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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37화 (237/388)

◈ 80. 증명의 시간 (4)

“어디 좀 가자.”

루루, 키릴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아이른 파레이라의 앞에 갑자기 브랫 로이드가 나타났다.

표정에서 적지 않은 흥분이 엿보였다.

아이른은 이것저것 따져 묻지 않고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키릴도 평소와 분위기가 다른 것을 느끼고 별다른 딴지 걸지 않고 둘을 보내 줬다.

그런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퀸시 마이어스를 포함한 정화단의 멤버 5인.

빙글빙글 웃는 모습으로 전원 검을 빼 들고 있었는데, 아이른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토벌대장이 입을 열었다.

“신성왕국의 검술을 배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

“그렇게 말해서야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그냥 노인네 다섯이, 후배에게 각자의 검술을 보여 주는 정도……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해라. 너도, 옆의 너도 마스터까지 오른 이상 너희들의 스타일이 있을 테니, 억지로 따라가려 할 필요는 없지. 참고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그뿐이다.”

이제야 상대의 의도를 깨달은 아이른이 멍한 표정으로 브랫을 쳐다봤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숨기더니,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성왕국의 성기사가, 자기들 검술을 외부인에게 알려 줬던 적이 있었나?’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흔치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다.

아이른은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에 대한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자기 주변의 인연들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토벌대의 합류를 거절했던 이유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 기간에 일절 검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좋은 아들이 되고,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검사가 되는 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오히려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검에 매진할 필요가 있지.’

아이른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희열이 걸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의 그는 누구보다 열정 넘치는 검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짧게 대답하는 아이른, 브랫을 보며 퀸시 마이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우웅, 백색의 오러 소드를 뽑아낸 그가 입을 열었다.

“신성왕국의 성기사들은 다른 왕국의 검사들에 비해 오러의 총량이 많다.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브랫 로이드가 대답했다.

정확히는 오러의 총량이 많다기보단, 신성력도 오러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검술 수준이 비슷한 경우에는 아빌리우스의 기사들이 유리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다만.

“그러한 장점은 엑스퍼트일 때도 충분히 발휘되지만, 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올랐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 지금부터 나와 정화단의 기사들이 알려 줄 검술은, 전부 오러 소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고안된 검술들이다.”

“예?”

브랫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소드마스터가 최소 조건인 검술이 있다고?

그리고 지금 그걸 가르쳐 준다고?

충격을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즈으으으응, 아까보다 더욱 진한 검명(劍鳴)과 함께 퀸시 마이어스의 오러 소드가 검극에 집중되었다.

광대 악마의 던전에서 이그넷이 보였던 것과 흡사한 광경.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아이른이 침을 꿀꺽 삼키는데, 퀸시 마이어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소화할 수 없다면, 머리에 담아 두기라도 하도록.”

* * *

신성왕국의 검술은 명불허전이었다.

마스터의 경지가 최소 조건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들의 가르침 하나하나가 오러 소드를 뽑을 수 없다면 시도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검날에 뒤덮인 오러 소드를 또 한 번 응축시켜 구슬의 형태로 만들고, 쏘아 낸다.

그것조차 말도 안 될 정도로 고난도인데, 거기에 속도를 더한다거나, 폭발의 묘리를 더한다거나, 날아가는 궤적에 변화를 준다거나 하는 것은 아이른조차도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단순히 오러를 흩뿌리는 수준이 아니라, 오러 소드에 버금갈 만큼 밀도 높은 기운을 흩뿌리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소모되는 오러가 무지막지하게 많아! 총량도 총량이지만, 기운을 다루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낭비가 생긴다면 몇 번만 사용해도 탈진하겠어.’

이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검을 회전하여 오러의 장막을 펼치는 방어술의 경우는, 진짜 두 번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점도, 선도 아닌 넓은 면을 전부 밀도 높은 오러로 채워야 한다니. 그야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변주를 주느냐에 따라 싸움의 국면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으므로, 마냥 낭비가 심한 검술이라고 깎아 내릴 수도 없었다.

아이른은 어느새 신성왕국식 오러 운용과 검술 운용에 푹 빠져 검을 휘두르게 되었다.

물론 노기사들만큼 오러가 넘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휴식이 잦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억, 헉, 허억…….”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브랫 로이드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그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나 몸에 좋은 영약도 많이 먹었던 그였지만, 그렇다고 한들 평균적인 소드마스터에 비해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검막은 시도조차 못 하고, 검 끝에 오러를 집중하는 것조차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이어 간다.

하지만 끝끝내 성공하지는 못한다. 비교적 수월하게 성공한 자신의 옆이기에 더 예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른의 눈빛에 염려가 담겼다.

그런 그에게 브랫이 말했다.

“견제의 눈빛은 접어 둬라.”

“응?”

“나는 대륙에서 세 번째로 빠른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된 남자. 너보다 무려 1년이나 빠른 페이스지.”

“…….”

“그런 내가 신성왕국의 검술까지 빠른 속도로 소화해 내고 있으니, 신경 쓰이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후후후.”

“…….”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런 쪽으로는 자신보다 훨씬 정신력이 강했던 브랫 로이드였기 때문이다.

피식 웃음을 흘린 아이른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옆에 브랫도 따라 앉았다.

정화단의 멤버들은 가르침을 끝낸 뒤 숙소로 돌아간 차.

둘밖에 없는 드넓은 연무장에서, 아이른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참 운이 좋네.”

“뭐가.”

“그렇지 않아? 남들은 한 번 찾아오기도 힘든 기회가 이렇게 많이…….”

정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기연을 얻어 왔다.

대륙의 모든 아이들이 꿈꾸는 크로노 검술관에 입관하고.

폐쇄적이기 그지없는 두르칼리 부족으로부터 오행신공을 배웠다.

대륙 최고의 천재 이그넷에게 직접 마음의 검을 배웠으며,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신성왕국의 고급 오러 운용을 사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운이 좋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나날이었다.

허나 브랫의 생각은 달랐다.

잠자코 아이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 다르다.”

“어?”

“운이 좋아서 그렇게 많은 운이 쏟아진 게 아니야. 너도, 나도, 일리아도, 그리고 주디스도…… 그럴 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거다.”

“…….”

“지금껏 네게 가르침을 줬던 사람들이 인심이 좋아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하나? 아이른, 그렇지 않다. 너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브랫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른이 별것 아닌 재능의 소유자였다면.

아이른이 불철주야 노력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아이른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선한 인성을 품고 있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들이 선뜻 가르침을 베풀었을까?

그리고 이는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처음 퀸시 마이어스의 검술을 봤을 때는 황당함을 넘어 짜증이 솟구쳤다.

배우기는커녕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조차 힘든 수법을, 이제 갓 마스터에 오른 자신에게 왜 보여 준단 말인가?

자신을 놀리는 건가?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는 믿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자신이 충분히 이를 소화해 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나아가, 그로 인한 힘을 허튼 곳에 쓰지 않을 인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조금 더 당당해도 된다. 우리는 그래도 돼. 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잘나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자.”

“…….”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르침을 준 선배들께 감사하지 않은 건 아니지. 하지만 그도 문제 될 건 없다. 받은 만큼 베풀면 되니까.”

“맞는 말이야. 내일이라도 성기사분들께 감사를…….”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잠시 아이른을 쳐다본 브랫이, 위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선배 기사분들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베푸는 쪽이, 그분들도 더 흡족해하실 것 같군.”

“…….”

“나 나름대로는, 그게 나의…… 아니, 우리들의 의무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이른은 왠지 모르게 브랫의 예비 수련생 시절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브랫도 지금과 비슷했다. 다소 오만한 느낌이긴 했지만, 자신의 권력이나 위치를 통해 강압하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권리보다는 의무에 더 신경 쓰는 면모를 보였던 기억이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계급과 태생에 집착하고, 그로 인한 편견을 내비쳤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주디스랑 사귀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네 말이 맞아.”

“나도 안다. 나는 항상 옳은 말만 하지.”

아이른이 웃으며 대답했고, 브랫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꽤 오래 대화가 없었다.

허나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잠깐의 침묵으로 분위기가 어색해지기엔, 둘이 쌓아온 친분이 두텁고 깊었으니까.

“후우,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해 볼까.”

“그럼 나도…….”

어느새 기운을 차린 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독하기 그지없는 퀸시 마이어스의 검술에 연달아 도전했다.

쉽지 않았다.

아이른조차 자주 실패했고, 브랫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어선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바닥에 엉덩이를 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좌절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두 검사는 오래도록 연무장을 떠나지 않았다.

* * *

아이른과 브랫이 한창 검술 수련에 열을 올릴 시점.

랜스 페터슨은 영지의 한적한 술집에서 홀로 독주를 마시고 있었다.

열등감에 먹히지 마라.

열등감을 잡아먹고 성장해라.

크로노의 부관주 케이라 핀의 말을 계속해서 되뇌지만, 위안이 되진 않았다.

그의 얼굴에 어둠이 가득했다.

마음에도 어둠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주점의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주시했다.

신성왕국의 기사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한.

끔찍하기 그지없던 광대 악마보다도 깊고 어두운, 집요한 무언가.

그것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랜스 페터슨을 향해 다가가던 순간이었다.

드르륵

털썩

“……?”

“합석해도 되겠나?”

랜스가 무뚝뚝한 얼굴로 낯선 상대를 쳐다봤다.

짙은 녹색 피부에 커다란 덩치. 얼굴의 반쪽을 가득 덮은 문신.

오크였다.

인간의 언어에 능숙한 것을 보니 아마 점술사일 터였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점술에 관심 없습니다.”

“나는 점술사가 아니야. 오크 상담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어.”

“……?”

랜스 페터슨의 눈빛에 귀찮음과 약간의 호기심이 깃들 무렵.

거리를 좁혀 오던 어둠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심스레 둘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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