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감히 (5)
“음…….”
딸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조슈아 린제이가 신음을 흘렸다.
표정은 비슷했다. 원체 무뚝뚝한 성격의 그는 자기감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니까.
허나 가주와 꽤 오래 알고 지낸 요셉 관주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그가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동자가 많이 떨리는데?’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아직 두 소드마스터가 보여 준 대련의 감동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상태임에도 말이다.
물론 그런 그의 반응은, 일리아 린제이에게 있어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
지그시 자신의 아빠를 바라보고.
“…….”
시선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아이른 파레이라를 바라보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분위기에 잠시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무 무게도 없어야 할 공기가 갑작스레 무거워진 느낌.
마치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조슈아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가 뭔가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딸아. 그러니까, 이게…… 그, 너도 알지 않니? 평범한 대련이었다. 저 친구가 그간의 성과를 보여 주고 싶다 말했고, 나는 응했어. 그리고…… 서로 최선을 다했지.”
“…….”
“그러다 보니 조금, 아주 조금 과열됐을 뿐이야. 딱 그 정도다.”
“아이른이야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만, 아버지까지 최선을 다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허나 일리아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호칭도 아빠에서 아버지로 바뀌었다.
그것을 바로 파악한 조슈아는 어떻게든 딸의 마음을 풀기 위해,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니, 그,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아이른이 자기 실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자기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뜻이지. 선배 검사로서, 멘토로서, 그래, 그런 뜻이었다.”
“하늘검의 마지막 초식을 쓰신 거 아니었나요?”
“…….”
“…….”
“그, 너도 보면 알겠지만, 마지막에 힘을 많이 뺐다. 정신만 잃었을 뿐,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뭐냐, 그러니까…… 그래. 믿었다. 나는 아이른을 믿었어. 이 정도 공격은 충분히 받아 낼 수 있다는 신뢰가 있었고, 실제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맞아, 정말 대단하더구나. 그 짧은 시간 만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 몰랐어. 대단했다. 정말 훌륭했어. 진심이다.”
필사적으로 아이른을 칭찬하는 조슈아 린제이를 보며, 요셉 검술관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뚝뚝하고, 서늘한 인상에, 칭찬보다는 질책의 말을 더 많이 한다고 알려진 린제이 가의 가주.
그런 그가, 저런 말투로 저렇게 많은 칭찬을 쏟아 내다니.
물론 그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 준 아이른 파레이라이긴 하지만…….
‘뭔가…….’
‘방금 전이랑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
직전까지의 대련으로 인해 피가 들끓고, 흥분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검사들이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다 식어 버렸다.
물론 지금 상황이 재미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들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즐기기로 마음먹었고, 연극을 보는 관람객의 입장이 되어 조슈아와 일리아를 지켜봤다.
“이따가 따로 얘기하죠.”
하지만, 일리아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먼저 끊어 버렸다.
그녀의 지시를 받은 하인들이 정신을 잃은 아이른 파레이라를 조심스레 들것에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치료실을 향해 움직였다.
일리아 린제이는 그런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상태로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조슈아를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 눈빛을 한 채로.
“우리도 가자.”
“응! 괜찮겠지, 아이른?”
“당연히 괜찮지. 오빠 못 믿어?”
“믿지! 아이른은 최고야!”
키릴과 루루가 그 뒤를 따랐다.
그냥 떠난 것은 아니었다.
연무장을 벗어나기 전, 둘 다 잠시간 조슈아 린제이를 노려보았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만 했냐?’
마치 그렇게 물어보는 듯한 시선이어서, 가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흠. 흠흠. 이거 실례가 많았소.”
“…….”
“손님들 앞에서 다소 큰 소란을 일으킨 점, 가주로서 사과드리오. 그럼…… 나중에 봅시다. 아, 요셉 검술관주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빌, 자네는…… 아니, 아니다. 나중에 얘기하지. 지금 머리가 조금 아파서, 가서 쉬어야겠소. 모두 양해 부탁드리오.”
“예, 쉬십시오.”
“그래, 쉬게나.”
“들어가십시오.”
그리하여 소동의 주인공이었던 조슈아 린제이, 일리아 린제이, 아이른 파레이라가 모두 자리를 떴다.
연무장에는 손님들만이 휑뎅그렁하게 남아 서 있었고, 그런 그들을 향해 뒤늦게 달려온 하인들이 안내를 시작했다.
“숙소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요셉 관주를 비롯한 검술관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린제이 가문 측을 따라가는 사람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대련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엄청났지.’
‘그 청년이 소문의 아이른 파레이라였을 줄이야. 하긴, 생각해 보면 알아볼 만한 특징이 많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
가주의 초대를 받을 정도의 인물들이기에, 그들 역시 어디 가서 빠지는 실력이 절대 아니었다.
전원 엑스퍼트 이상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그런 그들로서도 오늘의 대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치 전설 속의 영웅들이 격돌한 느낌이랄까.
허나 그들보다 더욱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요셉 검술관주였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대부분이 젊은 소드마스터, 아이른 파레이라 쪽의 선전에 집중한 것과 달리.
그는 반대로 조슈아 린제이의 경지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아직도 눈에 선했다.
오러의 폭풍 속에 천천히 떠오르는.
드높은 창공 위에서 위엄 있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마치 하늘의 지배자처럼 위압적인 모습으로, 상대를 향해 쏘아져 내려가는 모습.
‘린제이 가주, 예순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시절의 열정과 투쟁심을 간직하고 있었구려.’
어떠한 고민도 없이,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갔던 시절이, 요셉에게도 있었다. 대륙 최고의 검사를 꿈꾸며 매일같이 고민하고, 움직이고, 노력했던 때 말이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율리우스 휼의 실력을 목도한 이후.
또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린제이 가주로부터 패배를 경험한 이후.
그의 불꽃은 점점 수그러들었다. 주변을 활활 불사를 것 같던 열정이 이제는 방안의 촛불만도 못한 크기까지 작아졌다.
하지만 조슈아 린제이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이 대륙 3강의 벽에 가로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똑같이 한계와 좌절감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하늘검의 마지막 초식은, 그렇듯 충실한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십년 후에는, 대륙 3강의 칭호가 4강으로 바뀔지도 모르겠어.’
린제이 가주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하며, 요셉 관주는 긴 침묵 속에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전보다 조금, 조금 더 뜨거워진 마음을 느끼면서.
“흠.”
“…….”
“허.”
“…….”
“하!”
“저기, 빌 스탠튼 경…….”
“아? 아직 있었나? 괜찮아, 괜찮아. 알아서 갈 터이니 나는 내버려 두고, 다들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일 봐, 일 봐.”
자신을 쳐다보는 주변인들에게 말을 건넨 빌 스탠튼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린제이 가의 하인은 마음 편히 떠날 수 없었지만, 호위들이 괜찮다고 말해 줬다.
자신들의 주인이 망나니이긴 했으나 쓰레기는 아니었다. 이런 일로 타박을 줄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의 빌 스탠튼은 그런 것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랫동안 숨을 참던 그가 하아, 감탄을 토해 내며 생각했다.
‘진짜 어마어마한 대련이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가주와 아이른의 검술 중 제대로 이해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무려 엑스퍼트의 최상위 수준에 오른 자신임에도 그랬다.
그들의 수준은 단순한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그 위의 아득한 경지에 닿아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얻은 것이 없느냐 하면, 그 역시 아니었다.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검사로서의 한계.
둘은 그것을 산산이 부숴 버렸고, 그와 동시에 빌 스탠튼의 안계도 넓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이득이었다.
“하하, 기분 좋은데?”
빌 스탠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만족스러운 구경이었고,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물론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는 선물처럼 다가온 오늘의 행운을, 아이른 일행과의 인연을 이대로 흘려보낼 생각이 절대로 없었다.
‘어떻게든 연을 이어 가야 하는데, 그래야 뭐라도 얻어먹을 기회가 생기는데…….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게 문제란 말이지.’
빌 스탠튼이 인상을 찡그렸다.
또다시 고백 공격으로 협박한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억지로 이어 가는 관계가 아니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터였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른, 키릴, 그리고 검은 고양이.
셋 중 가장 공략하기 쉬운 대상을 떠올린 그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다시 웃음을 흘렸다.
“이거면…… 괜찮을지도? 흐흐, 흐흠흠…… 후후후후.”
“…….”
“…….”
웃다가, 짜증 내다가, 또다시 웃는다.
허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곁에 남은 호위들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이 정도로 반응을 보이기에는, 그간 빌 스탠튼이 벌였던 사건 사고가 너무 많았다.
* * *
“…….”
아이른 파레이라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허나 문제는 전혀 없었다.
깊게 가라앉은 의식 속에서, 그의 사고는 오로지 직전에 일어났던 가주와의 대련 쪽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하늘검의 위력.
그에 맞서는 자신의 검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족했다.
‘어떻게 대처했어야 그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을까?’
더 강한 힘?
새로운 기술?
잠시 그런 것들이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아이른이 생각했다.
이미 차고 넘친다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부족한 것은 자신일 뿐, 자신이 보유한 것들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나씩 되짚어 보자.’
그가 과거를 반추했다.
예비 수련생 시절부터 가주와의 대련까지. 길고 긴 세월 동안 자신이 연마하고, 익히고, 사용해 왔던 기술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오러 6개념.
오행신공.
마음의 검.
신성 왕국의 검.
그 밖에 자신이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더욱 꼼꼼히 점검해 나갔다.
더 매끄럽게 펼칠 수 있도록. 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물론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곳은 온전히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요술세계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우연한 기절 상태에서 찾아온 잠깐의 휴식일 뿐이었으니까.
‘맞다. 나 정신을 잃었었구나. 그런데 왜?’
문득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아이른.
허나 아직은 비몽사몽이었다.
명료하게 검에 대해 짚어나가던 직전과 달리, 지금의 그는 모든 것이 두루뭉술했다. 정신과 사고에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했다.
이그넷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그래서였다.
자신을 처음으로 기절시킨 사람.
지금과 몹시 비슷한 상황.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을 상기한 아이른이,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이름을 읊었다.
“이그넷…….”
“이그넷?”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놀랍게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뜬 아이른 파레이라가 옆을 바라봤다.
그러자 웃는 얼굴로.
허나 왠지 모르게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리아 린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재차 말했다.
“이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