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천재들의 사이에서 (1)
이그넷 크레센시아.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검사라고 알려진 그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1년 전까지의 그녀는 검사가 아닌 칼잡이였다.
검이 아닌 도(刀)를 무기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은 이그넷이 검을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기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불카누스 넘버링 소드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성왕께서 직접 내린 성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그넷은 순식간에 검에 적응했고, 오히려 전보다 더욱 대단한 실력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지금.
라바트 영지의 한적한 연무장에서, 그녀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조슈아 린제이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쒜에에엑-!
이그넷의 검술은 독특했다.
분명 찌르기다.
헌데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베기 공격을 하듯 원을 그리며 휘둘러지다가 끝에서만 후비는 느낌을 주었다.
베기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검이 맞닿는 순간까지 찌르기인지, 베기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기교가 대단했다.
그런데도 속도는 무시무시했고, 위력 역시 어마어마했다. 지금의 아이른으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터어엉
물론 그 정도로 당황할 조슈아 린제이가 아니었다.
오러를 두르고, 바람을 휘감는다. 이윽고 태풍의 화신이 된 듯 거센 기세를 뿜어낸다.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그가 이그넷의 검을 침착하게 걷어 냈다.
막고, 막고, 또 막아 나갔다. 그렇게 한동안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놀라운 점은, 이그넷의 공세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앙-!
쉴 새 없이 검을 뻗어 내고,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발을 움직인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더욱 큰 힘을 끌어내며, 사방에서 조슈아 린제이를 찍어 눌렀다.
마치 땅에 웅크린 거북이를 수십 마리의 독수리가 찍어 누르는 모습과 같았다.
한껏 불이 붙은 그녀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광망이 번뜩였다. 아이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때, 지금껏 당하기만 하고 있던 조슈아의 전신에서 말도 안 되는 기운이 터져 나왔다.
“……!”
치지직-
파앗!
이그넷의 미소가 사라졌다. 정신없이 쏟아지던 검격도, 회전하며 안으로 파고들던 걸음도 단번에 멈춰 버렸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물러났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였다.
조슈아의 검이 휘둘러진 것은 그 바로 직후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바닥까지 짓눌려 있던 고무공이 튀어 오르듯.
한계의 한계까지 압축되어 있던 바람이 터져 나오듯, 가주의 검은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그넷도, 이그넷의 공격도, 세상을 덮을 듯 거세게 타올랐던 이그넷의 기세도 강렬한 바람 앞에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타아아아압!”
조슈아의 반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다섯 번 검을 휘두른 그가 질풍 같은 속도로 앞으로 쏘아졌다.
검풍과 함께 짓쳐 드는 가주를 향해 이그넷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이 거센 바람이 불수록 빠르게 퍼져 나가는 들불과 같았다.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불을 놓는 그녀의 대처에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 대 힘.
강격 대 강격.
정면으로 부딪치는 둘의 검에 주변의 풍경이 부서지고 박살 났다.
터져 나가는 연무장 바닥과 사방으로 비산하는 돌조각,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
두 거인의 싸움은 주변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위치한 아이른 파레이라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광경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뭘까, 이 기분은.’
검사들의 싸움, 특히 자신보다 강한 검사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검술, 걸음, 호흡, 오러 운용, 그 밖에도 보고,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린제이 가주와 흑기사단장의 대결이라면 전 재산을 바치고서라도 구경하고자 할 검사들이 백 명은 나올 터였다.
허나 아이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검술이 아니었다.
조슈아의 태풍처럼 거친 공격도, 이그넷의 태양처럼 뜨거운 반격도 그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랬다. 아이른은 기묘한 기분 속에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둘을 지켜보았다.
물론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었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결판이 났다. 조슈아 린제이의 완승이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부서진 연무장에 완전히 뻗어 버린 이그넷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평소처럼 냉막한 표정의 조슈아 린제이가 입을 열었다.
“얻은 건 있나?”
“허억, 헉…… 아쉽게도, 딱히. 그래도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다시 일어나라. 더 패주고 싶으니까.”
“원한다면 맞아 드릴 테니…… 후우, 마음껏 패셔도 상관하지 않겠나이다.”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대충 이해가 됐다.
이그넷이 검술의 깨달음을 위해 조슈아에게 대련을 신청했고, 가주가 수락하여 지금의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가주는 무슨 생각일까?’
분위기가 묘했다.
린제이 가와 이그넷 사이에 있었던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른이었지만, 일리아가 아닌 아버지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사실 대련을 받아준 이유조차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망치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이그넷을 흠씬 두들겨 주고 싶었기 때문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누군가 명확한 잘못을 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커다란 비극이 생겨났다. 무겁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제3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른은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했고, 가주는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본 뒤 이그넷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설마, 진짜 더 때리려고?’
아이른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파악한 조슈아는 매사가 진지한 사내였다. 또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그런 그라면 이그넷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털썩
다행히, 가주는 탈진한 이그넷을 해코지하지 않았다.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지도, 당시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냐고 캐묻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그녀 근처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았다.
“…….”
조슈아 린제이의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담담하게 쏟아져 나왔다.
허나 거기에 담긴 감정의 무게만은 대단했다. 특별하지 않은 단어, 별다를 것 없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우스운 건, 이런 말을 털어놓을 사람이 자네 말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는 거야.”
정말로 우스웠는지, 항상 표정이 없던 조슈아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허나 이그넷을 바라보는 그의 눈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가 지그시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바라봤다.
아니, 이그넷을 바라봤다. 아직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에 입적하기 전의 어린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
정적이 흘렀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지쳐서 헐떡이던 이그넷이 숨을 고르게 쉴 정도. 아마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그녀를 지켜보는 아이른으로서는 체감상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짐작 가는 게 전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딱히 할 말이 없을 거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가 아는 이그넷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존재.
그런 그가 10년도 더 전에 짓밟고 지나갔던 이에 대한 감상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도무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아이른의 판단은 맞았다.
이그넷은 그가 생각을 이어 가는 와중에도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연무장에 누운 상태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슈아 린제이의 손톱이 조금씩 손바닥을 파고들어 갔다.
그렇기에 의외였다.
무겁고 어두운,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복잡한 분위기 속에서.
이그넷은 칼 린제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시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어렸을 적, 폐가에서 친구, 동생 녀석들과 함께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
“…….”
아이른도, 조슈아도 다소 놀란 눈빛으로 이그넷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하는 말은 대륙에 흔하게 퍼진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청자가 되어 조용히 이그넷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그넷이 보고, 듣고, 경험하며 품어온 뜻과 생각을 들었다.
30분이 흘렀다.
결코 적지 않은 내용.
허나 그 안에 칼 린제이에 대한 언급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그넷은 어째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 것인가?
그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르는 찰나, 그녀의 입이 재차 열렸다.
“솔직히 말하겠나이다. 나는 가주의 아들, 칼 린제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터고.”
“…….”
“다만, 가주의 아드님께서 상대했던 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고, 어떤 뜻을 품고 살아갈 것인지…… 이것이라도 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자리에 앉은 이그넷 조슈아 린제이를 바라봤다.
아니, 이그넷이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17살의 평민 이그넷이 아닌, 12년의 삶을 더 살아오며 성장하고 발전한 이그넷 크레센시아였다.
그것을 깨달은 조슈아가 더욱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기어코 살을 파고든 손톱에서 조금이지만 피가 배어 나왔다.
허나 그것이 끝이었다.
이내 손에 힘을 풀어 버린 그가 후우, 한숨을 쉬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한참을 말없이 있던 그가 돌연 아이른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뭔가 할 말 있으면 해라.”
“예?”
“공짜로 싸움 구경도 하고, 공짜로 남의 개인사도 들었으니 너도 뭔가 풀어놔야 합당하지 않겠느냐.”
“…….”
잠시 당황하던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아 린제이의 말이 맞아서라기보다는,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자신이 왜 둘의 검술에 몰입하지 못했는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술의 기교와 오러의 운용법을 파악하는 것.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두 거인과 마음의 교류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항상 그랬었지.’
아이른이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렸다.
대련, 논검, 관전. 이런 것들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로 크게 성장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런 외적인 것보다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봤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비 수련생 시절, 일리아 린제이의 새로운 다짐을 듣고 향상심을 깨달았고.
1년 반 전,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포부를 통해 투쟁심을 피워 냈다.
전생의 자신이 품었던 고뇌와 번민, 깨달음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와 마음의 교류를 하지 못했더라면,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랜 방황을 한 후에야 뜻을 세웠을 터였다.
‘브랫과 주디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나는…… 교류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해 왔어.’
아이른 파레이라가 조슈아 린제이,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바라봤다.
자신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인들의 생각과 감정, 마음이 흘러들어온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크나큰 영감으로 작용하여 자신이 성장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터였다.
“뭐 하느냐. 빨리 말하지 않고.”
“…….”
조슈아의 재촉.
그리고 이그넷의 은근한 시선.
아이른은 괜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기분이 몹시 좋았다.
할 말이야 충분히 있었다. 정리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지금껏 친구들을 만나며 여러 번 했던 이야기 아니던가.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눈앞의 둘은 자신과 그다지 친분이 없다는 부분이었다.
또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실력을 갖춘, 많은 경험을 쌓은 선배 검사라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더 좋았다.
자신보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경지에 오른 두 거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라고 있다.
먼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한다. 교류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 사실이 아이른에게 커다란 충족감을 주었다. 새로운 기쁨을 선사했다.
“저는…….”
그는 근래 들어 가장 즐거운 기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털어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아이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아이른과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루루와 카라쿰, 일리아와 주디스, 브랫과 함께 나아가며 겪고, 느꼈던 이야기였다.
화르륵-!
아이른이 막 자신의 이야기를 끝냈을 때였다.
갑자기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났다. 조슈아와 아이른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불의 오러로 전신이 타오르는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불에 휩싸인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경건하면서도 신묘하게 느껴졌다.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음이 분명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른은 잠시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이그넷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기꺼움.
안 그래도 상당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불편함.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품은 아이른 파레이라의 마음 역시,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몸처럼 불길이 번져 나가고 있었다.
“…….”
그런 그를, 조슈아 린제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