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19화 (319/388)

◈ 104. 물의 검 (1)

개최가 확정되었을 때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던 검술 토너먼트, 용사의 제전.

무려 20명이 넘는 소드마스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모자라, 차후 대륙의 10대 검사에 들어갈 확률이 높은 강자들조차 다수 참가했다.

그들의 멋진 활약을 보기 위해 각지의 사람들이 신성왕국으로 몰려들었다.

레이 검술 가문의 2인자, 캄린 레이!

남부의 신성, 이나시오 카라한!

동부의 엘리트 검사, 데반 케네디!

신성왕국의 자랑, 이그넷 크레센시아!

그야말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검사들을 놓고 관객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과연 누가 우승할 것인가, 상위 라운드에 진출할 이들은 누구누구일 것인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대회가 진행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토너먼트 8강의 명단은, 대중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20대 참가자가 3명이나 8강에 올라가다니…….”

“사실상 4명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그넷도 30대 초반이잖아?”

“실력순으로 놓고 보면 주디스도 아깝지. 1순위 우승 후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조건 8강에 올라갔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엑스퍼트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된 거야, 그 일격은?”

“그러니까. 듣기로는 오러 소드는 아니라던데.”

“하여튼 대단해. 이거 처음 예상하고 완전 달라졌잖아?”

그렇다. 완전히 달라졌다.

허나 이러한 흐름이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분위기로 다가갔냐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40~50대 우승 후보들조차 찍어 누르는 20대 검사들의 눈부신 활약, 그리고 승리!

그야말로 대회의 취지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대륙의 미래가 궁금하거든 저들을 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역사에 ‘검사들의 황금기’라고 새겨질 만큼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의 출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기자들은 연일 기사를 써 내려갔다.

아이른 파레이라, 브랫 로이드, 일리아 린제이, 주디스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사소한 가십거리라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어느 새부턴가 캄린 레이를 제치고 우승에 가장 가까운 자라고 평가받는 이그넷의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참가자들만큼이나 더 명성이 높아진 사람이, 하나 더 있지.’

펜을 내려놓은 엘프 기자, 힌츠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마침 이번 기사의 내용도 그를 다루고 있었다.

용사의 제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참가자들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재.

원래도 대륙에서 가장 유명했으나, 그보다 더욱 큰 명성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인물.

‘이안 관주…… 도대체 무슨 괴물들을 키워낸 겁니까?’

크로노의 주인, 이안.

대륙 3강인 그는 검사로서도 유명하지만, 스승으로서도 유명하다.

크로노 검술관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춘 서부의 검술관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안은 그 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가 키워 낸 수많은 제자들이 대륙에 퍼뜨린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역대 크로노 검술관주 중 최고라고 칭해도 과장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 명성은…… 이번 대회 이후에는 더 높이 치솟겠지.’

이그넷 크레센시아.

일리아 린제이.

주디스.

브랫 로이드.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

현재 가장 뜨거운 화제로 떠오른 이 다섯 명 중, 이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

비록 이그넷과 일리아는 1년밖에 신세를 지지 않았고, 주디스 역시 현재는 쿤의 밑에 있다고 한들 그의 도움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자존심 높은 이그넷 포함, 셋 모두 이안에게 적지 않은 신세를 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브랫과 아이른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야말로 황금의 27기를 대표하는 천재들이다.

각각 데반 케네디와 이나시오 카라한을 격파한 둘이, 8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뭐…… 대부분 아이른 파레이라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이번 대회는 이변이 많이 터지고 있으니까.

조용히 중얼거린 힌츠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과연, 자신의 제자들을 지켜보는 스승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훌륭히 성장한 모습에 기꺼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쪽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짐작할 수도 없고.

피식 웃은 그가 또다시 펜을 들었다.

아직 써야 할 기사들이 많았다.

“…….”

그리고 같은 시각, 깊어가는 신성왕국의 밤 아래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의 연무장으로 향하려던 노인이, 차마 그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 * *

‘괜찮을까.’

검술관주 이안이 제자를 만나는 것을 뒤로 미뤘을 때, 일리아 린제이는 멈추지 않고 브랫의 연무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정확한 상태는 몰랐다.

하지만 짐작은 되었다. 자신이 한 번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이 집착으로 변하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지.’

일리아가 과거를 떠올렸다.

이그넷을 뛰어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 위로 올라서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 구원의 손길들을 모조리 뿌리친 채 가시밭길을 걸어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자신을 막아섰던 연인의 모습 역시도.

‘……아이른처럼 잘할 수는 없겠지.’

인생 대부분을 닫힌 마음으로 살아왔던 그녀다.

그런 자신이 아이른만큼 선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남과 교감하고, 타인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부족하더라도, 미숙하더라도 힘낼 것이다. 브랫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혹시라도 그가 겪고 있을, 자신이 예전에 겪었을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

한창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브랫 로이드의 연무장에 가까워진 순간부터였다.

마치 진한 안개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

허나 진짜 안개는 아니었다. 늦은 가을을 향해 나아가는 계절은 건조함만을 가득 품고 있었으니까.

이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환경.

즉, 브랫이 뿜어낸 기운이다.

‘이미 한번 본 적도 있지.’

데반 케네디와 싸울 때, 그가 보여 줬던 기술이 떠올랐다.

흙먼지와 연하고 질척한 오러를 한데 섞어 상대의 감각을 차단했던 놀라운 수법.

……아니, 그렇지 않다.

조금 다르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때는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가림막 용도로써 작용했을 뿐, 이러한 느낌까지 자아내지는 못했다.

그렇다.

지금 일리아의 감각에 느껴지는 것은 존재감이었다.

마치 브랫 로이드라는 검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운 것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하늘 위에서까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 갑갑한 기분 속에,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욱-

후우웅-

그러는 사이에, 흐름이 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을 가득 채웠던 기운이 사라진다. 아니, 중앙을 향해 집중된다.

그리고 또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마치 얇은 종이에 빠르게 물이 번지는 것처럼.

일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속도가 조금씩 빨라진다는 것을, 동시에 그 밀도도 진해진다는 것을.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어느새 정좌하고 있는 브랫 로이드의 곁까지 다가간 일리아 린제이가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 보니 우스웠다.

4인방 중 가장 어른스럽고, 성숙한 그가 어째서 헤매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걸까?

그는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

괴로워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괴로웠을지언정, 그것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과거의 부서질 듯 예민했던 일리아 린제이와는 다르게.

그 사실이 그녀에게 진한 안도감을 주었다.

‘……혹시 모르니, 지켜보고 있어야겠지.’

은발의 검사가 미소를 거뒀다.

그리고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기감을 열어 사방을 경계했다.

브랫이 뿜어내는 기운 때문에 쉽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안전하게 깨달음의 세상을 부유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더 훌륭한 경기를 치러낼 수 있도록.

밤이 깊어지고, 태양이 떠오르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자리를 지켰다.

* * *

비슷한 시각.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검을 휘두르는 대신, 명상에 잠겨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브랫 로이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자, 이나시오 카라한 이상으로 힘들 것이 분명한 8강 상대.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이 자신이 위라고 한들, 승부에선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고개를 끄덕인 그의 머릿속에서, 브랫과의 전투 양상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치열하게 돌아갔다.

……그러한 흐름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브랫과 브랫의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가르침 덕분이었다.

스르르륵-

브랫 로이드에, 8강 시합 한 경기에, 단편적인 것에 얽매여 있던 사고가 넓게 흘러갔다.

지엽적인 곳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고 다양한 곳을 향해 흘러갔다.

그렇듯 고여 있던 마음이 다시 자연스레 움직이자, 답답했던 마음도 열렸다.

잠시 흐려졌던 자신을 되찾은 아이른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오행신공 중 물의 기운을 다루기 시작했다.

친구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존중했다. 그렇기에 그에 매몰되었던 감정에서 벗어나 평소대로, 원래대로 돌아오려 했다.

이그넷을 넘어서기 위해 이그넷에만 집착하지 않았듯이.

브랫을 꺾기 위해서도 브랫에게만 집착할 수 없었다.

다시금 중심을 잡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신이 거쳐 왔던, 자신이 뻗어 나갈, 자신이 흐르고 있는 현재의 여러 마음속에서 깨달음을 불려 갔다.

우우우우웅……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르고.

불어나고, 불어나고, 더욱 불어나고.

끊임없이 순환하고 넓어지는 물줄기 속에서 자라난 나무가 조금 더 높이를 더했다.

한 뼘, 고작 한 뼘에 불과한 성장이었으나 이를 의미 없다 할 순 없었다. 그 조금의 성장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그를 만들었으니까.

“후우우.”

비로소 눈을 뜬 금발의 검사.

그가 고개를 올려 붉은 머리의 여성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진 자신을 지켜 주기 위해 계속해서 자리를 지킨 모양이다. 싱긋 웃은 그가 입을 열었다.

“왜 여기 왔어? 브랫한테 안 가고.”

“정찰이야.”

“정찰?”

“어디 약점이라도 있나, 찾아보려고 왔다.”

“그렇구나.”

“그렇지, 뭐.”

정말로 그 이유로 왔을까?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고 보호해 줬다는 부분이다.

더욱 진한 미소를 지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가 볼까.”

“……살살해.”

“살살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서.”

“말이나 못 하면.”

투덜대는 주디스의 얼굴에도, 그늘이나 걱정 따위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용사의 제전 8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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