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98화 (198/388)

◈ 67. 마음의 검 (2)

아직 광대 악마를 처치하기 전, 자신의 전생인 카렌 윈커와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검으로 스며드는 그의 힘을 느끼며, 아이른 파레이라는 자신이 지금까지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골격이나 근육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러가 급성장한 것도, 그 운용해 대한 지식이 스며든 것도 아니다.

전생의 기억이 드문드문 느껴지긴 했지만, 애초에 전생의 자신은 검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자신보다 한참 아래였으니까.

그런데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도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저 강대한, 몇 년의 삶을 살았을지 모를 추악한 악마가 앞에 있건만, 조금도 겁이 나지 않았다.

오러보다도 더욱 든든한 무언가가 자신과 검을 진하게 감싸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

이그넷 크레센시아로부터 영웅의 검, 아니 마음의 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듣는 순간, 아이른은 그때의 힘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자신과 전생 사내의 선의가 ‘실체하는 에너지’로서 드러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후우웅-!

아이른이 검을 휘둘렀다.

평소와 달리 어딘가 어색했다. 마치 평생 검을 수련하지 않았던 이의 모습 같았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몸 자체를 움직이지 않았던 이처럼 조잡한 동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난생처음 근육을 쓰는 이가 제대로 된 행동을 취할 수 없듯.

난생처음 오러를 느낀 이가 매끄럽게 오러 운용 6개념을 활용할 수 없듯.

지금의 아이른이 마음의 검을 휘두르는 모습 역시, 부족하고 미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엑스퍼트에 오른 이들, 특히 마스터 급에 올랐을 정도의 강자는 더욱 그러했다.

“…….”

“…….”

“……어처구니가 없군.”

영웅의 검을 배웠다.

그것도 개념만 듣고 배워 버렸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첫 시련과 그 후의 모습을 보며, 세비온 브룩스는 저 청년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선의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

아마 정말로 영웅의 검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처음은 저 청년이 될 거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듣는 순간 힘을 각성해 버릴 줄은…….

후웅

후우웅

후우웅-!

여전히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와중에, 아이른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어려웠다. 근육과 오러의 움직임을 신경 쓰면서 마음의 검까지 조율하는 데는 상상하기 힘든 집중력이 필요했다.

아마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일 것이다. 심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팁과 노하우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이른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췄다.

타는 듯한 시선으로 이그넷을 쳐다본 그가 말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다, 다음은 무슨 다음입니까아아!”

흠칫.

아이른이 깜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칼벤의 부기사단장, 아미라 쉘튼의 모습이 보였다. 잔뜩 흥분한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씩 아이른을 향해 고리눈을 떴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와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내가 실수한 건가?’

조금 민망했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너무 앞서나간 건 맞는 것 같았다.

전생의 자신과 꿈에서 교류하며 끊임없이 그의 의지를 엿보고, 루루에게 요술을 배우며 불철주야 마음의 힘을 연마했던 시간이 생각났다.

그런 자신과 달리 저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그넷이 말한 개념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터였다.

머리를 긁적거린 그가 한 발 뻗었던 발을 회수했다.

그리고 얌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이그넷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헌데, 이변이 벌어졌다.

“아이른, 나오너라.”

“예?”

“따로 진도를 빼는 편이 낫겠구나.”

“하지만…….”

아이른이 주변을 둘러봤다. 다시 한번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너 때문에 우리들은 찬밥 신세가 됐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중에는 일리아 린제이의 눈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영웅의 검의 기본 개념을 가르칠 사람이 또 하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 기본 개념은 제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오르그 포이베.

신성왕국 흑기사단의 부단장이자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갖춘, 대륙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

그가 나서는데 불만을 표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우우우웅……

“……저도 이것을 실전에서 써먹을 정도로 원활하게 다룰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위한 연료. 그것을 실재하는 에너지로 화하는 것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커다란 노력, 그리고 재능이 필요합니다.”

“…….”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검술에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큰 재능이 필요하죠. 아쉽게도 저는 재능이 부족했습니다.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죠. 아마 둘 다였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이어지는 게오르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40도 되기 전에 소드마스터에 오른 존재가, 자신을 두고 재능이 부족하다 말한다. 노력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엑스퍼트조차 겨우겨우 올라선 자신들은 뭐가 되는가?

배배 꼬인 감정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그들은 결국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영웅의 검이 누구나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웠다면, 이미 영웅의 검이 아니었을 터.

검사들은 억지로 마음을 다스렸다. 이는 같은 소드마스터인 세비온 브룩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악마의 마기에 상반되는 마음인…… ‘수호 의지’를 강하게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우와, 게오르그 말 잘한다.”

“그러게. 잘하네.”

아냐와 루루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그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아이른과 이그넷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그쪽으로부터 관심을 껐다.

씨익 미소를 지은 흑기사단장이 아이른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시작할까?”

“부탁드립니다.”

“좋아. 다만, 곧바로 심검을 이뤄 냈다고 해서 쉽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

“마음과 육신, 오러를 동시에 조율하여 쓸 만한 검술로 만들어 내는 건……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알고 있습니다.”

아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미 알고 있었다.

비단 마음뿐만이 아니었다. 육체를 키우는 것도, 오러를 다루는 것도. 여기까지 오는데 쉬웠던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이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른은 이그넷의 생각보다 더욱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오행신공.’

대전사 카라쿰에게서 배운 정령의 힘까지 더할 수 있다면…….

‘세상을 지키기 위한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질 거야.’

우우웅-!

아주 약한 진동이 피어났다. 아이른의 마음이었다.

영웅의 검을 각성하기 위해 일부러 피워 낸 것이 아닌,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세상을 향한 선의였다.

이를 알아본 이그넷이 하,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나 다른 이들처럼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내가 얻어간 것도 충분히 많으니.’

“좋다. 시작하겠노라.”

그 말을 끝으로 이그넷은 한 명만을 위한 특별 수련에 들어갔다. 그녀와 게오르그가 읊어대는 강의가 던전 전체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

“…….”

게오르그의 말을 빠짐없이 머리에 저장하면서도, 눈으로는 친우와 원수를 함께 담고 있는 은발의 검사.

그녀의 마음속에도 약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 * *

3주가 지났다.

사람이 미치기에 충분할 정도로 긴 결계 생활이었지만, 여전히 상황은 좋았다.

아냐의 불꽃 같은 심부름이 요술 금화로 바뀌었고, 다시 비상식량이나 자잘한 용품으로 바뀌었다. 물질의 풍요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울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팔랑케의 최고 기사인 세비온 브룩스 경이었다.

그는 공동의 석벽에 기대어 앉아 두 젊은 검사가 열심히 검을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랬다. 그를 비롯한 다른 모든 이들이 이그넷의 검술을 배우는 걸 포기해 버린 것이다.

‘저딴 걸 가르치는 것도, 배우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돼.’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에너지로 실체화한다?

말은 쉬웠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섬세함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엑스퍼트의 검사가 마스터의 오러 운용을 따라할 수 없듯, 엄청난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는 양반이었다.

내전 당시에 느꼈든 울분과 분노, 그것을 역으로 평화와 안정의 마음으로 바꾼 세비온 브룩스는 이그넷과 게오르그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심검을 실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오러 소드에 마음의 검을 덧씌우는 순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내가 넘볼 영역이 아니었지.’

세비온이 영웅의 검을 깔끔하게 포기한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보다 재능이 부족한 다른 검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전히 검을 들고 지랄발광을 하는 아미라 쉘튼을 제외하면, 저기 이그넷에게 직접 지도받는 중인 두 검사야말로 진짜 영웅의 검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처음으로 검을 각성한 아이른보다 일리아의 성취가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일리아 린제이의 성취는 빨랐다.

수호 의지를, 세상에 대한 선의를 실재하는 에너지로 만든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오러를 느끼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운용이듯, 심검 역시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리고 일리아는 그 부분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보였다. 대충 봐도 아이른보다 2배는 빠른 성장 속도였다.

물론…….

“멍청한 놈.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것이냐?”

“허억, 헉…… 안 되면 될 때까지 해 보죠.”

가장 놀라운 것은, 영웅의 검을 가르치고 있는 이그넷 크레센시아였다.

딱히 자신의 검을 숨기지 않았기에, 동굴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가르침을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는 극상승의 검술을 말로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녀의 검에 관한 이해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허허.”

세비온 브룩스가 웃었다. 예전의 일을 생각한 그의 낯이 뜨거워졌다.

주제도 모르고 이그넷을 꺾어 볼 생각을 하다니.

그야말로,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벼 댄 꼴이었다.

‘신경 쓰지 말자.’

세비온 브룩스라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밀려오는 열등감을 걷어 내기 위해 명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다른 세상 이야기다. 쳐다보고 있어 봐야 자신의 목만 아플 뿐, 도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허나 늙은 검사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그넷의 검을 향한 집착이 남아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범한 감정이었지만, 조금만 잘못하더라도 어둠으로 변할 가능성이 큰 위험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魔)로 변할 일은 없게 되었다.

쩌엉!

쩌어엉-!

“어?”

“이 소리는…….”

“뭐야? 무슨 일이야?”

각자의 일에 집중하던 탐사대원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에도 소리는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커지고 있었다.

쩌어어엉!

쩌엉!

쩌저어엉-!

쩌적, 쩌저적……

콰아앙!

무언가를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그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흑기사단원들의 얼굴은 더욱 밝았다.

어둠의 결계를 깨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곧바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그넷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부상이 낫지 않았지만, 그녀는 최대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결계가 무너지길 기다렸다.

지도를 받던 아이른과 일리아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루루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이윽고, 어둠이 무너졌다.

콰아아아앙-!

거친 소리와 함께 생겨난 통로.

그 거대한 구멍을 통해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평범한 햇빛이 아니었다. 신의 은총을 받은 고위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었다.

허나 아이른의 눈에 들어온 건 그들이 아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듯 순결한 백색의 갑옷.

흰 수염마저 고결하게 느껴지는 늙은 성기사를 보는 순간, 아이른은 전신이 긴장으로 물드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

일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몇 발짝 뒤에 떨어져서 다가오고 있는 10명의 성기사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들 전부가 자신의 아래가 아닌, 소드마스터에 오른 지 한참은 세월이 지난 이들이라고.

‘열한 명의 소드마스터? 아무리 아빌리우스가 대륙 최고의 강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일리아 린제이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잠시 후, 그보다 더한 감정이 그의 가슴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 살아 있었구나.”

“못난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단장님.”

흰 수염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중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11명의 소드마스터 중 그 누구도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 모두는 이그넷 크레센시아 외의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로지 그녀에게만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화르륵

그리고 그것이,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

그것을 다시금 떠올린 아이른 파레이라가,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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