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52화 (352/388)

◈ 114. 하늘검 (1)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존재라고 한들 본인만큼 가까울 수는 없다.

자기 생각과 감정, 고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고, 루루가 4인방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은 걸까?

아니었다.

아이른과 일리아, 주디스와 브랫의 수련을 유심히 지켜보던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역시, 이제는 개입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허나 본인의 고민과 생각으로 침잠해 들어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외부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곱 살짜리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사소한 부분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루루가 보기에는 넷 중 둘, 아니 셋이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여력은…… 충분하네.’

다행인 건, 미리 이럴 경우를 상정해서 힘을 아껴 놨다는 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키릴 파레이라를 비롯한 4인방의 혈육들.

게오르그 포이베, 아냐 마르타, 쿠바르와 랜스 페터슨을 비롯한 이들의 강렬한 바람, 염원, 소망.

그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전해 주었다.

루루가 할 일은, 그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가공하는 것.

그리고…… 맡기는 것.

“그래, 고생했네.”

“충분히 노력했어.”

“이젠 우리들에게 맡겨도 좋아.”

“공간을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 써도 된다고.”

“응, 응.”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새로이 등장한 네 명을 바라봤다.

든든했다. 이들이라면 자신의 소중한 친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보다 건강하고 밝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누구부터 찾아갈까?”

“분열해서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

“싫어! 이번에는 분신 말고 직접 움직이고 싶은걸. 으음…….”

루루가 눈을 크게 뜨고 4인방의 수련 공간을 들여다봤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굳건히 나아가는 이가 보였고.

불길에 휩싸인 광전사가 보였다.

반대로 깊고도 묵직한 물에 깔린 누군가도 있었으며,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아무래도 저쪽이 가장 급한 것 같군.”

“흘흘, 동의하네.”

“……응, 그런 것 같네.”

고양이 요술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요술봉을 휘둘렀다.

얍! 하는 소리와 함께 지이잉 하고 열리는 포탈.

그 안으로 들어가는 셋을 지켜보던 둘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바보 녀석, 빨리 보고 싶은걸.”

* * *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화기(火氣)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물(水)이다. 육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열기를 식히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분노와 초조함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관조하고 다스리다 보면,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솟아올랐던 불길도 기세를 죽이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물이 불을 건강한 방식으로 제압했을 때의 이야기다.

촤악

촤아악

아이른 파레이라가 물을 뿌렸다.

뿌리고, 뿌리고, 계속해서 뿌렸다. 끊임없이 피어나는 불꽃을 완전히 다스리기 위해, 모조리 없애기 위해 쉬지 않고 물의 기운에 집중했다.

일리아 린제이가 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해.’

그녀는 오행신공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불과 물, 적어도 한 가지 기운만큼은 굉장한 강점이 있었던 주디스와 브랫과는 달리 한 가지 기운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의 아이른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일리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연인을 불렀다.

“아이른.”

“…….”

“아이른.”

“…….”

전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처음과 확연히 달랐다. 불길은 예전보다 수그러들었지만, 그것을 끄기 위한 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심상 세계의 주민이 된 일리아와 아이른은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대화가 차단된 것이 언제인지 잘 기억도 안 났다.

“아이른…….”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일리아는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면 안 됐다. 그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듯, 자신 역시 어떻게든 아이른을 일깨워야 했다.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야 했다.

“후우.”

그녀가 심호흡했다. 들어오는 것은 공기가 아닌 물이었지만, 그것이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이른이 없으면, 자신도 없다.

고개를 끄덕인 일리아가 또다시 연인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안녕?”

“…….”

“루루!”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루루를 본 일리아가 반가운 목소리를 냈고, 아이른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요술의 힘 덕분일까?

물이 가득 들어찬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루루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물론 일리아의 음성은 여전히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많이 힘들구나.”

“…….”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이그넷을 만나고, 이안을 만나고, 광대를 만나고…….”

“……그때와는 달라.”

“아니야. 나는 같다고 생각해.”

“루루? 루루?”

루루와 아이른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일리아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아이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자신의 목소리 역시 외부로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루루가 중간에서 말을 전해 준다면 문제 될 것 하나 없었지만, 이 검은 고양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음의 불을 다스리기 위해 물을 끼얹는 것은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문제가 생기지.”

“과거의 아이른은 이그넷으로 인해 생긴 과한 경쟁심과 조급함, 초조함을 다스리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검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이 집착으로 이어졌어. 매몰로 이어졌고…….”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이 깊은, 무겁게 고인 감정에 짓눌려 버렸지.”

“그때의 아이른과 지금의 아이른이, 정말로 다르다고 생각해?”

“…….”

루루의 말을 들은 아이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지금의 자신은 끊임없이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열을 식히려 노력했고, 이를 위해 고다라까지의 여정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눈높이까지 차오른,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높아진 물웅덩이.

먹먹하기 그지없는 후회와 슬픔의 감정에 깊이 침잠한 자신을 깨달은 순간, 아이른은 자신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흘려보내야 하네.”

“응. 흘려보내야 돼.”

“어떻게 하지?”

“방법이 있어.”

즈으으응……

루루가 요술봉을 휘둘렀고, 예전에 봤던 황금의 문과 비슷한 포탈이 생겨났다.

설명을 원하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른에게, 검은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른은 지금부터 포탈에 들어가, 퀘스트(Quest) 하나를 해결해야 해.”

“퀘스트?”

“응. 영지를 침략하는 못된 악마로부터 모두를 지켜 내는 일이야.”

“…….”

아이른이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젊은 영웅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소년의 돈주머니를 빼앗고 희희낙락했던 사내들, 그리고 그들의 뒷돈을 받고 움직였던 경비대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지금의 그는,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아이른을 위한 조력자도, 포탈 안에 있어.”

“…….”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래, 들어갈게.”

아이른이 힘겨운 미소로 대답했다.

전과 같이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루루에게까지 그러한 시선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영지를 지켜라. 악마를 베어라.’

퀘스트의 내용을 기억한 아이른이 마지막으로 일리아 린제이 쪽을 쳐다봤다.

다녀올게.

여전히 소리가 없는, 입모양만 움직이는 인사를 남긴 채 금발의 영웅이 모습을 감추고.

스르르르……

포탈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은발의 검사가, 다소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루루!”

“응, 일리아.”

“왜 그랬어?”

“왜 그랬냐니.”

“어째서 내 말을 전부 무시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이른을 따로…… 후우. 아니, 그만하자.”

일리아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 이미 벌어진 일을 따지고 들 필요 없었다. 쓸데없는 심력 낭비였다.

다시금 루루를 향해 시선을 던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아이른 곁으로 보내 줘.”

“…….”

“아이른은 내가 필요해. 아이른이 날 도와줬듯, 나도 아이른을 도와줄 거야.”

“……아이른을 도와줄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

“일리아.”

처음으로 듣는 루루의 착 가라앉은 음성에 일리아가 하던 말을 멈췄다.

목소리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한 고양이의 눈빛.

이에 흠칫한 그녀가 뒤늦게 입을 열려는데, 한 박자 빠르게 루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리아. 아이른을 위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루루가 보기엔 일리아 역시 도움이 필요한 상태야.”

“뭐라고?”

“말 그대로야. 아이른만큼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

“…….”

“일리아가 더 강해지도록 도와줄 조력자를 모셔 왔으니까 말이야.”

“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

갑자기 들려오는 늙수그레한 목소리.

깜짝 놀란 일리아가 재빨리 신형을 돌렸고, 그 찰나의 순간에 주변 환경이 완전히 변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넓고도 메마른 대지와.

그조차 온전히 품을 정도로 높디높은 푸른 하늘.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배경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 노인이 있었다.

‘누구지?’

일리아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지는데, 하늘 위에서 루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일리아를 도와줄 분이셔.”

“……날 도와준다고?”

“응. 엄청 대단한 분이야! 아 참, 아직 말 안 한 게 있구나. 일리아한테도 퀘스트를 하나 줄게. 저분께 물어보면 알려 줄 거야.”

“잠깐…….”

“그럼 이만! 조금 바빠서!”

뾰로롱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루는 모습을 감췄다.

일리아는 허탈한 표정으로, 속상한 눈빛으로 고양이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은 단순히 아이른의 말 상대만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연인의 마음속에 번진 불길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검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단순히 열심히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처음 요술 공간에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서 몇 배는 강해졌다.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품은 채, 노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은발의 검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파아아앙-!

“흠.”

강렬한 기파.

일리아 린제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거대한 구체, 그리고 그 안에 들어찬 매서운 바람을 느낀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꽤 놀랐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동시에 여전히 자신을 아래로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일리아가 상대에게 검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검을 뽑으시죠.”

“…….”

“날 도울 만큼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증명해 보세…….”

파아아아앙-!

“……!”

날 선 목소리가 채 끝맺어지기 전에, 노인의 몸에서도 거센 기파가 터져 나왔다.

일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상대의 기운이 무척이나 강렬했고.

상대의 검에 맺힌 오러도 무척이나 예리했다.

허나 그것보다도 더 그녀를 놀라게 만든 것은, 노인이 뿜어내는 기세가 자신의 것과 몹시 흡사하다는 부분이었다.

“흘흘흘…… 겨루기 전에, 통성명이라도 할까?”

“…….”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말 꺼낸 쪽이 먼저 하시죠.”

“흠, 그렇군. 그게 예의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가 표정을 굳혔다.

알 것 같았다. 주변을 거세게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눈빛이, 은빛 머릿결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추측을 사실로 만들었다.

“디온 린제이다.”

“…….”

“이 조상도 몰라보는 못난 녀석아.”

예상이 적중했다.

꽈악, 검을 쥔 일리아 린제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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