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99화 (199/388)

◈ 68. 너로는 무리다 (1)

광대 악마의 저주가 끝났다.

제아무리 고위 악마라 할지라도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지원군을 버텨 낼 수는 없었다.

대륙 최강의 성기사 율리우스 휼의 지휘 아래 결계가 박살 났고, 마기는 빠르게 정화되었다.

그 밖에도 정보 수집과 상황 파악 등, 여러 조치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맞이한 총결산.

던전 탐사 총인원 127명, 사망자 1명, 부상자 없음.

하지만 얻은 보상이 전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기대를 한참 밑도는 결과에 라바트의 총책임자, 페리 마르티네스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굉장히 승률 높은 도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 던전 탐사는 기본적으로 도박에 가깝긴 하다.

개고생해서 최심부까지 들어갔더니 언데드 몬스터만 잔뜩 있다거나, 간신히 발견해 낸 아티팩트가 마력에 오염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0년 이내에 만들어진, 혹은 규모가 작은 던전의 이야기다.

마력 결계형 던전, 그것도 최소 수백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던전이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자금을 쏟아부어 공략했던 던전은 사실 대 악마의 소굴이었고, 내부를 샅샅이 뒤져 나온 물건은 모조리 저주에 물들어 있었다.

더욱 짜증 나는 점은, 고대의 악마를 처치했다는 명예마저 얻을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이해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악마는 마계에서 탄생한다. 예외는 없다.

수백 년 전 출몰했던 녀석들도 대륙의 혼란을 통해 벌어진 차원의 틈을 통해 건너온 것일 뿐이다.

신성왕국이 강제로 국가 간 전쟁을 막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대륙의 혼란을 최소로 줄여야만 닫혀 있는 차원의 틈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악마들도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터였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150년 만에 악마가 출현했다!’라는 소식 역시 철저하게 감출 필요가 있었다.

결국 라바트 왕국은 엄청난 공을 들였음에도 명예와 물질적 보상,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후우.”

페리 마르티네스가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원군의 총책임자, 백기사단장 율리우스 휼이 위로금을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금액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많으면 다행이지만, 적다고 해서 따질 수도 없다.

대륙 최고의 강대국인 것도 모자라, 명분까지 움켜쥐고 있는 신성왕국에게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게다가…….’

노마법사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구출의 순간을 떠올렸다.

백색의 후광을 등에 업고 나타난 대륙 최강의 성기사, 율리우스 휼.

그의 위엄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평생을 자부심 속에 살았던 자신 역시 몸이 굳을 정도였으니까.

허나 그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율리우스 휼이 뛰어난 기사인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보다는 그의 뒤에 늘어서 있는 이들에게 더욱 눈길이 갔다. 그중 몇몇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죽었다고 했는데.’

그들 중에서도 유독 꼬장꼬장한 분위기를 뿜어내던 노인을 떠올리며, 페리 마르티네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협상은 무리겠어.

조용히 중얼거린 그가, 라바트의 왕께 전할 서신을 작성하였다.

* * *

광대 악마의 보금자리에서 탈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도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무너져 가던 이들이 몇몇 있었지만, 신성왕국의 수도에서 파견된 고위 사제들은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자랑했다.

마음의 정화와 육신의 치유를 순식간에 마친 그들은 이내 악마 소굴의 조사에 들어갔고, 탐사대는 책무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절대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다들 불만이 많아 보였지.’

신성왕국의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생각하며,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던전 탐사에 수많은 자원을 쏟았을 이들이 명예조차 얻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터였다.

물론 아이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악마에 맞서는 것은, 자신이 황금의 검을 세우는 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얻은 게 많아.’

우선 전생의 적이었던 광대 악마를 쓰러뜨렸다.

대륙의 평화도 평화지만, 개인적인 복수를 끝마쳤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했다.

무력의 성장도 이루었다.

전생 사내와의 유대감을 통해 요술 대검이 더욱 강력해졌고,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가르침을 통해 더 높은 경지로 향할 토대를 마련했다.

‘따지고 보면, 던전의 아티팩트 지분을 정산받은 것보다도 훨씬 큰 걸 손에 넣은 셈이야.’

후우, 날숨과 함께 상념을 마친 아이른 파레이라가 눈을 떴다.

열심히 검을 수련하는 일리아 린제이의 모습이 보였다. 화려하고 날카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엉성하고 형편없다고 혀를 찰 정도였다.

허나, 뛰어난 검사이자 요술사인 그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영웅의 검.

아니, 마음의 검을 자신의 몸에 녹이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이른 역시 검을 휘둘렀다.

후웅!

후우웅!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마음의 검(心劍)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난도를 자랑했다.

마치 장애로 인해 평생 몸을 움직여 본 적 없는 사람이 고난도의 동작을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 겨우 오러를 느끼는 단계의 검사가 강화, 경화, 개화, 집중, 발현을 동시에 신경 쓸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심검을 익숙하게 다루기 위해서 차근차근 수련을 이어 나갔다.

후웅!

검 하나에 마음을 세우고.

후우웅!

검 두 번에 육신과의 조화를 꾀한다.

후우우웅!

거기에 오러를 더하고, 오행신공의 기운을 더한다.

완성된 금기(金氣)에 뜨거운 화기(火氣)가 더해지며 아이른의 검이 점차 매끄럽게,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집중력이 떨어진 검 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안정적이던 호흡과 자세도 미세하지만 균열을 보였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검을 거둔 아이른이 벤치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그넷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렇다.

그가 대륙 중부에 온 이유는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1년 반 전, 데린쿠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할 강철을 품고 있는 애송이 녀석.’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분했다. 더욱 화가 났다.

전생을 통해 검을 완성한 순간 곧바로 이그넷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자신의 성장을 보여 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른은 그녀에게 강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했나?’ 하면, 그건 아니다.

예전과 달리 쇠말뚝에 휘둘리지 않았다. 자신이 세운 검을 당당히 보여 주었다.

예전과 달리 그녀의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다. 자신이 품은 뜻을 온전히 보여 주었다.

이그넷의 놀란 얼굴을 보며 조금이지만 개운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통쾌함과 함께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던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참 모자라.’

아이른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던전에서의 일이 방금 일어난 것처럼 선명히 떠올랐다.

광대 악마에게 강대한 타격을 줬던 검극의 기운이.

그의 무시무시한 자폭을 홀로 막아 냈던 강인한 모습이.

보통 사람은 일어날 수조차 없는 치명적인 부상에도,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마음의 검을 베풀었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의미 없는 감정이라는 건 안다.

브랫이 말하지 않았던가. 영웅에는 순위가 없다고. 강하든, 약하든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모르겠다. 지금은 모르겠다.

오로지 이그넷 크레센시아에게만 쏟아졌던 성기사들의 시선을 떠올리며, 아이른이 눈을 떴다.

그러자 낯익은 인물이 자신의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게오르그 씨.”

“오랜만입니다, 아이른.”

“…….”

“아니, 오랜만이라는 표현은 이상한가요? 하지만 재회 후 처음으로 하는 인사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게오르그 포이베가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마주 손을 내밀었다.

힘 있게 악수를 교환한 그가 옆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고, 아이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멈춘 일리아가 그런 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게오르그가 입을 연 것은,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어떤 부탁이죠?”

“저희와 헤어진 후 있었던 1년 반의 시간,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진심이었다.

연회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굉장히 강해졌고, 마음도 단단해진 듯 보였다.

그 까다로운 단장조차 눈에 이채를 띌 정도로 달라졌지만, 지금처럼 강렬한 호기심이 피어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단장이 변했습니다.”

“…….”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히 변했어요. 아마…… 아이른 파레이라 씨 때문이겠죠. 다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을 말입니까?”

“아이른 파레이라 씨의 어떤 점이 단장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

“단장은 한결같은 사람이었거든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게오르그가 과거를 상기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댔던 자신을 쥐어팼던 십 년 전에도, 신성왕국의 기사단장이 되어 억지로 고풍스러운 말투를 쓰는 지금도. 이그넷은 한결같았다.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고, 자신이 설정한 길만을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랬던 단장이, 조금 변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도, 확신에 가득찬 행동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 사이에 묘한 무언가가 더해졌다. 게오르그는 느낄 수 있었다.

이그넷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 10년간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단장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조금 분했다. 씁쓸하기도 했다.

자신도 아냐도 아닌,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갔던 인물이 이그넷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단장의 마음이 느리게나마 열리고 있는 건, 이 친구 덕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

게오르그가 그를 찾아온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은 단장보다 부족하다. 실력만이 아니라 안목도 모자라다.

그녀가 곧바로 느낀 것을 그는 느낄 수 없었기에,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당사자를 찾아가 이야기라도 들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멀리 달려가는 단장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당신을 찾아온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게오르그는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잠시 그를 지켜본 아이른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못 해 줄 것도 없었다.

좋은 인연으로 엮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당시의 불편했던 감정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그넷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커다란지를 눈으로 볼 수 있었기에, 아이른은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었다.

요술사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본 그가 입을 열었다.

“말해 드리겠습니다.”

“감사…….”

“숨기고 있는 것을 먼저 알려 준다면요.”

“…….”

“이그넷에 대해서, 악마에 대해서…… 뭔가 숨기는 게 있죠?”

아이른 파레이라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직감이, 예리한 육감이 게오르그의 속내를 샅샅이 훑었다.

확신을 갖고 쏘아지는 눈빛에 흑기사단의 부단장이 한줄기 땀을 흘렸다.

……말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질문을 던진 것은 그저 확인을 위한 절차인 걸로만 보였다.

결국, 한숨을 내쉰 게오르그 포이베가 입을 열었다.

“광대가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신성왕국의 생각입니다.”

* * *

벌컥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몇몇 성기사들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왕국의 흑기사단장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거물들이 모인 자리다. 그런 곳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허나 문을 연 이들은 당당했다.

30도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나이의 두 검사와 하늘을 나는 고양이.

그중 금발의 청년이 말했다.

“광대 악마가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그 밖에도, 적지 않은 악마가 대륙 곳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그 악마들을 처단하기 위한 토벌대가 편성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희도 토벌대에 넣어 주십시오.”

“왜?”

우호적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허락도 없이 벌컥 들어와 떼를 쓰는 모양새였으니,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이른은 계속해서 자신의 말에 답하는 대머리 노인을 쳐다봤다.

‘강해.’

오러의 총량으로만 검사의 경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객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사실이기에, 아이른은 오러를 보는 눈으로 회의장 모두의 오러를 파악한 상태였다.

놀랍게도, 저 노인의 오러는 율리우스 휼을 제외한 누구보다도 많았다.

‘누구지?’

대륙의 10대 검사 중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외모.

허나 대전사 카라쿰에 필적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분위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나와.”

“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은데, 나와서 보여 줘라.”

“…….”

“그 정도 패기는 있지?”

자신을 무시하지도, 높이 사지도 않는 차가운 눈빛.

대머리 노인의 시선을 받은 아이른 파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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