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우리 모두 늙었다 (1)
대륙 중부 최고의 검술 도시 알칸트라의 서북쪽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어종이 다양하고 몬스터는 없는 곳이다 보니, 낚시를 하러 나오는 사람도 꽤 많았다.
최근엔 더 그랬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의 날씨를 즐기며, 귀족 혹은 부유한 상인들이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허나 그들의 여가생활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첨벙첨벙
“우와! 재밌다! 키릴, 이거 봐! 나 지금 물고기 잡았어!”
“그래? 진짜네.”
바로 고양이 요술사 루루였다.
대륙 동부의 해안가에서도 생활한 적 있는 그였지만, 이미 꽤 오래전의 일이다.
게다가 소금기 있는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찝찝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다.
지금처럼 맑고 깊은 호수가 훨씬 취향이었다.
키릴 파레이라가 만들어 준 튜브를 몸에 두른 루루는 요란하게 물을 튀기며 호수를 쏘다녔고, 가끔은 잠수를 하며 직접 물고기를 낚아채기도 했다.
당연히 낚시를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정말로 신기한 것을 봤다는 듯, 눈이 동그래져 말을 거는 낚시꾼들만 있었다.
“아니, 이보게! 저 고양이 좀 보라고!”
“허어! 이럴수가.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이제 알겠군. 최근에 말하는 고양이 요술사가 대륙을 떠돈다고 하더니, 소문의 고양이가 저 고양이인 모양이야.”
“고양이가 물을 좋아하다니, 신기하구먼.”
“하하, 나는 인간들이 좋아하는 물 속성 고양이라구!”
자신을 향한 말을 주워들은 루루가 튜브 위에 당당히 서서 외쳤다.
그 모습이 신비로우면서도 귀여웠다.
낚시꾼들은 어느새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루루를 구경하는 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키릴 역시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 일에 집중했다.
이참에 물가에서 써먹을 수 있는 소환수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켄 같은 종류는 싫고…… 거북이? 아니면 돌고래로 할까?’
고민하며 호수 근방을 걷는 키릴.
정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푸른 호수 배경이 더해지자, 미모가 더욱 빛이 났다.
인물이 좋은 파레이라 가문에서도 유독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그녀였다.
그렇기에 호수에 모인 젊은이들은 말하는 고양이보다도 키릴 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몇몇이 그 모습을 보며 허허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낚시꾼도, 나들이 나온 이들도 없는 비교적 조용한 장소에 조용히 서 있던 한 청년.
그가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호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팟
퍼어어어엉-!
“!”
“허억!”
“뭣…….”
엄청난 소리.
그리고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
흐뭇한 얼굴로 루루와 키릴을 구경하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우우우우웅……
황금빛으로 물든 거대한 검.
폭풍을 만난 듯 요동치는 호수 앞에서 오러 소드를 뿜어내고 있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보며, 호위 몇몇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미쳤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지? 그 유명한…….”
“맞아. 아이른 파레이라. 작년에 소드마스터가 됐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진짜일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라는데, 그거 이안 관주보다 빠른 페이스 아니야?”
“맞아. 물론 빨리 마스터가 된다고 해서 끝에 더 뛰어난 검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여전히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한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뭐가?”
“대륙 최강.”
“음, 그건 너무 앞선 생각…….”
반박하던 동료가 말을 멈췄다.
잘 생각해 보니, 덮어 놓고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보다 빨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가 누가 있는가?
끽해야 두 명이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일리아 린제이. 심지어 둘 중 하나는 꺾었다.
물론 일리아의 나이가 그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곤 하지만, 후세대 최강자의 반열에 오를 재능을 갖췄다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미래 최강의 검사가 수련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몸이 뜨거워졌다.
왠지 모르게 피가 빠르게 도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내내 키릴을 향해 있던 시선이 아이른 쪽으로 돌아갔다.
그가 더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며.
허나 그렇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황금의 검사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빠져 있을 따름이었다.
“……저것도 수련인가?”
“뭐, 수련이겠지. 마스터의 생각을 감히 어떻게 알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흥미가 가신 호위들은 다시금 키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끔 루루가 재주를 부릴 때는 그쪽으로 눈길을 주기도 했다.
결국, 다시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진 아이른 파레이라.
그의 곁을, 어느새 나타난 이안 관주가 스쳐 지나갔다.
“잘 안 되나?”
“관주님. 으음…….”
“그럴 만도 하지. 이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거든.”
고작 며칠 시도한다고 될 게 아니긴 하지.
추가로 중얼거린 관주가 천천히 호숫가로 나아갔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의 이목이 또다시 집중되었다.
알칸트라의 주민들이라고는 하나, 크로노의 주인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워낙 바깥에 나다니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주 봤다고 해도 관심은 식지 않았을 터다.
대륙 3강의 명성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시대의 거인이 보여 준 검격은, 그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찰박-!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
검에 조예가 깊은 이라면 군더더기 없는 동작에 감탄을 자아냈을 터지만, 이곳에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 없었다.
그저 힘없이 수면을 찍고 올라오는 검의 모습에만, 허무한 결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잠시 기다리면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조차 점차 사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본 낚시꾼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뒤, 하나둘씩 고개를 돌렸다.
“…….”
아이른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분명 굉장한 검이다.
경지에 올랐기에 알 수 있었다. 기세도, 위압도 없었으나 관주의 검은 대가(大家)의 검이었다.
수십 년의 노력이 저 일검에 깊게 녹아 있었다.
허나 일주일 전에 봤던 검.
호수를 가르고, 물을 갈랐던…… 절대로 벨 수 없는 것을 베어 냈던 그때의 검에 비할 수는 없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처음 내가 보여 줬던 것과…… 지금의 검은 다르지 않다. 나는 같은 것을 베어 냈어.”
“…….”
“당장 깨닫지 못한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여유를 가지고 수련에 임하고…… 나는 며칠 자리를 비울 것 같으니, 그리 알아라.”
“……예, 알겠습니다.”
허나 관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똑같은 검과, 똑같은 말만을 남기고 떠나가는 이안 관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른이 재차 눈을 감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물을 베었을 때 관주가 보였던 자세, 호흡, 오러의 움직임과 일련의 모든 흐름까지, 완벽하게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그런데도 따라 하지 못하겠다.
답답함을 느낀 아이른이 한숨을 내쉬었다.
‘힌트라도 더 주시면 좋을 텐데.’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아이른은 끝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관주가 말을 아끼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자신의 초조함으로 인해 스승의 의도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매일 한 번씩 검술을 보여 주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야.’
아이른이 이번에는 처음의 검이 아닌, 조금 전의 검을 떠올렸다.
아직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호숫물에 검을 담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마주한 듯, 그의 마음이 조금씩 끓기 시작했다.
“…….”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1년 안에 토벌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광대를 비롯한 악마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우우웅……
파아아아앗-!
피어오른 의지에 반응한 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재차 휘둘러진 오러 소드가 또다시 수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도 물은 갈라지지 않았다.
아이른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 * *
호수를 떠난 이안 관주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뛰는 동작이 아니었다. 겉으로 봐서는 영락없는 노인의 걸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속도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뜨기를 나흘.
문득 정신을 차린 이안은, 자신의 앞에 흐르는 계곡을 보며 휙 하고 검을 휘둘렀다.
찰박
서걱-!
놀랍게도, 또다시 물이 베어졌다. 흐르던 계곡물이 시간이 얼어 버린 듯 갈라진 채 멈춰 버린 것이다.
물론 영원히 그 상태로 있지는 않았다.
몇 초 후, 다시 하나로 합쳐진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
재차 검을 휘두르려던 이안은, 망설이다가 이내 검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급한 건 내 마음이구나.”
훌륭한 제자다.
인성도, 재능도, 인내심도 뛰어난 아이. 23살의 자신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뛰어난, 자신에게는 과분하기 그지없는 아이.
허나 물의 검을 깨닫기에는 아직 이르다.
원래라면 이를 가르치는 것은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여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
적당한 바위 위에 정좌한 이안이 눈을 감았다.
번뇌가 떠올랐다. 불안이 떠올랐다.
이유야 명확했다. 신성왕국으로부터 접한 악마 발호 소식 때문이었다.
‘내가 죽은 뒤의 대륙은 어찌 될까.’
오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허나 이안은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떤 악마가 나타나도 대륙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마 이러한 생각은 율리우스 휼도 똑같이 품고 있을 터였다. 이안은 그의 건재함에 더욱 든든함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은 늙었다.
율리우스 휼도 마찬가지고, 신성왕국의 비밀병기인 퀸시 마이어스는 정말로 언제 죽을지 모를 나이다.
오크족 최강의 전사 카라쿰 역시 얼마 남지 않았을 터다. 약간이지만 오크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으니까.
룬텔 왕국 3가문의 가주들 역시 전부 80년을 넘게 살았다.
‘결국…… 15년, 혹은 그보다 짧은 기간 내에 대륙의 전력은 절반으로 떨어지겠지.’
그것이 이안이 제자의 성장에 욕심을 낸 이유였다.
정말로 다행히도, 최근 대륙엔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그넷도 그렇고, 일리아도 그렇고, 아이른도 그렇다.
브랫 역시 나중 가면 그들에 뒤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고, 쿤은 주디스에게서 같은 가능성을 엿본 느낌이었다.
허나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이 충분히 성장하여 대륙을 떠받칠 존재가 되기 전에 늙은이들이 세상을 뜨고, 그 사이에 숨죽이고 있던 악마들이 깨어난다면.
과연 대륙은 150년간 지켜온 평화를 이어 갈 수 있을까?
‘……그래도 너무 빨랐다.’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자신은 그것을 베어 내기 위해 30년 넘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심지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잠시만 흐트러져도 지금처럼 번뇌와 불안이 고이고 고여 검을 무디게 만든다.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가 조용히 숨을 고른 뒤, 정신을 집중했다.
일단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부터 다잡고 고민을 이어 갈 생각이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화아아악-!
“……!”
이안이 눈을 떴다.
빠르게 짓쳐 들어오는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대경한 그가 검을 빼 들었다.
마인?
그런 조잡한 녀석이 아니다.
악마?
그도 아니다. 악마는 분명 강대하고 끔찍한 녀석이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이만한 긴장감을 줄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퍼엉-!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검사가 발을 굴렀다.
폭발 후의 파편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지는 쿤을 보며, 이안이 웃음을 보였다.
타이밍 한번 더럽게 잘 잡았구먼.
피부를 울리는 진한 살기를 느끼며, 그가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