있는 잡생각이 쏙 빠져 버릴 정도로 강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어지러웠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뜨거움은 느껴지는 것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후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드래곤의 숨결. 뒷골목의 술집답지 않은 거창한 간판이 걸린, 대머리 잭을 비롯한 깡패들이 허구한 날 상주하는 장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결연한 표정으로 가게의 문을 열었고,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부의 풍경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몸은,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녀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노라.”
여기저기 동강이 난 시체들.
그사이에 질척하게 고여 있는 핏물 속,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머리 잭.
그만이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그의 머리통의 옆에는, 평소 빈민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수많은 이들의 대가리 역시 빈 술병처럼 제멋대로 늘어서 있었다.
꿀꺽, 카이가 시선을 옮겨 검사를 바라봤다.
어째서 참견했느냐고 따질 수는 없었다.
이미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뿐더러, 가게 중앙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질문을 던졌다.
“……생각만 많은 녀석이요?”
“그래.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놈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안 되는 것들만 내내 떠올리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못 하고, 그렇게 가만히만 있는 게 옳다고 자위하는 녀석들.”
“…….”
“아마 평생 모르겠지, 자기들이 택한 길은 옳은 길이 아니라, 편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 말은, 지금 제가 한 선택이야말로 옳은 선택이었다는 뜻인가요?”
소년이 물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카이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짜증과 분노, 허탈함과 안도감, 그 밖의 복잡하고도 깊은 감정이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자기 따위가 감히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이런 작은 도시의 빈민가의 일에 나설 이유가 없는, 하늘 위의 하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납득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원래라면 파국을 맞이했을 지금의 선택을 칭찬하는 그녀와는 달리, 자신은 자신을 긍정할 수 없었다.
이성의 끈이 끊어진 상태에서 행한 만용을 옳은 선택이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참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소년도 알고 있었다.
검사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순간의 위기만을 모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삶을 영위한다 한들 그 또한 다른 형태의 파멸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했지?’
‘정답이 뭘까? 뭐가 정답이지?’
‘애초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나?’
‘저 사람은 정답을 알고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카이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내 머리가 뜨거워진 소년은 감히 두 눈을 부릅뜬 채, 흑발 검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관심 없노라.”
“…….”
“애초에 네 문제이니라. 나는 그저 내 기준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고 답을 내렸을 뿐, 네 선택에 관한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지. 그렇지 않느냐?”
“그건…….”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말했겠지만. 아니, 그 전에 이렇듯 오지랖을 부리지도 않았을 테지만…….”
흑발의 검사가 뜸을 들였다. 그리고 지그시 소년을 응시했다.
카이가 움찔했다.
마치 자신의 내면까지 까발려지는 듯한 느낌.
진부한 표현으로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아원 일은, 더는 걱정하지 말거라.”
“…….”
“아마 네가 생각하는 문제 대부분은 처리되었을 것이니. 제니라는 소녀도, 고아원도, 그 밖의 일도…… 네 하찮은 발버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 재량껏 손을 봤노라.”
그러니 선택해라.
평화를 찾은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영위할 것인지.
그보다 조금 고되지만, 도망가는 것이 아닌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갈 힘을 길러 볼 건지. 자신을 따라 그 길을 걸어 볼 것인지.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마 평소의 소년이었다면, 똑똑하고 생각 깊은 고아원의 맏형인 카이였다면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를, 그런 질문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았다.
여전히 손에 들린 검을 뜨거운 눈으로 쳐다본 소년이, 흑발의 검사 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따르겠습니다.”
흑발의 검사가 미소 지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맡을 생각은 없었다.
두 달 뒤, 이그넷 크레센시아와 카이는 크로노 검술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