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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308화 (308/388)

◈ 100. 신경전 (2)

“웃기는군. 저런 애송이가 아빌리우스의 초대장을 받았다고?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아니야?”

연회장에 입장한 주디스를 봤을 때, 남부 용병왕 자쿠앙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다.

시비를 걸고 싶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신성왕국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옆의 브랫 로이드라면 몰라도, 저 녀석은 아무리 봐도 기준 미달인데 말이지.’

명색이 대륙 전체에 희망을 줄, 추후 미래를 이끌어갈 강자들을 선보이는 대회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까지 엑스퍼트 나부랭이가 활개 치는 것은 자쿠앙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제로 초대장을 받았다 알려진 이들 대부분이, 아니 저 애송이를 제외한 전원이 마스터라고 알려졌으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설마 그사이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나?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인맥 빨인가? 모자란 실력을 로이드 가와 린제이 가, 크로노 검술관의 후광으로 채운 것인가?

‘알 수 없지.’

분명한 건, 그는 그런 꼴을 보고 그냥 넘길 정도로 좋은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뭘 보냐, 꼬마야.”

자쿠앙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살짝 감탄했다. 쳐다보는 눈빛이 꽤 매서웠기 때문이다. 확실히 20대 초반이라는 걸 고려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긴 했다.

30년쯤 후에는 정말로 대륙을 떠받칠 거목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주제 파악을 좀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X까세요.”

“……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했냐.”

후우우욱-!

거대한 육체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수백 마리의 야생마가 날뛰듯 정돈되지 않은, 거칠기 그지없는 기운. 그 대부분이 붉은 머리 애송이에게 집중되었다.

허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겁먹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들으라는 듯 다시 한번 같은 말을 읊었다.

“X까라고.”

“…….”

“…….”

“…….”

장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묻던 검사들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던 음악가들도, 이런저런 예측을 늘어놓던 기자들도 하나같이 입을 다문 채 자쿠앙과 주디스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음. 일 났네.”

“불만이야?”

“아니, 불만 없다.”

주디스의 질문을 받은 브랫 로이드가 슬쩍 웃으며 답했다.

“참으면 병 돼. 네 마음대로 해.”

“……뭐지. 왜 뭔가 기분이 나쁘지.”

“머리 쓰다듬어 줄까?”

“닥쳐. 농담할 기분 아니야.”

연인의 넉살을 단칼에 끊어낸 그녀가 재차 자쿠앙 쪽을 쳐다봤다.

험상궂은 외모, 우락부락한 덩치, 그 위를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자잘한 흉터들.

허나 그런 것에 주눅들 주디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자극받으면 자극받을수록 더 뜨거워지고, 더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뭔가, 기분이 계속 더럽네.’

게다가, 최근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았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신성왕국까지 오는 여정은 평탄했고, 그사이에 또 한 번의 성취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브랫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자신이 있었다.

즉, 이 정도 무시와 도발쯤은 그냥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심적 여유가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아, 몰라.’

잠시 스승을 떠올린 주디스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서운했다. 진짜 안 따라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계속 그걸 신경 쓰는 것도 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주디스가 입을 열었다.

“거, 미안합니다.”

“뭐?”

“욕한 거 미안하다고. 이쯤에서 끝내죠? 그쪽도 좋은 말을 한 건 아니었잖아요?”

“이런 미친 녀석을 봤나…….”

“어, 한 번 더 했다. 욕 한 번 더 했어. 괜찮아, 이것도 그냥 넘어가 줄 테니까, 좋게좋게 마무리합시다. 봐봐, 주변 사람들이 다 우리 쳐다보고 있잖…… 저기요?”

“큭큭, 큭큭큭큭…….”

뒤편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남부의 신성, 이나시오 카라한이었다. 그는 소란이 일어났을 때부터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고, 주디스 쪽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녀가 주눅 들지 않고 더욱더 자쿠앙을 자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조차도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어진 남부 용병왕의 얼굴을 보며, 그가 외쳤다.

“거 선배, 후배님 말대로 적당히 합시다. 명색이 대륙의 안녕을 위해 모인 자리인데, 그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하나하나 열 내는…… 오, 미안합니다. 그만하겠습니다.”

이나시오 카라한이 양 손바닥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구경은 너무나도 재밌었지만, 직접 휘말릴 생각까진 없었다.

자쿠앙의 기세를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긴 그가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갈 곳 없이 헤매던 기운은 다시금 주디스를 향해 뻗어 갔다.

“…….”

“…….”

또다시 정적.

누구도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실력이 부족한 이들은 자쿠앙의 기세가 부담스러웠고, 수준이 높은 이들도 구태여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허나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떠올린 생각이 있었으니…….

‘……너무 평온한데.’

‘……어째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거지?’

기세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표현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실제로 엑스퍼트에 오른 이들은 오러의 발현을 통해 상대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더욱 수준이 높은 마스터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재능이 충만한 주디스라지만, 지금쯤이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뒤로 물러서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평온하다.

놀랍도록 평온하다. 정적 속에서 하나둘씩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후배 검사가 보여 주고 있는 저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자식이!’

물론 자쿠앙은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나 딱히 도리가 없었다. 이 이상 상대를 압박하려면 진짜 박투를 펼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남부의 패자인 그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대륙 최강국인 아빌리우스에서 난동을 피우는 게 달가울 리 없지 않은가.

이나시오 카라한에게 보였던 오러도 위협용일 뿐, 진짜로 무력행사를 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꼴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히려 주디스가 아닌 그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맺혔다.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허나 계속해서 이러고 있기도 부담스럽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저 천둥벌거숭이 녀석은 여전히 자신의 기세에 멀쩡한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딱히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 같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그렇듯 고민 속에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가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쟈롯인가?’

자쿠앙이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인상을 쓴 채였지만, 그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직접 뒤로 빼는 것보다는, 그래도 의제가 말려주는 쪽이 모양새가 더 좋다.

아니었다. 쟈롯이 아니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신성왕국의 한 축을 담당하는 흑발의 검사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표정을 굳힌 자쿠앙이 뒤로 물러났다.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주르륵, 밑으로 흘러내렸다.

몰랐다. 다른 데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지만, 그녀가 자신의 뒤를 점할 때까지, 정말이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지근거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해, 주디스.”

놀라서 신형을 돌리는 그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젊은 검사.

아단 왕국의 천재, 일리아 린제이였다.

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이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

“…….”

게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쿠앙과 주디스 사이의 다툼이 긴장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곁에 있는 쟈롯과 브랫 로이드가 안전장치 역할을 해 줬겠지만, 둘의 신경전이 참가자들 사이에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음은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이나시오 카라한, 데반 케네디, 랄프 펜, 그리고 제1 우승 후보인 캄린 레이까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헌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일리아 린제이.

어느새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검사를 지켜보면서, 좌중은 전보다 더욱 진한 압박감을 느꼈다.

“……심상치 않구만.”

“그러게. 이거…….”

“생각보다 훨씬, 그림이 나오는데?”

꽤 떨어진 거리에서, 기자들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흥미로웠다. 아니, 그것을 넘어 흥분되었다.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자쿠앙 vs 주디스와는 달리, 이그넷과 일리아는 대륙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한 일화로 엮인 악연이다.

후자가 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크로노 검술관에 입관하고, 증명의 땅까지 찾아갔다는 사실 역시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하지만 아무리 엮기 좋은 사건으로 얽혔다 한들……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지.’

멀대처럼 키가 큰 기자가 예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기자로서 안타깝게도, 끊임없이 상대를 의식하는 일리아와 달리 이그넷 쪽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더 격차를 벌려 가는 듯한 모습으로, 마치 ‘그녀와 나는 같은 급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은발의 검사가 상대를 바라본다.

흑발의 검사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희미한 미소마저 엿보인 채, 묘한 기대가 담긴 눈으로 응한다.

오러나 기세의 발현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긴장감이, 둘 사이의 변한 분위기를 말해 주고 있었다.

뒤늦게 입장하던 몇몇 검사들조차 이 심상치 않은 광경에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저벅 저벅

조용하기 그지없던 장내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이 묘하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상했다. 분명 별것 없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검사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꽂힌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말로 이상하게도.

“…….”

“…….”

자쿠앙도, 쟈롯도.

주디스도, 브랫 로이드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지어 이그넷 크레센시아도 그러했다.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이 알아챘다.

그녀의 눈빛이 일리아 린제이를 바라볼 때보다도 깊다는 것을. 진하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는 사이, 둘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벅 저벅

똑같은 속도의 걸음걸이.

분명 그럴진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제는 양쪽을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흑발과 금발의 검사, 둘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생각했다.

자신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들에게 집중하는 것일까?

그들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나타난 청년에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을 때.

금발의 검사가 이그넷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

“……?”

“……?”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예상과 다른 광경에 어어, 힘 빠지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연인 앞에 선 영웅, 아이른 파레이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

“내가 더.”

일리아 린제이가 마주 웃었다.

그런 둘을 보며,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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