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89화 (189/388)

◈ 63. 무슨 일이 있었지 (3)

요술 소녀, 아냐 마르타에겐 친구가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요술을 각성한 뒤로부터 계속 이그넷만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딱히 친구를 원한 적도 없었다.

그녀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 봤자 흑기사단원들이나 신성왕국 사제들이 전부였는데, 전자도 후자도 전부 재미가 없었다.

그나마 게오르그 포이베 정도가 아냐와 말이 통했지만, 그 역시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1년 반 전에 만났던 루루의 존재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귀여워!’

폭신하고, 복슬복슬하고, 따스하다. 하는 행동도 귀엽다.

거기다가 고양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말까지 할 수 있으며,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요술에 뛰어나다.

사랑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루루였던 것이다.

‘좋아! 대장 다음으로 좋아!’

그랬던 루루가, 이번에는 더욱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고양이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심지어 앙증맞은 뿔과 날개까지 달고 자신에게 다가온 것이다.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아냐로서는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즐거운 기분은, 루루가 화를 내는 순간 저 멀리 사라졌다.

“왜 그랬어! 친구라고 했으면서 왜 나랑 아이른 괴롭혔어!”

“어? 아닌데! 아냐는 괴롭힌 적 없는데…….”

“이그넷하고 같이 아이른 괴롭혔잖아! 가기 싫다고 했는데 막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고, 배도 때려서 기절시키고! 기억 안 나?”

기억나는 것도 있었고, 안 나는 것도 있었다.

사실 대장이 아이른의 배를 때렸다는 건 생각도 안 났다. 그저 기사단에 들어오라고 말한 사실만이 머리에 남았다.

‘하지만, 그건 괴롭힌 게 아니라 엄청 좋은 거 아니야?’

아냐에게 있어서 이그넷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멋있는 사람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라고 해서 남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중에는 왕의 자리에도 오를 사람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데, 그게 왜 괴롭힘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냐는 이런 자신의 사고를 루루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몰라!”

“대장, 아니 단장한테 그러지 말라고 할게! 아냐랑 다시 놀자! 친하게 지내자!”

“몰라! 나 아직 화났어!”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해야 루루 화가 풀려?”

“……그것도 몰라! 일단 오늘은 안 풀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생각해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루는 고양이로 변신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냐는 망연자실한 와중에도 ‘다음에 만날 때까지’라는 말에 안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었고, ‘어떻게 하면 루루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게오르그의 숙소로 돌아갔다.

어른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게오르그가 고심하고 고뇌해서 내놓은 제안들을 깡그리 무시한 채, 자신의 방식대로 화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바로 인간형 루루를 위한 멋진 드레스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루루도 이제 옷 입을 수 있으니까, 드레스 주면 엄청 좋아할 거야! 하얀색 드레스 입고 아냐랑 같이 놀아 줬으면 좋겠다!”

“……이럴 거면 나한테 왜 물어봤냐.”

“게오르그가 도움 안 되는 말만 해서 그런 거잖아! 진짜 아무 쓸모도 없어!”

적반하장으로 호통을 친 아냐가 허공에서 요술 재봉 도구를 꺼냈다.

옆에는 황금 돼지 저금통을 깨뜨려서 얻어낸 요술 옷감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물론 곧바로 귀여운 드레스를 소환할 수도 있다.

아냐의 황금 돼지는 값만 맞다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는 만능 저금통이었으니까.

하지만 완성품을 바라는 것은 효율이 높지 않았다.

지금처럼 재료와 도구를 소환해 직접 만드는 쪽이 금화 대비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예쁘게 만들어야지. 내 드레스만큼 예쁘게 만들어야지.”

작은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옷 제작에 들어가는 아냐 마르타.

귀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게오르그는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일 선물로는 금화 두 닢 어치밖에 쓰지 않았던 녀석이, 웬 고양이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해 금화 100개짜리 옷감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

‘……다른 생각이나 하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게오르그가 조용히 침대로 향했다.

아냐에게 등을 보이게 돌아누운 그가 아이른 파레이라에 대해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녀석.’

소문으로 듣기는 했다. 그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당시에도 엄청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단장의 기세를 버텨 내며 검을 들었을 정도로 대단한 의지를 갖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장세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헌데 오늘 그가 보여 준 모습은, 그것보다도 더 대단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게오르그가 단장과 마주했을 때의 아이른 파레이라를 머릿속에 그렸다.

“……말도 안 되는 녀석.”

“아이 참! 조용히 좀 해! 작업에 방해되잖아!”

“네 방으로 가서 하면 안 될까.”

“안 돼. 그러니까 조용히 해.”

“……알았다.”

한숨을 내쉰 게오르그가 다시 생각을 이어 갔다.

이그넷과, 그리고 엄청난 재능을 가진 요술사와 함께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진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조차 아이른의 끝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단장이 저만한 반응을 보인 인물은 다 합쳐서 다섯 명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율리우스 휼, 퀸시 마이어스…… 보지는 못했지만, 이안 관주도 그랬겠지.’

마주하자마자 방으로 돌아가 명상에 빠진 단장이라니.

젊은 사람 중엔 처음이었다.

전에 없이 즐거워 보이던 이그넷을 생각한 게오르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탐사가 생각보다 더 재미있겠네.”

“게오르그! 쫌! 자꾸 아냐 힘들게 하지 마!”

“…….”

게오르그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우울해하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냐는 분주히 작은 손을 움직일 따름이었다.

* * *

그 시각.

연회장에서 빠져나온 아이른 파레이라 역시 이그넷과 마찬가지로 명상에 잠겨 있었다.

만남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남긴 감정은 결코 적지 않았다.

호승심, 기쁨, 그리움, 동경, 그 밖에도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폭풍처럼 헤집어 놨다.

‘그래도 일단은,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이 맞겠지.’

처음 만났을 때의 이그넷이 생각난다.

자신을 자신으로 바라보지 않고, 전생의 흔적으로만 인지했던 그녀에게 아이른은 진한 패배감을 느꼈었다.

어찌 보면 그때의 감정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이른은 전과 달리 당당한 자세로, 동등한 입장에서 이그넷의 눈빛을 받아 낸 자신을 솔직하게 칭찬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녀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아이른 파레이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대검을 소환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익-!

휘이익!

‘내가 품은 뜻을 이루기에는, 능력이 너무 부족해.’

던전 탐사에서 활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그넷 크레센시아보다 높은 경지로 올라서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아이른이 더 강함 힘을 추구하는 것은, 두르칼리에서 세운 뜻과 신념을 온전히 이뤄 내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종종 생각한다.

알하드 산채에서 자신의 능력이 모자랐다면,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렸을까?

아이젠마르크트에서 만난 그레이슨보다 자신이 약했더라면, 지금처럼 루루, 일리아와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터였다.

‘……단단한 의지와 신념, 뜻을 품는 것은 중요해.’

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한 힘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좋은 뜻을 품고 있더라도 허무해질 수밖에 없을 터.

눈을 빛낸 아이른 파레이라가 더욱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후웅!

전생의 자신이 남긴 강인한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뜨겁게 키워 나간다.

후우웅!

그와 함께 육신의 힘도 키워 나간다.

심(心)과 신(身)의 어느 한 쪽이 모자라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 나간다.

정진해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불꽃처럼 뜨거운 마음을 품은 청년이, 영웅의 자세로 자신의 검을 가다듬어 나갔다.

그런 그가 수련을 멈춘 것은, 겨울의 기나긴 어둠이 물러가고 찬란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을 시점이었다.

‘……일리아.’

밝아진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른이 문득 일리아 린제이를 떠올렸다.

알고 있었다.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이그넷 크레센시아를 만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그렇게 고생해서 마주한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그야말로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을 때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역시 이그넷이 전과 같은 반응을 보였더라면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친구의 옆에서 함께 걸으며 격려해 줄 수도, 그녀가 힘들어할 때마다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걸음을 떼는 것은 일리아 스스로 해야 한다. 그것까지 자신이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조금 더 자신의 친구에 대해 생각하던 아이른 파레이라가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어제 그랬듯이, 항상 그랬듯이.

몸을 움직이는 그의 눈에는, 친구에 대한 염려보다 훨씬 큰 신뢰가 담겨 있었다.

* * *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전력이 온 이후로 2주의 시간이 지났다.

던전 탐사 준비는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일 뿐, 물밑에서는 끊임없는 견제와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던전과 근접한 지역인 라바트, 팔랑케, 칼벤을 제치고, 아빌리우스의 총 책임자인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탐사대의 대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물론 불편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대륙 최고의 강대국인 아빌리우스라고는 하나, 명분은 3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탐사를 지휘하는 것과 던전의 보상을 나누는 것은 별개라고 말하긴 했으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라바트와 팔랑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외교업무를 처리하던 게오르그 대신, 이그넷이 짧은 폐관을 깨고 2국의 책임자들을 만난 뒤로는.

“배려해 줘서 감사합니다.”

“…….”

“…….”

더는 지휘권과 관련하여 잡음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후우, 후우.”

물론 아이른 파레이라는 그런 정치적인 일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쒜엑!

이상을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

쒜에엑-!

꿈을 꿈으로만 놔두지 않기 위해.

쒜에에엑!

단단한 신념을 품어 성장한 정신을 따라잡기 위해, 아이른의 육체가 성장을 거듭하였다. 매일같이 진화를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출진의 때로부터 정확히 24시간이 남은 시점.

“후우.”

비로소 검을 거둔 아이른 파레이라가 먼 과거를 떠올렸다.

크로노 검술관의 예비 수련생 시절, 중간고사 직전의 각성을 상기한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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