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우리 아들이 (2)
여름의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8월, 헤일 왕국을 들썩이게 하는 커다란 이벤트가 열렸다.
이는 수도에서 벌어진 일도, 비교적 인구 밀도가 높은 왕국 북쪽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다.
남부 6가문.
그중에서도 겨우 남작 작위에 머무는 파레이라 가문에서 열린 특별 검술 강의가,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냥 관심을 이끌어 낸 수준이 아니지.’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마르쿠스가 흐르는 땀을 닦았다.
높은 관심을 받을 거로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까운 거리의 귀족들은 물론이고, 비교적 거리가 먼 왕국 북부의 인사들까지 특강에 참여할 수 있냐고 문의를 해 왔다.
세가 작은 남작가도, 왕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고위 귀족들도 하나같이 예를 지키며 정중히 사람을 보내거나, 값진 선물과 함께 서신을 보내왔다.
심지어 그들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헤일 왕국과 인접한 지역의 귀족들마저 끼어들려는 통에 사람을 추려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가문당 2명의 인원 제한을 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파레이라의 연무장으로는 소화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그야말로 가문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
여기까지 생각한 마르쿠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피어올랐다.
영주관에 가득 모인 헤일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장자들!
그리고 왕국 전체에서 수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한, 각 가문의 최고기사들!
그들이 눈이 빠져라 가문의 자랑, 아이른 파레이라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뿌듯한 광경에, 그의 가슴이 당사자보다 더욱 거세게 뛰었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감만을 품고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키릴 파레이라가 그랬다.
그녀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불안한 듯 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
“뭐가?”
“오빠 말이야.”
“아이른은 항상 괜찮은데?”
“아니, 강의 말이야. 오빠가 강한 검사라는 거야 잘 알지만, 가르치는 건…… 그래도 조금 다른 영역이잖아?”
“그렇긴 하지.”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는 가르치는 것에 미숙하다는 말이 있다.
남들은 수없이 반복하고, 고찰하고, 노력해야 닿을 수 있는 경지에 찰나의 직관으로 도달하는 존재들.
평범한 이라면 차근차근 올라야 하는 계단을, 한 번에 수십 계단씩 뛰어 는 초월적인 이들.
당연하지만 검술 분야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들은 ‘소드마스터’라고 불렀다.
‘심지어 오빠는, 소드마스터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재능이라고 소문이 났지.’
현재 대륙을 질타하는 세 명의 천재는 누구인가?
첫 번째가 이그넷 크레센시아고.
두 번째가 일리아 린제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혜성처럼 대륙에 이름을 알린 기린아, 바로 아이른 파레이라다.
‘그만큼 대단한 오빠가,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강의를 할 수 있을까?’
키릴로서는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오빠뿐만이 아니라, 여태껏 오빠의 곁에 있었던 이들도 하나같이 천재의 반열에 드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고 이러한 의구심은, 연무장에 모여 있는 가문의 장자와 최고기사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오, 온다.”
“조용히.”
“도련님, 혹여 강의가 실망스럽더라도 티 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검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관계를 다지기 위해 온 것입니다.”
“명심하겠소.”
그때, 저 멀리서부터 금발의 청년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모두가 잡담을 멈추었다. 이를 바라보던 마르쿠스의 가슴에 또다시 찡한 감동이 퍼졌다.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
순식간에 퍼진 침묵 속에서 소드마스터, 아이른 파레이라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을 빙 둘러싼 좌중 앞에서 비굴하지도, 권위적이지도 않은 시선을 보인 그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찬란한 금빛의 대검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오오.”
“저것이…….”
아이른을 상징하는 무기이자.
증명의 땅의 챔피언 후보였던 소드마스터 해리슨 핀토의 아들, 리카르도 핀토의 ‘넘버링 소드’를 깨부쉈다는 절세의 무기.
그 찬란함을 목도한 검사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지금까지 봤던 어떠한 검도 저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었다.
검뿐만이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없는 것은, 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우우우우웅-!
“…….”
“…….”
갑작스레 발현된 오러 소드.
요술대검의 빛보다도 더욱 진하고 웅장한 기운에, 장내의 분위기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사실, 직전까지 좌중이 아이른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스터를 대하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탄탄한 체격, 안정적인 걸음걸이, 차분한 기도.
이것들 역시 강자임을 드러내는 요소라고 볼 순 있었으나, ‘소드마스터’라 하면 으레 상상하는 강렬한 무언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제는 아니었다.
넓은 연무장을 가득 채우는, 경지에 이른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분위기.
그것을 느낀 모두는 감탄사조차 내뱉지 못한 채, 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앞으로 시선을 고정하였다.
아이른은 태연했다.
네다섯 번 가볍게 검을 휘두른 그가 이내 기운을 거두었다.
아아, 그제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쉬움을 가득 품은 소리였다.
여기 있는 검사 대부분이 평생 오러 소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모두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조금 전의 광경을 머리에 새겼다.
허나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일 따름이었다.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른의 입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로 많은, 다양한 분을 모시고……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맞는 것인지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너무 기초적인 부분을 짚자니 지루하신 분도 계실 테고, 그렇다고 너무 상승의 경지를 다루자니 아무것도 얻어 가지 못하는 분이 계실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휘익
휘이익-!
휙-!
세 번, 부드럽고 가벼운 동작으로 검을 휘두른 아이른이 자세를 잡았다.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되었다. 오러 소드에 비하면 별거 아닌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키릴도, 루루도, 마르쿠스도, 떨리는 마음의 파레이라 내외도 멍하니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이른은 태연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짙은 관심에도 주눅 들지 않은 그가,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루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헤일 왕국 최강자의 검술 강의가 시작되었다.
* * *
아이른 파레이라의 강의 내용은 ‘보는 것’에 치중되어 흘러갔다.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상대의 공격을 받아 내고.
나아가 상대를 향해 검을 내지르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도와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의 기본이 되는 부분이 바로 ‘보는 것’이었다.
잘 보면 잘 피할 수 있고, 잘 쫓을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지만, 이것을 제대로 하는 것은, 나아가 숙련되게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아이른이 가장 처음 언급한 부분은 ‘어깨’였다.
“검의 초보들은 대부분 상대의 검날만을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검날을 좇다 보면 눈도, 머리도 어지러워진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깨에 집중한다면 어지러움이 절반 이하로 감소합니다.
담담히 내뱉은 아이른이 휙, 검을 휘둘렀다.
“움직이는 것은 검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팔이 움직이고, 어깨가 움직입니다. 대련 중 상대의 검술을 파악하는 것이 벅차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손발이 어지러웠던 분이 계신다면, 비교적 움직임의 근원에 가까운 ‘어깨’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더 천천히 동작을 수행하겠습니다.”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
그리고 이를 보조하는 깔끔하고 정석적인 동작.
모두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특히 검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소영주들은 더욱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고민을 그대로 짚어 내고, 비교적 쉬운 해결법을 제시해 준 아이른에게 더욱 깊이 몰입하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별로 공감 가는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아이른의 강의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움직임의 근원입니다. 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작용하는 다양한 근육과 관절들…… 한눈에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그 난도가 어떠한지는 모두가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집중의 범위를 좁히고, 이동하는 겁니다. 검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발로.”
아이른의 말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나왔다.
평소의 말주변 없는 그와는 전혀 달랐다.
이는 강의를 철저하게 준비한 덕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이른이라는 사람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천재였으며.
노력가였다.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노력의 천재라는 말이 더 정확했다.
일반적인 천재들이 수십 단계씩 건너뛰어 위를 향해 올라갔다면.
아이른은 모든 과정을 찬찬히, 단단하게 소화하며 올라갔다.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보가 위로, 위로, 더 위로 올라가면서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상대의 대비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속임수를 넣을 수도 있고, 수 싸움을 벌일 수도 있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중을 미리 읽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상대의 눈입니다.”
천재들의 기준에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부분도.
천재들의 기준에서도 굉장히 어렵고 난해한 부분도.
아이른은 똑같이 진지하게 임했다.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고, 행한 후에도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그였기에.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아래를 살피지 못할 리 없었다.
보다 낮은 자리에 위치한 이들을 향해, 조언을 건네지 못할 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걸어온 과정을 천천히, 좌중의 눈높이에 맞춰 되짚어 나간다.
그렇게 몇 시간 연속으로 이어지던 강의가 끝났을 때.
짝.
짝짝.
짝짝짝짝짝짝짝…….
누군가의 손에서 처음 터져 나온 박수 소리는, 순식간에 연무장을 잡아먹을 듯 그 기세를 더해 갔다.
대륙 중부에 새로이 떠오른 영웅을 배려해서가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와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계산적인 행동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강의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찬사.
이를 느낀 파레이라 남작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던 때였다.
“강의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말해 볼까 합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입을 열자, 연무장이 놀랍도록 빠르게 조용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은 운 좋게 재능만 타고난 이가 아니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껏 엄청난 밀도의 노력을 쌓아 왔을 거라는 점을. 나태공자라는 오명은 말도 안 되는 오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아이른은, 그런 그들의 생각까지는 알지 못했다.
몰라도 괜찮았다.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
아니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지금부터였으니까.
“여러분들은…… 검을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