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인정할 수밖에 (1)
“어…….”
일리아 린제이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표정을 굳혔다.
몽롱함은 완전히 날아갔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도 대충 파악됐다.
조슈아 린제이와의 대련 도중 정신을 잃었고, 그것을 본 일리아가 자신을 방까지 옮겨 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간호 역시 직접 하고 있던 것 같았다.
원래라면 굉장히 반갑고, 고마움을 표해야만 하는 순간.
허나 아이른은 싸늘한 분위기를 내뿜는 친구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자신이 이그넷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야말로 지금의 상황이 예전의 일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다.
헌데, 일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름을 불러도 하필 이그넷이라니. 다른 사람도 아니라…….’
물론 지금의 일리아는 예전의 일리아가 아니다.
이그넷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한다면, 그 역시 아니었다.
어찌 됐건 이그넷과는 평생 악연일 수밖에 없는 사이이지 않은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일리아가 재차 물었다.
“아이른.”
“으, 응.”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뭐, 뭘?”
“뭐긴, 지금 일어나면서 이그넷 이름을 불렀잖아.”
“……그랬었나?”
“그랬어.”
“그랬구나.”
“응.”
“…….”
“…….”
“…….”
“설명하라고. 왜 갑자기 이그넷 이름이 튀어나왔는지.”
후욱-!
일리아의 몸에서 사나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의 날 선 오러를 느낀 아이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뭐라도 말해야 했다.
어떻게든 일리아의 마음을 풀어야 했다.
이상한 점은, 그 역시 그녀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의 일은 그렇게까지 문제 될 게 없다.
딱히 거짓말이나 변명을 할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고, 오해를 풀면 그뿐.
일리아의 입장에서도, 라이벌이자 목표의 이름이 나와서 조금 당황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노려볼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은, 아이른 역시 그녀에게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어, 그러니까…….”
물론 아이른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센스 있는 변명거리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아이른은 아이른이었다. 결국, 그는 어째서 이그넷의 이름을 읊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진실하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된 거야.”
“…….”
일리아는 또다시 말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아이른은 기죽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어떻게 해야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풉.”
내내 정색하고 있던 일리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이른, 왜 그렇게 긴장해.”
“어, 응?”
“그냥 물어본 거야. 그렇잖아? 깨어나자마자 갑자기 이그넷 이름을 부르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물어본 건데, 왜 그렇게 굳어서 말해. 죄지은 사람처럼.”
“어…… 뭔가, 어……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기분이 안 좋기는. 아! 조금 그렇긴 했지. 웃는 얼굴로 인사해도 부족한데, 이렇게 기절한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더라고. 아빠는 도대체 왜 너한테만 그렇게 모질게 그러는지…….”
“아, 괜찮아. 다친 느낌은 아니야. 멀쩡해.”
아이른이 양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다행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일리아의 화가 풀린 느낌이어서 그게 더 좋았다.
사실 처음부터 화 따위는 나지 않았고, 자신을 놀리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이네. 아빠도 그럴 거라고 하긴 했지만, 혹시나 했거든.”
“응. 멀쩡해. 고마워, 걱정해 줘서.”
“그래.”
“응.”
“…….”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오해는 풀렸고, 일리아는 전과 달리 웃고 있었다.
헌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불편했다.
아이른의 이마에 땀이 살짝 맺혀갔다.
“……그래도 조심해. 괜찮아 보이지만, 혹시 과격하게 움직였다가 탈 나면 안 되니까. 적어도 하루는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야.”
“아, 응. 그럴게.”
“내 생각보다 빨리 오긴 했지만, 그래도 못 본 지 꽤 됐지?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긴 한데, 지금 손님들이 너무 많다 보니 나도 좀 바빠. 금방 갈 건 아니지?”
“어? 아, 응. 너만 괜찮으면…….”
“그래, 잘됐다. 그럼 쌓인 이야기는 연회가 끝난 뒤에, 가문이 조금 조용해진 다음에 하는 거로.”
싱긋, 다시 웃음을 건넨 일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른이 무의식적으로 친구를 쫓아가려 했다.
허나 그녀가 만류했다.
안정을 취하라는 말에 몸을 멈춘 그에게, 일리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약속, 지켜 줘서 정말 고마워.”
달칵
“……당연히 지켜야지.”
친구가 사라진 방안, 고요하게 있던 아이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엉망진창인 재회였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일리아의 웃는 모습을 떠올린 그 역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시각.
“……씨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일리아 린제이가, 조금 심술 난 표정을 지었다.
알고는 있다.
아이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애초에 아이른과 아무 사이도 아닌 자신이 그런 것에 화를 낼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짜증 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방을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더는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
의자에 앉아 있던 일리아 린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던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도회 날, 조금 꾸미고 나갈까.”
처음으로 느낀 질투심에,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았던 복장을 생각하는 일리아 린제이였다.
* * *
“미쳤어?”
“…….”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그넷 이름을…… 하아. 진짜 안 되겠네, 오빠.”
일리아가 떠난 이후, 당연하다는 듯이 키릴과 루루가 방에 들어왔다. 아이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보였다.
헌데 놀랍게도 키릴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일리아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물음이었다.
아이른은 시치미를 떼려고 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동생에게 보고할 정도로 큰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딱히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뭣보다 조금 민망했다.
허나 요술사의 무시무시한 감은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고, 결국 키릴의 집요한 질문 공세를 받은 아이른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낱낱이 토해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키릴의 분노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마냥 나쁜 상황은 아니긴 한데…….’
키릴이 자신의 오빠를 바라봤다.
착하고, 멋있고, 강한 사람.
하지만 이런 쪽에서는 답답하고 둔하다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사람.
그런 그가 조금이나마 자기감정을 깨닫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고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됐다.
지금만 해도 문제였다.
그는 일리아의 화가 완전히 풀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키릴이 볼 때는 아니었다. 여전히 속이 꽤 많이 상해 있을 터였다.
“오빠는 요술사면서 그런 것도 몰라?”
“…….”
“하아. 진짜 문제다, 문제.”
아이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정확하게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잔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다. 동생과 함께 일리아의 기분을 풀어줄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
“…….”
아이른이야 원래 이런 쪽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키릴 역시 연애에 있어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으나 썩 마음에 드는 생각은 나오지 않았다.
벅벅벅
그런 둘을 루루가 멍하니 쳐다보다가, 뒷발로 열심히 턱을 긁기 시작했다.
고양이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딱히 이번 일로 아이른과 일리아의 사이가 나빠질 거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렇기에 더 관심이 없었다.
“하음…… 음?”
쩌억 하품을 한 루루가 구석에서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열린 창문 밖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생선 굽는 냄새.
헌데 어떤 생선인지 도무지 모르겠는, 궁금하기 짝이 없는 냄새.
‘먹고 싶어!’
흥미가 동한 검은 고양이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풀쩍 뛰어 창문을 넘고, 날렵하게 나무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가고, 입맛을 다시며 지면을 달린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에는 낯익은 귀족 사내가 있었다.
씨익 미소를 짓는 빌 스탠튼을 보며 루루가 말했다.
“정원에서 불 피우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왜 존댓말 해?”
“바라는 게 있어서요. 아쉬운 쪽이 자세 낮춰야죠.”
“응? 바라는 거? 어, 근데 나도 바라는 거 있어!”
“뭐죠?”
“생선구이! 나도 먹게 해 줘!”
“조금 더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정원에서 불 피우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괜찮아. 몰래 피우면 되지.”
“그렇죠. 뭐가 됐든 안 들키면 잘못이 아닙니다.”
또다시 웃는 빌 스탠튼을 보며 루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흘러갔다.
다행히 그들을 만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생선이 전부 구워졌다.
루루가 침을 꿀꺽 삼켰다. 노릇노릇 구워진 모습이 식욕을 강하게 자극했다.
“뜨거우니 식혀 드십시오.”
“고마워! 후, 하, 후, 하, 어, 어어? 이거 엄청 맛있어!”
“하하, 그렇죠? 제가 요리를 꽤 합니다. 재료도 꽤 귀한 거라 처음 맛보실 테죠. 17살 때 가출해서 노숙 생활하다가 어부한테 조리법을 배웠습니다. 예전 생각나네요.”
“더 주라, 더 주라!”
“알겠습니다. 대신…….”
“대신?”
“제 부탁도 들어주시죠.”
“아, 맞다. 바라는 거 있다고 했지.”
고개를 끄덕인 루루가 허공에 손을 쑥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금은보화였다. 그것도 역사적 가치가 깊은 고대 왕국의 상징이 음각된 물건이었다.
“이거 줄게.”
“이런, 재물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 신기한 인간이네.”
루루가 빌 스탠튼을 쳐다봤다.
고양이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자주 재물을 쥐여주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거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이른 일행밖에 없었다.
때문에 흥미가 생겼다.
허나 생선구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잠시 고개를 숙인 루루가 재차 빌 스탠튼을 쳐다보며 물었다.
“원하는 게 뭔데?”
“별거 아닙니다.”
생선구이를 건넨 빌 스탠튼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른 파레이라 공과 친해지고 싶은데, 다리 좀 놔 주십시오.”
* * *
“뭐야? 루루, 이 인간 왜 데려왔어?”
“아, 맞다! 키릴하고는 사이 안 좋았지.”
루루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약속을 해 버렸으니까.
기막히게 맛있는 생선구이를 얻어먹었으니까.
키릴의 눈을 피한 고양이가 아이른에게 말했다.
“아이른, 이 사람이 너랑 친해지고 싶대.”
“아니, 루루! 이 사람 왜 데려왔…….”
“고민이 있으시죠?”
“무슨…….”
“루루 님께 들었습니다. 아이른 공께서 일리아 린제이 양께 사소한 실수를 했는데, 만회할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루루, 너 이 사람한테 그런 얘기까지 했어?”
“그, 어,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아이른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어!”
찔끔한 루루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고개만 살짝 내민 모습이 꽤 귀여웠지만, 키릴의 눈매는 여전히 매서웠다.
허나 언제까지 루루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른도 마찬가지였다.
두 남매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예의 바른 모습으로, 허나 어딘가 모르게 맛이 간 느낌으로 서 있는 빌 스탠튼을 바라보았다.
“스탠튼의 망나니라 불리는 저이지만, 그렇기에 사람과 화해하는 법을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사고를 치고 다녔으면서도 왕국에 발붙이고 사는 이유가, 가문에서 쫓겨나지 않고 붙어 있는 이유가 바로 제 처세술 덕분입니다. 실제로 제가 얼마나 많은 파멸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냐면…….”
“…….”
키릴이 황당한 얼굴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빌 스탠튼을 쳐다봤다.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마냥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럴듯한 이야기 몇 개가 귓속에 흘러들어왔다.
뭣보다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 와중이었기에,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흠.”
폭포수처럼 쏟아내던 말을 멈춘 빌 스탠튼.
그가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봤다.
첫인상과 달리 몹시 진중한 모습.
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쯤, 스탠튼 가 망나니의 입이 열렸다.
“이틀 후, 가주 님의 생신 잔치에서 무도회도 열립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려고, 매력을 더하기 위해 옷차림에 엄청나게 신경 쓰죠. 누군가는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말은 성격이 개차반이면 겉모습이라도 그럴듯한 게 낫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 물론 아이른 공의 성격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
“아이른 공, 이참에 조금 자신을 꾸며 보는 건 어떻습니까? 마주하는 순간 화가 눈 녹듯 사라질 정도로 상대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사소한 잘못 정도는 그냥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린제이 영애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키릴이 멍한 표정으로 빌 스탠튼을 쳐다봤다.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또 옷차림 지적이라고?
물론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긴 했지만, 첫인상이 워낙 미운 사람이 하는 말이다 보니 딴지를 걸고 싶었다.
“진짜 한결같은 사람이네. 지겹지도 않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의 일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미안한 것은 나의 무례한 언사일 뿐, 지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 됐고, 필요 없어요. 애초에 우리한테 달라붙는 이유가 뭐야?”
“친해지고 싶어서.”
“뭐?”
“장차 대륙의 미래를 책임질 천재 소드마스터와 천재 요술사 아닙니까. 영원히 안 좋은 인상으로 남는 것보다, 어떻게 작은 도움이라도 줘서 좋은 인연으로 남는 게 좋죠. 인맥이 재물보다 중요한 세상 아닙니까.”
“과하게 솔직한 거 아니야?”
“솔직한 게 나의 몇 안 되는 매력입니다.”
“하…….”
“괜히 어설픈 거짓말로 요술사 눈 밖에 나는 것보단, 그래도 이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준다면 대륙 서부에서 유행하는 스타일로, 아이른 공의 체형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제대로 꾸며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빌 스탠튼을 보며, 아이른이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귀족 사내는 자신과 일리아의 사이를 친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관계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 점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놀라운 부분은.
‘……내가 꾸미고 가면, 일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빌 스탠튼의 제안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좋아요.”
“오빠?”
키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루루도 놀란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대답할 줄 몰랐다는 반응.
사실 자신도 잘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잘 보이고 싶다.
조금 더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어렴풋이 차오르는 감정을 반쯤만 느낀 채, 아이른 파레이라가 재차 대답했다.
“멋있게 꾸며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