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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202화 (202/388)

◈ 69. 의외의 만남 (1)

조슈아 린제이.

린제이 가문의 현재 가주이자, 대륙에 별처럼 많은 검사 중에서도 능히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강자.

그리고 일리아 린제이의 아버지.

그런 그의 모습을 확인한 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바로 대륙 중부에 있는 라바트 왕국의 영지다.

서부 5왕국의 하나인 아단 왕국에 있어야 할 아버지가 이곳에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자신의 아빠.

무려 2년 동안이나 보지 못했던 조슈아 린제이의 얼굴, 표정, 눈빛을 확인한 순간, 일리아 린제이는 그리움보다도 진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금 피어오른 복잡한 감정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지금 내 꼴은 뭐지?’

2년 전, 자신이 수행을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 알았다. 5대 검술 가문의 주인 중에서 가장 냉정하고, 침착하다고 알려진 분께서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얼굴만이 눈에 들어왔고, 머리에 떠올랐다.

자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문을 나왔다. 그리고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수행을 이어 갔다.

아니,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일리아의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과거의 자신이 잘못됐다는 것은 안다.

이그넷에 대한 집착이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도, 타인의 시선에 대한 강박이 자신을 무너뜨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때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휘둘리고, 여전히 얽매여 있어.’

연약하고, 형편없었다. 이그넷의 인정 한마디에 감정의 둑이 무너질 정도로…… 지금의 자신은 불안정했다.

차라리 증명의 땅에서의 자신이 더 정신적으로 단단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일리아 린제이 본인이 보였다.

그렇다면 지난 2년간의 수행은, 부모님의 만류를 외면하면서까지 이어 갔던 그 고행의 시간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다시금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검을 들 수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는 일리아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 어떤 말도 감히 내뱉을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괜찮아.”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따스한 아버지의 목소리.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항상 같았다.

다른 이들에겐 냉정하기 그지없는 검가의 수장이지만, 딸인 자신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자애롭고 온화한 이가 바로 조슈아 린제이였다.

아버지가 따뜻하지 않은 게 아니었고, 자신이 따스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그녀에게, 조슈아가 다가왔다.

힘껏 딸을 안아 준 아버지가 한 번 더 위로를 건넸다.

“괜찮다. 다 괜찮아.”

“…….”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단다. 진심이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오랜 시간의 항해에 지친 소녀가 대지를 밟았다.

단단하고, 넓고, 포근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일리아 린제이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을 쏟아냈고, 비워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듯이.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잠에 빠져든 딸을 지그시 바라보던 조슈아 린제이가, 뒤에 시립해 있던 호위기사 엠마 가르시아에게 말했다.

“딸을 부탁하네.”

“명을 받듭니다, 가주님.”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잘 보살펴 주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2년 전의 아가씨보단 지금의 모습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엠마 가르시아가 표정 없이 말했다. 조슈아 린제이는 그 말을 듣고 잠시간 멈춰 있다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답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참 모호한 말이군.”

“좋은 뜻으로 한 말입니다. 앞으로 더 좋아지실 거고요.”

“…….”

“주제넘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그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아. 가장 가까이서 딸을 지켜본 자네의 말이니, 맞겠지.”

딸을 맡긴 아버지가 한 곳을 바라봤다.

어느새 따스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평소의 차갑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

페리 마르티네스를 압박하여 얻어 낸 정보를 떠올린 그가 마지막 말을 건넨 뒤 몸을 움직였다.

“부탁하네.”

“예, 가주님.”

* * *

“쿤의 인정을 받아라. 그렇게 한다면 나 역시 그대의 합류를 인정하지.”

“…….”

“설마, 쿤이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 영지를 벗어났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쿠바르 덕분에 나름의 상식이 들어 찬 상태였다.

쿤처럼 유명한 검사를 모를 일은 없었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건, 율리우스 휼의 말이 의외였기 때문.

아이른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쿤이라니, 도대체…….’

어딜 가야 만날 수 있지?

그렇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쿤의 인정을 받아라’의 조건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악마 토벌대에 들어갈 자격을 판가름하는 일이다.

당연히 대륙 10대 검사급의 이름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거주지가 불분명한 쿤을 언급한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토벌대에 넣고 싶지 않구나.’

불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일까?

율리우스 휼이 근엄한 표정으로 아이른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군.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것보다…… 자신 있는가?”

“…….”

“내 생각보다 훨씬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쿤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지만, 쿤이 어떤 사람인지는 제대로 모르는 것 같구나.”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이른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든 그가 정화단의 멤버들을 하나씩 살폈다.

그냥 살핀 것이 아니라, 오러를 보는 눈과 오감을 동원해 꼼꼼하게 살폈다.

다소 무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

허나 그 덕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토벌대에 참가하는 이들 중, 자신보다 약한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쿤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 까다로운 눈을 가지고 있지.”

“…….”

“지금의 너로서는 몇 년을 노력해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훈계에 가까운 말.

허나 아이른은 반박하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 들떴을지도 모른다.

전생의 자신과 조우하고, 이그넷에게 마음의 검을 배우고, 금기(金氣)와 화기(火氣)의 균형을 맞추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심이 들어찼던 것 같다.

‘정신 차려.’

아이른이 광대 악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른 악마의 모습들도 떠올렸다.

카라쿰과 타라칸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들의 끔찍하고도 강력한 힘을 떠올렸다.

더, 더 강해져야만 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했다.

다시금 피어오른 불꽃의 의지가 아이른을 타오르게 했다.

달아오른 마음이 숨결이 되어 입으로 빠져나왔고, 안광이 되어 눈으로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가 젊은 영웅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허나 그를 주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낀 아이른이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

마치 얼음으로 조각한 것 같은 이가, 처음부터 함께였다는 듯이 연무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미풍이 스며든 듯 소리도, 기척도 없는 등장이었다.

허나 그런 그라도 오러를 보는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전력을 확인한 아이른이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대 적기사단장과 거의 비슷해!’

그보다 훨씬 젊은 나이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오러.

그 순간, 아이른은 상대의 정체가 누구인지 반쯤 알아차렸다.

퀸시 마이어스에 비견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발의 검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터.

‘일리아의 아버지! 어떻게 여길…….’

“이번 일을 비밀리에 처리하실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아이른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외모처럼 차가운 조슈아 린제이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같지 않던 정화단 노인들이 시선을 피했다. 이 역시 충격이었다.

‘일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른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그의 시선에 율리우스 휼과 퀸시 마이어스, 이그넷 크레센시아와 조슈아 린제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한 치 앞도 예상되는 것이 없었다.

난데없이 라바트에 모습을 드러낸 그가 과연 어떤 행동을 벌일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악연과의 일을 풀 것인가?

악마와 관련된 일은 이미 알고 있는가? 그렇기에 여기에 온 것인가?

그렇다면,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 두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할 것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조슈아 린제이가, 율리우스 휼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일단은 나중에 합시다.”

“그러지.”

“그보다, 이 청년을 잠시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편히 하시게. 나는 일 다 봤으니.”

“알겠습니다. 따라오너라.”

‘어?’

조슈아 린제이가 신형을 돌렸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를 보며 아이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율리우스 휼이 타박했다.

“뭐 하나. 빨리 따라가지 않고.”

“아, 네!”

“어? 같이 가, 아이른!”

자신도 모르게 대답한 아이른이 후다닥 린제이 가의 가주를 뒤따랐다.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있던 루루 역시 그의 뒤를 쫓았다.

빠르게 멀어지는 셋을 보며 퀸시 마이어스가 말했다.

“곤란해졌군.”

“음.”

율리우스 휼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페리 마르티네스에게 대부분의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자신의 딸이 강대한 악마와 엮이게 되었다는 것도, 정보를 통제한 채 독단적으로 악마 사냥에 나설 예정이었다는 것도.

이그넷과 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역시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율리우스 휼은 추후에 이어질 조슈아 린제이와의 대담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어떤 것 말이오, 선배.”

“저 젊은 녀석 덕분에 가주의 신경이 분산되지 않았나.”

“으음.”

하긴, 딸 바보로 유명한 양반이니 남자 문제가 가장 신경 쓰이겠지.

나직이 중얼거린 율리우스 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 * *

‘굉장해!’

조슈아 린제이의 뒤를 따르며, 아이른 파레이라는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너무 상황이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떠올리면 정말 대단한 광경이었다.

‘하나하나씩 따로 상대해도 만만치 않은 성기사들을 눈빛만으로 제압하다니!’

과연 린제이 가문의 수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와 검을 맞대고 싶다는 욕심도 피어올랐다.

지금껏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

물론 가장 큰 것은 전생과 얽힌 인연이지만, 꾸준히 강자를 만나 겨루고, 그로 인해 자극과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 역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기에 조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른의 눈은 동경과 선망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었다.

5대 검술명가 중 제일이라 불리는 린제이 검가의 수장!

그의 검술은 얼마나 대단할까?

일리아가 보여 줬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겠지?

완성된 하늘검과 겨뤄 보고 싶다!

그야말로 수많은 상념이 머릿속에 피어났다.

지금의 너는 한참 부족하다는 율리우스 휼의 말 때문인지, 그러한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아이른 파레이라.”

허나, 인적이 없는 또 다른 연무장에서 신형을 돌린 조슈아 린제이가.

“자네가 내 딸과 몹시 가까운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네.”

“네? 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

묘하게 날카로운 어조로 자신을 다그치기 시작했을 때.

“듣기로는 네 명이 함께 여행을 다닌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자네 혼자군.”

“……?”

“의도한 건가?”

“네?”

“의도적으로, 내 딸과 둘이 다니기 위해 수작을 부렸냐는 말이다.”

“네?”

“엥? 아니야! 나도 있잖아! 나도!”

펄쩍, 펄쩍!

조슈아 린제이의 말을 들은 루루가 그의 앞에서 펄쩍펄쩍 점프했다.

자신 역시 파티의 일원이라고,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허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

평소보다 훨씬 더 매서운 표정을 지은 조슈아가 아이른에게 다시 물었다.

“수작을 부렸나?”

“아, 아니요. 수작이라니, 그게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았나?”

“않았습니다! 정말이요!”

“……그래?”

“예!”

아이른이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도대체 뭘 변명하는 건지도 제대로 모른 채, 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지배했다.

허나 조슈아 린제이는 만만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입을 열었다.

“수작을 부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내 딸이 별로인가?”

“네? 그게 무슨…….”

“안 되겠다. 검을 들어라.”

스르릉-

검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아이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조슈아 린제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재차 말했다.

“검 들어라.”

“…….”

“안 들면 책임 못 진다.”

슈욱-

터업!

아이른이 황급히 검을 소환했다. 그런 그를 향해 조슈아 린제이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토록 경험하고 싶었던 가주의 하늘검이 사나운 기세로 짓쳐들었다.

물론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과 180도 생각이 달라진 아이른 파레이라가 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악마와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포가 그의 전신에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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