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56화 (356/388)

◈ 115. 널 위해 준비했어 (2)

“으음, 잘 잤다.”

루루의 깜짝 등장이 있고 얼마 후.

언제나처럼 3시간을 자고 깨어난 브랫 로이드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요술 세계의 주민은 꼭 잠을 잘 필요가 없다. 현실의 상식과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도, 과거의 인물을 불러올 수 있는 것도 전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잠을 자는 이유는, 그것이 수련에 더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수면은 중요하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만약 브랫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루, 열흘,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자는 것은 물론이고, 밥 먹는 시간마저 아껴 가며 미친 듯이 검만 휘둘렀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에게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보장되었고, 그런 장기간의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휴식이 필수였다.

적어도 브랫은 그렇게 생각했고, 휴식의 개념에는 식도락과 취미 활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루루가 준 선물은 꽤 괜찮았지.’

간단한 세면을 마친 그가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정말로 그랬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마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분신’의 합류는 수련 효율을 극도로 높여 주었다.

단순히 검술 파트너가 생긴 정도가 아니었다. 휴식에서도 분신은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혼자서는 즐기기 힘든 체스를 함께할 수 있다거나, 식사 도중 미식에 관한 토론이 가능해졌다거나.

“왔나?”

“그래. 기다렸나 본데?”

“이 정도로 좋은 술을 혼자 마시고 있는 건 실례니까.”

“세 종류의 캐스크로 숙성한 위스키라…… 확실히, 먼저 마셨으면 조금 화났겠어.”

술친구로서도 이만한 녀석이 없었다.

그렇게 브랫 로이드는, 또 브랫 로이드의 분신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화의 주제는 대중없었다. 처음에는 역사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미술로, 음악으로, 나중에는 정치와 경제로까지 넘어갔다.

둘은 술잔을 나누듯 주거니 받거니 하며 생각을 나눴다.

그 과정이 정말로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누군가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와의 시간을 두렵고 혐오스럽다 느끼겠지만, 적어도 브랫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쉽군.’

마지막 잔을 마신 브랫 로이드가, 자신과 똑 닮은 분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적잖이 아쉽다고 말이다.

하루 전, 그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엑스퍼트에서 마스터에 오를 때 느꼈던 찬란한 무언가는 아니었지만, 여태껏 찾아왔던 수많은 깨달음보다는 확연히 우위에 있는 깨달음이었다.

어제의 자신 따위는 순식간에 몰아세울 수 있을 정도로.

그 말은, 자기와 비슷한 실력을 보유한 ‘분신’ 역시 더는 적수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브랫, 네게도 퀘스트를 줄게. 너와 동등한 실력의, 동등한 조건의, 동등한 재능의 존재인 분신을 꺾는 거야.’

‘분신을 꺾으라고?’

‘그래. 퀘스트를 달성하면, 네가 믿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보상이 있을 거야.’

따악!

루루와의 대화를 떠올린 브랫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요술의 힘이 발휘되어 체내의 술기운이 사라졌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만전의 컨디션이 된 그가 분신을 쳐다봤고, 시선을 교환한 둘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연무장의 중앙에 선 둘이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우우웅, 서로를 향해 돋아난 오러가 분위기를 흉험하게 만들었다.

‘망설이지 말자.’

브랫이 마음을 다졌다.

마치 오랜 친구인 듯 편안했고, 즐거웠다. 허나 그것이 자신의 검을 무디게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더욱 소중한, 지켜야 할 존재들이 있었다.

우우우웅-!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의지에 반응한 브랫의 오러가, 감각이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푸른 눈동자 역시 또렷이 빛났다.

자신감과 별개로 상대의 수많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총기를 더했다.

“…….”

그랬기에 늦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분신 역시, 어제와 뭔가 달라진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콰아앙-!

폭발적인 속도.

지면에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로 강렬한 돌격이었으나, 브랫이 집중한 건 다른 부분이었다.

긴장으로 가속된 사고가, 어젯밤에 찾아온 깨달음이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볼 수 없을 단서를 명료하게 잡아 냈다.

오러 소드(Aura Sword).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밀도 높게 압축된 상대의 푸른 빛줄기!

검을 뻗지 못했다.

몸을 빼지도 못했다.

이윽고, 분신의 검이 본신의 머리통을 통렬하게 찌르고 지나갔다.

퍼어어억!

마치 잘 익은 수박이 깨져나가는 듯 충격적인 광경!

브랫 로이드의 파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힘을 잃고 스러졌고, 이내 물안개가 되어 허공에 녹아들었다.

그렇다.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요술보다도 더 요술 같은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분신이 몸을 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모습의 브랫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기운을 압축시켰군.”

“맞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한계까지 압축된 기운을, 타격 순간에 분출시켰어.”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이 있지만, 대충 그렇다.”

“언제부터 가능했지?”

“어제부터. 그러는 너는 언제부터 가능했지?”

“이거 말인가?”

분신의 질문을 받은 브랫이 기운을 운용했다. 그리고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자신과 흡사한 인형(人形)이 자리에 남아 분신을 노려봤다.

외관은 어설픈 점이 많았으나, 기운만으로 보면 본체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 그거.”

“나도 어제 성공했다.”

“어이가 없군. 그 정도로 정교한 기예를, 그렇게 신속하게…….”

“……어이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정말로 그렇다는 듯, 브랫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오러 소드의 밀도를 높이는 것까지야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다.

마스터 이상의 경지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이 이미 시도했던 점이고, 자신 역시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보다 놀라운 건, 분신이 거기에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갔다는 점이다.

‘마치 강력한 수압으로 바위를 뚫어 내는 듯한 느낌이었지.’

개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이를 실전에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브랫은 분신에게 존경심이 들었고, 이를 솔직하게 표현했다.

“분신, 너는 멋진 녀석이다.”

“본신, 너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실례가 안 된다면, 오러 운용에 관해 물어봐도 될까?”

“당연히 되지. 나는 네게 있어 목표이기도 하지만, 조력자이기도 하니까.”

“좋아. 나도 내 깨달음을 알려 주지. 그 뒤에 다시 해보자고.”

마주 고개를 끄덕인 둘은 이내 자리에 앉아 열띤 교류를 이어 갔고, 서로에 대한 칭찬과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

99.9% 흡사한 존재인 둘이 어찌하여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했는가, 이에 대한 의문은 품지 않았다.

같은 성격과 같은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흡사한 환경에 놓여 있다 해도 완벽하게 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약간의 차이가 큰 분기점으로 작용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브랫 로이드를 착각에 빠뜨렸다.

자신과 분신이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라는 착각.

자신이 언제고 분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착각.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착각.

노력한다면.

지금까지 해 왔듯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건, 2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허억, 허억…….”

“훅, 후욱…….”

‘또…….’

또, 또 비등하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비겨 왔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정말이지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이야말로 큰 깨달음을 얻어 확실히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오산이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깨달음 때와 마찬가지로, 분신 역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딱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나 이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교착 상태가 영원히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피어난 순간, 브랫은 이번 퀘스트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뛰어넘는 일이었고, 자신을 옭아매는 한계를 부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비로소 알아챘고.

그렇기에 좌절했다. 또 슬퍼했다.

그 정도가 되어야만 했다. 광대와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이른의 곁에, 친구들의 곁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말이야.’

“잔인하군.”

브랫 로이드가 중얼거렸고, 분신이 이를 들었다. 그리고 이해했다.

허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것이 더욱 잔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한잔할까?”

“…….”

힐끗 상대를 쳐다본 브랫이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분신이 얌전히 그를 따랐다. 휴게실로 향한 둘은 한참이나 적막 속에 술을 마셨다.

‘이겨 내야 한다.’

취기가 올라오는 와중에도 그는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한계까지 쥐어짜진 노력에, 최선에 무엇을 더해야 자신을 초월할 수 있을까.

쉬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브랫 로이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 * *

“……잠들었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주디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신기한 일이었다. 잠도, 휴식도 필요 없는 요술 세계이건만, 가끔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 꿈에 빠질 때가 있었다.

꿈인 걸 어떻게 아느냐고?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눈앞에 어둠도, 악마도 없었다.

암흑도시 고다라의 피비린내에서 벗어난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이럴 시간 없어.’

잠도.

휴식도.

잠깐의 여유도. 자신에겐 사치였다. 태울 수 있는 건 모조리 태워야 했다.

가진 모든 것을 태워서 키워 낸 불꽃조차 적에게 닿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고, 그 정도로 나약한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라도, 복수는 해야만 했다.

상념을 마친 주디스가 적검으로 자신의 살갗을 베어 내, 꿈에서 깨어나려 했다.

“…….”

허나 그러지 못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맑은 공기와 뻥 뚫린 시야, 그 사이로 내려오는 따사로운 햇살이 피폐했던 그녀의 정신을 정화했다.

그에 따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잊고 있던 풍경이 떠올랐다.

“…….”

주디스는 여전히 조용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몸 일부가 된 것 같은 적검을 꽉 움켜쥔 채 앞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지평선을 향해. 그 중간에 걸쳐 있는 나무집을 향해.

“뭐야, 어딜 갔다 오는 거야?”

거기에.

스승이 있었다.

아니, 가족이 있었다.

더는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더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 번만 더 봤으면, 그러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존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이름을,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쿤.”

주디스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