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11화 (311/388)

◈ 101. 다크호스 (1)

“으으, 드디어 시작인가?”

“내 살아생전에 이런 엄청난 구경을 하게 될 줄이야…….”

“벌써 흥분이 주체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난 이거 보려고 동쪽 끝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바야흐로, 용사의 제전 128강 토너먼트 제1회전이 열리는 날 아침.

대륙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기대감에 가득 찬 목소리를 높였다.

예부터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알려진 게 불구경, 그리고 싸움 구경이다.

심지어 수준이 가장 낮은 이조차 최고 수준의 엑스퍼트에, 소드마스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번 대회는 그야말로 대륙 전체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수도는 관광객들로 미어터졌지만, 국가 차원에서 숙소 준비를 했기에 노숙하는 이들이 생기는 불상사는 피했다.

거기에 룬텔 왕국의 지원까지 더해졌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인원들 역시 마법 화면으로 검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봐야 하지 않겠나, 참가자들의 수준 높은 검투를 말이야. 그래야 소문도 더 빨리, 널리 퍼질 것이고. 대륙의 모든 이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지. 더는 악마 따위에 겁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야.’

이러한 결정에 모든 이들이 성왕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용사의 제전의 취지도 취지지만, 어찌 됐건 멀리서 온 이들이 헛걸음을 피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덕분에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이들 역시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대회 결과에 대한 예측을 이어 갔다.

“나는 말이야, 아무래도 캄린 레이가…….”

“이나시오 카라한이…….”

“어허, 동부 출신 무시하나? 데반 케네디와 랄프 펜도…….”

“신성왕국이 자신만만하게 대회를 개최한 걸 생각하면, 흑기사단장 역시 무시할 수는…….”

물론, 대부분이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의견만을 내놓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면 몰라도, 지금까지는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아마 오늘 경기가 끝날 때까지도 쭉 이어질 터였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승 후보라고 알려진 이들 대부분이 서로를 피해 가는 대진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대 검사들 역시 한가락 하는 이들이라지만, 아무래도 엑스퍼트다보니…… 우승 후보들의 실력을 이끌어낼 수는 없겠지.”

“그렇지? 이변도 어느 정도 비빌 구석이 있어야 나오는 건데, 솔직히 말해서 첫날은 너무 뻔하게 흘러갈 것 같단 말이지.”

“뭐, 그래도 소드마스터들을 수십 명이나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흥분되는 일이긴 하지.”

“그건 그래. 오늘은 그걸로 만족해야겠구만…… 아! 시작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절차들이 모두 끝나고, 마침내 본 경기가 시작되었다.

잘 정비된 무대 위로 올라오는 8명의 검사들.

1회전과 2회전은 인원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네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각자 응원하는, 혹은 관심이 있는 쪽의 화면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물론 대부분의 이목은 3경기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바로 이번 대회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캄린 레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레이 가문의 오러는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한다지?”

“그렇다고 들었네. 엄청나게 화려한 기교로 유명하지. 검술뿐만이 아니라 오러의 운용 측면에서도…… 오러 소드의 색이 변하는 이유도 가문의 비전 덕분이라고 하더군. 뭐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야 제대로 알아볼 눈은 없지만…….”

“그래도 뭐, 눈 휘둥그레질 정도로 멋진 오러 소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암, 그렇고 말고…… 으, 이제 진짜 시작한다!”

심판의 손짓과 함께, 마침내 검투가 시작되었다.

캄린 레이의 상대는 소드 엑스퍼트. 무지막지한 강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마법 화면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그의 마음에 이입하는 관객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캄린 레이를 바라보며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승리할까!’만을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캄린 레이가 오러 소드를 쓰지 않고 검투를 이어 간 것이다.

“승자, 캄린 레이!”

“뭐지?”

“왜 오러 소드를 안 쓴 거야?”

관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레이 가문의 2인자라는 위치답게, 캄린 레이는 오러 소드 없이도 손쉽게 상대를 꺾었다.

허나 화려하고 멋들어진 모습을 기대한 사람들은 다소 맥 빠지는 광경에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러한 흐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승자, 데반 케네디!”

대륙 동부에서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데반 케네디도.

“승자, 랄프 펜!”

그의 호적수라고 불리는 랄프 펜도.

그 외의 ‘우승 후보’라고 알려진 베테랑 마스터들 모두가 오러 소드를 선보이지 않고, 검술의 격차만으로 승리를 따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관객들이 나름의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인 엑스퍼트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니다, 검술 실력만으로도 커다란 격차가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일종의 허세다.

그것이 무슨 허세냐. 실제로 엄청난 실력 차이로 승리를 이어 가고 있으니, 허세가 아니라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봐야 맞는 것 아니냐…….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의견들.

이를 잠자코 듣고 있던 101번째 검사, 아니 소드마스터 제트 프로스트가 진중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마스터가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소드를 포기한다.

그것은 분명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마스터와 엑스퍼트를 가르는 압도적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허나 과연 그것이 진의일까?

십 년, 이십 년간 마스터로서 명성을 쌓아 왔던 이들이 이제 와서. 자기 검술 자랑만을 위해 이런 퍼포먼스를 보인다고?

그렇지 않다.

알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제트 프로스트가 새로이 무대에 올라오는 검사를 주시했다.

여태까지의 참가자들보다 훨씬 젊은, 어리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나이.

거베라 왕국의 신성, 브랫 로이드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첫 번째는 브랫 로이드…….’

그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봤다.

그렇다. 이것은 우승 후보라고 불리는 나이 지긋한 마스터들이, 젊은 마스터들에게 던지는 도발이었다.

우리는 오러 소드의 도움 없이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가?

운 좋게 깨달음을 얻어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하긴 했지만, 검술만으로 비교하면 훨씬 경험이 풍부한 최상위 엑스퍼트들과 별 차이 없는 것 아닌가?

어쩌면 그들만 못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찌 보면 유치할 수 있는 도발이지만, 아이른 파레이라를 위시한 20대 마스터들로서는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 터였다.

이미 흐름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떡할 거냐, 브랫.”

제트 프로스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었다.

답은 분명했다. 저 청년의 실력을 아는 그로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물음이었다.

중늙은이들, 꽤나 놀라겠군.

확신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곧바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캉!

카앙-!

콰아앙!

“크윽……!”

“……승자, 브랫 로이드!”

용사의 제전이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변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뭐야!”

“세 번 만에…… 이겼어?”

“오러 소드도 안 쓰고?”

“뭐지,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진짜 잠깐 한눈팔고 있었는데 끝났잖아?”

“아니, 아, 이거 못 본 건 너무 아쉬운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놀람 섞인 감탄을 터뜨렸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엑스퍼트가 마스터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오러 소드를 쓰지 않는 젊은 마스터가 상대라면 혹시나 변수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이기진 못하더라도 꽤 고전케 하는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았다.

브랫 로이드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상대를 격파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퇴장했다.

무대에서 내려가는 그의 눈빛이 상당히 매서웠는데, 제트 프로스트로서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기대되는군. 뭔가…… 약간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야.’

독기 비슷한 것을 느낀 그가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좋았다.

다른 참가자들도 느꼈을 터다. 생각보다 브랫 로이드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나이 어린 소드마스터라고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졌다.”

“승자, 일리아 린제이!”

역대 최연소 소드마스터, 일리아 린제이가 일검에 상대를 꺾었다.

콰앙!

콰아아앙!

“스, 승자, 아이른 파레이라!”

헤일 왕국의 자랑, 아이른 파레이라는 두 번의 검격으로 상대를 패퇴시켰다.

둘 다 오러 소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일리아는 무지막지한 쾌검으로, 아이른은 무겁고 육중한 중검으로 깔끔한 승리를 따냈다.

그쯤 되자 관객들 사이에서도 소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재능을 가졌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이번 대회에서는 두각을 드러내기 힘들 거라 여겼던 20대 소드마스터들이 상상 이상의 실력을 선보였다.

이것이 불러온 여파는 다소 심심할 수 있었던 용사의 제전 첫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데?”

“혹시 안 밀리는 거 아니야? 50대 마스터들한테?”

“에이, 그건 너무 갔지. 겨우 엑스퍼트 상대로 이긴 것 가지고 그런 말은…….”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굉장해 보이는 건 맞잖아?”

“그건 그렇지. 궁금하긴 해. 과연 저 젊은이들이 어디까지 선전할 수 있을지 말이야.”

비단 관객들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자기 경기를 끝마친 중년 검사들 역시 브랫과 일리아, 아이른의 약진에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연회장 때 상당한 실력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그때 느낀 것보다도 더 대단하군.’

‘그래도 질 일은 없겠지만…… 일단 방심은 금물이겠어.’

높아지는 경계심, 차오르는 긴장감.

다소 날카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끊임없이 검투가 진행되었고, 이윽고 참가자들 사이에서 많이들 기대하던 시합이 시작되었다.

자쿠앙 vs 주디스.

경기 전부터 신경전을 벌였던 둘의 싸움을 보기 위해, 검사 대부분이 무대에 집중했다.

결과야 뻔하지만, 그 과정이 어떠한지는 적잖이 기대가 되었다.

대회의 흐름 상 자쿠앙은 오러 소드를 쓰지 않을 것이고, 20대 참가자들의 활약을 생각하면 주디스의 검술 역시 상당한 수준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생각 이상으로 자쿠앙이 고전하는 모습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거참 재밌겠군.’

남부의 신성, 이나시오 카라한이 미소를 머금었다.

자쿠앙의 스타일은 검술보다는 오러에 치중되어 있다.

나이에 비해 훨씬 많은 오러의 총량을 십분 활용하여 힘으로 찍어누르는 양상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순수 검술 대결이라면 망신을 당할 확률도 작지 않았다. 그는 악의적인 눈빛을 한 채 무대를 지켜봤다.

빨리, 빨리 올라와라. 자쿠앙.

그를 비롯한 몇몇이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

“…….”

“…….”

허나 자쿠앙은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참가자 대기실 어디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00명이 넘는 인원 덕분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처음부터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지?

검사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시선이 쟈롯에게 쏟아졌다.

의형제인 그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상만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속이 답답해진 그가 거친 말을 내뱉었다.

“젠장, 어디서 뭐 하기에 안 오는 거야?”

그런 분위기는 무대 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1분이 지나도.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나타날 기미가 없는 자쿠앙 때문에 대회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심판 역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안 오는 거야? 젠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쿠앙이 이런 식으로 탈락하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때, 잠자코 무대 위에 서 있던 붉은 머리 여성이 말을 걸었다.

심판이 고개를 돌려 주디스를 쳐다봤다.

생각해 보면 희한했다. 상대가 나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하게 있는 그녀의 모습은, 쉬이 이해하기 힘든 태도임이 분명했다.

허나 주디스는 여전했다.

말괄량이처럼 씨익 웃은 엑스퍼트 검사가, 한마디를 보탰다.

“아무래도 내가 겁나서 도망갔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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