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42화 (242/388)

◈ 81. 감히 (4)

“…….”

맙소사.

요셉 관주의 말만큼 지금의 상황을 잘 표현한 단어는 없었다.

조슈아 린제이가 누구인가?

대륙 서부의 5대 검술명가 가주들 중 가장 젊으면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강자 중의 강자다.

헌데, 그런 이의 검을 수십 합이나 받아 내고 있다.

그것도 고작해야 스무 살을 갓 넘은 젊은 청년이!

“관주님.”

“……말해라.”

“저 청년…… 아이른 파레이라 공의 실력이, 저 정도였습니까?”

“……하하.”

요셉 관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았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물론 1년 전의 아이른도 대단했지만, 당시의 그는 잘 쳐줘 봐야 소드마스터의 초입에 가까스로 등반했을 뿐.

일리아 린제이를 이겼던 것은 사실상 운과 근성이 더해진 결과라고,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오러 소드의 밀도는 말도 안 되게 높아졌고.

운용의 매끄러움에서도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 밖의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검술을 이루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미친 듯한 성장을 보여 줬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구만.”

경악하는 요셉 관주의 옆에서, 다른 이들 역시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그들의 머릿속에 있던 ‘천재’들이 모조리 지워졌다.

바로 아이른 파레이라라는 찬란한 이름 앞에서 말이다.

“…….”

허나 그들보다 더 크게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조슈아 린제이였다.

아이른을 처음 보는, 혹은 꽤 오랫동안 못 봤던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이 황당한 청년을 불과 3개월 전에 봤다.

물론 그때도 대단하긴 했다.

대륙 최고의 천재라 생각했던 자신의 딸조차 한 수 접어 주는 실력을 갖췄으니, 그의 노력과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때의 아이른조차.’

지금의 아이른에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단순히 검술의 성장, 오러의 성장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 말한 대로다.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어.’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다 알려져 있는 이안 관주처럼, 혹은 퀸시 마이어스처럼 보는 순간 파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검을 나눌수록 느껴졌다.

녀석이 이그넷의 그늘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페이스를 찾았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열의.

허나 그것이 조급함으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뜨거운 불길을 조절해 주는 침착함.

그 또한 과하지 않아, 자신의 앞에서도 일절 겁먹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방금의 한 수였다.

조슈아 린제이는 자신도 모르게 칭찬의 말을 내뱉을 뻔했다.

“……완성된 기술이 아니군.”

가주는 솔직하지 못했다.

곧이곧대로 상대방을 칭찬하기에는, 아직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아픔이 전부 가시지 않았다.

그가 3개월 전을 떠올렸다.

딸을 위해 꽤, 정말 괜찮은 조언을 해 줬다고 생각한 그날.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는 그녀를 몰래 따라가다 목격했던…… 정겹게 검을 나누던 그 광경!

순간적으로 조슈아 린제이의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반대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 갔다.

“공격까지의 흐름은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처가 엉망이다. 설마 일격에 날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후속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격돌 후의 균형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순간만을 모면하려 하니 스무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

‘평가가 너무…… 박한데?’

‘원래도 그런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요셉 검술관의 검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5대 검술명가의 수장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마땅하건만, 지금 조슈아 린제이의 질책은 너무한 구석이 있었다.

아이른이 가주에게 사적으로 밉보인 일이라도 있나 의심될 정도.

허나 금발의 청년은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흠.”

‘이래서 더 싫어.’

조슈아가 조용히 생각했다.

정말이지 바르고 선한 녀석이다.

그래서 더 싫었다. 책잡을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게 맞지만,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한숨과 함께 잡념을 털어 버린 가주가 재차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더욱 진해지는 은빛 오러.

이를 보고 다시 자세를 잡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향해, 그가 나직이 말했다.

“시간을 주마.”

“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충분한 여유 시간을 줬을 때의 네가 내는 일격은…… 차원이 다르다고.”

“음.”

아이른이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퀸시 마이어스에게 뭔가 들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실전에서는 쓸 수 없는, 허나 충분한 준비 시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발휘할 수 있는 일격필살의 공격.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그런 쪽으로는 자신 있었지.’

그가 과거에 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크로노 검술관에서 최종 평가를 치렀을 때가 생각났고.

5년 만에 이안 관주를 찾아가 참격을 날렸을 때가 생각났다.

제트 프로스트의 항복을 받아 냈던 때도 생각났다.

소드마스터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퀸시 마이어스의 앞에서 시험을 치렀을 때도, 쿤과 지도 대련을 치렀을 때도. 자신은 최선의 한 수를 통해 그들의 인정을 받아 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조슈아 린제이가 말했듯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지금의 자신은 지금껏 선보였던 어떤 일격보다도 위력적이고, 파괴적인 검술을 선보일 수 있다.

자신감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대륙이 자랑하는 3대 검사인 이안, 쿤, 율리우스 휼…… 그리고 퀸시 마이어스.

이들을 압도하진 못하더라도.

그 외의 강자들을 상대로는, 충분한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그러한 감정이 젊은 영웅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매우 도발적인 눈이군.”

“…….”

“나쁘지 않다. 솔직히 말하마. 꽤 마음에 드는 눈빛이야.”

“꽤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알아서 할 테니 준비나 해라.”

“예.”

아이른이 짧게 대답했고, 눈을 감았다.

오감에서 가장 중요한 시각을 제한하다니, 실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평소라면 꿈도 꿀 수 없는…… 힘의 결집.

그야말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고, 완성하여, 쏟아 내는 것.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일격을 가하는 것!’

우우우우웅-!

생각을 마친 직후, 아이른의 검에 덮인 오러 소드가 더욱 크게 치솟았다.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쌓아 올린 기운을 기반으로 한 강화, 경화, 집중, 발현.

두르칼리에서 얻은 오행신공의 금속(金), 불꽃(火), 물(水), 세 가지 기운.

거기에 이그넷으로부터 배운 마음의 힘이 더해지고, 정화단에게서 전수 받은 신성왕국의 검술이 추가됐다.

이 모든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끔찍한 난도를 자랑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 개화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진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웅……!

대기가 흔들렸다.

착각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요셉의 검사들은 그렇게 느꼈다.

계속해서 찬란함을 더해 가는 아이른의 검을 보면서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아이른이 집중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한 명.

대륙 10대 검사의 1인, 조슈아 린제이.

‘제가 준비할 시간을 주신 걸…… 조금 후회하셔도,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번쩍-!

비로소 아이른의 눈이 떠지고, 강렬한 시선이 린제이 가의 가주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그것은 후배가 선배에게 자신의 힘을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닌.

검사 대 검사로서 상대를 꺾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눈빛!

……하지만.

“……!”

하늘에 떠 있는 조슈아 린제이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었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를 똑똑히 느끼게 되었다.

후웅-

후우웅-

후웅, 후우우우우웅-!

태풍이 몰아친다.

아니, 태풍보다 더욱 두려운 오러의 폭풍이 몰아친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연무장에 가득 들어찬다.

아이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피부를 뜯어 버릴 듯한 광풍.

그 위에 군림한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조슈아 린제이의 모습은, 마치 400년 전에 마룡왕의 목을 내리쳤던 디온 린제이가 재림한 듯 위압적이었다.

‘하늘의…… 검.’

“아이른.”

가주의 입이 열렸다.

아이른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뇌가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쏘아지며, 조슈아 린제이가 말했다.

“믿는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짓쳐 든 가주와 검을 맞댄 순간.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고막이 터질 듯 커다란 굉음이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헙!”

“……!”

휘리릭-!

우우웅-!

즈으으응-!

강력한 충격파.

빌 스탠튼을 포함한 대부분의 검사는 이에 반응하지 못했다.

허나 다행이었다. 재빨리 검을 꺼낸 요셉 관주가 세 번의 검격으로 모두를 지켜 냈다.

루루와 키릴 역시 요술 결계와 요술 방패를 불러내 충격을 막아 냈다.

투둑.

투두둑.

돌가루가 흩날렸다. 그보다 큰 돌조각들이 우박처럼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요셉 관주는 그것까지 막아 주지는 않았다. 몇몇 검사들의 머리에 파편이 부딪혔다.

그러나 이에 앓는 소리를 내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역사책에서나 나올 법한, 신화적인 싸움.

그 끝에 우뚝 서 있는 조슈아 린제이를 보며,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조금 너무했나?’

가주는 살짝 후회했다.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끝을 모르고 강해지는 아이른의 기운을 보다 보니, 웬만한 방법으로는 받아 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미숙한 하늘검의 최후초식을 꺼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여유 시간 동안 힘을 집중한 것은 아이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뭐…… 마지막에 힘을 많이 죽였으니, 괜찮겠지.’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긴 했지만, 그뿐이다.

마지막 순간 부드러운 바람으로 받아 낸 덕분에, 아이른의 육신에는 작은 상처조차 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미안한 마음에 가슴 한편이 살짝 무거워졌다.

“뭐, 이 정도로 봐줄까.”

가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평생 가지고 갈 생각이었던 3개월 전의 아픔을, 이번 기회에 용서해 준다면.

그렇다면 녀석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이지 않을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한 조슈아가 검을 거뒀다.

그리고 살짝 개운해진 얼굴로 하늘을 바라볼 때였다.

“아빠.”

흠칫.

익숙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가주가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주인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딸.”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조슈아 린제이의 시선이 닿는 곳.

그곳에는 그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 일리아 린제이가 서 있었다.

대륙 북쪽의 칼바람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한 채 말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