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불길을 잡을 방법은 (1)
약 2년에 가까운 여정 동안, 아이른 파레이라가 가장 편안함을 느꼈던 시기는 언제일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바로, 두르칼리에서 대륙 중부로 오던 때였다.
처음 여정을 떠났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긴장이 됐고, 주디스와 브랫이 합류한 뒤에는 즐겁긴 했으나 정신 사나운 일이 많았다.
쿠바르가 여러 편의를 봐줬음에도 말이다.
반면 일리아와 루루, 이렇게 셋이서만 다녔을 때는 소란스러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아이른 역시 꽤 경험이 쌓인 이후였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이유?
‘당연히…….’
아이른이 슬쩍 옆을 바라봤다.
살짝 웃고 있는 모습.
허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기분도, 생각도 파악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신과 보폭을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묘하게 긴장되네.’
동생과 눈이 마주친 그가 마주 웃어 보였다.
이상했다. 일리아와 같이 다닐 때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훨씬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그녀가 이그넷 때문에 방황하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허나 똑같이 길을 걷는 상황임에도, 키릴과 함께하는 지금은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뭔가 더 기분을 맞춰 줘야 할 것 같고, 화제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고.
“…….”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던 루루 역시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뒤를 쫓고 있었다.
물론 이해는 됐다. 요술결계의 일을 생각하면, 또 동생의 성격을 생각하면, 루루는 한동안 조심히 행동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지금의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 되는…….
“오빠.”
“응?”
“목걸이 바뀌었네?”
“모, 목걸이? 아!”
갑자기 날아든 질문에 당황하던 아이른은 재빨리 배낭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마인 토벌 전, 키릴이 자신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 목걸이었다.
허나 예전과 달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광대 악마와 마주한 순간, 너무 강한 마기를 견디지 못한 나머지 박살이 났던 것.
때문에 지금의 아이른은 족장 타라칸으로부터 받은 오행 목걸이를 대신 착용하고 있었다.
“흐음, 그렇구나.”
“미안. 네가 선물해 준 건데 험하게 다뤄서…….”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악마 때문인데. 오히려 다행이지. 나는 오빠만 건강하면 됐어.”
“고마워, 키릴.”
“그래도 아쉽네. 먼저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
“사실 처음 라바트 왔을 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한번 기다려 봤거든. 오빠가 먼저 말해 줬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아.”
눈치를 보던 아이른이 오행 목걸이를 벗으려 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허나 고개를 저은 키릴이 그를 말렸다.
“아니야, 잘 어울려. 괜찮아.”
“어? 아…….”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뭔가 이색적인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뭣보다 오빠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 그래?”
“응, 정말로.”
“그렇구나.”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에 이어 동생까지 비슷한 말을 한다. 두 요술사가 입을 모아 말한다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새삼스레 목걸이가 더 신비롭게 느껴졌다.
허나 그런 생각에 오랫동안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슈우욱-
크와아아앙!
“키릴?”
“어? 그리핀? 왜?”
갑자기 그리핀을 소환한 동생을 보며 루루와 아이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첫 남매 여행을 기념하여 여유롭게 가자고 했던 게 불과 하루 전이다.
심지어 도시가 눈에 들어오는 참이다. 이제 와서 탈것을 불러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괜히 사람들의 이목만 집중시킬 게 분명했다.
허나 이어지는 키릴의 말은 아이른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동할 때는 느긋하게 가더라도, 도시에 들어설 때는 최대한 화려하게 가야지.”
“어? 왜?”
“이 정도 능력은 되는 사람이다! 라는 걸 보여 줘야 사람들이 함부로 못 대하지. 쓸데없는 시비도 피하고.”
“…….”
“왜? 아니야?”
“그, 저, 키릴.”
아이른이 필사적으로 동생을 만류했다.
자신이 잘하겠다고.
이제 자신도 나름 베테랑 용병에 여행자라고. 귀찮은 일이 없도록 알아서 숙소도 잡고, 맛있고 분위기 좋은 식당도 잘 찾아보겠다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그 과정에서 시비가 생긴다면 그것도 잘 처리할 자신이 있다고.
“음, 그래?”
슈우욱-
깐깐한 표정으로 오빠의 말을 듣던 키릴이 이내 그리핀을 역소환했다.
오빠만 믿을게, 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동생.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른이 한숨을 쉬었다. 루루가 그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나와는 정말 다르구나.’
그래도 그 모습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검술관 동기들과 다닐 때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루루를 품에 안은 아이른이 빠르게 키릴의 뒤를 쫓았다.
* * *
‘마음에 안 들어.’
대 요술사 스키나 키튼의 제자이자 세자르 공국에서 첫 손에 꼽히는 유망주, 키릴 파레이라는 심기가 불편했다.
이유는 당연히 오빠 때문이었다.
물론 큰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베테랑 여행가가 됐다는 게 허풍은 아니었는지, 아이른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매끄럽게 일행을 리드해 갔다.
허나 그 중간중간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이 문제였다.
다른 곳을 보다가 어깨를 부딪혀 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에게 먼저 사과하고.
가게 측 실수로 메뉴가 바뀌어 나왔음에도 별말 없이 넘어간다.
물론 안다. 그런 착한 성격이 오빠의 장점이라는 것을.
허나 키릴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오빠가 당하는 것만 봐 왔던 그녀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몹시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성격이 지랄 맞은 거야?’
능력 있고 힘이 세다고 해서, 그걸로 남을 압박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다른 녀석들이 불쾌한 행동을 보이지 못하도록 적당히 티만 내라는 것이다.
오빠가 처음 여정을 떠날 때도 그랬고,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도 신신당부했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 파레이라 가의 장남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느낌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자, 그래도.’
키릴 파레이라가 억지로 표정을 관리했다.
알고 있다.
타고난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오빠가 꽤 힘내고 있다는 것도.
무엇보다 자신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조금 불편하다고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자신도 성인이었으니까.
하지만.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
웬 허여멀건한 놈팽이 하나가 허락도 없이 테이블에 앉는 순간, 키릴은 머릿속에 있던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앉으라고 안 했는데요.”
“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른 자리가 없어서…….”
“일행 있어요. 화장실 갔어요.”
“그래도 한 자리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저쪽에 자리 났다고.”
“으음? 말이 조금 짧아졌네요. 하지만 그것도 매력적입니다. 레이디,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아, 저는…….”
시원한 미소를 건네며, 흰 피부의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아니, 자신의 가문을 소개했다.
키릴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봤다.
‘역시 그리핀을 타고 들어와야 했어.’
키릴이 세자르 공국에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오빠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무시를 당했다면, 자신은 소국에서 굴러들어온 기반 없는 제자라는 점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견제를 받았었다.
대단한 스승이 있음에도 압박과 조롱이 쉴 틈 없이 쏟아졌지만, 키릴은 그 모든 것을 꾹 참고 요술에만 전념하였다.
오빠를 결계에서 꺼내오기 위해서는, 그런 쓰레기 같은 녀석들에게 심력 뺏길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2년 전, 오빠가 스스로의 힘으로 결계에서 벗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그 누구보다 듬직한 모습으로 거듭났다. 마인을 찍어 누를 정도로 성장한 검술은 덤이었다.
자신이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씁쓸했지만, 그보다 훨씬 큰 기쁨과 개방감이 키릴을 새로운 존재로 각성시켰다.
더는 참을 필요 없었다.
더 봐주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쫓겨나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참았던 거, 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마!
속으로 다짐한 그녀는 세자르 공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을 모욕해 왔던 유망주들을 모조리 깨부숴 줬고, 스키나 키튼은 그런 그녀를 더욱 마음에 들어 하며 끝까지 감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성인이 된 지금.
키릴 파레이라의 앞에서 깝죽거릴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세자르 공국 내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내가 이만큼 참았는데, 아직도 안 꺼지고 있다고?’
꽈드득
목제 의자 귀퉁이가 터져 나갔다. 요술로 강화된 키릴의 악력 덕분이었다.
하루 내내 참고 있던 짜증과 분노가 마음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루루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야! 빨리 도망가!”
“어? 고양이가 말을…….”
사색이 된 루루가 경고했다.
허나 사내는 눈치가 없었다.
오히려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화가 난 듯 보이면서도 꾹 참고 있는 금발의 여성에게 귀여움을 느꼈다.
아마 자신의 배경을 듣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터였다. 그 분위기가 너무도 좋았다.
가진 자만이 즐길 수 있는 강제력!
위에 있는 자만이 즐길 수 있는 짜릿함!
그에 한껏 취한 사내가 술을 주문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이었다.
터업!
“어?”
슈우욱-!
어디선가 나타난 금발의 청년이 사내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였다.
“어어?”
“저 자식이, 감히 도련님을 끌고 나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호위들이 인상을 쓰며 가게 밖으로 나섰다. 사내의 배경을 알고 있던 몇몇이 혀를 차고, 고개를 저었다.
저 망나니가 오늘도 사고를 치네, 하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허나 잠시 후, 다소곳한 태도로 가게로 들어온 도련님은 손님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
“더 귀찮게 안 하겠습니다.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흰 피부의 사내, 그리고 호위들.
순간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뒤늦게 테이블로 돌아온 아이른이 키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었는데, 내가 잠깐 망설이다가 그만…….”
“…….”
“그래도 잘 말했으니까, 더 귀찮게 할 일은 없을…… 어? 키릴?”
“……잠깐 나갔다 올게.”
“그, 저기…….”
“그 사람들 쫓아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 뒤, 가게 밖으로 나가는 키릴 파레이라.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른이 루루에게 물었다.
“내가 뭐 실수한 거 있나? 더 빨리 나섰어야 했나?”
“글쎄…….”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저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요술사인 루루라 할지라도, 키릴의 기분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아이른이 한숨을 쉬었다.
동생이 어떤 성격인지 충분히 아는 그였기에.
또 그것과 별개로 사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나름 강하게 기세를 뿜어냈다.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허나 그것은 자기 생각일 뿐이고, 키릴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걱정된 아이른이 테이블에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일단 내, 내가 쫓아가 볼게.”
“괜찮겠어, 혼자?”
“응. 나는 아이른도 좋고, 키릴도 좋아. 그래서 둘이 싸우는 건 싫어. 그러니까 내가 잘 알아보고, 키릴 기분도 풀어주고 올게!”
말을 마친 루루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키릴의 냄새가 느껴지는 골목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허나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걸음걸이가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정말 좋아하는 동시에, 또 너무너무 무서운 존재가 키릴 파레이라다.
루루는 골목길 귀퉁이를 돌기 전, 의지를 다지기 위해 가슴에 앞발을 얹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좋아, 이제 가자.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덥석!
어느새 다가온 키릴이, 인형을 끌어안듯 루루를 덥썩 껴안으며 말했다.
“루루.”
“어? 응? 어?”
“왜 말 안 했어?”
“무, 뭘?”
“오빠 말이야.”
후우, 숨을 한 번 가다듬은 키릴이 애써 참던 미소를 터뜨리며 이어 말했다.
“이렇게 멋있어졌다는거,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
“…….”
“어? 정말, 진짜, 어? 왜 말 안 했어! 루루!”
루루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인간과 전혀 다른 얼굴형을 가진 고양이기에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누가 봐도 황당해한다는 것이 느껴질 만한 모습이었다.
허나 키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직전의 오빠가 보여 준 모습을 떠올린 그녀가, 그보다 더 예전의 일들을 회상했다.
‘지금 같은 모습이 될 줄은 정말 몰랐지.’
키릴의 기억 속에 있는 오빠는 상냥하고, 선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깊은 우울감과 공허함에 빠져 있는, 자신이 지켜 줘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물론 검술관에서 돌아왔을 때와 결계에서 벗어났을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와닿은 적은 처음이었다.
하아, 숨을 내쉰 그녀가 더욱 강하게 루루를 껴안으며 말했다.
“루루, 루루, 루루! 여행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 싹 말해 줘! 오늘!”
“켁, 케켁, 조금만 힘 풀어줘, 키릴…….”
“알았어. 됐지? 이따 밤에 다 말해 줘?”
“저, 저번에 다 말하지 않았어?”
“다시 말해 줘. 내가 못 들은 이야기가 엄청 많은 것 같은데, 하나도 빠짐없이, 응? 알았어?”
“아, 알았어.”
루루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양호한 전개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늘 밤은 꽤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후우.”
평소보다 더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의 동생과 식사를 마치고, 밤 산책을 마친 뒤.
아이른 파레이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사색에 잠겼다.
동생 걱정은 아니었다. 루루가 말하긴 괜찮다고 했으니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후우.”
재차 숨을 내뱉은 아이른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별의 순간, 조슈아 린제이가 자신에게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이그넷의 불길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맞는 말이다.
조용히 중얼거린 아이른이 그녀와 관련해서 떠도는 소문을 상기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태양과도 같은 기세는 격이 맞지 않는 이의 고개를 절로 숙이게 만들며, 대등하다고 착각하는 이의 마음엔 불을 번지게 한다고.
그리고 그 착각이 깨어지는 순간 깨닫게 된다고. 어느새 전신으로 퍼진 불길이 자신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이그넷에 비견되는 재능은 대륙에 없다는 뜻이지.’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을 두고 말함은 아니다.
일리아도, 브랫도, 주디스도. 자신과 함께했던 모두가 충분히 그녀에 닿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허나 조슈아가 어떠한 의미로 저 말을 건넸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미 한번 보지 않았는가.
너무나도 강렬한 이그넷의 존재감을 뒤쫓다가, 초조함과 조급함의 불길에 휩싸여 망가질 뻔했던 일리아의 모습을 말이다.
‘……어쩌면, 오빠인 칼 린제이 역시 비슷했을지도.’
잠시 씁쓸한 생각을 한 아이른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예전보다 뜨겁다.
어느새 피어난 향상심과 투쟁심, 신념이 그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이것이 나쁘냐고 묻는다면, 아이른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 꼭두각시처럼 검을 휘두르던 예비 수련생 시절, 그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나았으니까.
‘하지만…… 불길이 과해지고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야.’
아이른이 자신과 스쳐 지나갔던 몇몇 인연을 떠올렸다.
샬럿, 빅터, 그레이슨.
그들 모두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건전한 승부과 건강한 불꽃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을 터였다.
허나 어느 순간 조급함의 불꽃이 자신을 좀먹고, 분노와 자괴의 감정이 자신을 망가뜨렸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적당한 불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너무 강한 금(金)의 기운이 문제가 되듯.
너무 강한 화(火)의 기운 역시 문제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중요한 부분이며.
즉, 지금의 자신이 추구해야 할 건 마음속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 나가지 않도록…….
‘잘 다스리는 것이지.’
그렇다면, 불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자신을 망치는 불길을 잡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균형을 되찾고 건강한 불꽃을 품어 낼 수 있는가.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다.
“물(水).”
나직이 중얼거린 아이른 파레이라가, 오행신공의 가르침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