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50화 (350/388)

◈ 113. 4인의 선택 (1)

“여기는…….”

요술 공간을 확인한 일리아 린제이가 중얼거렸다.

평범한 집. 약간 낡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내부가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식탁과 침대 등 필수적인 가구들만 휑뎅그렁하니 놓여 있는 집 안은 아무리 봐도 수련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흠.”

“…….”

브랫 로이드도, 주디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구체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있을 거라더니,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는 달랐다.

여전히 굳어 있는 표정, 허나 눈에서는 그리움의 감정이 묻어난다.

그런 그를 보며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예전에 말했던…… 5년 동안 수련했던 곳이구나.”

“……응. 꿈속에 항상 등장하는 장소도 여기고.”

아이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나타났다.

주디스가 살짝 놀랐고, 브랫은 술이 없다는 것에 아쉬워하다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를 바라보던 아이른이 몇 번 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옷차림이 바뀌었다. 체력 단련용 복장에서 잠옷으로, 또다시 처음의 것으로. 나머지 셋이 이를 신기한 듯이 바라봤다.

확실히 요술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물론…….’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더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래야만 해.’

브랫, 일리아, 주디스가 차례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음식이 나오는 것도, 손짓 한 번에 옷차림이 바뀌는 것도 놀랍긴 했으나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강해지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 주디스의 경우는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

주디스의 물음에,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아이른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고 집의 바깥으로 나갔다. 셋이 자연스레 그의 뒤를 따랐다.

푸르른 하늘.

낡은 담장.

넓긴 하지만, 별달리 특별할 게 없는 마당.

전반적으로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모습에 주디스가 인상을 찌푸리는데, 뾰로롱 소리와 함께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뾰로롱

“대륙에서 최고로 귀여운 요술사, 루루 등장!”

“어?”

“루루?”

“여긴 어떻게?”

일리아, 주디스, 브랫이 또다시 놀란 목소리를 냈다가, 동시에 아이른 쪽을 바라봤다.

설명을 바라는 눈빛이었는데, 그 역시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허나 예전의 경험에 비추어 추측할 수는 있었다.

“진짜 루루가 아닐 거야.”

“응?”

“예전에도 그랬었어. 나의 수련을 돕기 위해 너희들이 요술 공간에 나타나긴 했지만, 그게 진짜 너희들인 건 아니었지. 아마 루루도 그럴 거야.”

“맞아! 나는 너희들이 멋지고 힘센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나타났어!”

앞발을 허리춤에 얹은 채 한껏 가슴을 부풀리는 루루는 몹시 귀여웠다.

허나 아무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이른의 경우는 오히려 더 복잡한 눈으로 검은 고양이를 바라봤다. 그럴 만도 했다.

아이른도 아이른이었지만, 일리아와 주디스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브랫이 나았지만, 그 역시 마냥 평온한 상태는 아니었다.

“쳇,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이에 검은 고양이 요술사가 시무룩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어찌 됐건 루루는 네 명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섰고, 친구들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얍!”

당찬 목소리와 함께, 요술봉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솜씨 좋게 앞발로 잡은 루루가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이이잉 소리와 함께 네 개의 포탈이 열렸다.

푸른색, 붉은색, 은색, 황금색으로 빛나는 직사각형의 문이었다.

“……각자 머리색에 맞게 들어가면 되는 거야?”

“응! 그런데, 그냥 들어가면 안 돼!”

일리아가 물었고, 루루가 대답했다.

네 명과 차례대로 눈을 맞춘 고양이가 설명을 이어 갔다.

“이 너머의 공간은 아직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았어.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너희들의 의지가 스며들지 않은 상태라서 그래.”

“모두의 마음에 100퍼센트 드는 수련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겠지.”

“하지만 각자의 바람에 근접한 공간을 만드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평소에 꿈꿔 왔던 수련환경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그려 봐. 그리고 그 이상적인 장소에 발을 들여놓는다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이동하면 돼.”

“물론 급할 건 없어. 찬찬히 생각하면…….”

“정했다.”

“어?”

“정했다고 말했다.”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린 브랫이 푸른색의 문을 노려봤다.

그런 그를 루루가 지그시 응시했다.

흔들리지 않는, 호수 같이 맑고 깊은 눈동자.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본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브랫은 준비가 된 것 같네.”

“그래. 난 준비됐다.”

“좋아. 마음속의 도화지에 상상한 것을 그리면서,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브랫이 원하는 이상적인 수련장이 있을 거야.”

브랫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하늘 위에 떠 있던 문이 발치까지 내려와 그를 반겼다.

슬쩍, 뒤를 돌아본 푸른 머리의 검사가 청검을 멋들어지게 휘두르며 말했다.

“먼저 간다.”

“…….”

“…….”

“…….”

“훨씬 강해져서, 다시 만나자.”

“…….”

“…….”

“…….”

“주디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는 연인한테 한마디라도 해 주면 안될까…….”

“강해져서 와. 내 기대에 못 미치면…….”

“사랑한다고? 그래. 나도 사랑해, 주디스.”

“…….”

“그럼, 간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시원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린 브랫 로이드가 안으로 사라졌다.

바다처럼 그를 삼킨 포탈은 우우우웅 소리와 함께 자취를 감췄고, 이제 남은 것은 셋이었다.

“……나도, 사랑해.”

뒤늦게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모두가 모른척했다. 그렇게 침묵이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도 돼.”

그런 그들을, 루루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 * *

슈우욱-

“헛!”

새로운 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브랫 로이드가 헛바람을 내뱉었다.

나이에 비해 많은 경험을 쌓아 온 그였지만, 몇 걸음 만에 연속해서 풍경이 바뀌는 건 적응하기 힘들었다.

물론 그런 감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눈 앞에 펼쳐진 추억의 장소를 보며, 브랫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네, 진짜 검술관이네!”

알칸트라에 있는 크로노 검술관 본관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예비 수련생이었을 시절, 동기들과 함께 구르고 다투면서 지냈던 장소를 말하는 거였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들을 처음 만난 곳이기 때문일까?

브랫은 예전부터 한 번쯤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비록 동고동락했던 친구들과 함께할 수는 없지만, 추억의 장소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몹시 기분이 좋았다.

‘주디스, 일리아, 아이른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 흔들리고 있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스승을 잃은 주디스.

오빠를 잃은 일리아.

그리고 자신이 쌓아 온 근원적인 부분에 부침이 생긴 아이른과는 다르게, 브랫은 비교적 정신적 충격이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대륙의 미래 때문에 압박감이 적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이뤘던 이곳은 상당한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브랫 로이드가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다.

맞는 말이었다. 이곳이 주는 정서 자체도 좋았지만, 그는 그 이상으로 완벽한 환경을 바랐다.

13살의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육체, 오러, 정신…… 이를 단련하여 또다시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수련 환경이 필요했다.

물론 문제는 없었다.

더 좋은 수련 시설에 대한 고민은, 비단 요술 공간에 진입했을 때가 아니라 용사의 제전이 끝난 직후부터 해 왔었다.

브랫이 가장 먼저 나설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고, 그런 그의 염원에 요술은 100퍼센트 부응하였다.

“음, 좋군.”

경사와 모래 장애물 정도만 있었던 러닝 코스가 비교도 할 수 없이 혹독해졌다.

혹한의 추위부터 살이 익는 듯한 열기까지 기온을 조절할 수 있었으며, 그 밖에도 온갖 조건을 갖다붙일 수 있었다.

“으음! 여기도, 여기도 훌륭하다.”

실내 단련장들 역시 만족스러웠다.

제트 프로스트의 시설과 마찬가지로 중력을 조절할 수 있는 공간.

온갖 신체 부위를 단련할 수 있는, 중량을 무한대로 높일 수 있는 기구로 가득 찬 육체 단련실.

반사신경을 극한으로 갈고 닦을 수 있는, 온갖 각도에서 쏟아지는 투사체에 반응해야 하는 특수 공간.

악마의 온갖 저주로부터 내성을 갖추기 위한 정신 단련실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추가적인 공간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확신도 마음속에 피어났다.

“맞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중요하겠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브랫이 한적한 공터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그러자 고위 귀족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킬 만큼 훌륭한 건물이 솟아났고, 그는 기대감을 품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번에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안락하고 달콤한, 아빌리우스의 고위 사제보다 확실한 회복 마법이 걸려 있는 침대.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온갖 종류의 음악과 명화.

그리고 원할 때마다 자동으로 요깃거리가 생겨나는 요술 식탁.

그 밖에도 이것저것을 둘러본 브랫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몰아치기만 해서는 안 되지. 휴식도 중요한 법이니까.’

물론 이러한 환경은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의지가 부족하고 게으른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고단하고 괴로운 수련실보다는 안락함이 갖춰진 휴게실에서 10년의 세월을 낭비할지도 몰랐다.

허나 브랫 로이드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유혹에 넘어가 나태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것이 무서워 모든 휴식을 배제한 채 효율 나쁘게 움직이는 것도 세련되지 않다.

로이드 가의 장자로서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다.

“내가 누구?”

거베라 왕국의 고위 귀족, 브랫 로이드.

살짝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자문자답한 그가 피식 웃었다. 치명적인 미소였다.

그 상태 그대로 검술관의 구석, 마지막 장소로 나아가는데…….

슈슉

“안녕, 브랫!”

“음?”

갑자기 루루가 나타났다.

“뭐야, 다른 애들 내버려 두고 여기 온 건가?”

“아니! 거기도 내가 있어.”

“그럴 수도 있나?”

“응. 근데 다들 생각을 정하긴 했어. 지금 마지막으로 일리아가 들어가는 중이야.”

“어쨌건,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거군.”

브랫이 대충 납득했다.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는 요술 공간에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역시 브랫, 똑똑해!”

“나야 언제나 그랬지.”

“그리고 재수없어!”

“그건 이견의 여지가 있군.”

“어쨌든, 마지막 장소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려. 그러니까, 그동안 나랑 수다나 떨면서 기다리자.”

“으음,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응, 그건 아니야. 지금 브랫의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어!”

루루의 대답에 브랫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로노 검술관의 마지막 장소, 대련실.

아무리 수련 환경이 좋다고 한들,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성취는 한계가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자신의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될 누군가와 끊임없이 겨룰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위대한 영웅도.

역사가 존재를 지워 버린 끔찍한 살인마도.

자신의 검술을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누구든 좋다.

‘물론 첫 상대가 누구일지는 꽤 궁금하긴 하지만…….’

그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일이고, 지금 당장은 다른 쪽이 더 알고 싶었다.

루루에게 시선을 맞춘 브랫 로이드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다른 셋은 어떤 장소로 갔는지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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