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12화 (312/388)

◈ 101. 다크호스 (2)

용사의 제전 토너먼트 1회전이 끝났다.

수많은 강자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하기엔 어려운 날이었다.

정말로 흥미진진한 대진은, 즉 우승 후보들끼리의 싸움은 적어도 16강은 되어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나 볼거리가 아예 없었다고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었다.

대회의 서두를 연 캄린 레이를 시작으로 모든 소드마스터들이 오러 소드를 자체적으로 봉인하였다.

여기에서 시작된 흐름이 새로운 대결 구도를 만들어 냈다.

“들었어?”

“뭐 말이야?”

“마스터들이 오러 소드 안 쓴 거 말이야. 그거, 어린 소드마스터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들 그런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아! 맞아! 나도 들었어. 처음에는 기자 녀석들이 자극적으로 과장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알아보니 마냥 헛소리는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지? 연회장에서도 분위기가 묘했다잖아.”

1회전이 끝나고 하루 뒤, 주점과 식당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이들 모두가 연회장에서 있었던 시비를 언급했다.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알려진 남부 용병왕 자쿠앙과, 마스터는 아니지만 어린 소드마스터들과 끈끈한 연으로 엮인 주디스가 험한 말다툼을 펼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시비야 자쿠앙 쪽이 먼저 걸었다지만, 주디스 쪽에서도 좀 심하게 반응했다더군. 그리고 그게 기존 강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야.”

“하긴, 몇 년 후배도 아니고 자식뻘의 후배가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꼰대들로서는 보기 거북했을 수도 있겠어.”

“꼰대라고 하기는 그렇지 않나? 40대 후반에서 50대면 마스터치고는 젊은 나이잖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하는 행동은 꼰대 맞잖아? 그럼 자쿠앙이 지랄할 때 그냥 예, 예 하고 숙였어야 했나? 그거 가지고 꽁해서, 대회 때 그런 식으로 압박하는 건 좀…….”

“에이, 진짜 그런 의도로 그런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탁자를 탕 소리 나게 두드린 취객 하나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적당히 32강쯤에서 떨어질 거로 여겨졌던 몇몇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는 점이지.”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이 테이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두가 어제의 일을 기억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일리아 린제이가, 브랫 로이드가 얼마나 압도적인 모습으로 상대 엑스퍼트를 찍어 눌렀는지.

스타일은 전부 달랐지만, 세 젊은이가 기존의 우승 후보들에 비해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 줬다는 것만큼은 똑같았다.

특히 브랫 로이드의 평가가 크게 바뀌었다.

거베라 왕국 역사상 가장 빨리 마스터에 오른 천재.

허나 한창 명성을 높인 아이른과 일리아에 비해서는 많이 처지는 느낌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이 마스터 중 가장 약한 존재가 브랫 로이드라는 생각을 내비쳤었다.

헌데, 그런 그조차도 이처럼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면…….

‘물론,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세 젊은이들, 어쩌면 진짜 이변을 일으킬지도 모르겠어.’

‘모르겠다. 일단 더 지켜봐야겠지. 하지만…….’

‘그 녀석들이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인 건 분명해 보여.’

기존의 노련한 강자들 vs 패기로 무장한 젊은 소드마스터.

생각지도 못했던 대결 구도에 사람들은 기대감이 부풀어 가는 것을 느꼈고, 어서 빨리 다음 경기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허나 그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주디스의 존재였다.

“주디스? 운이 좋았지. 자쿠앙이 수련하다가 부상을 입었다니…….”

“대진운도 꽤 좋더라고. 32강 대진까지 소드마스터를 안 만나던데? 어쩌면 높이 올라갈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솔직히 말해 조금 비호감이긴 해. 운 좋게 올라갔으면 겸손하게 말해야지, 인터뷰 들었어? 자기한테 겁먹어서 변명 대고 도망간 거라고 도발하던데…….”

“아, 나도 들었어. 소식 들은 쟈롯 반응이 어마어마했다지? 뭐, 대진상 만날 수는 없겠지만.”

“만나면 큰일이지. 그 양반 성격이면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고위 사제들이 대기하고 있더라도 말이야.”

‘역시,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나.’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제트 프로스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도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는 몰랐다.

자쿠앙이 진짜 수련 중에 부상을 당했는지, 아니면 다른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었다.

허나 분명한 건…….

‘마스터가 아니라고 해서, 주디스가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라는 거지.’

그가 눈을 감고 과거를 떠올렸다.

소드마스터의 오러 소드보다도 강렬하고, 뜨거웠던 그녀의 불꽃.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은 자쿠앙이었을지도…….’

비로소 눈을 뜬 제트 프로스트가 가게를 나섰다.

남들보다 정보가 많다는 게 이리 재미있을 줄이야.

조용히 중얼거린 그의 얼굴에는, 주디스는 물론 4인방을 향한 기대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토너먼트 64강, 제2회전 경기까지 마무리되었다.

이번에는 그 어떠한 이변도 없었다.

우승 후보들은 연이어 승리를 이어갔고, 그들과 대비되는 어린 소드마스터들 역시 수월하게 시합을 주도했다. 정확히는 전부 일검에 승부를 매조졌다.

128강 때와 달리, 모두가 오러 소드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스걱-

“캄린 레이, 승리!”

“나왔다, 레이 가문의 오러 소드!”

“회색? 아닌가, 은색이었나? 저건 뭘 의미하는 거지?”

“글쎄? 그냥 가장 기본적인 색 아닐까? 엑스퍼트 상대하는 데 그렇게 대단한 뭔가를 보였을 것 같진 않은데?”

관객들의 말대로였다.

상대인 엑스퍼트 검사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패배했다.

잘린 검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에게서 뭔가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마 캄린 레이의 진짜 실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웅-!

우우우웅-!

즈으응……!

한 명이 봉인을 해제하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오러 소드의 향연!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찬란한 광휘를 뽐내는 마스터들의 모습에 관객들은 환호했고, 상대 엑스퍼트들은 좌절했다.

평생을 넘고자 했으나 넘지 못했던 벽에 누군가는 절망했고, 누군가는 훗날을 기약했다.

허나 패배자들에게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취지야 어쨌건, 이곳은 경쟁의 장. 승자만이 살아남아 올라갈 수 있고, 이기기 위해선 미래가 아닌 현재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것은 32강에 오른 검사들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붙는군.”

“누구? 아, 데반 케네디와 브랫 로이드?”

“그래! 동부 최강자이자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데반 케네디, 그리고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인 거베라의 별!”

닭 다리 하나를 집어 먹은 남자가 흥분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침이 사방에 튀었으나, 이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 둘의 시합이 기대되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브랫 로이드가 이길 거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데반 케네디는 캄린 레이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남부의 신성인 이나시오 카라한보다도 살짝 저평가를 받는 게 중론이었다.

허나 그 말은, 그들을 제외하면 누구보다도 우승에 가깝다는 말이기도 했다.

남부의 패자를 자처하는 쟈롯, 자쿠앙보다도 윗줄의 강자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승패가 아니라, 브랫 로이드가 얼마나 선전하느냐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비단 관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참가자들, 그중에서도 우승에 가까운 이들 역시 데반과 브랫의 시합에 주목했다.

둘을 통해 어린 소드마스터들의 전력을 유추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려 했다.

어느새 그들은 용사의 제전의 들러리가 아니라,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데반 케네디, 브랫 로이드. 무대 위로 올라오시오.”

그리하여 시작된 토너먼트 3회전.

32강부터는 전과 달리 한 번에 한 경기만 치러지기에, 관객들의 집중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담이 큰 사람이라도 긴장하기 마련인데, 브랫 로이드는 그런 기색 없이 차분히 무대로 올라섰다.

데반 케네디도 마찬가지였다.

닳고 닳은 백전노장, 게다가 고위 귀족으로서 많은 이들의 주목에 익숙한 존재가 바로 그였다.

평범한 핏줄이라면 몰라도, 태생부터 고귀한 그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압박은 몸에 걸쳐진 망토보다도 가벼운 것이었다.

엘리트 출신 마스터의 시선이 상대 젊은이를 향했다.

잠시 침묵을 이어 가던 그가 짧게 말했다.

“로이드 가의 장자가 빛나는 재능을 뽐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었네. 헌데 그 빛이 이렇게 빨리 대륙에 퍼질 줄은 예상 못 했군.”

“과찬입니다.”

“훌륭한 후배와 마주하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지. 허나 승부는 냉정한 법. 검에 자비가 없다 하여 원망치 말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격식 있는 대화가 끝나고, 심판의 신호가 이어졌다. 그렇게 32강 토너먼트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직

후 브랫 로이드가 우아한 동작으로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가볍게 검을 부딪치자는 제스처였는데, 함께 좋은 승부를 펼치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데반 케네디 역시 마주 검을 뻗어 갔다.

연회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던 주디스라면 모를까, 고위 귀족에 예를 아는 브랫 로이드 같은 후배의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서렸다.

허나 그러한 표정은 곧바로 깨어졌다.

자신의 검을 스치고 날아오는 검날에, 날카로운 오러가 맺혔다.

우우웅-!

쒜엑-!

“……!”

기습에 놀란 데반 케네디가 크게 뒷걸음질 쳤다. 상대의 의도를 전혀 예상치 못했는 듯 불안정한 자세였다.

브랫은 반대였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자연스레 후속 공격을 이어 갔다.

푸른색의 오러 소드가 뱀처럼 집요하게, 음습하게 상대의 급소를 노리고 파고들어 갔다.

우우우웅-!

캉!

카앙, 캉-!

데반 케네디의 검에서도 오러 소드가 피어났다.

백색과 청색의 광휘가 빠르게 세 번 붙었다가 떨어졌고, 그 사이에 5미터 정도의 후퇴가 있었다. 명백한 열세였다.

허나 거기서 끝이었다.

순식간에 균형을 회복한 중년 검사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뻗어오는 상대의 공격에 맞춰 반격할 채비를 갖추었다.

“……!”

그 순간 날아오는 예상치도 못한 수법!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침에 놀란 그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검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덕분에 또다시 균형이 무너졌다.

빠르게 거리를 벌린 덕에 공격권에서는 벗어났지만, 힘의 운용에 차질이 생겨 오러 낭비가 심했다.

불쾌한 침묵이 감돌았다.

대치 상황에서 표정을 굳힌 데반 케네디가 입을 열었다.

“예의 바른 후배인 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봤군.”

브랫 로이드가 즉답했다.

“승리보다 위생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면, 위에는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자세를 갖추는 그의 얼굴에 독기와 간절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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