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다크호스 (3)
쾅!
터엉-!
카가가각……
꽈앙!
귀를 아프게 만드는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검사와 검사, 즉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물론 그들을 평범한 인간이라 할 수는 없다. 초인이라 불리는 소드마스터, 그중에서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데반 케네디다.
그런 그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브랫 로이드 역시 괴물이라 불리기에 마땅했으니, 관객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경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브랫이 밀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동부의 최고 실력자인 데반 케네디는 명불허전이었다.
아니 대중의 예상보다도 더욱 강했다. 다음에 맞붙을 확률이 높은 또 다른 강자, 랄프 펜이 표정을 굳힐 정도로.
허나 젊은 소드마스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터엉!
엘리트 검사의 절도 있는 상단 베기를 튕겨 내고.
타닷-
갑자기 쭈욱 늘어나는 오러 소드를 날렵하게 피해 냈다.
그 과정에서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동부 출신 관객들이 표정을 찡그렸다.
체술에도 꽤 공을 들이는 서부, 중부와는 달리, 동부의 무술은 입식 검술에만 편향되어 있다.
그렇기에 브랫의 저런 회피 동작은 일반적으로 수치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로이드 가문이면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명문인데, 저렇게 조잡하게 싸울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고귀한 핏줄끼리의 대결이라기에 더 멋스러운 양상을 기대했는데, 이거 원…….”
“데반 케네디 경이 이겼으면 좋겠군.”
“당연히 이기겠지. 품위와 실력, 어느 쪽으로 봐도 훨씬 앞서니 말이야.”
안 그래도 초반의 예의 없는 기습, 그리고 침을 뱉는 행동으로 눈총을 받았던 브랫이다.
그렇기에 언더독을 응원하던 이들도, 젊은 세대의 약진에 흥분하던 무리도 데반 케네디를 응원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허나 그렇지 않은 쪽도 있었다.
평범한 관객이 아닌, 검술에 굉장한 조예가 있는 존재들.
심지어 용사의 제전 참가자들보다도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은, 데반 케네디가 아니라 브랫 로이드의 모습에 놀람을 표하고 있었다.
“……굉장하군.”
“그렇습니다. 솔직히 놀랍군요. 많이.”
“음.”
신성왕국의 최강자, 율리우스 휼이 짧은 칭찬을 내뱉었다.
적기사단장인 리고베르토 클락이 동의했고, 전대 적기사단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퀸시 마이어스의 놀라움이 가장 컸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브랫 로이드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검술까지 가르쳤다.
그렇기에 그때와 지금 사이에 얼마나 큰 성취가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비상식적이었다.
20대 초반에 소드마스터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의 성장이 더욱 놀라웠다.
그가 엷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렸다.
“어쩌면, 첫 경기부터 이변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크로노 검술관원들 사이의 이안 역시, 제자의 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전투 양상은 지저분했다. 꼼수를 남발하고, 치사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도 그랬다.
바닥을 구르는 틈에 움켜쥔 돌가루를 뿌리며 상대의 시야를 차단했고, 그 틈에 거리를 벌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몇몇 곳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허나 이안은 브랫 로이드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렇게 해서라도 30년이라는 세월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제자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잔머리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야.’
데반 케네디가 누구인가?
동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서부 5왕국 출신들에 밀리지 않는 명성을 보유한,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무장한 강자였다.
어설픈 꼼수 따위는 배로 갚아줄 만한 실력자라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비벼지는 양상이 나오는 건, 브랫이 자신의 전략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본적인 실력 역시 심하게 뒤처지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원래라면 6 대 4. 하지만 기지를 잘 발휘한 덕에 5.5 대 4.5까지 따라왔다.’
그렇다면 모른다. 그 정도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의 격차였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것이 끝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 줄 것인가?
이안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옆에 있는 부관주 케이라 핀도 마찬가지였고, 그 밖의 검술관원들 역시 눈을 크게 뜨고 무대에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경기는 무려 20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허억, 헉, 푸후…….”
“후우, 후우.”
격렬한 근접 전투 이후의 소강상태.
브랫이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고, 데반 역시 컨디션을 점검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모두가 숨죽인 채 지켜봤다. 브랫의 행태에 야유를 퍼붓던 이들조차 지금은 잠잠했다.
확연한 실력 차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이런 흐름까지 끌고 온 그에게, 관객들도 더는 욕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약을 보인 로이드 가의 천재에게, 당장이라도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 내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동부의 최강자가 훨씬 유리한 국면이긴 했으나 방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데반 케네디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최선을 다하자.’
지이이이잉-!
“……!”
“……!”
관객들 사이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직전보다 더욱 찬란해진 빛.
처음 무대에 올라왔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압박감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번 일격으로 결판을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반면, 브랫 로이드의 오러 소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청색의 검날에 뒤덮인 은은한 물빛은 커질 기미는커녕 유지하는 것조차 벅차 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30년의 세월을 메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렇다.
모두가 그렇게만 생각했기에.
20대 초반의 젊은 검사가 다른 수작을 부렸다는 것은, 그럴 여력이 있었다는 것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데반 케네디조차도.
그러니까…….
‘결착은 내가 낸다.’
눈을 빛낸 브랫이, 강하게 바닥을 걷어 찼다.
꽈아앙-!
가슴께로 돌덩이가 솟구쳤고, 검이 휘둘러졌다. 데반이 긴장했다.
투석을 할 셈인가?
그렇지 않았다.
검이 연속으로 휘둘러졌고, 휘둘러졌고, 또 휘둘러졌다.
순식간에 가루가 된 돌덩이.
브랫이 마지막으로 검을 내뻗자 이것이 사방으로 퍼졌고, 무대가 온통 흐려졌다.
의외의 상황을 마주한 데반이 중얼거렸다.
“잔재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시야를 빼앗을 의도라고 하기엔, 자신 역시 같은 처지에 빠진다.
혹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버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웃겼다. 이런 것 따위, 검 한 번 휘두르면 모조리 날려 버릴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검면을 사용해 강하게 바람을 일으켰다.
후우우우웅-!
“…….”
사라지지 않았다.
눈 앞을 흐르는 무채색의 물결은, 여전히 흐릿하게 데반의 감각을 차단하고 있었다.
시각만이 아니었다.
기감.
수준 높은 검사라면 오러를 발현하여 주변의 기척을 파악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건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물 속에 잠긴 듯, 모든 감각이 무뎌져 버린 느낌.
여기까지 생각한 데반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쒜에에엑-!
콰아앙!
“크윽!”
쏜살같이 날아온 돌덩이!
데반이 가까스로 이를 막아 냈다. 원래라면 수월하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흐려진 시야와 무뎌진 감각이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가 생각했다.
‘물! 아니, 물과 같은 오러……! 이 자식, 싸우는 내내 은밀히 자기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구나!’
정답이었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브랫은 싸우는 내내 조금씩, 은밀히 자신의 오러를 흘렸다.
상대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깨달았을 때쯤에는 주변이 온통 물에 잠겨있는 느낌이 들도록 질척하게.
돌가루가 날아가지 않은 것은 브랫의 오러에 섞여들었기 때문이며.
데반의 감각이 무뎌진 것도 브랫의 오러가 무대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평소보다 빨리 지치긴 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큰 이점을 손에 넣었으니까!
쒜에엑-!
쒜에에엑-!
쾅! 콰앙! 꽈아앙!
“큭, 윽, 으읏!”
데반 케네디가 검을 휘둘렀다. 마치 코앞에서 날아오는 듯한 연격에 자세가 조금씩 무너졌고, 걸음도 주춤주춤 물러났다.
브랫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한 번 더 무대를 걷어찬 그가 돌과 함께 쏘아졌다.
커다란 돌덩이의 뒤에 숨어 기습할 생각이었고, 데반의 눈을 보기까지는 성공을 확신했다.
“……!”
속았다.
자세가 무너진 것도, 뒤로 물러나던 것도 연기였다. 빈틈을 보여 브랫이 뛰어들게 만들려는 속셈이었고, 예상대로 된 것을 확인한 그가 힘을 끌어올렸다.
지이이잉, 길게 늘어난 오러 소드가 돌덩이와 그 뒤의 상대까지 단번에 베어 버릴 듯 흉흉하게 다가왔다.
허나 브랫은 멈추지 않았다.
두 손에서 한 손으로, 허리를 비틀어 돌 뒤에서 쭉 파고드는 긴 사거리의 찌르기!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이었다.
허나 상대의 숨통도 확실히 끊어 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이런 미친놈이……!’
데반 케네디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상대의 표정을, 눈빛을 살폈다.
진심이었다. 이 녀석은 자신이 베이더라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를 깨달은 순간 그의 신형이 뒤로 빠졌다. 공세는 회피로 바뀌었고, 그런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해 상당한 손해를 맛봤다.
허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이를 바드득 간 그가 거친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이었다.
“하아, 후! 당신, 졌어.”
“무슨…… 음!”
“무대 밖으로 벗어났잖아.”
데반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회피를 위해 뒤로 물러나다 보니, 어느새 무대 밑으로 내려온 상태였다.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심판, 내 말 맞지?”
“어, 어어…… 그, 그렇습니다.”
“…….”
“이, 이번 경기는…… 브랫 로이드, 브랫 로이드의 승리!”
물처럼 흐르던 혼탁한 돌가루가 가라앉고, 심판의 외침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브랫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그걸 넘어 벌러덩 드러누웠다.
꽤 지쳤지만, 아직 여력이 남은 데반 케네디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허나 그는 무대 위에 있었고, 상대는 아니었다.
무대 밑에서 여전히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던 동부의 엘리트가.
“……하하.”
뒤늦게 웃음을 흘렸다.
다시금 무대 위로 올라간 그가 브랫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결과에 승복하네.”
“후우, 후…… 무례했던 행동, 뒤늦게나마 사죄드립니다. 떼를 많이 썼습니다.”
“후배의 특권이지. 난 신경 쓰지 말게. 그보다는…….”
시선을 관객석 쪽으로 돌린 그가, 한마디를 더했다.
“손이라도 흔들어 주게. 다들 놀라서 환호할 타이밍도 놓친 것 같군.”
“……예.”
후우, 후우.
브랫이 계속해서 숨을 골랐다.
여전히 괴로웠다.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고, 욱신거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눕고 싶었다.
사제들의 치료 마법을 받으며 일주일쯤은 푹 쉬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하는 이에게 닿기까지, 아직 한 번의 승리가 더 필요했다.
그는 여전히 힘이 들어간 눈으로 관객석을 응시했고, 힘차게 손을 들어 올렸다.
이 모습을 마법 화면이 온전히 담았다. 브랫을 응원했던 이들도, 욕했던 이들도 한마음 한뜻이 돼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아!”
“브랫 로이드! 브랫 로이드! 브랫 로이드!”
“거베라의 별!”
“대륙의 희망!”
반응을 보인 것은 일반 대중들만이 아니었다.
다음 경기를 위해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대부분이, 특히 브랫과 붙을 확률이 높은 동부의 또 다른 강자, 랄프 펜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쉽지 않겠어.’
‘젠장, 20대 초반 애송이가 어떻게 벌써…….’
‘이거, 다른 젊은 놈들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다크호스.
적당히 초반에만 활약하다가 결국 벽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애매한 다크호스가 아니라, 진짜 다크호스.
그 진면목을 본 모두가 브랫 로이드에 대한 평가를 재조정하는 순간.
“…….”
일리아 린제이와 주디스.
그리고 아이른 파레이라만이,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