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대륙의 검 (4)
마법사는 귀하다. 뛰어난 마법사는 더욱 귀하다.
물론 그보다도 희귀한 요술사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경지에 오른 마법사의 대부분이 폐쇄적인 룬텔 왕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마법’을 구경하는 것은 요술만큼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착각한다.
마법이란 신비로운 힘이라고. 손에 힘 꽉 주고 세게 휘두르면 되는 검술과는 다르게 몹시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을 벗어난 이능이라고.
그렇지 않다.
평생토록 마법의 세계에 몸담았던 이프레인 슬릭은, 마법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명료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소위 ‘계산이 서는’ 분야인 셈이다.
‘세상에 퍼진 마나를 감지하는 것, 그것을 몸속의 코어(Core)로 모아 원하는 성질로 변환하고,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것, 그리하여 적절한 방식으로 발현하는 것.’
그 모든 과정에 적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연산이 필요하다. 오류 없는 술식(術式)이 필요하고, 치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마도구와 마법진 따위의 도움을 받는 건 오랜 세월 동안 검증이 끝난 연산식을 대체하는 것으로, 문외한이 보기엔 기이할지도 모르나 마법사의 관점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하다.
마치 수학 문제를 풀이할 때 이미 증명이 끝난 ‘공식’을 대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꿀꺽, 이프레인 슬릭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늘에 떠 있는 지아 룬텔의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사용했을 술식과 그것을 보조하는 다양한 조건들 역시 들어왔다.
원래도 천재였던 그는 어둠을 받아들여 또다시 한계를 깼고, 왕의 몸에 둘러싸인 뇌전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품고 있는지를 추측했다.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계산하여 예측하는’ 것은 가능했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죽어라. 흑마법사.”
주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문장.
그것이 마지막으로 얹어지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술식을 초월한 능력.
이해를 넘어선 마나.
상식을 부수고 역사를 파괴하는, 지금까지 자신이 익히고 다뤄 왔던 마법의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듯한 힘의 증폭!
‘요술? 아니야. 마법? 그것도 아니야.’
‘아닌가? 둘 다인가? 그런 것이 가능한가?’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럴 수도 있어.’
‘고대의 물건, 고대의 문자.’
‘술식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찰나 만에 도달하게끔 하는, 계산과 이해의 영역을 초월한 직관!’
‘언령(言霊)! 아니…….’
“용(龍)의, 언…….”
────────!
이프레인 슬릭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도망갈 수 없었다.
저항할 수도 없었다.
어둠을 가로지르고 떨어진 벼락이 흑마법사의 정수리를 때렸고, 증발시켰다. 몸뚱이와 어둠의 기운이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다는 듯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
“…….”
“…….”
움직이지 못했다.
열세인 와중에도 거칠게 마스터들을 압박하던 고위 악마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지하로 잠적할 준비를 하던 놈들도, 겁도 없이 홀로 동떨어진 마법사를 향해 마기를 집중하던 녀석들도. 하나같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정적.
침묵.
그것을 뚫고, 지아 룬텔의 목소리가 재차 떨어져 내렸다.
“사라져라, 어둠아.”
절대로 깨뜨릴 수 없는 규칙인 양, 냉정하게 선언한 그녀가 위에서 아래로 손을 내렸다.
그러자 직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뇌전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며 대지 벽의 내부를 지져 버렸다.
꽈광!
꽈과광!
콰과과과과과과광────!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제아무리 강력하고 끔찍한 어둠이라 한들, 지금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막는 것도, 회피하는 것도 불가능한 푸른 뇌전이 차례차례 악마들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저주받은 몸뚱이도.
그 안에 품고 있던 추잡한 악의도.
죽음 후에 또다시 나타나야 마땅할 저주받은 사후 의지조차 예외가 없었다.
그 무지막지한 광경에 아빌리우스의 최고위 사제, 애쉬린 고데베르타가 중얼거렸다.
“정화 의식조차 필요 없겠군.”
“정말로 그렇습니다…….”
같은 최고위 사제인 다린 홀튼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마법의 문외한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직자의 관점에서도 그러했다.
지금 지아 룬텔이 보인 것은 괴물을 때려잡는 강력한 힘 따위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그 증거로, 뇌전은 악마만을 멸하고 있지 않았다. 어둠에 물든 공간 자체를 정화하고, 씻어 내고 있었다.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를 통째로 마계로 돌려보내겠다는 듯, 신비로운 마법은 고다라 빈민가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청소 작업을 이어 갔다.
“…….”
“…….”
“…….”
더는 누구도 검을 들지 않았다.
마법사도, 정령사도, 사제도. 뒤늦게 전장에 합류했던 요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는 룬텔의 왕을 바라봤다.
설명을 바라는 듯한 눈빛.
하지만 지아 룬텔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녀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저, 이프레인 슬릭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다.
마법사의 긍지를 저버리고 어둠의 힘을 빌린 마인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 내고 싶었을 뿐이다.
헌데 그러한 의지가 정교하게 짜인 마법 술식에 끼얹어졌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실수였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은 통제할 수 없으며, 통제할 수 없는 힘은 그 결과가 좋든 아니든 실패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지.’
오히려 반대였다. 이프레인 슬릭을 향한 살의를 확장하여, 어둠을 향한 멸(滅)의 의지를 담았다.
그 과정에 어떠한 계산이 필요한지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뱉어 냈다.
말로서 수백 수천 가지 단계를 초월하고 해답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주문을 초월한 무언가였다.
……만나야 할 존재가 떠올랐다.
아빌리우스의 수도에서 발견한 고대 문자,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가능성.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은 고양이를 만나야만 했다. 만나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어야만 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룬텔의 왕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이라도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금발의 청년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그야말로 루루에게 닿을 유일한 열쇠였다.
“……어디 있지?”
“무엇을 말씀하시는…….”
“아이른 파레이라.”
“아!”
“음.”
“그러고 보니…….”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들 역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허나 없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리아 린제이를 비롯한 몇몇의 안색이 흙색으로 물들었다.
“수색에 나서지.”
퀸시 마이어스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여전히 위험은 존재했다. 광대 악마와 칼 린제이, 그리고 그들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거대한 악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소수로 흩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
여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일리아 린제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악마도.
마인도.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도 모두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아이른.’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한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아이른.”
소리 내어 부르니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빠조차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 * *
포탈에서 나온 대륙의 영웅들이 즐비한 악마들을 상대로 오러와 마나를 쏟아냈을 때, 아이른 파레이라는 격전지에서 벗어나 고다라의 부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요술대검의 신호인지, 자신의 머리를 스치는 감인지, 혹은 그 밖의 무언가가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놓친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영영.
영웅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품고 지친 몸을 움직였고, 웅장한 건물의 앞에 섰다.
고다라 빈민가의 마탑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아주 화려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마주했던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악취가 내부에서 느껴졌다.
“…….”
아이른 파레이라가 걸음을 옮겼다. 내부로 들어갔다.
화려한 조명으로 밝혀진 연회장의 모습이 보였고.
식탁 위의 고급 식기에 얹어진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보였다.
이를 지나치자 조리실이 나왔고, 조리실의 정경도 눈에 들어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대놓고 열려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며, 아이른은 지독한 번뇌에 빠졌다.
‘너는 자신에게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평소와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행동하지 않았다. 조급한 이기심에 의지해 타협했고, 물러섰다.’
마인이 된 이프레인 슬릭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살생을 망설이던 자신은 더는 없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자신 역시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불길에 의지하여, 타오르는 마음으로 광대의 뒤를 쫓는 자신만이 있었다.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왔던 모든 선의를 내동댕이치고, 증오와 분노만을 연료 삼아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연회장의 추악한 요리들을 외면한 것은, 조리실의 끔찍한 풍경에도 멈춰서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랬다. 불길에 몸을 맡긴 덕에 거대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었고, 늦지 않고 여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다.
아직 늦지 않았다.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가던 아이른이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장소.
허나 놓치지 않았다.
저 멀리,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 일렁이는 차원의 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지독하게 증오스러운 존재.
“광대!”
파아아아앗-!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광대 악마를 바라보며, 아이른이 검을 소환했다. 오러를 발현했고, 빛을 뿜어 냈다.
황금색이 아니었다. 적색이었다. 허나 발산하는 기세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강했다. 거대 악마를 쓰러뜨렸을 때보다도 강했다.
잔뜩 지친 가운데, 도대체 어디서 이만한 힘이 또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터엉
강하게 발을 구르고.
후우우웅-!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 균형이 앞으로 쏠렸으나, 괘념치 않았다.
몸이 검에 끌려나갔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동작이라는 뜻이나,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빛이 나아갔다. 악을 향해 나아갔다.
이를 지켜보던 광대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에 잠기려는 영웅의 모습에, 그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크윽……?”
불의의 일격에 당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저 멀리 밀려났다.
그 사이에 차원의 문은 빠르게 좁아졌고, 이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크기까지 축소되었다.
광대가 아니었다.
그 옆에 멍하니 서 있던 마인도 아니었고, 그들보다도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누군가도 아니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그녀는 닫혀 가는 차원의 문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더 강해지고 찾아오도록.”
“…….”
“기다리고 있으마. 아직은 버틸 만하니, 천천히 와도 상관없노라.”
스르르륵……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쟁반 크기에서 사과 정도의 크기로, 이내 바늘구멍 크기로 줄어드는 차원문. 그 사이로 광대 악마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죽었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즉, 이그넷이 자신을 지켜 줬다.
반대로 자신은, 이그넷을 지켜 내지 못했다.
믿음조차 주지 못했다.
“아이른!”
“아이른, 거기 있나? 있군.”
“다친 곳은…… 후,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으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암흑을 찢어발기며 두 개의 빛이 내려왔다. 이안, 그리고 율리우스 휼이었다.
아이른의 표정을 확인한 그들이 말을 아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여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아이른의 입에서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죠?”
“…….”
“…….”
“여기서 훨씬 더, 훨씬 빨리……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안이 침묵했다.
율리우스 휼 역시 말을 못했다. 어린 영웅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무겁고 막막한 분위기를, 감히 환기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강해져야 했다.
태양이 어둠에 물들기 전에.
어떻게든, 지금의 한계를 돌파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