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85화 (385/388)

◈ 123. 꽃 (4)

용사의 제전 준우승자이자 마왕을 무찌른 영웅 아이른 파레이라, 마찬가지로 대륙을 구해 냈으며 진정한 하늘검을 각성한 영웅 일리아 린제이.

둘의 결혼식 날짜를 굳이 여기저기 알린 건 아니었지만, 워낙 유명하고 대단한 존재들이다 보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았기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소식이나마 듣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영웅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객들은 누구누구가 왔는가.

식장의 분위기는 어떠했고, 크로노 검술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고, 오랜만에 만난 오크 측과 엘프 측은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가.

그 밖에도 온갖 알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이었고, 화제가 있다면 천릿길도 마다하지 않는 기자들 역시 대륙 각지에서 한 다리 걸치기 위해 찾아왔다.

“돌아가시오.”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 참! 대륙인들이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에게도 알 권리가 있소!”

“거 참! 공식 행사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알 권리는 무슨?”

물론 그들 대부분은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몰래 들어가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감각이 예민한 크로노의 검사들을 뚫어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기자들은 아쉬운 대로 들뜬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들 중 유일하게 예식장 안까지 들어온 잡지사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젠마르크트의 유명 검투 주간지인 ‘위클리 아레나’였다.

“이럴 수가…… 내가 진짜로, 진짜로 이 역사적인 장소에 함께하고 있다니…….”

위클리 아레나의 신입 기자, 캐서린 터커가 감동에 벅차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도, 눈에도 물기가 가득했다.

수많은 유명인사와 한 자리에서 영웅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후, 하,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가 옆을 돌아봤다. 평소보다 말쑥한 차림의 엘프를 바라본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아이른 파레이라 님과 친분이 있다고 했을 때는, 이 허풍쟁이가 또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잘리고 싶냐?”

“죄송합니다.”

“사과는 좀, 눈 좀 마주치고 해라…….”

“와아, 백기사단장 율리우스 휼 경도 와 있어. 게오르그 포이베 부단장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요술사 아냐 마르타도…….”

“……말을 말자.”

다시금 정신이 나간 신입 기자를 보며, 수석기자 힌츠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귀족이 기자 일을 한다고 할 때부터 이상한 녀석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역시 다루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그래도 밉상은 아니었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적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던 그 역시 예식장을 크게 한번 돌아보았다.

‘……확실히, 엄청나긴 하지.’

증명의 땅을 필두로 한 검투 위주의 기사를 다루는 그였으나, 기자 짬밥이 적지 않다 보니 대륙의 웬만한 유명인사들은 모조리 알아볼 수 있었다.

웬만해서는 대륙 북부에서 잘 나오지 않는 오크 대전사 카라쿰과 두르칼리의 족장 타라칸.

동족인 자신조차도 처음 보는 엘프의 대족장 칼시아.

인간들 역시 귀한 몸들이 넘쳐났다.

지아 룬텔을 비롯한 룬텔 왕국의 마법사들, 서부 5왕국의 검술가주들, 세자르 공국의 요술사들, 남부와 동부의 검사들, 그리고 각국의 왕족들까지…….

‘이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군.’

엘프 기자 힌츠가 미간을 찌푸렸다.

분위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러했다. 대륙을 구한 영웅들의 결혼식에서 감히 누가 무례한 모습을 보이겠는가.

여기에 더해 인간과 오크, 엘프와 드워프가 한자리에 모였다.

160년 전보다 종족의 벽이 많이 낮아졌다곤 하지만, 지금의 자리는 종족 간의 관계를 생각할 때 충분히 의미가 깊었다.

대륙 동서남북, 그리고 중부의 권력자들이 함께한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백기사단장 율리우스 휼이 직접 참여한 건…… 그래, 그런 거겠지. 친분도 친분이겠지만, 이번 결혼식을 대륙 평화와 우호증진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 표명.’

좋은 뜻이다.

그래, 분명 좋은 뜻이다.

하지만 힌츠의 눈에는 지금의 분위기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아닌 척 눈에 힘을 풀면서 구석구석을 살폈다.

웃는 얼굴들.

영웅이 가져온 평화에, 앞으로 있을 희망찬 미래에 미소를 짓는 사람들.

허나 귀가 밝은 그는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오고 가는 왕족, 귀족들의 대화가 얼마나 은밀하고 듣기 거북스러운 내용을 품고 있는지를 말이다.

‘뭐…… 어쩔 수 없나.’

쩝, 힌츠가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 교류가 자주 없던 종족들이 함께하고, 여러 왕국의 대표들이 얼굴을 맞댄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옳고 바르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는 않다.

그는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는 하객들의 정치적이고, 계산적이고, 때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마왕을 쓰러뜨린 영웅들조차 대륙의 미래를 바꾸기는 어려울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신랑, 신부. 입장합니다.”

낮게 오크 정령사 쿠바르의 목소리.

그때까지도 모든 이가 결혼식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저 의례적으로 뒤를 돌아보고, 의례적으로 손뼉을 칠 준비를 마쳤을 뿐이다.

허나 예쁘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의 밝은 미소가 회장을 가득 채우는 순간, 하객 모두가 하던 생각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품고 있던 꿍꿍이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

“…….”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몇 곳에서 환호도 쏟아져 나왔다. 주로 크로노 검술관원들과 용사의 제전 검사들, 서부 5왕국 사람들이 적극적이었다.

신성왕국과 룬텔 왕국, 세자르 공국, 헤일을 비롯한 4왕국 연합과 라바트, 팔랑케, 칼벤, 두르칼리 부족, 와이즈 상단 일로 알게 된 에단 파티와 엘프 측은 점잖게 축하의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던 타국의 왕족, 귀족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모습으로 두 주인공의 행진을 축하했고, 축복했고, 응원했다.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일이다.

허나 그 당연한 게 당연할 수 없었던, 복잡한 분위기였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처럼 순박한 얼굴로, 밝고 따스한 시선으로 아이른과 일리아를 바라보는 건…….

‘……저 둘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영웅들이기 때문이겠지?’

“뭐 해요?”

“어?”

“박수 안 쳐? 미쳤어? 넋 놓고 뭐 하는 거야, 지금!”

“아? 아아, 그렇지. 미안, 미안.”

“정신 좀 똑바로 차려, 진짜!”

“……근데 이게 언제까지 반말할 거야?”

“쉿, 혼나도 식 끝나고 혼날 테니까 조용히. 집중해요, 일단!”

“…….”

끝나고 보자, 속으로 중얼거린 힌츠가 신입 기자의 말대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어느새 행진을 마친 신랑 신부의 모습은 약간 어리숙해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아아, 신랑, 신부는…….”

그 뒤로도 결혼식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결혼식 사회를 처음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솜씨가 좋은 쿠바르의 진행 덕분이기도 했지만, 하객 중 누구도 지루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보기 좋네. 나도 신혼 때로 돌아가고 싶구만.’

‘오랜만에 설레는 느낌, 나쁘지 않네.’

나이가 지긋한 몇은 옛 추억을 떠올렸고.

‘나는 언제 결혼하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야. 혼자가 편하고 훨씬 좋지, 뭐.’

‘사실은 그렇지 않아.’

‘나도 결혼하고 싶어.’

잠깐 사이에도 생각이 오락가락 바뀌는, 혼란스러운 표정의 소드마스터들도 있었다.

마냥 신나고 좋은 이들도 있었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아이른의 검술관 동기들이 그랬는데, 그들은 검술관주 이안의 주례사가 생각보다 길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브랫 로이드와 주디스의 결혼 때에 이어, 인생에서 검 말고도 다른 중요한 무언가를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내 아들이…….’

‘우리 아들이, 드디어 결혼을 하는구나.’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오빠도 가긴 가네.’

물론 파레이라 가족만큼 이 순간을 기뻐하는 이들은 없었다. 영웅의 쓰라렸던 유년기를 아는 그들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룬 파레이라는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아멜리아 파레이라는 끝내 참지 못했다.

오히려 키릴 파레이라가 덤덤한 모습으로 오빠와 새언니를 축하했다.

그리고…….

“흑…… 끄흡…….”

“…….”

“크흑…… 크허허헣…….”

“쯕플리니끄 그믄흐르…….”

조슈아 린제이는, 백작 부인이 연신 옆구리를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진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것만이 평탄하게 흘러가던 결혼식의 유일한 특이점이었다.

“거룩하신 신의 이름으로, 두 영웅의 앞날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길…….”

마침내 식의 마지막이 찾아왔다.

고위 사제 다린 홀튼의 축복과 예물 교환 등 굵직한 절차들이 끝나고. 가장 중요한 신랑 신부의 입맞춤까지 열렬한 환호 속에 마무리되고.

더없이 밝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려 퇴장하는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를, 하객 모두가 진심 가득한 모습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들의 결혼식이 끝을 맺었다.

* * *

“아이른.”

“응?”

“저 꽃, 꽃말이 뭔지 알아?”

“응? 어? 어…….”

“설마, 몰라?”

“아니, 음…….”

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뒤.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꽃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복수초(Adonis)였다. 일리아가 자신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던, 그곳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꽃.

예전에는 몰랐는데, 예비 수련생 시절 선물했던 팔찌에도 복수초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키릴이 귀띔해 주지 않았다면 까맣게 잊고 있을 뻔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지.’

일리아가 어릴 때 좋아했던 꽃이라는 것도.

왜인지는 모르지만, 일곱 살 때 다 뽑아 버렸다는 것도. 나중에 다시 잔뜩 심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꽃말까지는 몰랐다.

준비가 부족했구나.

아이른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일리아가 미소 지었다.

귀여웠다. ‘자기는 그것도 몰라?’라고 놀려먹으려던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순순히 복수초의 꽃말을 읊었다.

“슬픈 추억.”

“…….”

아이른이 잠시 침묵했다.

이제 알 것 같았다.

일곱 살 때면, 오빠인 칼 린제이가 이그넷에게 패배했을 시점이다.

어쩌면 이 꽃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꽃말을 되새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

당연히, 꽃말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아이른은 그렇게 생각했다.

슬픈 추억으로 끝내기에는 우리의 현재가 너무 행복했다.

일리아의 표정도, 그녀를 바라보는 자신의 표정도. 금발의 영웅은 확신을 품은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봤고, 시선을 받은 은발의 영웅은 꽃밭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원한 행복.”

이듬해 겨울, 둘은 건강하고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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