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의외의 만남 (2)
쒜에에엑-!
검이 날아든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여태껏 봐 왔던 어떤 것보다 사나운 기운을 담은 오러가 흉악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못 막으면 끝난다!’
더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급하게 자세를 갖췄다.
정자세에서 받아 낼 수준이 아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을 떠올린 그가 마주 검을 휘둘러 갔다.
콰아아앙!
“크윽!”
“…….”
잇새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뒤로 세 발짝 물러난 아이른이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손아귀와 손목이 시큰거렸다.
단순히 힘에서 밀린 것이 아니었다. 격돌한 순간, 묘하게 타격점이 흐트러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상대의 기교인 듯싶었다.
‘과연, 5대 검술명가의 가주…….’
다행인 건, 조슈아 린제이가 곧바로 공격을 이어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허나 그런 생각은 곧바로 바뀌었다.
잠시 아이른을 바라본 그가 자신의 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갑게 침묵을 지키던 가주가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막아 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
받아 내지도 못할 공격을 했던 건가, 지금?
그러한 생각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데, 조슈아 린제이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농담이다. 어디까지나 자네 실력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실력을 볼 수 없지 않나.”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까 조금 더 해 보자고. 지도 대련이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타앗-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슈아 린제이가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황당한 표정의 아이른이 검을 마주 휘둘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 대련을 받아 왔던 그였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먼저 공격해 온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다들 선수를 양보해 준 덕분에 자신의 검술을 가감 없이, 편한 마음으로 발휘해 왔던 아이른이었다.
‘이건 지도 대련이 아니야. 분명 감정을 담아서 공격하고 있어!’
사태를 파악한 아이른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쓰지 않는다면 큰일 난다는 것 정도는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든 그가 전력을 다해 오러를 끌어올렸고, 오행신공 중 금(金)의 기운을 활용해 맞섰다.
그러자 원래도 묵직했던 아이른의 검이 더욱 무게를 더해 갔다.
콰앙!
쾅!
콰아앙!
왼쪽, 오른쪽, 다시 오른쪽, 왼쪽.
좌우를 가리지 않고 조슈아의 공격이 쏟아졌다.
아이른은 상대의 힘이 온전히 실리기 전에 검을 맞대 응수했고, 자신의 영역을 뺏기지 않기 위해 코어와 하체에 잔뜩 힘을 주었다.
지직, 지지직, 발을 맞대고 있는 지면이 고랑처럼 파였다. 그래도 안간힘을 쓴 덕분에 많이 밀리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눈을 부릅뜬 조슈아가 숨을 들이마셨다.
우우우우우웅-!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검에 더욱 강한 기운이 응집되었다. 바람, 태풍이었다.
모든 것을 갈아 버릴 기세로 휘몰아치고 있는 하늘검의 기세에 아이른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이건 못 막는다!
위기를 직감한 아이른이 고집을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일말의 미련도 없는 판단 덕분에,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것이 그를 구했다.
이윽고 떨어져 내린 조슈아 린제이의 하늘검이 아이른이 서 있던 장소를 집어삼켰다.
쿠콰콰콰콰콰콰!
끔직한 광경!
그야말로 땅거죽을 갈아 버린 듯한 하늘검의 위력에 아이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을 믿고 힘 조절을 안 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나?
전자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조슈아 린제이를 바라봤다.
엷게 웃어 보인 그가 말했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내 딸과 함께 다닐 자격이 있지.”
“잠, 잠깐…….”
“잠깐은 무슨! 나 시간 많다!”
콰아아아!
아이른의 말을 일축한 조슈아가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먼 거리를 격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오러의 발현.
그것도 평범한 오러가 아니라 광풍의 기운을 담고 있다.
마치 자연재해를 맞이한 듯 이리저리 휘청이던 아이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
찝찔한 피 맛을 느끼며, 그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조슈아 린제이의 정확한 마음은 모르겠다.
허나 그의 검에 지도의 성격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두르칼리의 대전사인 카라쿰보다도 거칠고 위협적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면이 자신을 더 강하게 일깨우고 있었다.
피가 끓어오른다. 마음속에 피어오른 불꽃이 전신을 뜨겁게 만들고,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단단하기만 했던 철의 의지 역시 화기(火氣)를 만나 예리하고 세련되게 모양을 바꿨다.
검날.
아니, 그보다 더욱 유려한 강철의 날개를 장착한 아이른이 태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앙-
파아앙-!
“……!”
황금의 오러를 두른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청년을 보며, 조슈아 린제이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힘으로 자신의 바람을 파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눈이 아이른이 아닌 400년 전의 과거를 좇았다.
마룡왕이 뿜어내는 광풍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강철 나비처럼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갔던 선조의 모습!
이것은 린제이 가의 비전이었다. 하늘검만의 오의였다.
그것을 저 녀석이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일리아! 저 녀석에게 하늘검까지 알려 주다니!’
화아아악-!
조슈아 린제이의 기도가 더욱 강해졌다. 연무장의 대기를 모조리 지배할 듯 위압적이고 강렬한 기세가 퍼져 나갔다.
린제이 가는 타인과의 교류를 막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 법.
다른 검사와의 토론과 논검, 대련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 가는 와중에 상대 역시 하늘검의 진의를 얻어 간다면,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
이것은 초대 가주인 디온 린제이의 뜻이었고, 그렇기에 조슈아 린제이 역시 아이른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선조의 뜻이고 나발이고, 탓하고 싶었다.
두 눈 가득 분노를 품은 아버지가 뜨거운 외침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하아아아압!”
“……!”
아이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검을 쥔 손아귀에도, 코어에도, 발에도. 그야말로 그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이 최고조로 발휘되었다.
육신, 오러, 오행신공, 그리고 미숙하게나마 깨닫고 있는 마음의 검.
그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조율해 낸 아이른이 어금니가 깨질 듯 입을 앙다물며 검을 휘둘렀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주변의 풍경이 뒤흔들릴 만큼 거대한 금속음과 함께, 저 멀리 나가 떨어졌다.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온 조슈아 린제이가 헛 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런.”
그의 얼굴에 후회의 감정이 드러났다.
안 그래도 꽤 잘 버틴다는 생각이 들어 힘을 높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딸과의 관계가 더 긴밀한 것 같아서 과하게 손을 써 버렸다.
마지막에 손에 힘을 빼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큰일이 났을 터였다.
물론 지금도 상황이 가볍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조슈아는 딱딱해진 표정으로 아이른이 날아간 곳을 바라봤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른!”
“……딸?”
조슈아는 깜짝 놀랐다.
엠마와 함께 휴식을 취하러 갔을 거라 생각한 일리아가 여기에 나타나다니.
허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이 아닌 아이른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뛰어갔다는 부분이었다.
“아이른, 괜찮아? 정신 차려.”
“으…….”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듯 신음을 흘리는 아이른 파레이라.
허나 조슈아 린제이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천천히 일어나는 그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낼 뿐.
그런 아버지를 향해 일리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 지도 대련 중인 거 아니었어요?”
“맞는데…….”
“아니, 대련에서 왜 이런…… 아니, 일단 엠마!”
아버지는 지금 상황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다급하게 호위기사를 부르는 일리아 린제이.
그녀의 부름을 받은 엠마 가르시아가 조슈아 린제이를 스쳐 지나가며 조용히 말했다.
“괜히 이상한 말 해서 불난 데 기름 붓지 말고, 조용히 계시죠.”
“…….”
결국 엠마 가르시아가 응급 처치 후 아이른을 부축할 때까지, 조슈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걱정으로 얼룩진 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2년 만에 만난 자신을 봤을 때보다 더 진지한 분위기였다.
“아이른,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정말이야.”
“하지만…….”
“기사분께서도 부축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정말로 괜찮다는 듯, 두어 번 앉았다 일어난 아이른 파레이라.
그가 일리아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낸 뒤 조슈아 린제이에게 다가갔다.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던 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배운 게 많은 대련이었습니다.”
“…….”
“죄송한 부탁이지만, 혹시…… 다음에도 지도 대련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꼭 강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다시 한번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그의 옆에 다가온 일리아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빨리 알았다고 해, 아빠.’
잠시 뜸을 들인 조슈아 린제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지. 매일 오후 7시, 이곳으로 나와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다. 엠마.”
“예.”
“쉬어야겠어. 딸을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조슈아는 몸을 돌렸다.
처음 아이른 파레이라를 만났을 때보다 더욱 굳어진 그의 얼굴.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
사랑스러운 딸을 놔두고 돌아서는 아버지가 생각했다.
‘가까운 사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사실 조슈아 린제이는 아이른 파레이라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엠마 가르시아에게 들었다. 그 덕분에 딸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강박을 느꼈던 일리아 린제이가 저 청년 덕분에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고.
좋은 일이다.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좋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는 건…… 다른 문제지.’
암.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인 조슈아 린제이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사이가 좋아 보이는 딸, 그리고 놈팽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도 지도 대련을 부탁한다고?’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주지.
하지만, 후회하지 마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빡빡할 테니까.
‘지옥을 보여 주마.’
그 누구보다 뜨거운 아버지의 분노가 그의 전신을 불태웠다.
굳게 다짐한 그가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 * *
그 시각.
대륙의 남쪽에서도 가장 깊은 대수림에 위치한, 어둡기 그지없는 장소.
그곳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육신에서 의식을 차린 광대 악마가 손가락으로 가면을 긁었다.
그런 그의 앞에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결한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