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 공자, 노력 천재 되다-186화 (186/388)

◈ 62. 당혹스럽다 (3)

드래곤은 대단하다.

비단 육체 능력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동산만큼이나 커다란 몸뚱이,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완력도 아주 훌륭하기는 했다.

하지만 드래곤이 진정으로 굉장한 존재라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 능력’이 대마법사를 상회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엄두도 못 낼만큼 굉장한 양의 마력을 다루고.

인간은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마법을 알고 있다.

또 인간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드래곤에 대한 대중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물론 인간 마법사들은 드래곤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악마가 모습을 감춘 15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인 400년 전에도 드래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용의 모습을 한 악마인 ‘마룡왕’이 전부일 뿐, 마법을 사용하며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줄 아는 존재는 그 어디서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페리 마르티네스쯤 되는 뛰어난 마법사가 ‘드래곤’을 입에 담은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누구보다 환상 속의 존재에 회의적인 그는 장난으로라도 그런 단어를 입에 담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만큼 거대한 마력을 다루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드래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루루를 처음 본 페리 마르티네스가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더욱 황당했다.

전투 마법사의 복장을 하고, 드래곤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마의 뿔과 등 뒤의 박쥐 날개를 가지고, 중부 최고의 마법사인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마력을 움직인다.

그런 주제에 하는 말이, 뭐?

고양이?

“……그게 무슨 말이오.”

“응? 뭐가?”

“고양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소.”

페리 마르티네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반말은 쓰지 않았다. 겉모습은 소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실제 나이가 얼마나 많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 애초에 가진 바 능력만으로도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다.

‘장난이 심한 성격 같기는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더는 그러지 않겠지.’

이런 생각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뿔이 달린 소녀는 여전했다.

“당연히 내가 고양이라는 말이지. 못 들었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응. 농담 아니라 진짜야. 왜 고양이 말을 안 믿어.”

“…….”

“아 참. 내 이름은 루루야! 반가워!”

“……페리 마르티네스다.”

“인간 모습은 악수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아! 혓바닥은 별로지만.”

웃는 얼굴로 손을 뻗어오는 루루를 보며, 페리 마르티네스가 얼떨결에 악수했다.

물론 여전히 소녀에 대한 의구심은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를 마주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렸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말을 가려가며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의도는 뻔했다. 어째서 드래곤이 아닌지, 어째서 고양이인지를 알려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이것 참!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의심이 많다니까!”

“…….”

“그래도 괜찮아. 요즘 검사들하고만 함께 다녀서, 마법사랑 대화하는 지금이 꽤 즐겁거든. 같이 어울려줄게!”

페리 마르티네스의 질문에 잠시 짜증을 냈던 루루.

허나 그러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바로 표정을 푼 그녀는 잘 보라는 듯 엄지 두 개로 자신을 가리킨 뒤, 화려한 몸짓으로 세 바퀴를 회전했다.

그러자 찬란한 빛이 루루를 감싸며 기적을 일으켰다.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연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자, 봤지?”

“…….”

“앞으로는 남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잘 믿어 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인생이 피곤해진다고.”

“……그렇군. 요술이었군. 이제야 생각났어.”

당당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페리 마르티네스가 중얼거렸다.

들어 본 적 있다.

최연소 소드마스터인 일리아 린제이를 꺾은 아이른 파레이라의 곁에 항상 붙어 있는 요술사가 있는데, 놀랍게도 인간이 아닌 고양이라고.

사람 말을 할 줄 알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물론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었다.

변신 후에 요술이 아닌 마력을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들어 본 적 없었다.

사실 마법사의 논리와 상식으로는 어떤 것이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허나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적의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요술’이었다.

이 미친 작자들은 도무지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었으니까.

“으음.”

하지만, 루루가 드래곤이 아닌 고양이 요술사인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됐건 이 녀석은 마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요술의 힘을 마력으로 치환한 것인지, 요술을 통해 마법사의 자질을 갖추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루루가 칼벤의 ‘마법 전력’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것을 알아내기 전에는 마음 편히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마친 페리 마르티네스가 입술을 핥은 뒤, 다소 살가워진 어조로 넌지시 말했다.

“루루.”

“응, 페리. 페리 맞지? 성은 길어서 까먹었어.”

“괜찮다.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는데…….”

“어떤거?”

“방금 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 줄 수 있나?”

“왜?”

“네가 변신 상태에서 쓰는 힘, 마법하고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었거든. 혹시 그 상태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해서…….”

“아아, 그렇구나.”

“보여 줄 수 있나? 보여 준다면, 네가 좋아할 만한 특별한 생선 요리를 대접하마.”

“좋아!”

루루가 순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침을 꿀꺽 삼킨 고양이가 허공에서 세 바퀴 회전하자 또다시 기적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뿔과 날개가 달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를 본 페리 마르티네스의 표정이 재차 굳어졌다.

분명했다. 변신 상태의 루루는 대마법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오랜 세월 마법의 길을 걸은 그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내 밑이 아니야. 어쩌면…….’

마법으로 유명한 룬텔 왕국 3가문의 수장보다도 대단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는 그에게, 루루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이거 내가 며칠 전부터 열심히 연습한 건데, 특별히 보여 줄게.”

우우우웅-!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약간의 진동과 함께 마법사만이 느낄 수 있는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페리 마르티네스의 얼굴이 더욱 진지해졌다. 예순을 바라보는 노마법사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진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마력이 휘몰아쳤다. 응집되었고, 퍼졌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완성된 마법을 바라보는 루루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 피어났다.

그녀가 말했다.

“휴! 힘들었다. 완성이야! 요술 불빛으로 그린 그림!”

“…….”

“왼쪽이 아이른이고, 오른쪽이 일리아야. 중앙은 고양이 모습일 때의 나야! 아, 아이른이랑 일리아는 내 친구인데, 둘 다 엄청 착하고, 나랑 말도 잘 통하고…….”

뜬금없이 아이른 파레이라와 일리아 린제이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마법 소녀, 아니 요술 소녀.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페리 마르티네스가 그림 쪽을 쳐다봤다.

동네 개구쟁이가 나뭇가지로 그린 듯 기괴했다.

엄청난 마력을 때려 박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찮은 결과물.

‘농담한 건가? 아니면 이번에도 진심인가?’

알 수 없었다.

“……좋은 친구를 뒀구나.”

가까스로 칭찬 한마디를 내뱉은 그가 생각했다.

조금 더 이 기묘한 요술사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말이다.

* * *

아이른 일행이 라바트의 영지에 도착하고 열흘이 흘렀고, 던전 탐사 전의 긴장을 풀기 위한 연회가 개최되었다.

신성왕국 아빌리우스의 인원들이 도착하지 않았지만,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상대에게 너무 맞춰 줄 수 없다는 기 싸움의 의도도 약간은 내포되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성왕국을 견제하는 라바트와 팔랑케 측이 칼벤이라고 고운 눈으로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삽시간에 어마어마한 전력을 모셔온 그들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군, 아이른 파레이라.’

팔랑케의 최고 기사, 세비온 브룩스가 연회장에 도착한 아이른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기운을 쏘아보낸다거나 하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의 검사라면 자신의 눈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거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허나 아이른 파레이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서부가 자랑하는 일리아 린제이보다도 더 대단한 느낌이야.’

여러 기사, 마법사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그의 관심은 금발 청년을 떠나지 않았다.

반면 페리 마르티네스는 아이른 파레이라가 아닌,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루루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야.’

원래 요술사라는 존재가 다 그렇지만, 루루는 도가 지나쳤다.

변신하면 마법사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엄청나게 막대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것도, 그런 주제에 마력 컨트롤이나 마법을 뽑아내는 효율은 한참이나 떨어지는 것도.

하나같이 그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

페리 마르티네스가 그저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주구장창 이상한 마법만 보여 주던 루루가 처음으로 보여 준 불덩이 마법.

정교함은 말도 안 되게 모자랐지만, 위력만은 풍경을 바꿔 버릴 정도로 끔찍했던 그 마법을 생각하며……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 다른 능력들도 개화할지 모르니,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듯 아이른과 루루는 팔랑케와 라바트 최고 전력으로부터 녹록치 않은 견제를 당하고 있었다.

허나 그들보다 더한 압박을 받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일리아 린제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비온 브룩스와 페리 마르티네스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일리아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아이른 파레이라가 티나지 않게 옆의 눈치를 살폈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일리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라바트와 팔랑케의 귀족들은 그녀를 욕심 많은 정치인, 혹은 철부지 사고뭉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던전에 숟가락을 걸치거나, 혹은 이그넷과의 사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무례를 범하거나.

결국은 둘 중 하나라고 미리 결론을 내리고 일리아를 바라보는 것이다.

‘과해.’

엄밀히 말하자면 사적인 인연을 위해 참여한 게 맞기는 하다.

허나 일리아는 이미 그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던전 보상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그넷과의 일로 탐사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수차례 전했다.

그런데도, 잘못을 저지르긴커녕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있음에도 곱지 않은 시선과 험담을 쏟아내는 귀족들이 아이른은 몹시 불편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물론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현재 방황의 시간을 겪고 있는 일리아라고는 하나, 그녀는 강한 사람이다.

강하지 않았다면 이그넷을 마주하러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일리아의 표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담담한 상태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이른이 루루 쪽을 돌아봤다. 시선이 맞은 둘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

“…….”

“……?”

맑고 고운 음성.

허나 그러한 목소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험악한 욕설.

좌중의 이목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세비온 브룩스도, 페리 마르티네스도, 아이른 파레이라와 루루도 전부 일리아 린제이를 쳐다봤다.

허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은발의 검사가, 재차 고귀한 입을 열어 말했다.

“****.”

루루가 들고 있던 요술봉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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