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51화 (251/388)

◈ 83. 아주 오래 기다렸다고 (3)

“…….”

아이른 파레이라와의 재회가 있고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대장장이 불카누스는 하루하루를 시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났다. 아니, 눈을 뜨고 있어도 환상이 보였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꺼내 온 10번째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 그것을 아득히 앞지르는…… 믿을 수 없는 품질의 대검.

‘그야말로…… 대장장이의 신이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물건.’

아이른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리고 그의 대검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단단함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신화시대의 아티팩트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건만, 황금 대검은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초월한 상태로 불카누스의 앞에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절삭력.

균형감.

내구성.

심지어 손잡이와 사소한 부분에 들어간 장식의 아름다움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다.

눈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고, 그대로 불카누스는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난 끝났어.”

수백 번째 당시의 일을 떠올린 드워프가 우울한 표정으로 술을 마셨다.

마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물론 마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끝났다.

자신의 남은 생애를 다 바쳐도 좇을 수 없을 위대한 검의 탄생.

태어나서 가장 큰 좌절감에 빠진 그는 먹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독한 위스키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 병이 비워질 무렵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선하고, 여린 듯하면서도 강인한 심지가 있는 목소리.

아이른 파레이라였다.

불카누스는 그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다.

아직도 부끄럽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장장이가 되었다고 착각한 채, 자신만만하게 녀석의 앞에서 선언했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죄송합니다, 불카누스 님! 이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너를 용서하고 이 검의, 열 번째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의 주인으로 인정할 생각이 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또다시 트라우마가 떠오른 드워프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술병이 바닥에 뒹굴었다.

불카누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 나간 모습으로 그 옆에서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아이른은 침착했다.

마치 올 때부터 이런 일을 예상했다는 듯.

혹은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태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드워프에게 다가간 그가 상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오러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린제이가에서 파레이라 영지로 돌아오는 동안, 아이른이 오러의 발현에 대해 새로이 고찰한 부분이 있다.

꼭 상대방을 위협하는 용도로만 ‘발현’을 활용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아.’

적에게 기세를 뿜어내는 기초적인 수준부터 오러 소드를 만들어 내는 궁극의 경지까지.

대부분의 오러 발현이 상대를 해치는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은 맞다.

허나 오러 자체가 항상 위험한 기운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내부에 있는 오러를 떠올리면 반대의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때론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의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긍정적인 오러를 발현하고, 나아가 누군가에게 전해 준다면…….

‘좋은 쪽으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확신이 들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아이른은 이미 이를 행한 바가 있었다.

증명의 땅 검투사 그레이슨의 마인화를 막았고.

일리아 린제이의 어두운 마음을 정화했다.

광대 악마의 사후 결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뿜어낸 진한 기운이 등대처럼, 모닥불처럼 탐사대원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었었다.

‘그때와 지금 방식의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직관의 힘에만 의지했었다는 것.’

지금은 다르다.

마음의 강함도 성장했지만, 검술과 오러 운용의 측면에서 지금의 아이른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방대하고도 깊은 지식과 노하우가 뒤섞여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냈고, 직관적인 기운을 훨씬 세련되게 가다듬었다.

오행신공 중 불꽃(火)의 기운이 아이른 식으로 재해석되고, 거기에 일반적인 것과 조금 다른 ‘발현’의 개념이 추가됐다.

거기에 물(水)의 방식까지 더해지자,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던 오러가 자연스레 불카누스의 체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따스함, 안온함, 편안함, 그 밖의 긍정적인 기운이 도도하게 흘러 들어가고, 휘돌았다.

불카누스 또한 이를 느꼈다.

조금이지만 술에 깬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초췌한 모습.

허나 전과 달리, 조금씩이지만 눈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아이른이 이번에는 요술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의지와 신념이, 손에 잡힐 듯이 외부로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아악-!

“……!”

불카누스의 눈이 완전히 떠졌다.

다소 둔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그는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뛰어난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

2년 전, 검술조차 보지 않고 아이른을 대회 우승자로 꼽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강철과도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황당하구나.”

드워프 대장장이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2년 전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위대한 의지가 전해져 온다.

그것도 훨씬 선명하게.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느낌으로.

울컥울컥.

용기가 솟아올랐다.

꺾였던 의지를 바로 세울 만큼 황홀한 영감이 불카누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었다.

지금이라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성장한 아이른 파레이라, 이 녀석과 함께할 수 있다면.

황금의 대검에 견줄 수는 없더라도, 10번째 넘버링 소드보다는 훨씬 대단한 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내가 영지에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게.”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몸을 턴 뒤, 정중한 어조로 부탁하는 자존심 높은 드워프 대장장이.

그의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던 아이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 *

“아니 오빠,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어떻게 저 사람들…… 아니, 저 장인들을 영지에 눌러 앉힌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도련님, 정말로 대단합니다! 남작님이 아신다면 정말로 좋아하실 일입니다!”

“응? 왜?”

“대륙에서 가장 실력 있는 장인들이 영지에 터를 잡는데, 싫어할 영주가 누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파레이라 영지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발전할 겁니다! 가문에 돌아오자마자 이런 큰 효도를 하시다니…… 진짜, 진짜로 대단하십니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지 멍하게 있는 루루와, 경사난 표정으로 기뻐하는 키릴과 마르쿠스.

둘 중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아이른은 전자에 가까웠다.

딱히 영지를 위한 일이라거나,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했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불카누스를 저대로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건데…….’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조금 어리둥절했을 뿐, 그 역시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마냥 기쁜 채로 있기는 힘들었다.

마르쿠스의 입에서 나온 한 단어.

효도.

그것이 아이른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소홀했던 사람은 부모님이야.’

로이드 영주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뒤, 그는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다.

지금껏 정말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것에, 불확실한 것에만 매달리느라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자신이 가장 부족한 태도, 행동을 보였던 존재가 누구일까?

바로 가족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어머니였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자신의 뒷바라지를 했던 이들이건만, 그런 그들에게 지금까지 상처만 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아니, 이거 역시 불필요한 생각이야.’

아이른이 고개를 저었다.

10년 동안 방 안에만 틀어박혀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속을 썩였던 것.

이는 바꿀 수 없는 과거다. 아무리 후회하고 되돌아본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너무 먼 미래에 매몰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전의 일에 붙잡혀 있을 필요도 없다.

지금이라도 잘하자.

효도는커녕 불효로 점철됐던 나태공자 시절을 잊지는 말되, 그에 사로잡혀 끙끙대는 대신 현재에 집중하자.

생각을 마친 그가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마르쿠스.”

“예, 소영주님.”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예? 하지만, 소영주님께서는 이미 선물을 준비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음, 그냥 걱정돼서. 나랑 키릴이 나름 고민해서 고른 거긴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실 수도 있잖아?”

“…….”

“부모님의 곁에 가장 오래 있었던 건 우리가 아닌 마르쿠스니까, 혹시라도 더 괜찮은 생각이 있으면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도련님. 괜찮습니다.”

“응?”

“도련님은 이미 가장 큰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마르쿠스.

이를 본 아이른이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자신이 준비한 것은 아버지 몫의 고급 와인, 그리고 어머니 몫의 향수였다.

여유가 있다 보니 꽤 좋은 물건들을 준비한 것은 맞지만, 저런 극찬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무언가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던져진 말에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영주관이 소란스러운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서로를 쳐다본 아이른, 키릴 남매가 고개를 끄덕인 뒤 움직였다.

파팟

슈우욱-

오러, 그리고 요술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둘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온 파레이라 남작부부의 앞에서 멈추었다.

깜짝 놀란 하룬 파레이라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놀랐지만 이내 자애로운 표정을 짓는 아멜리아 파레이라.

그런 그들의 뒤로 오른 주크란을 비롯한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늘었네.’

자신이 얼마나 오래 가문을 떠나 있었는지를 새삼 느끼며.

거칠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쁨을, 후회를, 그 밖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천천히 예를 표했다.

입에서는 물리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잠시 감도는 정적.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고,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자식과 부모가 2년이라는 오랜 세월 만에 마주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너무나도 찬란한 현재.

허나 그러한 지금이 있기까지 아이른에게…… 파레이라 가족에게 드리웠던 그림자를 생각하면, 지금의 광경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부모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여독도 푸셔야 하고, 저도 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요. 그리고 또, 선물도 준비해 왔습니다. 그, 음.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아이른이 재차 입을 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횡설수설한 말투.

어쩔 수 없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말이라고 잘 정리될 리 없었다.

물론 상관없었다.

아들이 조금 부족한 모습은 보인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부모는 없다. 특히 파레이라 내외는 더욱 그렇다.

물론.

“아이른.”

“예, 아버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다.”

“…….”

“보여 줄 수 있겠느냐?”

기왕이면 잘나디잘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일 터.

하룬 파레이라의 말을 들은 아이른은, 직전에 들었던 마르쿠스의 말이 머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가장 큰 선물은, 나구나.’

그렇다.

부모님을 가장 크게, 가장 오래 괴롭혔던 것이 자신이라면.

부모님을 가장 즐겁게,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자신이다.

자신의 모습이, 예전보다 성장한 지금의 모습 자체가 바로 선물이었다.

그것을 비로소 깨달은 파레이라가의 나태공자.

……아니, 이제는 파레이라가의 자랑이 된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슈슉.

우우우우웅-!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황금빛의 대검.

그리고 거의 동시에 치솟아 오르는 황금빛의 기운.

오러 소드(Aura Sword)였다. 완벽한 오러 소드였다.

난생처음 소드마스터의 검을 마주한 기사들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

“어어…….”

“허, 어!”

“와…….”

최근에 영지에 들어온 기사도.

여행을 떠나기 전, 엑스퍼트 시절의 소영주를 알고 있는 기사도.

아주 예전부터 영주를 보필하던 오른 주크란 같은 기사도.

그야말로 모든 이들이 제대로 된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아이른을 모르는 사람도, 잘 알고 있던 사람도 하나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러 소드를 바라봤다.

하늘을 뚫을 듯 솟은 위대한 검날을 바라보았다.

하룬 파레이라는 아니었다.

아멜리아 파레이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은 검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마스터의 상징이자 위대함의 상징인 오러 소드,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

아들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둘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돌아왔습니다, 부모님.”

오랜 세월이 지나 나태공자라는 오명을 벗고, 소드마스터라는 영예와 함께 돌아온 젊은 영웅.

그 소식에, 남부 6 가문을 포함한 헤일 왕국 전체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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