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천재들의 사이에서 (2)
검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다. 특히 검을 배운 지 얼마 안 됐을수록 쉽다.
대부분 분야가 그렇듯 입문자일수록 성장의 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달리면 체력이 늘어나고, 무거운 것을 들면 근력이 늘어난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가 도처에 널려 있다 보니 가르침을 구하기도 쉽고, 머리를 비운 채 이를 따라가기만 해도 검술이 쑥쑥 는다.
실력이 느는 것에 재미가 붙은 초보 검사는 점차 숙련된 검사로 성장한다.
허나 그러한 즐거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체력과 근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훈련량이 언젠가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아무리 반복해도 손에 붙지 않는 동작이 많아진다.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던 오러가 정체를 맞이하고, 그것을 다루는 건 더욱 골치가 아프다. 머리가 쪼개질 것처럼 괴롭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둔재도 그러하고, 범인도 그러하고, 천재도 그러하다.
시기와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정체는 영웅에게 찾아오는 시련처럼 필연적으로 검사에게 따라온다.
절망감.
허무함.
좌절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고, 무엇을 시도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괴로움에 식음을 전폐하며 검에 관한 생각만을 종일 이어 가도 답은 나오지 않고, 검사들은 하나둘씩 지쳐 간다.
그렇게 누군가는 안주하고, 누군가는 포기한다.
‘한계’를 맞이한 이들은 그렇듯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로 눈을 돌리게 된다.
화르르륵-!
이그넷 크레센시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소유했지만, 그녀에게도 필연적인 정체의 순간이 찾아왔다.
검을 수만 번 휘둘러도, 수십 일간 숙고를 이어 가도 뚫리지 않는 단단한 벽이었다. 그녀가 맞닥뜨린 첫 한계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그넷은 그만두지 않았다.
벽이라는 것을 마주하지 않은 듯 매일같이 수련을 이어 갔다.
찾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찾고, 하나하나 짚어 가며 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나태했다면.
오래전부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느껴가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야기를 듣더라도 어떠한 깨달음도 얻지 못했을 터였다.
우우우웅-
물론 이그넷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니 마음속에 아이른이라는 인물의 성장 일대기가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소중한 인연들과의 신뢰로 엮인 이야기가 좁아져 있던 그녀의 시야를 넓게 만들어 줬다.
독선적이던 생각이 변화했다.
불신으로 물들던 사고 역시 달라졌다.
혼자서는 결코 넘을 수 없었던 벽을 동료의 힘으로 돌파한 아이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이도 떠올랐다.
게오르그 포이베.
아냐 마르타.
항상 자신과 함께였던 둘을 상기하는 순간, 이그넷의 몸을 휘감은 불길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우우우우우웅-
강함은 여전하다.
왕의 존안을 함부로 쳐다볼 수 없듯,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빛은 태양처럼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무자비함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 따스하면서도 찬란한 위엄이 들어섰다.
아래에 있는 모든 이를 풍요롭게 하는, 그야말로 전사보다 지도자에 가까운 기운이었다.
“…….”
아이른이 그런 이그넷의 모습을 넋 놓고 지켜봤다.
그녀가 어떤 상황이 놓였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무언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유추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뿌듯함이 가슴 속에서 올라왔다.
허나 그것보다 더 진한 불꽃이, 이그넷의 몸을 뒤덮은 것보다도 더욱 뜨거운 불길이 그의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지고 싶지 않았다.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신념이니, 뜻이니, 영웅의 길이니 하는 것과는 상관없었다.
온전히 ‘검사’ 아이른 파레이라로서 품게 된 생각이요, 다짐이었다.
‘언젠가는…….’
슈욱-
자신도 모르는 새 검을 소환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손에 힘을 주었다. 눈에도 힘을 주었다.
어둠을 살라 먹는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목표’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던 그의 입에서 짙은 숨이 새어 나왔다.
“…….”
조슈아 린제이 역시 말없이 이그넷을 바라보았다.
놀라웠다. 소드마스터 급의 검사가 깨달음을 얻어 벽을 깨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슈아 역시 적지 않은 영감을 얻은 상태.
어쩌면 내일의 그는 더욱 강한 검사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몰랐다.
허나, 지금 당장은 그에 관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검사의 눈이 아닌 가주의 눈.
아니, 아버지로서의 눈.
그것이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살폈고, 아이른 파레이라를 주시했다. 오히려 후자를 더욱 오래 들여다봤다.
깊고도 긴 침묵이 그의 주변에, 셋의 주변에 감돌았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
이윽고,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눈을 떴다.
몸을 휘감고 있던 불꽃은 이미 사그라든 상태.
허나 눈에 피어난 붉은색의 안광이 말해 줬다.
깨달음 이전과 이후의 그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조슈아 린제이가 입을 열었다.
“단장.”
“말씀하십시오, 가주.”
“성취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건조한 축하와 짧은 감사가 오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둘은 여전히 어색했고, 그들이 가까워질 일은 아마도 평생 없을 터였다.
이그넷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이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언제 꺼냈는지 모를 커다란 검을 굳건히 쥐고 있는 채로,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자신을 바라본다.
갑자기 즐거워진 이그넷이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미소를 입에 건 그녀가 아이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른.”
“…….”
“3년 안에 토벌대에 합류해라.”
“…….”
“왜 말이 없지? 자신 없…….”
“1년.”
아이른이 말을 끊었다. 대륙 최강국인 아빌리우스의 기사단장에게 보여서는 안 될 무례한 태도였다.
허나 이그넷은 이를 책 잡지 않았다.
즐겁기 그지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에게,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1년 안에, 쿤의 인정을 받아 돌아오겠습니다.”
* * *
덜컥-
털썩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린제이 가의 가주, 조슈아 린제이가 어두운 방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불을 켤 필요는 없었다. 눈을 감은 그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예상치 못했던 이그넷 크레센시아와의 대련.
생각한 것보다 더욱 뛰어났던 그녀의 실력과 관심도 없었던…… 하지만 결국엔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
또 아이른 파레이라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진 이그넷의 각성.
“후우…….”
결국 참지 못한 조슈아가 한숨을 뱉어냈다.
가슴이 답답했다.
선배 검사로서 후배의, 그것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후배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기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자신의 검은 그러했다.
허나 직전의 연무장에 있었던 자신은 검사가 아니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다.
탓할 수조차 없는 상대를 두고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고 싶었던, 나약하고 부족한 가장에 불과했다.
그런 그였기에…… 놀랍다는 표현조차 모자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이그넷을 보며 마냥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문제는, 그러한 천재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른 파레이라.’
원래도 굉장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불과 23살의 나이에 소드마스터, 아니 그 이상의 경지를 이루었다.
당장 팔랑케의 최고기사인 세비온 브룩스보다도 윗줄이었으니, 더는 그를 마스터의 초입이라 부를 순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도 훨씬, 훨씬 대단한 녀석이었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 떠올랐다.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린제이 가에 도전해온 이그넷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그녀를, 자기 아들조차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그녀를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그녀와 같은 세대에선 적수가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허나 그렇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이번에는 아이른을 더듬었다.
정화단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사나운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뜨겁게 의지를 불태우는.
심지어 일찍부터 완성된 존재라 여겼던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각성시킬 정도로 거센 영향력을 발휘하는 청년을 보며, 조슈아 린제이는 딸을 향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칼 린제이는 이그넷이라는 천재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일리아 린제이의 앞에도 여전히 이그넷이 있었다. 아니, 당시보다 더욱 강해진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에 필적하는 재능과 끈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른 파레이라가 있었다.
괜찮을까?
정말로 괜찮을까?
조슈아 린제이의 입매가 일그러졌다.
딱딱하기 그지없던 표정에 균열이 생기고, 눈가에 조금이지만 물기가 맺혔다.
지난 2년간은 보지 못했지만, 그전까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일리아의 모습을 지켜봤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딸을 볼 때마다, 점점 웃음을 잃어 가는 딸을 볼 때마다 무너지고 망가졌던 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문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슈아 린제이는 경험 많은 검사였으나, 경험 많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격해지는 감정의 폭풍 속에서 그의 주먹에 또다시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에 뚝, 뚝 떨어졌다.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곧바로 알았다. 딸의 방문이었다.
빠르게 바닥과 손의 피를 닦은 조슈아 린제이가 표정을 관리했다.
어렸을 적, 누구보다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봐 줬던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따라 했다.
거울을 확인한 그가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들어오너라.”
차분함과 여유를 가장한 그가 목소리를 냈고, 일리아 린제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을 본 가주는 울컥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다르다.’
달랐다.
2년 전의 딸과.
아니, 일주일 전의 딸과도 많이 달랐다.
“고민 상담을 하고 싶어요.”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일리아는 여전히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허나 그동안 걸어온 걸음은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
서툴고, 느리고, 잔뜩 헤맸을지언정 예전처럼 무너지지는 않고 있었다.
씩씩한 태도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예요.”
이윽고, 일리아의 입에서 모든 고민이 흘러나왔다.
오빠에 관한 생각.
이그넷에 관한 생각.
타인의 시선과 말에 대한 생각.
검에 관한 생각과 친구에 관한 생각. 아이른에 관한 생각.
그 속에서 다소 초라하게 느껴지는 자신에 관한 생각.
그 전부를 들은 조슈아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초보 아빠인 그에게 있어서, 수년 만에 찾아온 딸의 고민을 듣고 조언해 주는 건 그 무엇보다 긴장되는 일이었다.
다행히, 해 줄 말은 있었다.
물을 한 잔 마신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자상한, 그리고 든든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