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44화 (344/388)

◈ 111. 대륙의 검 (2)

“하아, 하아, 하아…….”

산악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체고의 악마와 마주한 채, 아이른 파레이라가 숨을 골랐다.

운이 좋았다.

마음과 마음의 대결이었다면.

타락시키는 자와 버티는 자의 대결이었다면, 형편없이 패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신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오행신공(五行神功)의 다섯 가지 기운은커녕, 한 가지 기운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강하게 도드라진 불길이 육신과 마음을 살라 먹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았다.

적어도 지금 싸움에서만큼은, 훌륭했다.

지이이이이잉……!

분노.

적의.

증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탄생한 지금의 오러는, 분명 지금까지 나아갔던 방향과 다르다.

그려 왔던 미래와 전혀 다른 곳을 바라봄으로써 탄생한, 썩 반갑지 않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필요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이 기운이 절실히 필요했다.

타앗-

하늘 높이 도약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검을 휘둘렀다. 악마의 정수리를 베기 위해 황금색이 아닌, 적색의 오러를 내리그었다.

그것은 오행(五行)이 아니었다.

조화롭지도 않았고, 선의와 호의에서 비롯된 기운도 아니었다. 오히려 물의 검을 깨닫기 전, 자신의 못났던 모습보다도 훨씬 형편없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력적이었다.

그렇기에 폭력적이었다.

지금 아이른 파레이라의 일검은, 강함으로만 따지자면 그가 일평생 보여 준 것 중 가장 뛰어났다.

……잠시 후, 빛이 일었다.

───────────!

타닷

“헉, 후웁, 후욱, 커허, 허어, 후으…….”

지면에 착지한 그가 거친 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림 속의 존재인 듯, 꿈쩍도 안 하는 거대한 악마. 녀석의 모습은 여전히 무시무시했다.

마주한 사람의 이지를 상실케 할 정도로 공포스러웠고, 절망스러웠다.

허나 아이른은 물러나지 않았다.

녹초가 된 그 상태 그대로, 끊임없이 상대를 노려봤다. 정확히는 머리 꼭대기의 실금을 주시했다.

종이 한 장 꽂아 넣을 수도 없을 만큼 미미한 균열.

그 사이로 미풍이 스쳐 지나갔다.

기적은 그때 벌어졌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거대 악마로부터, 낯선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적

들려 왔다.

쩌적, 쩌저저적

크게, 더 크게. 계속해서 들려 왔다.

나중에는 천둥이 치는 듯, 세상이 멸망할 듯 소음의 정도가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른은 오러를 사용해 귀를 보호하지 않았다.

그럴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할 수 있었더라도 그러지 않았을 터였다.

죽어라.

쓰러져라.

아이른의 마음속 외침이 의지가 되어 거구를 향해 날아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힘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던 악마의 명치를 두웅, 둔중히 때렸다.

더는 버티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마침내 패배한 어둠이, 쓰러졌다. 반으로 쪼개져서 좌우로 갈라졌다.

재생하지 못했다. 완전히 힘을 잃고 쓰러진 녀석의 사체는, 마치 죽음을 빚어 만든 산맥처럼 드넓게 마탑 주변을 감싸고 돌았다.

그야말로 대륙의 역사를 다시 쓸 만한 활약상!

만약 이곳에 음유시인이나 역사가가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터였다.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뛰어넘었다고. 용사의 제전에서 그가 패배한 이유는 나이 때문이라고. 만약 3개월만 늦게 대회가 열렸더라면, 대회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웃지 못했다.

당초 목적인 이그넷의 행방, 광대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콱!

“허억, 헉, 허억…….”

바닥에 대검을 찔러 넣고, 한쪽 무릎을 기댄다. 한결 낫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가 재차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악이 사라졌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존재였지만, 이겨 냈다. 그렇다면 녀석이 가리고 있던 하늘도, 그로 인한 그림자도 사라져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응당 보여야 할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마탑의 주변에 형성된 암흑 결계는 여전히 거뜬했다.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며 아이른의 귓가에 저주를 읊조렸고, 시야를 희롱했다. 코로는 역겨운 악취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에 쓰러뜨린 녀석보다도 머리 하나씩은 더 커다란, 마치 걸어 다니는 성채와도 같은 악마 둘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들의 발치에도 오십이 넘는 악마가 빙글거리는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녀석들 하나하나가 앞서 상대한 망치 악마, 문어 악마, 땅속 악마에 필적할 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광대의 힘으로도 이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혹시, 이그넷과 대치하던 존재의 힘인가.’

아이른의 마음에 절망이 퍼졌다.

허나 곧바로 떨쳐 냈다. 이럴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도움이 되었다.

자신을 태워서라도 어둠 앞에서 빛을 뿜어 내는 모습.

이를 지켜보던 악마들 사이에서, 짝짝짝 박수와 함께 듣기 싫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와우, 대단해. 정말 대단해. 인정해. 내가 실수 하나 했어. 네 녀석에게 시간 따위를 줘서는 안 됐다는 걸. 오랜만에 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지 뭐야.”

“…….”

“그리고 그거랑 별개로, 엄청나게 강해졌는걸? 용사의 제전 마법 영상을 확인한 와중이라 나름 대비하긴 했는데, 그때의 예상보다도 훨씬 세졌어. 이것 참,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이프레인 슬릭이, 새로운 몸뚱이를 자랑하듯 앞으로 나섰다.

초췌하기 그지없는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한 번은 노려볼 수 있을 법한, 굉장히 가까운 거리.

허나 아이른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나불나불 지껄이는 저 몸뚱이 역시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생각을 읽었는지, 마인이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내가 실수한 건 맞아. 하지만 잊지 않은 것도 있지. 너를 상대로 정면승부를 한다는 건 무리라는 거. 너를 상대로 일대일 승부를 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라는 거. 예상을 초월하는 놈이니,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는 거. 그러니까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거.”

“…….”

“그래서 이렇게 준비했다. 세상에 있는 악마, 전부 모아 봤어. 바로 그대를 위해서. 대륙의 미래를 책임질 영웅 중 하나인, 아이른 파레이라 공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

“오오, 대답할 생각이 없나? 아니면 또다시 기운을 모으고 있나? 그 미친 한 방을 보여 주려고? 여기 모인 녀석들을 깡그리 쓸어버릴 괴력을 선보이려고?”

“그건 불가능하다.”

“맞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야.”

이프레인 슬릭의 말에 두 악마가 반응했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그들은 한쪽은 붉은빛을, 다른 한쪽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적과 청, 어떻게 보면 주디스와 브랫 로이드를 연상케 하는 색이었다.

물론 그들을 입에 담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두 악마가 내뿜는 분위기는 달랐다.

혈액과 장기 더미를 뭉친 듯한 왼쪽의 녀석도, 질병과 독 찌꺼기를 뒤섞은 듯한 오른쪽의 녀석도 하나같이 역겨운 모습에 끔찍한 기운이었다.

마치 세상의 가장 더러운 것을 모아 놓은 듯했다. 마인을 초월한 마인, 이프레인 슬릭의 악의조차 비교가 안 됐다.

단순히 위험하고 사납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도저히 평범한 악마들과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는, 그 이상의 ‘격’을 이룬 듯한 위엄.

그런 그들에게 늙은 마법사가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분들이여. 덕분에 무사히 왕의 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나이다.”

“감사할 것 없다. 마왕의 숙원은 우리의 숙원과 다름없으니.”

“대처가 과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모자란 것보다야 낫지.”

“옳은 말이다.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타락은 인간계를 마계로 바꾸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와 별개로, 어린 영웅의 피와 공포를 맛보는 것 역시 기대되는 일이로구나.”

흐으으읍, 왼쪽의 거체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에 이프레인 슬릭과 함께 새로이 나타난 마인 몇이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자신이라는 존재를 지켜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힘이 약한 세 명이 그대로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아……

메아리가 들렸고, 사라졌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륙의 동쪽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아이른 파레이라는 질끈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내야만 했다.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여 이그넷의 행방을 알아낼 방법을, 무조건 떠올려야 했다.

허나 힘들었다.

여전히 들끓는 분노는 악마들의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는 데는 용이했지만, 이성적인 사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것은 지금 상황에서 쓸데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무 생각 않고 무작정 검을 휘두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숨을 내뱉은 그가 박혀 있던 검을 뽑았다.

강렬한 눈빛.

그보다도 더 강렬한 대검의 기운.

모든 힘을 쏟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타오른다. 그 모습에 몇몇 악마들이 감탄을 토해 냈다. 적이지만 존경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웬만한 이들이라면 마주한 순간 녹아 버릴 정도로 거센 열기였으나,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륙의 가장 어두운 존재들이었다.

400년 전, 1,000년 전의 악마들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은 진짜배기 악마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다라의 악의.

광대의 가면.

마왕, 심마(心魔)의 세례.

이것들로 인해 한층 강해진 마(魔)를 홀로 상대하는 것은, 제아무리 이그넷 크레센시아와 버금가는 대륙의 미래라 할지라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나머지 하나가 마왕의 손에 잡혀 끌려간 시점에서, 희망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허나 포기하지 않았다.

주저앉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을 들고. 오러를 발현하고.

밤하늘에 비하면 촛불과도 같은 미약한 기운을 뿜어 내며, 저항한다. 당당히 악에 맞선다. 그 모습에 악마들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인정한다는 눈빛을 보냈던 이들 역시, 슬슬 짙어지는 지루함을 어쩌지 못했다.

모두가 위를 올려다봤다.

푸르고 붉은 존재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지켜볼 이유가 없다.

합의에 도달한 그들 중 하나가, 거대한 발로 젊은 영웅을 짓밟으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이잉-!

“…….”

“…….”

“…….”

암흑으로 가득 찬 고다라의 허공에,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일렁이는 황금색 물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광경에 모든 악마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안에 누군가가 있다면, 이러한 반응이 부담스러워서라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였다.

허나 괘념치 않았다.

관심을 헤치고 등장한 노기사의 모습은, 신전의 벽에 수백 년간 걸려 있던 명화에서 튀어나온 듯 고풍스럽고도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강인하기 그지없는 안광과 마주한 악마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이름을 읊었다.

“율리우스 휼…….”

율리우스 휼.

대륙 최강국이자 악마의 영원한 맞수인 신성왕국 아빌리우스, 그 정점에 위치한 자.

동시에 대륙 3대 검사에 이름을 올린 존재.

푸른 악마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위잉

위이잉

위이잉-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포탈은 끊임없이 영웅을 내뱉었다. 대륙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인, 이미 완성된 검술과 인격으로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는 자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끊임없이 포탈을 타고 쏟아져 나왔다.

조슈아 린제이를 비롯한 5대 검술가주가 모습을 드러냈고.

검술도시 라티온의 최정예 마스터들이 그 옆에 섰다.

제멋대로라고 손가락질받던 남부의 검사들 역시 지금만큼은 진지했으며, 동부 출신들 역시 얕보이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모든 마법사의 왕인 지아 룬텔과 대전사 카라쿰도, 그들 휘하의 마법사와 정령사, 오크 전사 역시 기세를 뽐냈다.

특히 이프레인 슬릭을 노려보는 룬텔 왕의 눈빛은 시간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위이잉

위잉

그 뒤에도, 인간 전력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장차 대륙을 빛낼 것이 확실한 젊은 세대, 일리아 린제이, 주디스, 브랫 로이드.

용사의 제전에 영감을 받고 한층 더 강해진 제트 프로스트와 여타 소드마스터들.

퀸시 마이어스를 비롯한 성기사단과,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또 다른 전력인 최고위 사제들.

마지막으로.

위이이이이잉-!

스르륵

“…….”

“허허. 우리가 끝이네. 그러니 더는 쫄고 있을 필요 없어.”

대륙 최고의 검술관으로 유명한 크로노의 검사들까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전력을 마주한 악마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여유만만하던 두 거악(巨惡)마저도 난처한 기색을 보일 때.

츠츳

두 명의 검사가 모습을 감췄다가, 하늘에서 나타났다.

정확히는 붉고 푸른 괴물의 눈앞에서 나타났다.

우우우우우웅-!

지이이이이잉-!

이안.

율리우스 휼.

전설 속의 영웅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최강의 검들이, 화려하게 인마대전(人魔大戰)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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