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75화 (275/388)

◈ 90. 가장 위대한 엑스퍼트 (3)

“음, 그렇게 됐나.”

“그렇습니다.”

“허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구만. 아니면 둘이 합이 잘 맞는 건가? 이거 참…….”

크로노 검술관의 주인이자 대륙 3대 검사 중 하나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존재, 이안.

그의 앞에는 21세의 나이로 소드마스터에 오른 불세출의 천재, 브랫 로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놀라웠다.

잠시 보지 못한 사이에 벽을 깬 것도 모자라, 그 이상의 실력을 쌓은 것으로 보인 자신의 제자를…….

주디스가 이겼다고?

심지어 아직 엑스퍼트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

‘아니, 엑스퍼트고 마스터고 하는 부분은 문제가 아니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쿤에게 있어서는 그런 상식적인 기준 따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아마 주디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사실쯤은, 그 녀석의 제자로 들어갔을 때부터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조금 민망할 정도야.’

자타공인 대륙 최고의 검술 스승이라 평가받는 이안이다.

허나 주디스는 그런 자신의 품을 떠나자마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살짝 고개를 저은 그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기분이 묘했다.

성취를 얻은 옛 제자를 생각하면 기분이 당연히 좋아야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런 것도 맞지만…….

쿤 녀석의 표정을 생각하면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간에는 그가 일방적으로 자신을 의식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건 예전 이야기일 뿐.

오히려 요즘은 자신이 상대를 더욱 신경 쓰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잠시였다.

찻잔을 내려놓은 이안이 물끄러미 브랫을 바라봤다.

자신의 패배.

어쩌면 치욕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엑스퍼트로부터의 패배.

이를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고한 제자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역시…….”

“역시?”

“장차 로이드 가문의 대를 이을 이 몸의 연인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 정도 되는 여자니까 저와 만나고 있는 거겠죠.”

“…….”

“물론 더는 봐주는 것 없습니다. 그게 제가 검술관으로 돌아온 이유입니다. 앞으로 1년…… 아니, 2년.”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 브랫 로이드가 이안을 쳐다봤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눈빛.

그야말로 고위 귀족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 진심을 보이도록 하죠.”

“…….”

“관주님도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할 겁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제 성장에 너무 놀라시면 곤란하니 말입니다.”

“못 본 사이 더욱 정신이 나갔구나.”

이안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브랫은 예전부터 저랬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당당해지려 노력했고,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과할 때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황당한 태도를 보이고는 했으나, 그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불안감과 초조함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은 셈이었고, 실제로 동기들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황금 기수라 불리는 27기 중에서도 가장 빨리 졸업패를 받은 것은 이러한 이유 덕분이었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마음 단단히 먹고 지도해 주마. 불세출의 천재, 브랫 로이드의 진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말이야.”

이안 관주가 빙긋 미소지었다.

검술관을 졸업했다곤 하나, 브랫은 여전히 자신의 제자였다. 그것도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였다.

그런 그가 스승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선객이 있다.”

“선객……?”

“그래. 오래전에 품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제자가 날 만나고 싶다더군. 한판 붙고 싶다고. 어쩌면 지금쯤 도착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도착했군.”

“도대체 어떤 제자가 감히…….”

관주님께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까?

라는 말을 하려던 브랫이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하기 그지없는, 절로 신형을 돌리게 만드는 붉고 뜨거운 기세.

그는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담았고, 이안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적휘적 대연무장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뒤를, 브랫은 말없이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그간 격조했습니다.”

“관전자 한 명쯤은 괜찮겠지?”

“더 많아도 상관없나이다.”

“그건 안 돼. 기죽을 녀석들이 대부분이거든. 물론 이 친구는 아니지.”

이안 관주가 제자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시선 역시 그를 향했다.

화아악, 불꽃이 꽂혀 드는 느낌을 받으며, 브랫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그러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계속해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절대 압박 때문에 물러난 것이 아니다.”

“…….”

“원래 물러나려 했던 것이다. 대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관전자는 관중석으로. 으음, 그것이 옳다.”

이그넷이 시선을 돌렸다.

이안도 더는 브랫을 쳐다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만을 쳐다봤다. 오로지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처럼.

우우우우웅……!

키이이이이잉-!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미터까지 자라났던 백색의 광휘가 더욱 찬란한 빛을 뿌리며 압축되었고, 검날을 불태울 듯 일렁거리던 화마가 고도로 정제되었다.

직후 증발하듯 사라진 둘의 검이 대연무장 중앙에서 격돌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터뜨려 버릴 듯한 굉음이, 검술관 전체에 가득 울려 퍼졌다.

* * *

“으음, 검술관 밖에서 싸울 걸 그랬나.”

한 시간 뒤.

훌쩍 떠나 버린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뒤로한 채, 이안이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연무장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대련의 패배자인 이그넷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물론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빙긋 미소를 지은 그가 뒤를 돌아봤다. 살짝 굳은 표정의 제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땠나?”

“……놀랍군요. 아이른, 일리아보다도 더.”

브랫이 솔직하게 말했다.

이그넷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허나 독보적인 존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에 있는 괴물 둘이라면 충분히 그녀에 견줄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생각이 달라졌다.

틀렸던 것은 자신이었고, 소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브랫이 직전의 대련을 떠올렸다.

어둡지 않았다.

찬란하게, 작열하듯 빛나던 이그넷의 검술을 되새긴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래도,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예. 썩 괜찮은 자극이었습니다.”

허풍이었다.

허나 온전히 허세인 것은 아니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모를까, 여러 번의 좌절을 넘어왔던 브랫에게 있어서는 어찌어찌 이겨 낼 수 있는 정도.

‘과연, 하늘 위의 태양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존재지만…….’

닿을 수 있었다.

오늘의 자극으로 말미암아, 강하게 요동치는 마음으로 파도를 불러올 수 있다면.

그 파도를 하늘에 닿을 만큼 커다랗게 키울 수만 있다면, 포기는 일렀다.

씨익 웃어 보인 브랫 로이드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으음.”

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자를 바라봤다.

좌절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긴 했다.

이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일 녀석이었다면 애초에 보여 주지도 않았을 터다. 그렇기에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의연할 것이라고도 예상치 못했다.

숙였다 올라오는 브랫의 고개를 응시하며, 이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모두에게 공평한 가르침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그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재능의 격차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제자들이 가르침의 차별까지 느낀다면, 그 박탈감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꺾는다니, 스승의 처지에서 그보다 큰 슬픔이 또 어디 있을까.

허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여러 면에서 자신과 다르다.

그러나 마음이 가는 것은, 다른 제자들보다 조금 더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녀석이 물의 검을 택했을 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

물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한 이안, 그가 다시금 브랫 로이드를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넓은 그릇이 된 제자.

녀석이 바다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끊임없이 가르침을 채워 넣어야겠지.

‘어찌 보면, 이것은 쿤과 나의 대리전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100살 가까이 먹은 노인의 생각이라 하기에는 너무 유치한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쿤과 자신은 그런 관계였다.

자신의 오랜 적수를 떠올리며.

자신의 품을 떠난 옛 제자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랫 로이드를 바라보며, 이안이 재차 검을 뽑았다.

곧바로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 * *

“하압! 타핫! 타하앗!”

후웅!

후웅!

후우웅-!

결론부터 말하면,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싸움을 본 이후의 브랫은 어마어마한 성장을 보여 주었다.

허나 그녀의 검술이 가장 큰 원인이냐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크로노의 주인이자 대륙 최고의 스승 이안의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냐?

이 역시 아니었다. 물론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었지만, 정작 브랫이 미쳐 날뛰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이었으니.

바로 그의 연인, 주디스로부터 온 짧은 서신이었다.

[한 번 졌다고 풀 죽으면 죽여 버린다. 다음에 네가 이기면…… 원하는 거 뭐든 들어줄 테니까, 열심히 수련해.]

“……뭐든지.”

조용히 중얼거린 브랫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르칼리의 보물인 청검의 손잡이가 부서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고, 이는 곧 어마어마한 열정으로 치환되었다.

그 누구도 브랫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브랫을 말릴 수 없었다.

예전에도 크로노 검술관을 통틀어 가장 열심인 그였으나, 주디스의 편지가 온 이후에는 그조차 평범하게 만들 정도로 변해 버린 브랫이었다.

“좋을 때네.”

“…….”

크로노의 부관주, 케이라 핀이 고개를 저으며 지나갔다.

관주인 이안은 말을 아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박탈감, 그리고 약간의 배신감.

이를 가까스로 다스린 그가 브랫에게 말했다.

“오늘 지도는 대련으로 하자.”

“예?”

“왜, 싫어?”

“……싫은 건 아닙니다만.”

어딘가 찝찝한 브랫 로이드.

그보다 더 찝찝한 표정을 짓는 이안 관주.

이러니저러니 해도 썩 잘 어울리는 사제를 보며, 전직 교관 아메드가 씨익 웃었다.

* * *

그로부터 반년 후.

한 사내가, 파레이라 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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