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달라졌어 (3)
“괜찮을까…….”
용사의 제전이 펼쳐지는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수도.
참가자 가족을 위해 마련된 조금 더 특별한 자리에서, 아이른 파레이라의 어머니인 아멜리아 파레이라가 속삭였다.
아들의 강함이야 검의 문외한인 그녀라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가 이나시오 카라한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이들은 전부 엑스퍼트였던 것에 비해, 그는 20년 전부터 마스터로 명성을 떨쳐온 강자였다.
부모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인 하룬 파레이라 역시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충분히 열심히 했으니, 우리는 응원해 주는 수밖에.”
가까스로 태연한 말을 내뱉기는 했다.
허나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경기를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강했다.
져도 괜찮다.
그러니 제발, 크게 다치지 않기를.
파레이라 부부가 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이겨야죠.”
“…….”
“키릴! 너…….”
“아니, 그냥 떼 쓰는 게 아니라, 오빠가 당연히 이길 거거든요? 아니, 하,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키릴 파레이라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는 확신했다.
여전히 검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검사가 아닌 요술사니까. 몸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검은 육체만큼이나 정신의 수련을 필요로 하는, 어찌 보면 요술의 영역에도 반쯤 발을 걸친 특별한 검술이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누구보다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의 오빠는, 평범한 마스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고.
파아아아앗-!
그 순간, 아이른 파레이라의 검에서 황금의 기둥이 솟구쳤다.
기세도 함께 발현되었다. 강하고 진하게, 허나 거칠지 않게 퍼져 오는 그의 기운에 관객석에 있는 이들 모두의 표정이 바뀌었다.
“…….”
“…….”
파레이라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투가 펼쳐지는 무대와는 꽤 멀리 떨어진 위치건만, 검의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둘이건만…….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생각보다 더욱 강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내가 말했잖아!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음…… 미안하다, 키릴.”
“난 또, 네가 평소처럼 그러는 줄 알고…….”
“엄마! 내가 평소에 뭘 어땠다고, 하…… 나 이제 어린애 아니거든요? 그리고 어렸을 때도 이런 거로 그러지는 않았는데!”
“그건 잘 모르겠구나.”
“하아, 아빠까지…….”
키릴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들었다. 오빠의 멋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바보 고양이가 있었으면 진작에 맞장구쳐 줬을 텐데.”
도대체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제 시간에 맞춰서 오겠다고 해 놓고.
키릴이 조금 더 투덜거렸다. 허나 그마저도 이내 멈췄다.
파레이라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셋 모두 홀린 듯한 모습으로 경기에 집중했다.
너무나도 빨라서 잘 보이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용사의 제전 16강전 제1경기.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무대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 * *
후웅!
후우우웅-!
“후우.”
풍압이 밀려온다. 적중당하는 순간 베어지는 게 아니라 파괴될 것 같은 강력한, 두려울 만큼 무거운 검이 연속으로 쏟아진다.
그런데도 빈틈이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경지에 이른 엑스퍼트조차도 소화하기 힘들 동작을 연속으로 펼치면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다.
천천히, 허나 꾸준히 밀고 들어오며 자기 영역을 넓혀 가는 상대의 모습이 마치 쇳물을 부어 만든 거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미친놈이다, 진짜 미친놈이라고!’
이나시오 카라한이 속으로 울부짖었다.
만만치 않을 거로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현혹되어 상대를 무시했던 자기를 책망하기도 했고, 평가를 조정하기도 했다.
데반 케네디보다 더욱 강하다 해도 놀라지 않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채 무대에 올랐다.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바위처럼 우직하게, 약속된 파멸을 선사하듯 진격해 오는 아이른을, 아이른의 검을, 아이른의 눈빛을. 이나시오 카라한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의 신형이 연신 좌로 우로 움직였다.
후우웅-!
터엉!
콰앙!
“크읏……!”
피하고, 쳐 내고, 막고. 그러는 와중에 최대한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뒤로 물러나는 대신 측면으로 돌아가려 노력하고, 여러 각도에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려 눈을 빛낸다. 그 모습이 마치 수풀 사이를 기민하게 움직이는 뱀과 같았다.
실제 그의 검술 특징이 그러했다. 은밀하면서도 매끄럽게 걸음을 놀리며 적의 공격을 무력화한다.
한 끗 차이로 미끄럽게 비껴가는 와중에 스치듯 몸을 베어낸다.
베어낸다.
계속해서 베어낸다.
꼭 치명적인 일격을 박아 넣을 필요는 없다. 자잘한 상처라도 쌓이다 보면 확실한 패배를 선사할 수 있으니까.
리스크 따위도 안을 필요 없이, 안전하고도 착실하게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니까.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겠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나시오 카라한이 생각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이른의 무거운 압박에 저항도 해 봤고, 마냥 물러서지 않기 위해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조금씩이라도 이득을 채우기 위해, 손해를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허사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기본기가 자신보다 윗줄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기본기가 밀리다니! 자신보다 20살도 더 어린 녀석인데!
오랜만에 느껴보는 억울함과 박탈감에 속이 쓰렸지만, 그는 여전히 냉정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비장의 한 수를 갖고 있었다.
‘나의 검은…… 뱀이다.’
훌쩍 뒤로 물러난 이나시오 카라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자신은 뱀이었다. 남들이 음흉하고 믿을 수 없는 작자라고 흉을 봐도, 멸시 섞인 소문을 퍼뜨려 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깨달음마저 얻었다. 뱀과 같은 미끄러운 회피 동작을 넘어, 뱀과 같은 치명적인 독을 검에 담았다.
자신의 검이 상대의 피부를 저미는 순간, 체내로 들어간 오러가 육신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도록 기운을 발전시킨 것이다.
‘상처가 깊든 얕든 상관없어. 닿기만 하면 된다. 그래, 닿기만 한다면…….’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이나시오 카라한이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노려봤다. 상대의 빈틈을, 아주 사소한 약점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없었다.
땅과 하나가 된 듯 굳건하게 서 있는 상대의 분위기는, 마치 자신이 어떤 검격을 날리더라도 모조리 막아 낼 듯 안정감이 넘쳤다.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공격에만 전력을 쏟아 넣어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 마음을 먹는 순간 지면에 뿌리를 내려 더욱 질긴 모습을 보일 것만 같았다.
그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된다.
평범하게 접근하여 독니를 박아 넣을 수 없다면, 몸을 터뜨려서라도 닿아 보자.
독심을 품은 남부의 신성이, 검에 무지막지한 기운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즈즈즈즈즈즈즈증!
평소와 다른 불쾌한 소리가 무대 가득 울려 퍼졌다. 단순히 오러 소드를 강화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힘 이상을 검에 불어넣자, 이나시오 카라한의 검이 초록빛을 넘어 흑록색을 띠었다.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파르르 떨리는 검날이 위태로우면서도 위험천만한 느낌을 자아냈다.
“후우.”
아이른 파레이라는 조급하지 않았다.
상대를 제지하려 앞으로 짓쳐들지도, 공포에 잠겨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스르륵, 나무(木)와 땅(土)의 기운을 운용하여 바닥에 뿌리를 내린 그의 기도가 천년 거목처럼 웅장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검에 가득 담긴 강철(金)의 기운.
화염(火)으로 정제된 기운이 아니다. 쇳덩이의 묵직함이 그대로 드러난, 투박할 정도로 육중한 기운이 전방에 원을 그렸다.
꽈아아아아앙-!
그 직후, 이나시오 카라한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과도한 기운을 견디다 못한 검이 파괴되며 오러와 금속의 파편을 뿌렸다.
그 과정에서 기술을 시전한 본인의 손에도 상처를 입었지만, 앞으로 쏘아지는 날붙이의 위력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따다다다다다당-!
고막을 찢어 버릴 듯한 굉음이 순식간에, 밀도 높게 무대를 휘몰아쳤다.
경기장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고, 마법 화면으로 시합을 관전하던 이들 역시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몇몇 실력 좋은 이들은 너무나도 위험한 공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제트 프로스트가 그러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그럴 필요 없었다.
우우우웅……
단 하나의 파편조차도.
아주 약간의 기운조차도. 공격이 끝난 이후에도 스멀스멀 빈틈을 타고 들어오려던 뱀의 기운마저도 모조리 막아 낸 황금의 방패.
정제된 오러로만 이루어진 아이른의 거대한 기운을 보며, 이나시오 카라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비교적 멀쩡한 왼손으로 등에 멘 예비용 검을 뽑았으나, 휘두를 용기는 도저히 없었다.
그가 외쳤다.
“패배를 인정한다.”
“…….”
“우승해라. 아니, 우승하시오. 아이른 파레이라 공.”
정중한 말투로 예를 갖춘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대에서 퇴장하는 남부의 신성.
정신이 나가 있던 심판이 뒤늦게 무대로 올라와 승자의 이름을 불렀고, 덩달아 얼이 빠져 있던 관객들이 더욱 크게 아이른 파레이라를 연호했다.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아이른 파레이라!”
“우와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검을 모르는 이들로서도, 검에 일가견이 있는 고수들로서도 이번 경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예상보다도 더욱 강한, 거기에 더해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 왔던 이나시오 카라한.
그런 그를 기본기부터 압도한 것도 모자라, 신성왕국 성기사들의 전유물이라고까지 불리는 오러 쉴드(Aura Shield)를 선보이기까지!
이는 오러 소드보다 훨씬 더 힘든 기술이었다.
검이라는 토대 위에 기운을 입히는 것과 달리, 허공에 정제된 오러를 형성하는 것은 몇 배나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선에 가까운 형태인 오러 소드에 비해, 오러 쉴드는 면의 형태를 가진다. 즉, 필요한 오러의 양이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모두가 놀랐다.
관객도, 참가자도, 후배들의 실력을 구경하기 위해 모였던 대륙의 초강자들마저도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역대급 사건!
허나 일을 벌인 아이른 파레이라로서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전혀 들뜨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시선은, 신경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다른 곳으로 흐를 여력이 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존재는 이번 시합의 상대인 이나시오 카라한이 아니었다. 바로 브랫 로이드였다.
‘이그넷에 오래 집착했을 때, 내가 제일 괴로웠던 게 뭔지 알아? 그렇게 피를 토하게 노력해도 상대가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시합 전날, 일리아 린제이가 자신에게 해 줬던 말이 생각난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색함이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누군가의 목표가 된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브랫이 진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어.’
아이른이 진짜 실력을 내보인 것은 그래서였다.
이나시오 카라한이 만만치 않은 상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브랫 로이드의 진심에 제대로 응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쭉 그런 관계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검을 들었다. 의지를 세웠다.
‘보고 있겠지, 브랫.’
눈앞에 보이는 건 관객들뿐이지만, 알 수 있다.
그 역시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 마법 화면에 비친 자신의 눈빛을,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눈에 힘을 줄 때였다.
“비켜, 이 자식아.”
“…….”
“지금부터는 이 주디스 님의 무대니까.”
어느새 무대에 올라선 또 한 명의 소중한 인연이,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