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고대의 던전 (1)
전직 도적 떼의 수장, 현직 충실한 마부인 존슨이 과거를 떠올렸다.
한창 신나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부하 한 녀석이 그랬다.
검투장으로 유명한 도시인 아이젠마르크트에서 소드마스터끼리 대결을 벌였는데, 놀랍게도 둘의 나이가 각각 열아홉, 스물둘밖에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당연히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마스터는커녕 엑스퍼트에도 못 미치는 그였지만, 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그도 잘 안다.
대륙을 탈탈 털어도 100명이 있을까 말까 한 존재.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존재들조차 닿기를 바라마지않는 위대한 칭호.
그런 엄청난 경지에 뭐? 19살?
‘애송이도 아니고 핏덩이 수준인데,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듣고 와서 지랄이야!’
‘하지만 형님, 진짜 같던데요? 한쪽은 그 유명한 일리아 린제이고, 다른 한쪽은…….’
‘부풀려진 거겠지! 그쪽 동네 사람들 허풍 심한 거 몰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라 좀!’
아마 당시의 자신은 부하 녀석의 이마 한 대를 때린 뒤, 다른 이야기나 해 보라고 채근했던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때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두 천재의 정보를 듣고 알아 놓아야 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등등.
왜냐하면, 지금 자신이 수발을 들고 있는 존재가 바로…….
콰앙!
쾅
콰아앙-!
증명의 땅에서 온 젊은 소드마스터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저 나이에 오러 소드를 저렇게 좍좍 뽑아내?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존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 장작을 쪼갤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황당하진 않았다.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로노 검술관이든, 서부 5왕국 출신이든. 그런 대단한 곳에서 수학한 유망주들을 재수 없게 마주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허나 그들이 단순히 유망주가 아니라는 것은 세 번째 노숙 때부터 알게 되었다.
“존슨 씨,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종종 대련할 거거든요, 우리가.”
“예? 아 예! 편하게 하시죠!”
“네. 혹시나 놀라실 수도 있어서 미리 말씀드렸어요. 그럼…….”
그 이후에 벌어진 충격적인 광경을, 존슨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본 건 검술이 아니었구나!’
아니, 그전에. 이런 괴물들에게 도적질을 하려 했다니!
그 생각을 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저승으로 향하는 강에 허리까지 들어왔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찌 됐건 자신의 속셈은 들키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열심히 마부의 일만 잘한다면, 저 괴물들의 심기만 어지럽히지 않고 신성왕국에 도착할 수 있다면 만사형통이다.
항상 웃고, 항상 겸손하고, 항상 성실하자.
그렇게 생각한 존슨이 설거지를 하려던 때였다.
“얍!”
휘이익-!
콰아아아앙!
“아! 또 힘 조절 못 했다.”
“…….”
“방향도 엄청나게 빗나갔네. 그래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마어마한 위력의 불덩이를 쏘아 낸 뒤, 다시금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간 정체불명의 생명체.
저 녀석이야말로 존슨의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하는 존재였다.
기본적으로 두 소드마스터들은 예의가 발랐다. 마부 일을 한다고 자신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말투도 항상 부드러웠다.
괴물 같은 검술 실력만 아니라면 선인장처럼 무해한 존재라 느꼈을 정도였다.
허나 이 고양이인지 인간인지 모를 존재는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니! 고양이는 이런 거 안 먹는다고!”
“하지만 변신해서 먹으면 먹을 만해.”
“그런데 변신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하지만 하면 할수록 요술 실력이 느는 것 같아서 보람찬 느낌이 들어.”
“그래도 다음에는 고양이 전용 요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식사 한 번을 할 때조차 이렇게 많이 오락가락하는 그의 기분을, 존슨은 어떻게 맞춰 줘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 루루라는 괴생명체의 기분을 몇 번 좋게 만든 덕에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는 점이었다.
그의 돈주머니에는 벌써 12개의 황금 생쥐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물론 무사히 이번 일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설거지도 마쳤고, 잠자리도 준비했습니다.”
“항상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고마워!”
“별말씀을. 이게 제 일인걸요. 그럼 저는 주변을 잠시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존슨이 산책 겸 경계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물론 저들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쓸데없는 일이었다.
허나 일부러라도 자리를 피해줘야 했다.
‘내가 없을 때마다 뭔가 비밀 얘기를 하는 것 같으니까, 심기 거스르지 않으려면 알아서 비켜 줘야지.’
한번 살짝 듣기는 했다.
이름은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저 셋은 신성왕국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인 듯싶었다.
당시 그들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누굴 만나러 가는데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짓지?’
저 셋이 뭉치면 마인은 물론이고 진짜 악마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존슨이 휘휘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 버렸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었다. 눈치 빠른 그는 더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으, 춥다. 슬슬 돌아갈까?”
물론 끼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잠도 못 자고 주변을 맴돌고만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벌써 3~40분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돌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슨은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내며 걸어가다가, 피식 웃었다.
‘아니, 상대가 소드마스터랑 고양이…… 맞나? 아무튼 고양이 비슷한 건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이라면 자신이 큰 소리를 내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든 상관없을 터였다.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숙영지로 다가가는데, 의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 소드마스터가 나란히 앉은 채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어린 시절의 너로서는 엄청 크게 느껴졌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거야. 막상 만나면 생각보다 별거 없을걸?”
“……정말 그럴까.”
무언가 위로를 주고받는 듯, 진지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자신이 돌아온 것도 모르고 대화에 집중하는 둘을 보며 존슨이 당황하는데, 몸을 둥글게 말고 있던 고양이가 일어나 말했다.
“존슨 왔어?”
“아, 왔어요?”
“…….”
“어? 아! 네! 왔습니다!”
얼빠진 목소리로 자신이 돌아왔음을 이실직고하는 존슨.
루루는 고개를 끄덕거린 뒤 다시 잠에 빠졌고, 아이른 파레이라는 엷은 웃음으로 그를 반겨 줬다.
허나 일리아 린제이는 아니었다.
“……잠깐 주변 산책 좀 하고 올게.”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휙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른은 당황했고, 루루도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글쎄…….”
“쉬 마렵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눈치 없는 둘의 대화를 지켜본 존슨이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여자 쪽이 마음고생 좀 하겠구만.’
정말이지 눈치가 더럽게 없었다.
물론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얌전히 잠자리에 누운 그가 생각했다. 앞으로는 더 크게 기척을 내고 돌아와야겠다고.
* * *
어느덧 해가 바뀌고, 한 달의 시간이 더 흘렀다. 2월 초의 쌀쌀한 바람이 아이른 파레이라 일행을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바뀐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있는 장소도 바뀌었다.
존슨이 헌신적으로 마차를 몬 덕분에 예정보다 빠른 시기에 대륙 중부에 도착했다.
이 사실을 크게 기뻐한 루루가 요술 공간에서 보물 하나를 꺼냈다.
“수고했어. 앞으로도 열심히 해 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선을 문 고양이 모양의 금덩이를 받은 존슨이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숙였다.
그는 이제 이 고양이 요술사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성격이 괴팍한 거?
전혀 상관없었다. 괴팍하다고 해 봤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고, 가끔 화를 낸다고 해도 금방 풀렸다.
턱 밑과 정수리를 살살 긁어 주는 것만으로도 만사 해결이었다.
오히려 까다로운 쪽은 은발의 여성, 일리아 린제이 쪽이었다.
무언가에 시달리는 듯, 밤마다 깨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존슨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린제이 가의 재녀가 이토록 의식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그들이 신성왕국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물론 그는 자기 생각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샐러드와 닭고기 요리, 돼지나 소 둘 중 하나 큼직하게, 그리고 가시 바르기 쉬운 생선 요리 하나 주시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순식간에 음식 주문을 마친 뒤 테이블을 잡는 존슨. 인간 둘과 고양이 하나가 얌전히 그의 안내를 따랐다.
마지막 테이블을 점령한 게 기분 좋은 듯 루루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여기 생선 맛있었으면 좋겠다.”
“……?”
순간 몇몇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존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었으니까. 그는 조용히 관심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다른 이들 역시 별다른 말 없이 음식을 기다렸다.
다행히 별다른 시비는 없었다.
사람이 많아 내부가 시끄럽기도 했고, 루루의 말을 들은 몇 명도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중하는 테이블이 따로 있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중년의 용병이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던전은 진짜 굉장할 거야. 아마 근 백 년간 발견된 것 중에 제일 대단할걸? 최소 마룡왕 시절, 어쩌면 그보다 더 과거일 수도 있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웬만한 던전들은 벌써 50년도 전에 다 탐사되지 않았나?”
“뭐야, 던전 이야기구나.”
귀를 쫑긋하던 루루가 흥이 식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전에야 던전과 고대유적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그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쿠바르와 여행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들은 탓이었다.
무엇보다 뒤에 질문을 던진 사내의 말이 맞았다.
악마가 마계로 돌아간 15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수많은 던전들이 공략되었다.
영웅의 유지가 담긴 아티팩트나 신의 힘이 담긴 성유물 등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 단위로 탐사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남은 곳은 무명 마법사의 아지트 수준의 자잘한 장소들뿐일 터였다.
일리아와 존슨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루루와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허나 아이른은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진지한 눈으로 술 취한 용병 쪽을 쳐다보는 그를 보며, 루루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래, 아이른?”
“그냥, 감이…….”
“감?”
“응. 뭔가 나한테 중요한 얘기를 할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들어야지.”
아이른의 말을 들은 루루가 재차 용병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리아 역시 눈을 빛냈다.
존슨은 당황했다.
‘감’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태도가 바뀔 수 있나? 요술사의 감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어찌 됐건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갔다.
던전의 규모를 파악한 도시국가 칼벤이 빠르게 공략을 시작하려다 주변 왕국들의 견제를 받았다는 점, 그 때문에 3국 간에 분쟁이 발생하기 직전이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이를 중재하기 위해, 혹은 한 입 걸치기 위해…… 신성왕국에서 기사단을 파견했다는 점.
“아마 흑기사단장, 이그넷 크레센시아가 직접 올 것 같다는구만.”
“와, 아이른! 맞췄네! 훌륭한 요술사가 됐구나!”
“…….”
루루가 감탄한 목소리로 아이른을 칭찬했고, 일리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만의 상념에 빠졌다.
존슨은 멍하니 있었다.
원래부터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놀랄 일이 자꾸만 벌어졌다.
허나 아이른은 그다지 개운한 표정이 아니었다.
적당히 웃어 보인 그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염두에 뒀던 게 이그넷이었나?’
잘 모르겠다.
물론 지금 여정의 목적이 이그넷인 것도 맞고, 헛걸음하기 전에 여기서 관련 정보를 알아낸 것도 좋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이 가려웠다.
그녀와의 인연보다 더 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허나 계속 머리를 굴려 봐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짧게 고개를 저은 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신나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중년 용병에게 다가가, 정중히 물었다.
“실례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음?”
“방금 말씀하신 던전 탐사, 용병 신분으로 참가할 방법이 있습니까?”
주변의 이목이 쏠렸다.