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18화 (318/388)

◈ 103. 한계 (2)

“…….”

“…….”

연이은 경기로 인해 대회 초기에 비해 많이 한산해진 대기실.

그곳에서 16강 토너먼트 두 번째 경기를 보고 있던 참가자들은, 예상외의 광경에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용사의 제전에 참가한 128명의 검사들 중 가장 운이 좋은 이가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주디스를 꼽았다.

그녀가 나이에 비해 굉장한 실력을 갖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마스터의 벽을 넘지 못한 애송이일 뿐.

소드마스터를 만나는 즉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예상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1회전 상대였던 남부 용병왕 자쿠앙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32강 대진까지 단 한 명의 마스터도 만나지 않는 운을 뽐내며 16강에 안착했으니, 이번에야말로 임자를 만나 호되게 혼쭐이 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결과는 동일했다.

탈진해서 무대 중앙에서 쓰러진 주디스는 일어나지 못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모양인지 심판이 다가가도 미동도 없었다. 다행인 점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만 보면 그녀가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단 한 걸음.

단 한 걸음이 부족했다.

주디스의 일격이 아주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이그넷 크레센시아는 무대 밖으로 떨어졌을 터였다.

여력이 남아 있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번 대회의 룰이 그러했으니까.

마스터를 발길질 한 방으로 탈락시킬 정도의 강자를, 역으로 탈락시킬 정도의 강격.

그것은, 오러 소드에서 비롯된 힘이 아니었다.

16강에 오른 참가자 대부분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힘이었다.

심지어 캄린 레이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스터에 오르지 못했는데도…….’

‘마스터의 검보다 더욱 강한 공격을 쏟아 내다니.’

‘불꽃? 마치 불꽃 같았다. 정제되지 않은, 하지만 사납고 거칠게 폭발하는…… 마치 화산과 같은 힘!’

‘하늘 위의 태양에 닿기에는 아주 조금 부족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다음번에는, 그녀가 더욱 성장한 뒤에는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모두에게 강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자신들이 정해 놓은 한계를 깨뜨린 엑스퍼트 참가자를 보며, 쟈롯을 비롯한 강자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허허…….”

“쿤의 제자가 된 지 2년 반쯤 됐다고 했나? 신기하군.”

“예전부터 그 양반의 검은 일반적인 검사와 결이 다르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거, 우리가 너무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으음…….”

대륙 검술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알려진 서부의 검술관주들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들이야말로 관중들 이상으로, 참가자들 이상으로 주디스의 활약에 충격을 받은 무리였다.

검술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검술의 경지란 몇 단계로 세분화되어 있는가?

이러한 개념은 천 년 전의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존재한다.

검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검을 처음 드는 초보자 수준을 넘어, 육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단계인 소드 비기너.

검과 육신을 넘어 내우주(內宇宙)의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오러 운용 6개념의 전반부인 축기, 강화, 경화를 알아가는 단계인 소드 유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러를 통해 감각을 개화하고, 다듬어진 오감을 통해 체내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소드 엑스퍼트로 향하는 길이 열리지. 발현과 집중을 중심으로 6개념을 극한으로 운용하여 빛의 기둥을 완성한다면…… 비로소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지난 천 년 간 대륙을 들었다 놨다 한 영웅들이 체계화한 검의 길이며, 검사의 길이다.

오크 종족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오러를 수련한다 알려지긴 했지만, 그들 역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결국에는 오러 소드다.

검사가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을 고도로 정제한 오러 소드만이, 모든 기술의 위에 군림한다.

모두가 그렇게 믿어 왔고, 이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다른 길을 걸어갈 생각조차 품지 못했다.

딱 한 사람.

대륙의 3대 검사이자 대기만성이라는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검사.

쿤을 제외하고는.

‘이제는…… 두 명의 이레귤러가 탄생했군.’

마스터에 오른, 자신의 검에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던 검술관의 주인들이 뜨거운 눈빛으로 주디스를 바라봤다.

오러의 총량은 부족하고, 강화와 경화 부분도 수준 미달이다. 감각의 개화가 완전치 않기에 그럴 터였다.

오러를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오감이 필요하니까. 자신을 다스리기도 힘든 상황이니, 아마 남을 신경 쓸 틈도 없었을 터였다.

지금의 일격을 터뜨리기 위해, 주디스는 꽤 많은 리스크를 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확실했다.

세상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만큼 강렬하게 ‘집중’된 열기.

‘발현’을 넘어 ‘발산’이라고 평하는 게 맞을 정도로 폭력적으로 터져 나온 기운.

그것은 정제할 수도 없고, 정제할 필요도 없는 야만적인 힘의 총화였다.

천 년 이상의 세월을 갈고, 닦고, 세련되게 가다듬어 오기만 한 현대 검술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녀만의 정체성이었다.

“쿤 선배가 괴물을 키워 냈어.”

“외골수라고 생각해서 제자 키우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구만.”

“현대 검술의 한계를 깼다……고 표현하면 과장이려나?”

“이거 대륙 최고의 스승 타이틀이 넘어가는 거 아니야?”

“흠, 그건 모르는 일이지.”

관주들 중 하나가 반박했다.

설명은 필요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6강전 첫 번째 경기에서 활약했던 이의 소속이 어디인지 말이다.

‘아이른 파레이라…….’

‘그 아이야말로 대단하지.’

‘나로서는 이미 평가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존재.’

‘그저 지켜보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겠구만.’

대륙의 내로라 하는 강자들조차 평가를 포기할 정도의 강함을 증명한 젊은 소드마스터, 아이른 파레이라.

그에 대해 생각하느라 관주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 때였다.

쾅!

무대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쾅!

쾅쾅쾅쾅!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주디스였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주먹으로 바닥을 깨부수는 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힘찬 소리는 아니었다. 이미 대부분의 기운을 소진한 그녀는 제대로 주먹을 강화할 여력도 없었다.

손을 타고 흐르는 피가 무대를 빨갛게 적셨다.

마치 덩치 큰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듯한 광경.

허나 참가자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진짜로…….’

‘이기려고 생각했구나.’

‘미친 녀석……!’

투쟁심, 경쟁심, 승리에 대한 열망과 패배로 인한 분노.

그것은 검사의 성장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물론 이에서 자유로운 이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의 검사는 누군가의 위로 올라서기 위해 검을 수련한다. 이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동기 부여 요소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넘볼 수 있는 상대에게 쏟아낼 수 있는 감정이지, 자기보다 한참 위의 존재를 올려다보며 갖기에는 힘든 생각이다.

영원히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높은 산을 바라보며, 일반적인 사람은 절망조차 떠올리지 않는다.

자신과는 다른 세계구나.

짧게 일축한 뒤,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바라보지 않을 뿐이다.

‘지랄.’

주디스는 그럴 수 없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오르지 못할 산이라고 포기할 바에는, 만만한 다른 산을 찾아다니며 아래만 보고 살아갈 바에는 뒈지는 게 나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려면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엎드려 있으면 안 됐다.

“후우, 후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붉은 머리의 검사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먹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머리와 어깨에선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상태. 들고 있는 검조차 적색이었기에 약간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실제로 몇몇 관객은 마법 화면에 클로즈업된 주디스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엔…… 닿는다.”

“…….”

“그러니까, 긴장하고 있으라고.”

용사의 제전 1순위 우승 후보에게 던지는 건방진 발언.

하지만 누구도 이에 불편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기대하노라.”

심지어 이그넷 크레센시아조차도 그러했다.

미소 띤 얼굴로.

허나 마냥 즐겁기만 한 느낌은 아닌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녀의 곁을, 주디스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무대를 내려갔다.

허나 붉은 머리 검사가 향한 곳은, 치료실이 아니었다.

아직 경기를 치르지 않은 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였다.

“뭐야?”

“왜 여기로?”

“…….”

‘저 자식, 뭐 하자는 거야?’

거의 모든 참가자가 주디스의 돌발행동에 경각심을 가졌다. 특히 남부의 호랑이 쟈롯이 그랬다.

자쿠앙과 친한 그로서는 전혀 다른 위상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저 엑스퍼트가 미칠 듯이 신경 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16강의 유일한 엑스퍼트인 그녀를 알게 모르게 흉본 이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무지막지한 일격을 보인 적발의 검사를 신경 쓰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허나 지금 주디스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짠 상태, 어깨를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정도로 지쳐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을 넘어,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했다.

열기.

여전히 거칠게 타오르고 있는, 온 세상을 덮어 버릴 듯한 불꽃.

그것을 품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브랫 로이드 뿐이었다.

“이겨.”

“…….”

“비겁한 수를 쓰든, 남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행동이든, 가문의 누가 될 행동이든…… 신경 쓰지 마. 어떻게든 이겨. 16강전도, 8강전도.”

“…….”

“그럼, 간다.”

브랫의 양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뒤, 대기실을 떠나는 주디스.

그녀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방안은 한동안 적막했다.

쟈롯의 경우는 뒤늦게 피어오른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조차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그 화를 상대에게 풀었다.

“쟈롯, 승리!”

“일리아 린제이, 승리!”

“캄린 레이, 승리!”

빠르게 16강의 나머지 경기들이 치러졌다.

쟈롯과 캄린 레이는 예상대로 수월하게 승리를 따냈고, 일리아 린제이 역시 이른 시간 안에 상대를 패퇴시켰다.

굉장한 실력이었지만 이에 놀라는 이는 별로 없었는데,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대 참가자 네 명 중에 세 명이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했는데, 그녀 혼자 별로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대망의 16강전 마지막 경기.

대륙 동부의 강자 랄프 펜 vs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 브랫 로이드.

관객들은 예측 불가능한 대진에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냈고, 랄프 펜은 그러한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아까부터 진정이 잘 안 됐다.

주디스 때문이었다. 수십 년간 검에 몸과 마음을 다한 그조차도 그녀의 사나웠던 기세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굳어 버린 몸이 풀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

브랫은 반대였다.

잔잔하게, 여유로이 흐르고만 있던 물줄기.

억지로 속도를 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던, 그래서 답답했던 물결.

그것이, 주디스가 건넨 불꽃 덕에 급물살을 탔다.

퍼어어어엉-!

거칠게 폭발하는 감정이 파도를 만들었고, 해일을 만들었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로이드 가의 장자, 아니 브랫 로이드가 검을 들었다.

“덤벼.”

“……!”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나왔다. 브랫 로이드의 승리였다.

이를 끝까지 지켜보던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묘한 눈빛으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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