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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32화 (232/388)

◈ 79. 다녀오겠습니다 (2)

슈우우욱-!

창공을 나는 전설의 동물 그리핀.

그 위에는 아이른 파레이라와 루루, 키릴, 브랫, 랜스, 그리고 필립 로이드 영주가 타고 있었다.

표정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영지 북동쪽의 숲에서 마기가 느껴진다는 아이른의 말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못 믿을 말이지만…….’

브랫 로이드가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다.

소드마스터의 날카로운 감각.

그리고 요술사의 신비로운 직감을 함께 품고 있는 아이른의 말이라면,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도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데.’

그가 주변을 살폈다.

말을 꺼낸 아이른뿐만이 아니라 키릴과 루루, 랜스 역시 몹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세 번의 마인 토벌 경험이 있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브랫은 이해가 안 갔다.

물론 영지 근처에 마인이 출현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몬스터보다 훨씬 악랄하고, 위험하고, 교활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니까.

하지만, 자신들의 전력이 어떠한가.

대륙에 100명밖에 없는 소드마스터.

대륙에서 손꼽히는 고양이 요술사.

정확한 능력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아래가 아닐 것 같다고 느껴지는 세자르 공국의 유망주.

그리고 엑스퍼트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는 자신까지.

‘심지어 랜스도 부족한 전력이 아니야. 아직 졸업시험을 통과하진 못했지만, 실력만 따지고 봤을 때는 엑스퍼트라 불려도 손색이 없으니까.’

브랫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떠올렸다.

역시 걱정할 필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마인을 떠올려 봐도 이 전력을 감당할 순 없었다.

아마 자신 혼자서도 충분히 토벌이 가능할 터였다.

후딱 끝내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드려,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드리자.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들아.”

“예, 아버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어디 가서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

“자네들도 마찬가지.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더없이 심각한 필립 로이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그의 말이 이어졌다.

“몇 달 전, 대륙에 다시 악마가 나타났다네.”

“……!”

“……!”

“아주 강력한 악마였다고 하는군. 400년 전의 마룡왕에 준할 정도로…… 문제는, 녀석 말고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악마가…… 마계로 돌아가지 않고 숨어 있다는 사실일세.”

로이드 영주가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에 자신이 왕궁으로 향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초강대국 아빌리우스조차도 홀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넓게 퍼져 있는 악마들.

결국, 신성왕국의 성기사들은 비밀을 유지하는 대신 각국 최고위층에게 정보를 푸는 선택을 했다.

최대한의 협조를 바란다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그가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찰랑거리는 푸른색의 액체.

성수였다. 그것도 최고위 사제의 힘이 담긴.

모두에게 이를 보여 준 필립 로이드가 말을 이어 갔다.

“악마 소굴의 마기가 얼마나 짙은지를 파악할 수 있는 물건이네. 붉은색까진 괜찮아. 붉은색도 아주 강력한 마인이지만, 마스터가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지.”

“…….”

“하지만 붉은색을 넘어 검붉은, 혹은 검은색으로 액체가 변한다면…… 곧바로 방향을 틀어 신성왕국으로 향해야 하네. 우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야.”

침묵이 이어졌다.

랜스 페터슨은 갑작스러운 악마 발호 소식에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였고, 침착한 성정의 브랫 로이드마저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머지는 전과 비슷했다.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나 그뿐이었다. 더 긴장한다거나, 무언가를 묻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뭔가 묘한 느낌을 받은 로이드 영주가 의문을 품었다.

‘……이상하게 침착하군.’

160년 만에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니 용기 있는 기사라 할지라도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려야 정상이다.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허나 아이른과 키릴, 루루는 묘하게 침착했다.

‘아니면,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인가.’

잠시 그들을 살펴보던 로이드 영주가 한숨을 쉬었다.

남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자기 마음을 추스를 여유조차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키릴의 그리핀은 이윽고 아이른이 말한 지점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살짝 떨어진 장소였다.

혹시라도 아이른이 느낀 기운이 악마의 것이라면, 그 존재가 소굴 밖으로 튀어나와 자신들을 습격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기도 했다.

검붉은색.

아니, 검은 액체에 붉은 잉크 조금을 섞은 것처럼 변한 성수를 보며, 필립 로이드가 회군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른 군, 지금 뭐라고 했나?”

“처치하고 오겠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 듣지 못했나?”

로이드 영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른을 쳐다봤다.

허나 젊은 소드마스터는 당당했다.

심지어 직전까지 엿보였던 어두운 표정도, 긴장한 기색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조차 편안해질 정도로 차분한…….

아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말재주가 없는 터라, 조리 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아이른이 로이드 영주를 응시했다.

호수처럼 푸르고 깊은.

그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눈동자로부터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저곳에 도사린 악마를 꺾을 자신은, 차고 넘칩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이른 역시 잔뜩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숨김없이 드러난 악의.

일전에 느꼈던 것과 흡사한 기운.

그것을 통해 유추했다. 광대 악마가 힘을 되찾고,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허나 아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확신이 들었다.

광대 악마가 아니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무언가일지언정,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물론 약한 악마라고 해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건 맞지만…….’

아이른이 주먹을 쥐었다.

발에 힘을 주었다.

그 밖에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육신의 모든 곳을 점검했다. 오러 역시 점검했다.

마지막으로 마음가짐까지 돌아본 순간, 또 한 번 확신이 샘솟았다.

이길 수 있다고.

저 정도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그것이 그가 로이드 영주 앞에 당당한 이유였다.

“신성왕국에 소식을 전하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

“정신 차려!”

로이드 영주가 낮게, 그러나 힘이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표정 역시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재차 말했다.

“아이른 군, 자네가 대륙에 몇 없는 천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네. 하지만 악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야. 가문에 전해진, 왕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기록을 접한 내 판단을 믿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야.”

필립 로이드의 만류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때로는 협박에 가까운 압박으로.

때로는 애원에 가까운 부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말을, 아이른은 끊지 않았다.

허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에도 그의 뜻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른 군, 자네 정녕…….”

“광대 가면.”

“……!”

“몇 달 전에 출현한 악마의 특징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

로이드 영주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살짝 입까지 벌린 채.

그리고 잠시 후.

충격적인 사실을 파악한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 어, 그러니까…….”

“예. 맞습니다.”

슈욱-

우우우웅-!

아이른 파레이라가 대검을 소환했다.

황금의 검신.

그 위에 덧씌워지는 황금빛 오러.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기운 속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대 악마의 퇴치에 힘을 보탰습니다.”

우우우우우우웅-!

직후, 아이른의 오러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누구도 거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루루, 키릴, 브랫, 랜스, 필립 로이드.

마지막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본 영웅이, 낮게 말했다.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

“맹세합니다.”

* * *

슈우우욱-!

신성왕국으로 향하는 키릴의 그리핀, 그 위에는 로이드 영주와 랜스 페터슨만이 타고 있었다.

브랫 로이드와 키릴 파레이라, 루루는 아이른을 따라 악마의 소굴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요술소녀로 변신하면 나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요술 결계 때도, 마인 토벌 때도, 알칸트라에서도 오빠 혼자만 보냈어. 이번에는 안 돼. 나도 따라갈 거야.’

‘나도 마찬가지다. 로이드의 소영주로서, 네게만 모든 일을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른, 네가 생각하기에 나…… 그리고 키릴 양이 함께하는 게 크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거절해도 좋다.’

‘…….’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나는 고집을 부리고 싶다.’

‘아이른, 같이 가자. 혼자서는 공략하기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어.’

루루의 마지막 말을 들은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하여 넷은 어두운 동굴의 안으로 발을 들이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떠나가는 순간까지도, 랜스는 도저히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랜스. 아버지의 호위를 부탁한다.’

브랫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그것이 진의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핀의 위에 있는 필립 로이드를 그 누가 습격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없더라도 영주는 무사히 이 소식을 신성왕국에 전할 수 있을 터였다.

꽈악-!

랜스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그는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큰 실망감이, 쓰라린 좌절감이 그의 전신에 엄습했다.

“…….”

그런 랜스 페터슨을, 로이드 영주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

“지겹다.”

동굴의 가장 안쪽.

잠에서 깨어난 지 한 달째가 된 악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는 모른다.

예전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몹시 재수 없는 누군가에게 농락당했었다는 기억은 어렴풋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석상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악마가 또다시 중얼거렸다.

“못 참겠다.”

동굴 안을 미궁으로 만든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낚인 인간은 고작 세 명.

그나마도 사흘 전부터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석상 악마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그 무엇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인간의 두려움을 맛보고 싶다.

길을 잃고 헤매며 울부짖는, 공포에 떨고 배고픔에 떨고 어둠에 떠는 인간들을 더 많이, 더더욱 많이 지켜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했다.

지금처럼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납치를 하든 협박을 하든 자신의 미궁으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자신의 영토에 발을 들이민 세 인간, 그리고 한 마리의 고양이.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들의 출현에 석상 악마가 뛸 듯이 기뻐했다.

“좋아, 좋아!”

쿵- 쿠웅-!

좋아 죽겠다는 듯 발을 구른 그가 마경(魔鏡) 앞에 자리했다. 더욱 자세히 이방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녀석들은 어떨까?

어떤 모습을.

어떤 두려움을.

어떤 죽음을 보여 줄까?

석상 악마의 무채색 눈에 검은 기운이 차올랐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도 적지 않은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 표정이 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콰아앙-!

“으음?”

처음에는 그저 멍했다.

막다른 길에 헤매지 않고, 벽을 부숴 버리는 금발의 인간을 보고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콰앙!

허나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벌어지고.

콰아앙!

또다시 벌어지고.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계속해서, 끊임없이 벌어졌을 때.

그리하여 자신이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녀석들이 도착했을 때.

석상 악마는 부글부글 끓는 화를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쿠구구구구국-!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괴성과 함께, 그의 몸이 거대해졌다.

매끈하던 피부에 균열이 생겼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생겨난 틈에 지옥의 용암이 시뻘겋게 흘렀다.

어떻게 죽여 줄까.

어떻게 부숴 줘야 지금의 화가 풀릴 것인가.

그러한 감정은, 금발의 인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우우우우우우웅-!

자신이 뿜어내는 마기(魔氣)보다도 더욱 강렬한 기운.

이에 당황한 석상 악마가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아이른 파레이라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아앙!

바위가 박살 났다. 돌 파편이 살점처럼 사방으로 쏘아졌다.

용암 몇 방울이 피부를 스쳤다.

신경 쓰지 않았다.

또 한 번의 풀스윙.

아이른 파레이라의 두 번째 검이 악마를 향해 내리꽂혔다.

쩌어어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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