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40화 (340/388)

◈ 110. 악연의 고리 (2)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얼핏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배가 된다는 건 선의를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베푼 사람 역시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호의를 전하는 것은, 선의를 건네는 것은 전혀 괴로운 일이 아니다.

여유를 나눈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담은 있을 수 있으나, 그보다 훨씬 큰 기쁨이 샘솟는다.

자신이 건넨 빵 한 조각의 값어치보다, 이를 받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빈민가 아이의 미소가 더욱 값지다.

자신의 검격 한 번으로 인해 길이 뚫리고, 발을 동동 구르던 행인들의 얼굴에 기쁨이 번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번거로움은, 더욱 크게 피어날 선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에도 그래야 했는데.’

아이른 파레이라가 차가운 골목길 바닥에 쓰러진 꼬마를 바라보았다.

죽었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와 들썩이지 않는 흉부가 이를 증명했다. 아이는 죽었다. 자신이 건넨 돈주머니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사정 따위, 이곳에 있는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판대에 널린 생선을 뒤집듯, 무감정한 손길로 아이의 몸을 돌린다. 그리고 돈주머니를 낚아채 안을 확인한다.

“오, 괜찮은데?”

“얼만데? 오…… 오늘 술값은 되겠네.”

“운이 좋네.”

“그러게. 쉽게 벌었어.”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

‘맨날 이랬으면 좋겠다고?’

‘쉽게 벌었다고?’

‘운이, 좋다고?’

사내들의 말을 들은 아이른이 호흡을 멈췄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많지 않은 돈이었다.

아이가 며칠 동안 배를 채우기 충분한 액수였지만.

저들이 말한 것처럼 푸짐한 술상을 차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었지만, 절대로 사람의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는 돈이었다.

아니, 애초에 재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다.

아이른이 그러했고, 아이른의 곁에 있는 친구들이 그러했다. 아이른을 키워 주신 부모님이 그러했고, 아이른을 가르친 스승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찌하여 저리 쉽게 아이의 목숨을 거둬 갈 수 있단 말인가.

사정이 어려워서?

남의 것을 뺏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의 시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아이른은 끊임없이 저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갔다.

“어이, 잭. 확실히 네 말이 맞아.”

“뭐가? 술값은 되겠다고?”

“아니 병신아, 운 좋다고 했잖아. 확실히 오늘은 재수가 괜찮은 날이다.”

뺨에 긴 흉터가 있는 남자가 앞을 바라보며 말했고, 잭이라는 이를 비롯한 나머지 장한들 역시 킬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흉터 사내의 말이 맞았다.

안 그래도 뒤쫓으려고 했던 사냥감이, 제 발로 자기들을 찾아왔다.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없는 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들은 이런 타입을 무척 좋아했다.

“어이, 형씨. 어이, 어이!”

로브를 푹 뒤집어쓴 청년을 부르며, 잭이 다가갔다.

사냥감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비릿한 기대감을 품으며, 그가 검지를 펼쳐 샌님의 가슴팍을 꾸욱 눌렀다.

비록 손가락 하나일지언정, 체격 좋은 그의 힘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헌데, 상황이 생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억눌린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고.

겁에 질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미동도 없이.

마치 바위와 같은 묵직함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뭔가…….

“야. 뭐 하냐?”

“……어?”

“아니, 무슨 마누라 더듬는 것도 아니고 뭐 하고 있냐고.”

“놔둬, 저 새끼 변태라서 저런 거 즐길 수도 있어.”

“아오 시발, 지랄하지 말고 그냥…… 아니다, 비켜.”

“어, 어?”

“아, 비키라고!”

뒤에서 지켜보던 흉터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와 잭을 밀쳤다. 그리고 훨씬 더 사나운 표정으로 청년의 앞에 섰다.

원래는 그 역시 천천히 즐기면서, 겁도 주면서 일을 벌이는 쪽을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급했다. 술도 몹시 당겼고, 물도 빼고 싶었다.

좌우간 애새끼 시체를 끼고 여기에 오래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스윽

그의 품에서 단도가 나왔다. 달빛을 머금어 서슬 퍼런 예기를 뿜어내는, 사람 하나 처리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흉기.

망설이지 않았다. 별다른 감흥조차 없었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그의 손을, 다른 이들 역시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았다.

쩌엉

“끄윽! 끄아아…… 으윽!”

“어?”

“응?”

“…….”

물론, 그런 반응은 곧바로 사라졌다.

마치 바위를 가격한 듯 찌릿한 고통에 흉터 사내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 손아귀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다른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히 봤다. 단도는 청년의 목덜미 쪽을 향해 휘둘러졌고, 적중했다.

흉터 사내가 저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피를 흘리는 것은 로브를 입은 쪽이어야 마땅했다.

그들은 몰랐다.

청년이 말을 아끼던 것은 겁에 질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른이 고개를 숙이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을 이해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신들을 위해서였다는 것을.

“이제 알겠어.”

그때,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아이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개도 들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약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얕잡아 보는 사내는 아무도 없었다. 무언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감히 도망갈 수 없었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상처받은 젊은 영웅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당신들이 이렇게 행동한 건, 주변에 그런 사람들밖에 없었기 때문이구나.”

그가 소매치기 꼬마를 떠올렸다.

아이가 잘못된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 가던 것은, 날 때부터 마음씨가 나빴던 탓이 아니었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선의의 순환이 아닌, 악연의 고리가 이어져 온 탓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악의에 노출되고, 악의를 학습하고. 세상을 향해 적의와 분노만 품고서 나이를 먹는다. 소매치기 꼬마가 더욱 흉악한 어른으로 자라난다.

‘아무런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온전히 그들의 잘못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아이른이 검을 뽑지 않은 이유였다. 손속에 자비를 둔 이유였다.

깊은 한숨을 쉰 그가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들이 소년을 살해했습니다.”

“어, 어?”

“뒷처리를 부탁합니다.”

아이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적절한 때에 경비병이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들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자신은 이들을 하나도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어떠한 사정이 있었건, 어떤 불우한 성장 과정이 있었건 끔찍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책임을 자신이 묻는 것보다는, 경비병들이 묻는 것이 나을 터였다.

‘지금의 나는 불안정하니까.’

스스로의 감정을 수습하기도 벅찬 상황이니까. 침착한 숙고와 올바른 판단으로부터 많이 멀어진 상태일 테니까.

한숨을 내쉰 아이른이 재차 말했다.

“부탁합니다.”

“음, 으음…….”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장한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인상을 쓴 채 걸어갔다. 이를 본 젊은 영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러면 된 거다.

자신이 모자라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이것이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닐 터.

이그넷의 일로 상황이 촉박한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최선이라 봐도 무방했다.

잊지 말자.

오늘의 일 역시 잊지 말고, 가슴속에 품고 가자.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말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아이른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무슨 일이죠?”

“멈추라고 했다. 얌전히 손을 들고 벽에 붙어라.”

“무슨 일이냐고 했습니다.”

“읏.”

순한 인상과는 다르게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

기세에 압도당한 젊은 경비병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고, 경비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리고 툭 내던지는 듯한 말투로.

“무고한 아이를 살해하였으니, 얌전히 명에 따라라.”

이렇게 말했다.

……아이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경비대장을 바라보다가, 주변으로 시야를 넓혔다.

민망함에 시선을 피하는 경비병들.

낄낄대며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장한들.

끊임없이 욕설을 토해 내는 흉터 사내와.

뒤편에서 꼬마의 피 묻은 돈주머니를 들고 있는 고참 경비병 하나.

슈슉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성적인 판단도, 영웅적인 고민도 이어 갈 수 없었다.

허탈함.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

감정에 지배당한 아이른 파레이라의 대검이, 빠르게 원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으응?”

사아아악-

“…….”

“…….”

“…….”

경비대장의 얼빠진 음성을 마지막으로,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공간이 얼어붙은 듯 기괴하기 짝이 없는 풍경.

그 사이로.

비열하게 웃고 있던 고참 경비병의 목이 투둑, 떨어졌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두두두두둑-

그것이 시작이었다.

딴청을 피우면서도 즐거운 미소가 엿보이던 나머지 경비병들도.

대놓고 비웃음을 머금고 있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가기 위해 신형을 돌리던 잭의 머리도. 하나도 빠짐없이 떨어져 내렸다. 몸통과 분리되어 지저분한 바닥을 굴렀다.

“꺄, 꺄아아아아악!”

뒤늦게 잔혹한 광경을 본 여인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고, 이어서 몇몇 이들이 더 다가왔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는 조용했다. 자욱한 피비린내를 맡은 것인지, 이야기가 퍼진 것인지. 더는 접근하는 이들이 없었다.

우우우우웅-!

“…….”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서 있던 아이른의 귓가에, 검명(劍鳴)이 들렸다.

신호였다.

자신을 재촉하는 요술대검의 울부짖음을 느끼며, 영웅이 등을 굽혔다.

“……그래도, 할 건 하고 가야지.”

꼬마를 안아 들었다.

그 상태로 도시를 떠나, 커다란 나무 밑에 땅을 판 그가 시체를 묻었다. 자신이 건넸던 돈주머니도 함께였다.

‘부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망자에 예를 표한 아이른 파레이라의 발걸음이, 다시금 바삐 움직였다.

* * *

그 뒤에도, 아이른은 여러 차례 악인들을 마주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영웅을 위협하지 못했으나, 그들 중 어떤 이도 만만한 경우가 없었다.

대륙 동부의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간 자신의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것을 파고들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조금씩 말과 표정을 잃어 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검이 인도한 장소에 도착했다.

“…….”

자유도시 고다라.

누군가에게는 암흑도시 고다라로 불리는 곳.

겉으로는 화려하고 밝게만 보이는 그곳으로, 아이른 파레이라는 주먹을 꽉 쥔 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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