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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73화 (373/388)

◈ 121. 마왕 토벌 (2)

광대 악마는 강하다.

주관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껏 인간계를 침공한 모든 악마를 무력 순으로 줄 세운다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끔찍한 존재다.

물론 천 년 전의 존재에게 통렬한 일격을 먹었고, 그의 전생에게도 가볍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8할…… 아니, 9할은 회복했다고 봐야지.’

원래라면 그렇게까지 빨리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였다.

허나 혼란이 잉태한 인간계 최악의 도시, 고다라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광대는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어둠을 음미했고, 가끔은 다른 악마들조차 별식으로 잡아먹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었다.

어떠한 우려도 할 필요 없었다.

마왕의 권세만 넘보지 않는다면, 그는 마계로 변모할 인간계에서 대공(大公)의 자리를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상해졌다.

콰콰콰콰콰콰-!

가면 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파괴력. 해일처럼 거대하게 밀려오는 푸른색 오러에, 광대가 망토로 앞을 가렸다.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손이 완전히 뻗어진 이후에는 마술처럼 108겹의 암흑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허나 무리였다. 하나가 뚫리고, 둘이 뚫리고, 셋, 열, 백의 망토가 찢어졌다.

마지막 어둠이 스러지면서 파도의 기세 역시 수그러들었지만, 악마는 여전히 경계를 풀 수 없었다.

부서지는 물결을 따라 튀어 오르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품었고.

지면 곳곳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가 함정이 되어 발목을 노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지독한 것은 균열에 소리소문없이 녹아든 물안개였는데, 이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무시하려 하면 어느 순간 응축하여 검이 되기도, 창이 되기도 하며 전신을 찔러 왔다.

그리고 지금은…….

퍼어어어엉-!

……브랫 로이드, 그 자체가 되어 검을 휘둘러왔다.

본체인 척 하던 더미(Dummy)로 눈을 현혹시키고, 안개처럼 짙은 오러에 숨어 기습을 해 왔던 것이다.

물론, 광대 역시 이 정도에 당할 만만한 악마는 아니었다.

히히

히히히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어둠이 스러진다. 푸른색 선명한 오러에 육신이 폭발하고, 파편들이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사방으로 흐뜨러진다.

허나 그것은 최후를 장식하는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조각난 덩어리들의 표면에 입이 생겨나고, 혀가 생겨나고, 눈알이 생겨났다.

그 모두가 귀기 어린 눈으로 인간 검사를 바라보았다. 고막이 나갈 듯 기이한 웃음을 터뜨렸다. 강력한 정신 공격이었다.

브랫은 당황하지 않았다.

지면에 검을 꽂아 넣고.

“하압!”

정신을 집중하여 기운을 방출한다. 그러자 퍼엉! 소리와 함께 원형의 충격파가 어둠을 몰아내었다.

어느새 육체를 복원한 광대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 이런 말도 안 되는…….”

“감당할 수 없나? 나의 멋짐을…….”

“어디서 이런 미친 녀석이 나온 거야?”

“새로이 태어났다. 내 한계를 깨고, 껍데기를 부수고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

“…….”

‘기억났다, 저 녀석.’

과거를 떠올린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아이른 파레이라의 친우였다. 허나 지금까지 크게 관심은 없었다.

인간치고 강하기는 했으나 눈에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그넷 크레센시아와 카렌 윈커의 전생, 그리고 은발 녀석. 이 정도가 아니면 어린 인간 중에 신경 써야 할 존재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30년 후라면, 아니, 한 10년만 지났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 같다.

요즘 녀석들은 성장이 빠르니까,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1년이다.

수천 년을 살아온 악마로서는 정말이지 눈 깜빡할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다른 존재가 되어 나타난다고?

이게 무슨 불합리한…….

쒜에에엑-!

“헛!”

상념을 틈타 퍼런 녀석의 공격이 들어왔다. 광대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났다.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날카롭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로,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었다.

두 번째로, 자신은 지난 1년간 이곳을 자신의 취향으로 물들였다.

즉, 녀석은 약해졌고 자신은 강해졌다. 대충 견적을 내자면 6 대 4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콰아아아앙!

“크윽!”

‘아니, 55 대 45 정도 되려나?’

용납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광대는 분노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세월을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에, 상대를 잘근잘근 씹어먹고, 소화하고, 찌꺼기로 쏟아 낸 뒤 그 위에 오줌을 퍼붓고 싶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

하지만 그러한 악의를 노골적으로 쏟아 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도 했고.

그러한 분노보다 더욱 큰 감정이 솟아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려움.

공포.

상대의 검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건 절대 안 돼!’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광대를 광대답게 하는 가장 큰 욕구였고, 본능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망칠 수는 없다. 균열 공간은 인간계처럼 넓지도 않고, 대악마인 자신조차 마음껏 쏘다니기 힘든 위험천만한 곳이다.

보금자리를 벗어나 힘이 약해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결착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률을 높일 것인가?

자신의 전력을 높이는 쪽?

반대로 상대의 전력을 깎는 쪽?

당연한 말이지만, 광대는 후자를 선택했다.

태생이 그랬다. 남을 속이고, 기만하고, 농락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그가 상대를 관찰했다.

분석했다. 검을 피하고, 오러를 받아 내고, 때로는 사납고 지독한 반격을 쏟아 내면서도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노골적인 정신 공격은 통하지 않아.’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검술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녀석은 정신력도 대단했다.

광대의 저주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찾아내고, 극대화하여 내부에서 흔드는 방식이다. 저렇듯 방어가 단단하면 애초에 파고들 수조차 없었다.

허나, 그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외부에서 흔들면 돼.’

광대가 가면 뒤로 미소 지었다.

그렇다. 뚫리지 않는 문을 힘들게 두드려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상대가 밖으로 나오게 하면 그만이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못 견디게 만들면 그만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후우우웅-!

“허어, 이 브랫 로이드 님의 공격을 이렇게까지 피해 내다니. 악마만 아니라면 칭찬해 줬을 터.”

“…….”

“물론, 칭찬이 없어도 이미 만족했겠지. 이토록 아름답고 귀족적인 검술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닥쳐. 닥쳐닥쳐닥쳐닥쳐제발좀!”

……하는 말만 보면 어딘가 맛이 간 듯한 느낌도 있지만, 어찌 됐건 저 인간은 대단하다.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지 않을 만큼. 어떻게든 제 발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고 싶을 만큼.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

그렇기에 조급해선 안 된다.

광대가 속으로 중얼거렸고, 천천히 태도를 바꾸었다.

조금 더 수동적으로.

조금 더 방어적으로.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눈치 빠른 녀석은 낌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5분의 시간이 지나고.

처음으로 입질이 왔다.

“…….”

알기 쉬운 반응은 아니었다.

공격과 공격의 사이, 곧바로 이어져야 마땅할 흐름의 중간에 있었던 약간의 망설임, 약간의 멈춤.

어쩌면 그저 호흡을 골랐을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광대는 확신했다. 상대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에 기뻐하진 않았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아주 조금 더 알기 쉽도록 공격을 늦추고 방어에 치중했을 뿐이다.

“…….”

또다시 5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양상은 치열했다. 인간은 공격하고, 악마는 방어한다. 물론 일방적이지만은 않다.

가끔은 브랫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반격이 광대로부터 터져 나오고, 그것이 사고의 흐름을 방해했다. 응당 떠올려야 할 문제를 흐리게 했다.

허나 닿을 수 있었다.

허나 깨달을 수 있었다.

광대가 방어적으로 변한 이유.

유리할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

아주 약간의 위험조차 감당할 생각이 없는, 겉으로는 치열하나 실상은 지루한 전투 양상에 충분히 만족했던 이유.

“……누군가 오고 있나?”

“어엉? 다른 쪽에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봐?”

광대가 불친절하게 대꾸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의도는 전해졌다. 아니, 애초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이 그 증거였다.

음습한 비웃음과 조롱, 그보다 더욱 추악한 부정적인 감정이 꽉 쥔 주먹에서 모래가 흐르듯 새어 나왔다.

마치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지만 더는 숨길 수 없는, 힘겹게 감춰 왔던 악의가 뒤늦게 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아. 나쁘지 않아!’

광대가 히죽 웃었다.

그는 외부의 상황 따위 알지 못했다. 그럴 정신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상대가 만만하지 않았을뿐더러, 남아있는 약간의 여력도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온전히 쏟았으니까.

일부러 전투를 질질 끌었다.

마치 이 국면이 유지되기만 해도 좋다는 듯이. 상황이 그렇다는 듯이. 그것이 녀석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기 동료가 힘든 상황이라면?

힘든 상황임을 넘어서, 이미 안 좋은 쪽으로 결착이 났다면?

전우를 쓰러뜨린 악마들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면?

물론 이것만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였다면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시기적절하게 흘러나온 악의 유효했다. 적어도 광대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내가 연출한 상황은 거짓일지언정…….’

너를 향한 악한 저주의 감정만큼은 진실이니까. 그것을 느낀 이상, 너의 착각은 진실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광대가 다시금 수세를 취했다.

그리고 흐름이 바뀌었다.

콰아앙-!

폭발하듯 강렬한 도약, 섬전처럼 날아드는 공격!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무시무시한 기세가 다가옴에 따라 광대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마침내 녀석의 평정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녀석의 감정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짜임새 있던 녀석의 검술에 빈틈을 만들 것이니, 자신은 이로 생긴 빈틈을 잘 노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분명 그럴 터였다.

그런데…….

“……!”

생각하고 조금 달랐다.

동요는 충분했다.

빈틈도 확실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허술한 점만 해도 네 곳이 넘어갔다.

전부 이전까지는 없던 약점들이다. 개중 어디를 찌르고 들어가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이 미친 녀석이!’

목숨을 내준다.

그 대신 상대의 목숨도 취한다.

자신의 가슴에 박힐 칼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적의 목에 박아 넣을 일격에만 또렷이 집중한다.

광기.

집착.

분노.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브랫 로이드를 보며, 광대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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