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42화 (342/388)

◈ 110. 악연의 고리 (4)

“시팔.”

“시벌, 왜 갑자기 욕이야? 힘 빠지게.”

같은 밑바닥 인생의 핀잔을 들으며,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었고, 옷에 들러붙은 피비린내가 역겨워서도 아니었다.

고다라의 빈민가에서 이 정도는 일상일 뿐이다. 배를 곯지 않고 오늘 하루를 넘긴 것만 해도 감사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이처럼 긍정적인 그조차도 불쾌한 것이 있었다. 바로 빈민가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이름 모를 부자가 세운, 웬만한 나라의 왕성보다도 화려한 탑.

황금을 무더기로 쏟아부어 만든, 자신 따위는 1만 년을 노동해도 이룩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부!

저것을 올려다볼 때마다 질투와 좌절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병신, 새삼스럽게.”

그의 표정을 본 절름발이가 또다시 핀잔을 주었다. 허나 그런 그조차도 얼굴 가득 드러난 시기와 불쾌감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여기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여기일 이유가 없었다.

건물 내부에 계절 조절이 가능한 마법 정원과 수영장, 그 밖의 온갖 편의 시설을 박아 넣을 정도로 부유한 인물이, 굳이 거지들이 득시글한 더러운 땅에 거처를 마련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일부러야. 저 새끼 일부러라고. 기만하는 거라니까?”

“……말조심해. 그러다가 가드(Guard)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후우.”

절름발이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득 될 것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우울한 얼굴로 마저 땅을 파고, 시체를 묻고, 흙을 덮고.

물론 생각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죽이고 싶다.’

추악한 질투보다도 더욱 강한, 끝을 모를 증오심.

그러한 마음은 사내도 모르는 사이 겉으로 흘러나와 하늘을 향해 뻗었고, 다른 빈민들의 악의와 한데 뒤섞여 탑의 최상층으로 집중되었다.

정확히는 아름다운 유리잔의 내부에 모여들었다.

“괜찮군.”

인간 여성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기댄 존재가 고개를 끄덕인 뒤, 이를 음미했다.

그 여유로운 태도를 지켜보던 악마 하나가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정말로 이 방법이 먹힐 거라 생각하나?”

“……흠.”

악의를 머금은 존재가 악마에게 시선을 보냈다.

눈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갑옷의 안에는 어둠 말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마주한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끔찍한 마기(魔氣)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투구 안을 들여다봤다.

불쾌함을 느낀 악마가 기세를 드러낼 정도로 집요하게.

물론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지는 않았다.

빈민가의 증오를 완전히 목구멍으로 넘긴 마법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꽤 비슷하군.”

“무슨 말이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악마를 아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거든.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노력하고, 이해하려 해도 쫓아갈 수 없는 불가해한 족속들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지.”

“…….”

“근데 자네를 보고 있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어쩌면 160년간의 단절이 만든 환상이었을지도.”

“이놈이…….”

악마의 풀 플레이트가 철그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흘러나오는 기세가 마탑의 최상층을 가득 채웠고, 의자 역할을 하던 인간들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졌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마법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권력에 집착하고, 지위를 탐하고, 누군가를 시기하고 견제하는 악마의 모습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꽤 많이 닮아 있었다.

‘이놈만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인간과 악마는 그리 차이가 없는 존재인 걸까?’

알고 싶었다. 노인이 되었음에도, 마(魔)에 물들었음에도 그의 탐구심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이는 마법사라는 족속의 근본과도 같아 자제하기 어려웠으나, 마왕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행할 것은 아니었다.

웃음기를 거둔 그가 앉아 있는 상태로 말했다.

“자네 말이 맞을 수도 있어. 내가 아는 아이른이라면 꼼짝 못 할 테지만, 잠깐 사이에도 변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나처럼 말이야.”

“그런 무책임한…….”

“무책임한 것은 아니지. 그것에 전부 기댄 게 아니잖아? 가장 가능성이 큰 방법을 택했지만,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게 우리가 여기서 대기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고.”

“…….”

“큭큭…… 멍청한 투구,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분들께서 떠나신 뒤에 덤비도록. 괜한 충돌로 전력 깎아 먹는 짓은 왕도, 광대도 바라지 않을 테니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마법사는 눈을 감았다.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라 털썩, 등까지 대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전보다 거세진 악마 녀석의 기운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수인을 통해 원수의 표정을 살피며, 마인(魔人) 이프레인 슬릭이 엷게 미소 지었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이라는 시간,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이른 파레이라뿐이었다.

그의 고통을 바랐고, 그의 괴로움을 바랐다. 그런 이프레인 슬릭에게 있어서, 개인의 목표와 대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영웅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볼거리였다.

‘지금부터 24시간이나 극상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니!’

노마법사의 표정에 기쁨이 떠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기대감과 흥분이 그의 분신을 우뚝 세웠다. 30년 만에 느끼는 쾌감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스걱-

콰콰콰콰콰쾅!

일검에 고다라의 지배자를 제거하고 지면을 뚫고 올라온 청년.

그의 눈동자에 담긴 진한 불꽃을 느끼며, 이프레인 슬릭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불과 2분밖에 잡아 두지 못했군.”

악마가 조롱을 담아 말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껏해야 인간 출신인 주제에 탑의 최상층에 자리한 것도, 마왕께 직접 명령을 받은 것도, 광대의 총애를 얻은 것도.

물론 위대하신 분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됐지만, 문제없었다.

힘으로 짓누르면 그만이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영웅의 기운을 느끼며, 악마가 묵빛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흐, 흐흐, 흐하하하하하하하하!”

“…….”

“하하, 흐헣, 핳, 하하, 하하하…… 커허, 커헉, 커흫허허…….”

“정신이 나갔나?”

기침을 터뜨릴 정도로 크게 웃는 마인을 보며, 악마가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악마보다 큰 신임을 얻고 있는, 그렇기에 이번 실패에 대해서도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만 하는 반쪽짜리 녀석.

그런 녀석이, 어째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리 유쾌하게 웃고 있단 말인가?

……그 정도가 암흑기사의 한계였다.

인간에 대한 악의는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른 파레이라라는 개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만큼은 이프레인 슬릭이 한 수 위였다.

이것이야말로 심마와 광대가 노마법사를 이번 일에 중용한 이유였다.

‘최선의 결과가 나왔구나!’

끅끅끅, 여전히 상체를 들썩일 정도로 웃으며 마인이 생각했다.

아이른 파레이라를 괴롭히고 싶다.

아이른 파레이라를 절망에 빠뜨리고 싶다.

이를 위한 최선은 무엇인가?

바로 녀석을 지탱해 왔던 뜻을 꺾는 일이다. 그를 이끌어 왔던 신념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기준에서 악마만큼이나 역겨웠을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 놨다는 점만 봐도 그랬다.

세상을 향한 선의.

그 뜻을 꺾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이프레인 슬릭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했다.

신념에 발목이 붙잡혀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모습을 느끼고, 즐기고, 감상하는 선에서 자신의 복수를 행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너는, 너 자신을 빛나게 했던 검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나의 앞에 섰지.”

“…….”

“이것이야말로 왕께서, 광대께서 바라던 광경이다. 영웅의 타락…… 악마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달콤한 것도 없지. 그렇지 않나?”

이프레인 슬릭이 질문을 던졌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의에 민감한 그는, 이미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생각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고 있었다.

신기했다. 천 년 넘게 악을 쫓아다닌 존재라도 저럴 수는 없을 터였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었다.

영웅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보다도 더욱 위대한 성과인, 영웅 그 자체를 타락시키는 것.

명령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이프레인 슬릭이 끊임없이 저주 가득한 악의를 흘려보냈다.

‘죽이려는 사람도, 죽을 사람도 똑같다고 했나?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고다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깊든 얕든 마(魔)에 몸을 담근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손쓸 수 없는 악인일까? 그들 모두가 일말의 기회조차 받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태생부터 악마였던 이들만큼 어두울까?’

‘알고 있다. 넌 알고 있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룬 파레이라에게 살심을 품었던 나에게조차도 기회를 줬던 네놈이니까. 동족을 팔아 상단의 영향력을 키운 하프 엘프 녀석조차 죽이지 않았던, 그야말로 한없이 영웅에 가까웠던 인물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뭐지?’

씨익. 이프레인 슬릭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는 확신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지하실에서 탈출한 것은, 정말로 인질들이 용서받지 못할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 판단은 영웅의 대의에 따른 결정이 절대로 아니었다고.

‘개인의 증오.’

‘개인의 복수심.’

‘너는 자신에게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평소와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행동하지 않았다. 조급한 이기심에 의지해 타협했고, 물러섰다.’

‘네가 지금껏 쌓아 왔던 신념을.’

‘무너뜨렸다.’

큭큭큭큭…….

마인의 웃음소리가 마탑의 최상층에 울려 퍼졌다. 소름 끼치도록 스산한 모습이었다.

반쪽짜리 존재를 고깝게 보던 악마조차 흠칫 몸을 떨 정도로, 지금의 그는 마(魔)에 가까웠다. 악(惡)에 가까웠다.

저주가 이어졌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어둠이 영웅을 괴롭게 만들었다. 좋은 이들의 손을 붙잡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아이른이기에, 더욱 뼈아팠다.

이프레인 슬릭과의 악연이, 대륙 동부를 걸어오며 쌓이고 쌓였던 악의가 고리를 만들었다.

용사의 제전 결승 때 보여 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원을 만들었다.

악마가 이에 집중했다.

마인이 이에 기꺼워했다.

……그래서였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던 나머지, 이프레인 슬릭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했던 사실 하나를 간과했다.

그리고 지금.

서걱

그 방심의 결과가, 소름 끼치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아악

“커…… 허……!”

갑주를 입은 악마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느끼지 못했다. 피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온 반월형의 오러에 그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를 본 이프레인 슬릭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맞다! 저 녀석에게 준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됐는데!’

시간을 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녀석의 검!

이를 뒤늦게 깨달은 그가 전투 자세를 취했고, 악마 역시 마기를 끌어 올려 저항했다. 쪼개진 몸을 합치고 검을 치켜들어 반격의 준비를 갖췄다.

“…….”

코앞이었다.

시야를 가득 뒤덮은 영웅의 그림자를 보며, 암흑의 기사가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날이 아니었다.

검의 넓은 면으로, 마치 둔기를 다루듯 악마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부쉈다. 더는 재생하지 못하도록,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철그럭

파편 몇 조각만이 쓸쓸히 지면을 굴렀다.

꿀꺽, 침을 삼키던 이프레인 슬릭과 아이른 파레이라의 시선이 마주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