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97화 (197/388)

◈ 67. 마음의 검 (1)

악마와 마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힘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당연히 신성력이다.

악마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신은 대륙의 피조물들에 무한한 은총을 내려 준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성기사들이야말로 가장 많은 악을 멸한 장본인들이었다.

하지만, 신성력을 다룰 수 없다고 해서 꼭 마(魔)에 취약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사 속에는 성기사들 이상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400년 전 마룡왕을 토벌했던 디온 린제이가 그러했고, 크로노 검술관의 초대 관주인 제이콥이 그러했다.

그들 모두 신성력을 다룰 수 없음에도 수많은 악마를 베어내고, 무릎 꿇렸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영웅’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고, 그들의 검술 역시 ‘영웅의 검’이라고 칭하며 지극한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그넷 역시, 영웅의 검을 타고났다 알려진 자.’

꿀꺽.

세비온 브룩스가 침을 삼켰다.

유명한 이야기였다.

용병 시절 이그넷의 검술을 본 백기사단장이 강력하게 그녀를 천거했고, 의심쩍은 표정을 짓던 고위 사제들 역시 만장일치로 그녀의 영입을 찬성했다는 일화.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압도적인 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만마(萬魔)를 굴복시킬 기운을 타고났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검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아니, 그 전에. 그걸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세비온 브룩스로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웅의 검은 누군가에게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세상은 온통 영웅으로 가득했을 터고, 악마는 150년 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절멸했을 것이다.

뛰어난 검사는 노력으로 빚어질 수 있다.

허나 영웅은 그렇지 않다. 영웅은 타고나야 한다. 팔랑케의 최고 기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

“…….”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들이 더 심했다.

제아무리 대륙을 진동시키는 흑기사단장의 말이라 한들, 그녀의 가르침이라 한들 자신들이 영웅의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꼭 악마에게 치명적인 영웅의 검을, 영웅의 기운을 노릴 생각이 없더라도…….’

‘그냥 이그넷에게 검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회 아니야?’

그랬다.

의구심을 품은 검사들, 그들 중 누구도 이그넷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있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악마와 마인에게 유독 효과적인 검?

물론 좋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냥 그녀의 검술을 배운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엄청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세비온 브룩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가 가장 절실했다.

이그넷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겨뤄 본 당사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영웅의 검을 배워서 악마의 저주를 뚫을 욕심까지는…….’

‘그런 성과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아. 하지만…….’

‘검을 배울 수만 있다면. 장래 대륙 최강의 검사로부터 검을 배울 수만 있다면!’

검사들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조금씩이지만 가라앉던 던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활기로 가득 찼다.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다. 이그넷이 자신의 검술을 몇몇 강자들에게만 전수할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로구나.”

“…….”

“모두에게 허락하마.”

“……!”

“가능성은 넓게 열어 두는 것이 좋겠지. 부디 누가 되었든 나의 비전을 얻어, 이 역겨운 암흑결계를 걷어 낼 수 있었으면 기껍겠…….”

“감사합니다아아앗!”

이그넷의 말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저 멀리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칼벤의 부단장, 아미라 쉘튼이 직각으로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했다.

자국에선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알고 있었다.

대륙 전체는커녕 주변국으로만 시야를 넓혀도 자신 정도의 인재는 차고 넘친다는 것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이번만 해도 그랬다.

아이른 파레이라, 일리아 린제이.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으로 탐사대를 위기에서 구해 냈던 두 천재.

‘그들과 비교할 수는 없어.’

당연한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조차 없는 생각이다.

허나 이런 자신이기에 지금의 기회가 더욱 간절하고 소중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그넷을 향해 예를 표하는 아미라 쉘튼, 그리고 그런 그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레고리 그리핀.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금껏 눈치만 보고 있던 3국의 기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예를 표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도 최선을 다하지. 가르침을 부탁하네.”

소드마스터이자 팔랑케의 최고 기사인 세비온 브룩스마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페리 마르티네스가 신기하게 바라봤다.

‘저 자존심 강한 세비온이 고개를 숙이다니.’

이그넷의 위명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허나 더욱 관심이 가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지기이자 라이벌인 세비온으로부터 시선을 돌린 페리가 한 인물을 쳐다봤다.

우두커니 선 채로 과거의 악연을 마주하고 있는 젊은 검사.

일리아 린제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이그넷의 가르침을 거절할 것인가?

아니면 분한 마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일 것인가?

페리 마르티네스를 비롯한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아이른과 루루가 일리아의 얼굴을 살폈다.

놀라운 검술 실력에 비하면 대중의 압박에 취약한 그녀였기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마워. 잘 배울게.”

“…….”

“…….”

“왜?”

너무나도 담담한 얼굴로 또다시 반말을 내뱉는 일리아 린제이.

그런 그녀의 반응에 게오르그도, 아냐도, 둘을 주목하고 있던 다른 탐사대원들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이지만 이그넷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허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피식 웃음을 흘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거라.”

“고마워.”

“아이른, 그대는 어떻게 할 거지?”

이번에는 아이른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일리아를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다른, 오직 기대감으로만 가득한 눈빛.

심지어 이그넷마저 마찬가지였다.

연회장에서 재회했을 때보다도 더욱 날카로운 눈초리가 아이른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

물론 그에 위축될 일은 없었다.

터업

아이른은 바닥에 꽂혀 있던, 이제는 날까지 완연한 황금색을 띠는 검을 들었다.

검사의 예를 갖춘 뒤, 아이른이 말했다.

“저주를 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탐사대원들이 던전에 체류한 지 일주일 째.

보통 저주가 가득 들어찬 곳에 오랜 시간 있으면 괴로움에 몸을 비틀 수밖에 없지만, 지금 던전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특히 검사들이 그러했다.

이그넷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을 바라보며 페리 마르티네스가 말했다.

“부럽구만.”

진심이었다.

더 높은 경지를 위해서라면 지옥 불구덩이라도 거침없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검사라는 족속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이그넷 크레센시아의 가르침은 원래 생각하고 있었을 던전의 보상보다도 더욱 뛰어난 선물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이러한 성향은 마법사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아마 룬텔 왕국의 3가주가 무료로 가르침을 내린다 하면, 라바트의 인물들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게오르그 포이베를 비롯한 흑기사단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 누구도 이그넷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성력을 다룰 수 있으니, 딱히 영웅의 검을 탐낼 필요는 없다는 건가? 하지만…….’

“음.”

흑기사단을 살피는 와중, 흑기사단의 부단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페리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게오르그 역시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금 단장 쪽을 바라봤다.

악마에 대한 기초적인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입문이나 할 수 있을까?’

다들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그넷은 자신의 검술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는 인물이 아니다.

즉, 지금의 그녀는 무언가 특별한 결심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자신만 해도 그랬다. 용병대 시절, 별로 친분이 깊지 않았을 때도 곧바로 영웅의 검을 전수받았었다.

결과는?

‘실패지. 그걸 어떻게 따라해?’

기초적인 부분까지는 이해했다. 힘을 실체화하고,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까지도 성공했다.

1년 반 전, 아이른이 마음속에 철검을 품고 있던 것을 알아본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검의 형태로 가다듬고, 나아가 검술의 형식으로 완성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게오르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마 한 명, 어쩌면 두 명쯤은 가능할지도.’

아이른, 그리고 이그넷.

둘을 잠시 지켜보던 게오르그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저들이 영웅의 검을 배우는 것보다, 단장이 몸을 회복해서 나가는 쪽이 빠를 것 같은데.’

단장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정말로 저들이 그렇게 빨리 영웅의 검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던전의 분위기를 위해서?

그런 거라면 성공했다. 꽤 괜찮았던 전에 비해서도 훨씬 밝은 분위기가 검사들 사이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결계의 암흑이 옅어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다만, 이러한 행동은 평소 이그넷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게오르그는 약간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뭔가 깨달음을 얻으신 걸지도…….’

그렇듯 게오르그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영웅의 검에 대한 이그넷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우선, 악마는 어떤 존재일까? 아니, 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지. 악마들이 사용하는 마기(魔氣)란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모두 알고 있었다.

바로 악의.

인간을 파괴하고, 살해하고, 짓밟고, 농락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고…….

그야말로 인간이 괴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어둠에 근접한 모든 것이 마기의 본질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악마를 처치하기는커녕, 지독한 마기에 질려 제대로 된 실력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고.

허나 이러한 기운을 집어삼키는 정반대의 힘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신성력이었다.

“반대로 신성력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은 그 자체로 찬란하게 빛나니, 악마들의 상극이라 할 수 있지.”

“…….”

“그리고 인간의 의지 역시, 신의 은총을 대신할 수 있다.”

후우욱!

잠시 뒤로 돌아선 이그넷의 몸에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오러는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게 마음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불꽃. 아이른이 뿜어내는 것과는 달리 따스하고 그리운 느낌은 없었지만, 그 뒤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무엇으로부터든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든든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입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이그넷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후욱……

“허억, 훅, 후우…… 이것은, 악마의 ‘파괴 욕구’를 정면에서 꺾기 위해 만든, 내 안의 ‘수호 의지’를 에너지로 실체화한 것이니라.”

“그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을 겉으로 형상화한 것이라 보면 된다.”

“…….”

“육신을 단련하여 겉으로 보이는 근육을 키우고, 오러를 단련하여 외부로 오러 소드를 발현하듯…….”

후우우욱-!

“……이렇게, 마음의 힘…… 그중에서도 악마의 의지와 반대되는, 즉 세상을 지키려는 수호의 의지가 겉으로 느껴질 정도로, 후우…….”

후욱-

“단련하고, 가다듬어, 검술의 영역으로 끌고 나가면 된다는 뜻이지.”

“…….”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이그넷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힘을 추상적이라고 얕잡아 보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던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느끼지 않았는가.

마음의 강함이 부족한 이들은 낙오될 뻔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이들은 어렵지 않게 첫 시련을 돌파하였다.

하지만 이를 실체화한 에너지로 만들다니.

나아가 오러 소드와 마찬가지로 검의 형태로 만들고, 검술의 영역으로 발전시키다니.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 전에,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영역인 건가?

그때였다.

퍼어어엉-!

“…….”

“…….”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앞쪽에 울려 퍼졌다. 근처 사람들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설마가 설마였다.

새로이 각성한 힘을 아이른 파레이라가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니, 새롭게 각성한 건 아니지.’

마음의 검?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크로노 검술관에서 최종 평가를 받을 때도, 남부 토벌전에서 악마를 베어냈을 때도, 이그넷의 앞에서 쇠말뚝에 손바닥 자국을 냈을 때도, 일리아 린제이를 상대로 오러 소드를 뽑아냈을 때도, 전생을 확인하고 불꽃의 신념을 이루었을 때도.

자신은 항상 마음의 힘을 활용하고 지키기 위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이 사내의 의지든, 자신의 의지든 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할 수 있었다.

다소 추상적이었던 개념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입력되는 순간…….

후우우욱-!

전신에 퍼지는 제3의 힘.

그것을 온전히 검에 담기 위해 노력하자, 금색의 오러 소드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화르르륵

영웅의 검을 이뤄 낸 아이른 파레이라가, 임시 스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영웅의 검입니까?”

“맞다. 하지만…….”

한 번 뜸을 들인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말했다.

“나는 마음의 검(心劍)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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